85화. 반갑다
돌산의 정상.
지글지글.
와구!
“좀 익으면 먹지?”
비광이 눈살을 찌푸리며 날 노려봤다.
그러든 말든.
와구와구!
더 속도를 올려 익고 있는 소고기를 낚아챘다.
오늘은 2년 좀 넘게 이어진 수련의 마지막 날이었다.
하산 기념으로 소고기와 술을 잔뜩 사온 기태랑.
“에이 많잖아요.”
“이 속도면 네가 다 처먹을 거 같아서 그렇지.”
일주일에 한 번 보긴 했지만 비광과도 무척이나 가까워졌다.
뭔가 기태랑이 선생님이라면, 비광은 친근한 동네 형 같은 이미지였다.
“비광, 넌 좀 덜 먹어도 돼. 오늘은 백운 하산 기념 소고기니까.”
“와 서러워서 살겠나. 누가 보면 난 불청객인 줄 알겠네.”
투덜대면서도 열심히 고기를 집어가는 비광에 웃음이 나왔다.
1급 헌터 두 명과의 고기 파티라니.
누군가 보면 말이 되냐고 할 장면이었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하산하면 보고 싶겠는데.
2년이 넘게 붙어 살아서 인지 둘과 함께 하는 생활이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가능만 하다면 돌산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을 정도.
안될 말이지.
그럼에도 하산을 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했기에.
내려가야 했다.
강해지기 위해서라곤 하지만 여러 일정이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다.
무기도 다시 구해야 하고.
친구도 만나러 가야 할 때가 됐으니.
그리고, 하나 더.
고개를 들어 기태랑을 바라봤다.
회귀 전에 기태랑은 누군가에게 살해 당했었다.
그 시기가 일 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
답답하네.
무언가 정보라도 있으면 좋을 테지만.
회귀를 하는 순간까지도 기태랑의 죽음은 모든 이들의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였다.
다이아몬드 인간이 검에 베여서 죽임을 당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어려웠다.
지금 기태랑에게 나중에 죽으니 조심하라고 말하기도 애매했다.
애초에 누구에게, 어떻게 죽을지를 모르니 뭘 조심하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뭐.
일주일 전부터 밀착 경호를 실시할 수밖에.
돌산으로 오르기 전에는 아니었지만.
이젠 기태랑을 졸졸 따라다녀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되었다.
두어 달 전부터 조사는 시작해보자.
혹시 얻어걸릴지도 모르니.
기태랑에 대한 플랜을 정립한 후.
다시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진짜 눈물나게 맛있네.
종종 고기를 구워 먹긴 했지만 이렇게 입에서 살살 녹는 소고기는 처음이었다.
하산 기념이라고 최고 등급을 사온 느낌.
“그래서, 오늘 내려가면 어디로 갈 생각이야? 지낼 곳도 없잖아.”
기태랑의 물음에 으음 소리를 내며 턱을 문질렀다.
확실히 당장 잘 곳도 없지만.
당분간은 필요 없었다.
“구하긴 해야 되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해야 하는 일이 있거든요.”
“대체 그 해야 되는 일이 뭔데? 이제 좀 알려주지.”
스윽.
엄근진한 얼굴로 궁금해하는 비광을 바라봤다.
틈만 나면 하산하고 뭘 하려는 거냐고 물었었던 비광.
“그것은.”
“그것은…?”
덩달아 진지해진 비광에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비밀입니다.”
“… 사적으로 패도 되나? 수련 아니어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비광에게 손을 내저었다.
“어차피 곧 알게 되실 거예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둘에게만 미리 말할까 싶었지만.
분명 미친 짓을 한다고 말릴 게 분명했기에 알리지 않았다.
조금만 참아주세요.
조만간 알기 싫어도 알게 될 테니까요.
“마각 보호대는 언제까지 차고 있으려고?”
기태랑의 말에 고개를 내려 팔과 다리, 몸에 차져 있는 보호대를 바라봤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차례도 떼지 않았던 보호대들.
이제는 내 몸의 일부처럼 익숙해져 있었다.
“좀 실험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나중에 반납해도 되나요?”
“몇 년 뒤에 해도 돼. 그거 쓰려는 인간은 아무도 없으니까.”
감사하다는 표시로 엄지를 치켜 세운 뒤.
연기가 향하고 있는 하늘을 바라봤다.
여기도 이제 빠빠이구만.
둘 만큼이나 너무 익숙해진 장소였다.
물론 겨울에는 얼어 죽을 뻔했지만.
어찌 됐든 절대 잊지 못할 추억이 생긴 곳이다.
슥.
…!
기태랑이 가득 채운 잔을 내밀었다.
“하산 축하한다.”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건배 제의에 비광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낯간지러운 말 참 잘해.”
투덜대면서도 잔을 내미는 비광.
내게 아무런 대가 없이 2년간 많은 걸 가르쳐준 두 사람.
두 사람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준 뒤 잔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쨍.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딪히는 세 개의 잔.
잔에 든 술을 들이키며 기태랑을 바라봤다.
걱정마세요.
꽈악.
절대 죽게 두지 않을 테니까.
* * *
끼이익.
차가 멈춰서고.
“진짜 여기면 되겠어?”
걱정스러운 얼굴의 기태랑에게 걱정말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여기 먼저 볼일이 있어서요.”
“검 관련해서 괜찮은 녀석 있으면 바로 알려줄 테니까. 연락 잘 받아라.”
비광에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 혹시 검 쓰는 법도 좀 배울 수 있을까요?
돌산에서 기태랑과 비광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면도칼과 스이카를 쓰고 있긴 하지만 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 으쓱.
내 말에 서로를 바라보며 어깨를 올렸던 기태랑과 비광.
두 명 모두 검을 잡아본 적도 없기에 알려주는 게 불가능하단 말을 했다.
- 좋은 놈 있으면 소개 시켜줄게.
물론 두 명의 눈에 차는 인물이 없었기에.
아직까지 검술은 배우지 못한 상태였다.
“저 그럼 갑니다!”
뒷좌석에서 쿨하게 내려 손을 흔들어 보였다.
왠지 모르게 데자뷰가 일어나는 장면이었다.
휘적휘적.
그런 나를 향해 건성건성 손을 흔들어 주는 비광과.
손을 흔드는 대신 미소를 건네는 기태랑까지.
둘에게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 후 몸을 돌렸다.
자 가볼까.
도착한 곳은 용산의 전자상가.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전자기기들이 모여있단 소식을 듣고 이곳으로 왔다.
저기가 좋아 보이네.
전자상가 정중앙에 거대한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손님도 제일 많은 걸 보니 무언가 신뢰 가는 가게였다.
딸랑.
“어서옵셔!”
반갑게 맞아주는 주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미 살 건 정해져 있었기에 둘러볼 필요는 없었다.
내가 돌아왔으니.
“여기서 제일 좋은 액션 캠 하나 주세요!”
무기왕도 돌아와야 할 때였다.
* * *
CBC의 휴게실.
카메라맨 진유석이 파트너인 송유빈에게 다가갔다.
“선배, 뭘 또 그렇게 멍 때리고 있어요?”
정신없이 무언가를 찾아보고 있는 송유빈.
다가갔던 진유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선배 또 무기왕 찾아보고 있네.”
“저리 가라, 우울 옮는다.”
송유빈의 힘 없는 목소리에 진유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기왕이 사라진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살아있다면 밥벌이를 위해서라도 한튜브에 영상이 올라왔을 텐데.
무기왕과 관련된 동영상은 완전 제로였다.
- 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 크게 다친 건 아닐까요?
1년까지는 많은 이들이 무기왕을 찾으며 그리워했지만.
- 무기왕은 죽은 게 분명합니다.
소위 전문가들이라는 이들의 나름 일리 있는 해석에 기다리고 있던 이들도 한 명 두 명 희망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2년이란 시간은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물론, 딱 한 명.
아직까지도 목 놓아 무기왕을 기다리고 있는 이가 있었다.
‘이 정도면 끈질긴 걸 넘어갔는데.’
2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무기왕을 포기하지 못한 송유빈.
진유석이 송유빈을 보며 저 정도면 병이 아닐까란 걱정을 했다.
“조금 있으면 나가야 되니까 준비하세요, 선배.”
“오냐아.”
기분은 어쨌든 먹고는 살아야 하니.
준비하라는 진유석에게 송유빈이 손을 휘적휘적 흔들어 보였다.
“하아…!”
땅이 꺼져라 숨을 내쉰 송유빈이 쇼파로 몸을 기댔다.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마운티거 당시 무기왕이 돌아왔다며 소리를 질렀던 송유빈.
그 덕에 프로그램이 끝난 뒤 꽥꽥 소리를 질러댄 죄로 한참을 깨져야 했다.
‘무기왕님, 안 돌아오면 반칙이에요. 그렇게 깨졌는데 바로 없어지기 있냐고 진짜.’
1년 전까지만 해도 종종 댓글이 달리던 무기왕의 영상.
이제 송유빈을 제외하곤 아무도 보지 않는 동영상으로 저 바닥에 깔려버렸다.
‘… 왜 이렇게 다 재미가 없냐.’
부족했다.
지금도 수많은 헌터가 조회수를 위해 동영상을 올려대고 있지만.
그때 무기왕이 줬던 만큼 송유빈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아아아아!”
다시 한번 큰 한숨을 내쉰 송유빈이 울상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 좀 돌아오라고! 어디서 뭘하고 있냐고오오오!”
* * *
“에취!”
누가 내 얘기 하나.
간질간질한 귀를 후비적거리며 앞을 바라봤다.
점점 저물어가는 해가 바다에 비춰 멋진 광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옘병 광경이고 뭐고 지겨워 죽겠네.
분명 멋진 광경이지만.
한두 번 봐야 멋지지 계속 보니 하품만 나올 뿐이다.
보글보글.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맛있는 거 더 사올 걸!
나름 챙겨온다고 챙겨왔는데 이제 남은 거라곤 비상식량으로 사온 라면 한 박스 뿐이었다.
외딴 무인도의 바닷가에 죽치고 있기를 2주일.
기다리고 있는 사로카는 나타날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다.
회귀 전 태랑 아저씨가 사로카를 잡은 게 일주일 뒤.
기태랑이 사로카를 잡은 뒤 국가에선 사로카가 나타난 경로를 역조사 했었다.
그렇게 도달한 장소가 바로 이곳, 인천 앞바다 구석탱이에 떠 있는 조용한 무인도였다.
여기서부터 놓치긴 했지만.
당시엔 이 뒤로 흔적이 지워져 더 쫓지 못했지만.
지금이야 일본에서 오겠거니 싶었다.
흐음… 역시 바뀐건가.
후지산에서 날 만나며 팔을 잃었던 사로카.
그 일이 변수가 되어 나타나지 않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만 더 기다려보자.
기태랑이 잡았던 시기까지 안 나타난다면.
더 이상 여기에 죽치고 기다리는 건 무의미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에이! 쌍놈의 새끼.”
라면이나 먹자.
드드드…!
!!
나무젓가락을 갈라 냄비로 향하려는 순간.
라면 국물에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지반이 흔들리고 있었다.
두근.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제발.
점점 근처로 가까워지기 시작한 진동에 두근거림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제발.
간절한 마음으로 갈라지기 시작한 땅을 바라봤다.
회귀 전과 똑같은 위치였다.
드드드… 콰아앙!
커다란 굉음과 함께 시뻘건 거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하….”
이렇게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애가 탔었는데.
드디어 나타났다.
슥.
미치도록 반가운 마음에 젓가락을 내려놓고 조금 전 무인도에 모습을 나타낸 놈에게 걸어갔다.
“크르…?”
어느 정도 다가가자 고개를 돌리는 사로카.
팔 하나가 없는 걸 보니 후지산에서 만났던 그놈이었다.
씨익.
나도 모르는 사이.
양쪽의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반갑다, 빨갱이 새끼야.”
입에서 미소를 넘어 웃음이 흘러나왔다.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