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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87화 (87/473)

87화. 다시 위로

무인도의 해변가.

어느새 해가 지고 밝은 달이 떠 있었다.

사라아…!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비늘을 바라봤다.

달빛에 반사된 비늘이 평소보다 더 눈부신 청색 빛을 뿜어냈다.

자신의 맡은 바를 훌륭히 수행한 후 사라지는 유탈라스의 비늘.

돌산에서 유탈라스를 계속해서 사용하며 새삼스레 알게 된 게 있었다.

항상 한 번만 사용하고 사라졌던 건 내가 그렇게 사용해서였다는 것.

우매했어.

무기왕의 능력으로 무기를 사용하는 방법은 모두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디테일은 챙기지 못했다.

의태와 동시에 팔을 덮는 수많은 유탈라스의 비늘.

비늘에는 개수가 정해져 있으며 사용자인 내가 조절할 수 있었다.

맨날 100%로 한 방에 다 때려 박아서 바로 사라진 거였어.

비늘이 다 소모되는 만큼 강력했지만 동시에 내게 주어진 건 단 한 번의 기회였다.

사로카도 똑같이 생각했겠지.

분화구에서 자신의 팔을 날린 뒤 곧바로 사라져버린 비늘.

그리고 내가 최후의 한 방이라는 듯 공격을 재며 신중을 기하는 모습까지.

깊이 생각할 시간따윈 없었기에 사로카는 주어진 정보들로 판단을 내렸을 터였다.

한 번만 피하면 비늘은 사라질 테고, 그럼 내가 이길 수 있다.

라고 말이다.

그걸 노렸다.

그렇기에 첫 의태 공격은 비늘 중 10% 정도만을 사용해 그럴싸한 모양만 냈었다.

맞으면 좋고, 아니어도 그만인 공격.

그렇게 빨리 땅굴 파고 도망갈 줄은 몰랐지만.

첫 공격이 빗나간 후 팔을 덮었던 비늘은 소모되어 사라져버렸다.

나머지 비늘은 모두 손바닥에 숨겨둔 채 사로카를 기다렸다.

사로카의 주먹이 내게 거의 다가온 순간.

사로카가 나타나고 아주 잠시였지만, 꽤 길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굳이 생각하려 하지 않았는데도 비광과 기태랑의 가르침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고.

가르침에 따라 내 몸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 결과로.

붉은 갑주의 사로카는 지금 산산조각이 나 내 발아래 흩어지게 됐다.

- 날 이겨줘서 고마웠다.

사로카를 끝내기 전 했던 말은 진심이었다.

사로카 덕에 많은 걸 깨달았고,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강해질 수 있었다.

- 후지산으로 가라.

지금도 긴가민가 하지만.

어쨌든 쪽지도 진짜였던 걸로 확정.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모든 게 후지산으로 가 사로카를 만난 덕분에 시작된 것이었다.

“하아아!”

2년 넘게 기다렸던 일을 끝내서일까.

땅이 꺼지는 한숨이 아닌.

속을 뻥 뚫리게 만드는 숨이 터져 나왔다.

… 조용하네.

조금 전까지 전투가 벌어졌다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나 혼자만이 서 있게 된 무인도는 무척이나 고요했다.

척박한 환경 때문인지 벌레도 살지 않는 모양이었다.

쏴아아….

들리는 거라곤 멀지 않은 바다에서 파도가 치는 소리뿐이었다.

아 맞다.

삑.

손을 들어 가동 중이던 액션 캠을 종료시켰다.

- 라이브 송출도 가능합니다!

전자상가의 아저씨는 최고의 액션 캠이라 소개하며 새로운 기능들을 읊어줬었다.

뭐 제대로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됐다면.

무기왕의 복귀도 성공적으로 알린 셈이었다.

풀썩.

그대로 몸을 젖혀 모래사장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침대 만큼은 아니지만 폭 파여 내 몸을 둘러싸는 모래의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벽.

막힘없이 오르던 나를 멈춰 세웠던 사로카라는 벽.

조금 전 그 벽을 완전히 박살 냈으니.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다시 올라간다.

2년이 넘는 시간을 멈춰 있었으니.

앞으론 절대 멈추지 않을 생각이었다.

뭘 만나든.

스르륵.

어떻게든 부수고 올라간다.

나른해지는 느낌에 두 눈을 감았다.

* * *

“….”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엎드려 핸드폰을 보고 있는 송유빈.

누가 보면 핸드폰 안으로 빨려 들어간 줄 알 듯한 자세와 집중도였다.

“….”

화면엔 검정색 바탕뿐이었다.

라이브 방송은 한참 전에 종료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송유빈은 그 자세 그대로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두근. 두근. 두근.

2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심장이 이렇게 뛴 적이 있었던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에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미쳤어.’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후 송유빈의 한 줄 감상평이었다.

채팅창은 읽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정신없게 난리가 나버렸지만.

상관없었다.

채팅창으로 눈을 돌릴 여유따윈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 사로카야.’

송유빈도 사로카를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이 사로카를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로카는 바로 옆 나라인 일본에서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준 뒤 사라져버린 데몬이었기 때문이다.

다들 사로카의 퍼포먼스를 보며 겁에 질렸고, 바다를 건너 한국으로 오면 어떻게 하냐며 많은 걱정을 토로했었다.

‘2년이 지나면서 무뎌지긴 했지만.’

무기왕이 사라졌던 시간 만큼.

사로카 역시 일본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일본 정부는 계속해서 추격을 하고 있다고 했지만 어느 정도 포기한 느낌이 들었었다.

‘2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사로카를 잡은 게 2년 만에 부활한 무기왕이라니.’

핸드폰은 안 보고 있지만 이건 엄청났다.

예상하건데 이 라이브 영상은 한국에서만 화재가 된 게 아닐 것이다.

‘일본.’

사로카에게 직접적인 인명 피해까지 당했던 게 일본이다.

그런 사로카를 잡아버린 무기왕.

아마 지금쯤 일본도 난리가 났을 터였다.

풀썩!

“하하…!”

송유빈이 자세를 고쳐 침대로 몸을 뉘었다.

아직까지도 두근거리는 가슴.

“오늘 잠은 다 잤네.”

잠은 못 잘 게 분명했지만, 괜찮았다.

“내일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송유빈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그려졌다.

“재밌겠다.”

아주 오랜만에 내일이 기다려지는 밤이었다.

* * *

송유빈의 예상과는 달리.

2년째 유지되고 있는 일본 긴급 대책 본부는 고요함만이 가득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고요함보다는 정적이 더 옳은 단어였다.

“….”

본부의 장을 맡고 있는 니시다 료코를 포함한 모든 이가 새까맣게 변한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모두의 표정은 동일 했는데.

마치 귀신에 홀려 굳어버린 듯한 멍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료코의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 단어였다.

아마 본부의 모든 이들이 같은 생각일 것이다.

후지산 이후 료코와 본부는 하루도 마음 편히 쉰 적이 없었다.

‘휴식은 사치였으니까.’

사로카에게 죽임당했던 수많은 동료들.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꼭 사로카를 찾아내고 싶었다.

그렇게 2년이 넘게 끈질긴 추격을 했지만.

결과는 대실패였다.

‘항상 한발 늦었었지.’

사로카가 땅굴을 통해 이동한다는 건 알아냈지만.

땅굴을 이용해 어디로 갈지는 예측할 수가 없었다.

항상 땅굴을 발견하더라도 이미 사로카는 사라진 뒤였다.

- 그만 포기하고 돌아와.

상부의 명령에도 료코는 고집을 꺾지 않았었다.

이제 와서 포기하면 죽은 이들을 무슨 낯으로 본단 말인가.

그러던 중 한국의 한튜브에서 시작된 라이브 방송.

무기왕이란 헌터가 튼 방송을 봤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토록 찾던 사로카가 한국의 라이브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

‘어떻게 찾은 걸까.’

라이브가 시작된 시점을 봤을 때.

무기왕이란 헌터는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사로카가 그곳에 나타날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 !!

그리고 사로카와 무기왕이란 헌터의 싸움이 시작되고 잠시 후.

료코는 알게 되었다.

2년 전 분화구에서 사로카와 싸웠던 백운이 무기왕이란 것을.

분화구에서 봤던 팔을 감싸는 청색 비늘.

후지산에서 그 비늘을 봤었기에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또 다른 의미의 어떻게였다.

분명 같은 사람일 터인데.

라이브에 등장한 백운은 더 이상 분화구에서 사로카에게 패배했던 그 백운이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움직임으로 S급 데몬 사로카를 장난감 가지고 놀 듯 한 백운.

그 때문이었다.

본부에 정적이 깔려있는 이유는.

‘사로카가 나타났다는 것도 놀랄 일인데… 그 끔찍했던 데몬을 저렇게 잡아버렸으니.’

본부의 이들은 누구보다 사로카의 강함을 잘 알고 있었다.

1급 혹은 2급 헌터가 아니라면 대적조차 불가능한 게 사로카였다.

그런데 라이브에 등장한 타국의 헌터는 그런 사로카를 가지고 놀다 한방에 산산조각 내버렸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료코가 2년 전을 떠올렸다.

일본을 떠나는 백운을 보며 들었었던 확신.

다음에 봤을 땐 비약적으로 강해질 거란 확신을 했었지만.

조금 전 봤던 건 그 확신을 한참 뛰어 넘어버렸다.

“자… 장관님.”

꺼진 화면을 보던 이들이 료코에게 고개를 돌렸다.

방금까지 바쁘게 했던 모든 일들을 더 이상은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 모두 하던 일은 내려놓으세요.”

지시를 기다리는 직원들을 향해 료코가 입을 열었다.

‘허무하지만.’

료코의 입가에 안도의 미소가 걸렸다.

“비상 대책 본부의 임무는 끝났습니다.”

* * *

부스스.

오지게 자버렸네.

모래사장에서 몸을 일으켜 텐트로 다가갔다.

싸울 때 신경은 못 썼는데 다행히 박살나거나 하지 않았다.

꼬로록.

생각해보니 밥을 먹기 직전이었다.

젓가락을 한술 뜨려는 순간에 나타나버린 사로카.

좋지 않은 타이밍에 다 끓인 라면은 맛도 못 보고 말았다.

샤발.

돌아오니 라면이 있던 냄비는 모래 범벅이 되어 있었다.

직접적인 충격은 안 받았지만 흩날린 모래가 라면에 침투한 것.

관우는 차가 식기 전에 끝내고 돌아왔는데.

그러지 못했음에 잠시 침통한 표정을 지은 후.

생수를 부어 냄비를 씻어냈다.

큰일 날 뻔했어.

싸우던 중 버너가 부서지거나 냄비가 날아갔다면 쫄쫄 굶거나 생라면을 씹을 뻔했다.

안될 말이지.

날 밝으면 수영해야 하는데 생라면이라니.

육지와 그리 먼 무인도는 아니었지만.

들어올 때처럼 배로 나갈 순 없었다.

데리러 올 필요가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호다닥.

빠른 움직임으로 냄비를 씻어내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 투하 준비를 마친 세 개의 라면.

꼴깍.

어느 때보다 기다려지는 순간이었다.

모든 일과를 마친 뒤 먹는 라면이라.

아직 안 먹었지만 필시 존맛일 것이다.

빨리 끓어라아!

두구두구.

누구보다 맛있게 먹어 줄 테니!

* * *

백운이 라면에 정신이 팔린 사이, 어둠이 짙게 깔린 거대한 지하 공당.

불빛 하나조차 없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이었지만.

드글.

공간엔 많은 수의 무언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왕이시여.”

기괴한 발음의 목소리가 누군가를 부르자.

공당의 가장 높은 곳에 앉아있는 이가 입을 열었다.

“말해라.”

“사로카가 죽었습니다.”

“뭐…? 어디서?”

부하가 조금 전 한국 무인도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했다.

“인간 중에도 있었구나. 사로카의 갑주를 깰 수 있는 놈이.”

“어떻게 할까요?”

“아무것도 하지 말거라.”

“예…?”

슥.

자리에서 일어난 왕이 미소를 머금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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