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90화 (90/473)

90화. 흔적을 읽다

이청아에게 김희연의 메시지가 도착한 건 3일 전이었다.

내게 메시지를 보내고 4일이 지난 시점.

어찌 보면 겨우 4일이 지났을 뿐이지만, 이청아의 메시지에서의 김희연은 무언가 달랐다.

뭔가 더 조급하고, 위험을 가까이 마주하고 있는 느낌인데.

그렇다고 당장 메시지가 납득이 가는 건 아니었다.

나와 이청아에게 메시지를 보내놓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

김희연과 김소연은 어째서 도망치지 않고 계속 나아간 걸까?

“청아 님은 더 들은 거 없나요? 메시지만 봐서는 상황을 잘 모르겠는데요.”

고개를 흔든 이청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제가 메시지를 받은 건 부산에서였어요. 사건 조사 때문에 부산 헌터청으로 파견 갔었거든요.”

안 좋은 예감을 불러오는 메시지에 일이 끝나자마자 올라왔다는 이청아.

그런 이청아도 김희연에게 무언가를 듣진 못한 것 같았다.

“데몬을 찾고 있다.”

“…?”

뜬금없는 내 말에 이청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김희연에게 들었던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었다.

그때 좀 더 물어볼 걸 그랬나.

개인적인 사정이 있는 것 같아 굳이 캐묻지 않았었는데.

왠지 모르게 그때 한 말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희연 님이 저한테 했던 말이에요. 어떤 데몬을 찾고 있는지, 찾아서 어떻게 하려는 건지는 듣지 못했지만요.”

“그러고 보니… 저한테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데몬을 찾는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어떤 물건을 한 번 봐줄 수 있냐고 했거든요. 찾아야 하는 게 있다고.”

물건을 봐달라…?

“아, 제 능력이 무언가를 찾는데 좀 도움이 되거든요.”

이청아가 식탁에 놓여 있는 그릇으로 손을 뻗었다.

손끝을 시작으로 희미한 하얀 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제 능력은 사이코메트리에요. 물건에 담긴 기억의 흔적을 볼 수 있어요.”

…!?

사이코메트리.

물건을 통해 지난 일을 볼 수 있는 능력.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가진 형사 혹은 조력자가 물건의 흔적을 통해 사건을 풀어 가는 건 수사물의 단골 소재였다.

드라마나 만화에서만 봤었는데 실존하는구만.

새삼스레 인간이 상상 가능한 능력은 이미 다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만능은 아니에요.”

이청아의 말과 함께 그릇에서 반짝이던 빛이 사라졌다.

무언가 더 빛나야 하는데 말아버린 느낌이었다.

“일주일 이내의 기억. 그리고 사용했던 사람의 물건에 대한 집착이나 중요도까지. 이것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기억이 보이지 않거든요.”

방금 손을 댄 그릇에서도 아무런 기억이 안 보인다며 이청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유용한 능력이네.

일주일이란 시간 제한이 있지만.

반대로 이 시간 안에서는 중요한 단서에 대한 기억을 볼 수 있단 이야기였다.

시간이 많이 지난 미제 사건 같은 게 아니라면 수사에 지대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부산까지 출장가는 이유가 있구먼.

물론 살짝 불탔던 내 욕심은 사라졌다.

물건의 기억을 보는데 제한이 없다면 나중에 무기 찾을 때 도움 좀 받을까 했었는데.

“집안을 좀 더 살펴봐야겠어요.”

이청아를 따라 집을 거닐었다.

두 명이 살기에는 꽤 큰 평수의 집이었다.

“희연 님이 부탁했던 물건은 뭐였어요?”

“음… 그게 좀 뭐라고 말하기가 애매하네요. 불에 탄 인형부터 애들이나 입을 법한 옷가지였어요.”

불에 탄 인형이라.

감이 안 오는데.

“시간이 좀 지나서 그런지 남아 있는 기억들도 희미하더라고요. 다른 것들은 아예 기억이 안 남아 있었고 인형에서만 약간의 장면만이 흐릿하게 보였어요.”

이청아가 두 눈을 감았다.

좀 오래된 일인지 그때의 일을 떠올리려는 것 같았다.

“불이 나기 전이었어요. 주변에선 끼긱… 끼긱… 뭔가 부자연스러운게 억지로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났고. 사람인지 아닌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다수가 한쪽 문을 향해 나가고 있었어요.”

불이 꺼져 있어 제대로 보이는 게 없었다고 이청아는 말을 덧붙였다.

얘기만 들었을 땐 공포 영환데.

내가 인형이었으면 겁나 무서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잠시 후엔 불까지 났으니.

흔한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최대한 훑고는 있는데 뭔가 도움이 될만한 흔적은 없네요.”

신발장을 시작으로 이청아는 계속해서 능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무언가 놓칠세라 하나하나 전부 확인하고 있는 듯했다.

철컥.

“응…?”

집 안의 마지막 방.

방 앞에 선 이청아가 몇 차례 더 문고리를 당기더니 눈을 감았다.

“…!”

무언가를 본 건지 이청아가 고개를 돌렸다.

“희연이랑 소연이가 제일 많이 들락거린 방이에요. 기억이 남아 있는 걸 보니 문고리를 잡았을 때의 두 사람의 감정도 일반적이지 않았던 거 같고요.”

이청아가 여기저기 둘러보며 방의 열쇠를 찾기 시작했다.

“제가 열게요.”

“네…?”

“아마 희연 님도 용서해 줄 거예요.”

뿌드득.

조금 힘을 줘 문고리를 돌렸다.

이청아가 돌렸을 땐 철컥거리며 안 돌아갔지만 지금은 돌아가다 못해 뽑혀버린 손잡이.

사이코메트리 능력에 시간제한이 있는 이상 열쇠를 찾으며 시간을 흘려보낼 순 없었다.

“….”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집 방문 손잡이를 뽑아서일까.

이청아가 멍한 얼굴로 날 쳐다봤다.

“들어가시죠.”

“아… 네.”

캄캄한 방이었다.

빛 한줄기조차 없어 아무것도 식별할 수 없는 어둠이 깔린 방.

더듬더듬.

통상 국룰로 스위치가 있는 벽을 더듬었다.

역시.

딸깍.

“!!”

캄캄했던 방에 불이 들어오고.

방 안을 바라본 이청아와 난 잠시 굳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또 뭐냐.

* * *

범죄 스릴러 영화에나 나올 법한 방인데.

김희연과 김소연의 집이란 걸 몰랐다면 100% 범인의 방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무언가를… 조사한 거 같아요.”

사각형의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각종 기사와 메모들.

대충 양만 봐도 두 사람은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자료를 모은 듯했다.

한샘 보육원 실종 사건.

별빛 보육원 실종 사건.

전부 실종 사건이네.

각 연도 별로 일어난 사건들의 기사가 붙어있었는데.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보육원이며 이곳에서 지냈던 모든 아이가 한 명도 빠짐없이 사라졌다는 것.

그리고, 모든 사건이 아직까지도 미제라는 점이었다.

“아이들을 돌보던 돌봄이나 선생님들은 모두 죽었어요.”

사라진 건 오직 아이들뿐이었다.

대충 사건 수만 봐도 수백은 넘을 거 같은데 아직도 미제라니.

각종 능력이 생기면서 수사도 훨씬 수월해졌을 텐데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시간순으로 정렬되어 있는 거 같아요.”

이청아의 말대로였다.

자료는 오른쪽으로 갈수록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음.”

방의 왼쪽 끝으로 걸음을 옮겼다.

김희연과 김소연이 언제부터 실종 사건들을 조사하기 시작한 건지 궁금했다.

2010년.

사건의 시작은 무려 11년 전이었다.

개방과 능력이 생기기도 훨씬 전의 일.

“제일 최근 사건은 한 달 전이에요.”

나와 반대로 가 사건을 살피던 이청아의 목소리.

10년이 넘게 같은 사건이 발생했단 거야…?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아무리 철저하게 사건을 은폐하고 숨기려 했다 하더라도 10년이 넘게 같은 방식의 사건이 발생하다니.

연쇄 살인도 이렇게 오래 지속된 건 없을 터였다.

!!

시간순을 따라 기사를 읽던 중.

낯익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 실종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김희연 양과 유소연 양.

“청아 님, 이거 좀 보실래요?”

다가온 이청아가 내가 가리키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

“이거 희연 님이랑 소연 님… 맞죠?”

“마… 맞는 거 같아요. 10년 전 사건이면 나이도 똑같아요.”

“두 분 친자매 아니었나요?”

고개를 젓는 이청아.

이청아도 따로 들은 건 없는 모양이었다.

이제 생각해보니 안 닮은 거 같기도 하고.

처음 만났을 땐 성도 같고 워낙 살가운 모습에 당연히 친자매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떠올려보니 생김새 자체는 전혀 닮지 않았었다.

일단 이건 나중에 궁금해하고.

김희연과 김소연에 대한 기사를 쭉 읽어나갔다.

이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발생한 보육원 실종 사건.

# 드디어 사건의 실마리가 발견되었다.

# 목격자가 있으니 해결은 시간 문제.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목격자의 탄생에 사람들은 김희연과 김소연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던 것 같다.

… 기대는 오래 가지 못했구만.

얼마 지나지 않아 희망 가득했던 기사는 점점 암울한 내용으로 바뀌어 갔다.

# 유소연 양은 잠에 든 상태였기에 아무것도 보지 못함.

# 김희연 양은 계속해서 괴물이 범인이라 주장해 사건에 난항 예상.

# 사건의 충격으로 인한 착란 증상으로 보임.

사건은 다시 미궁으로 들어갔다는 글을 마지막으로 해당 사건의 기사는 마무리 지어져 있었다.

어렸을 때라고 해도 희연 님이 없는 얘기를 했을 거 같진 않은데.

김희연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김희연은 급박한 상황에서도 겁에 질려 패닉에 빠지거나 할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신을 똑바로 차리며 동생인 김소연을 챙길 사람이었다.

괴물.

나 역시 옛날이었다면 김희연이 꿈을 꿨거나 헛것을 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지.

광산에서 봤던 피렌조와 루비 산에 살고 있던 페샨까지.

데몬은 개방과 동시에 나타난 존재들이 아니었다.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우리의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었다.

물론 사람들은 개방과 동시에 나타난 것들이라 생각하지만.

10년 전이라면 데몬은 커녕 스마트폰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괴물이라 말하는 김희연의 말을 믿지 않는 건 당연한 일.

만약 희연 님이 말한 괴물이 데몬이라면.

- 데몬을 찾고 있어요.

김희연이 했던 말과 연결점이 있었다.

데몬이 희연 님과 소연 님이 있던 보육원을 공격했고.

어른들을 죽인 후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 김희연과 김소연은 친구들을 데려간 데몬을 쫓고 있다…?

아직 가설을 확정 지을만한 증거는 아무것도 없지만, 가능성은 존재했다.

….

만약 이 가설이 맞다면.

김희연과 김소연이 이런 메시지를 남기고 사라진 이유는 명확했다.

찾았구나.

띠링!

머리를 굴리며 가설에 대한 증거를 떠올리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이청아의 핸드폰이 울렸다.

“아….”

메시지를 확인한 이청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왜 그래요?”

“반대편 벽에 있는 가장 최근의 기사… 거기서 기억을 읽었어요. 희연이랑 소연이는 찾고 있는 게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특정한 거 같았어요. 그리고….”

슥.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를 보여주는 이청아.

메시지엔 8명 정도 되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곳이 위험하다 판단하며 어딘가로 지원을 요청하는 걸로 기억은 끝이 났어요.”

두 사람이 지원할만한 곳은 소속되어 있는 국가 헌터청이었기에.

조금 전 이청아는 인천 헌터청으로 김희연의 지원 요청이 있었는지를 물었다고 했다.

그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온 게 조금 전의 메시지.

“희연이에게 전투 헌터들을 지원해달라는 연락이 왔었대요. 그리고 여기에 적힌 사람들이 지원을 나간 헌터들 이름이고요.”

이청아가 스크롤을 내려 메시지의 마지막을 보여주었다.

….

“헌터청으로 가보죠.”

고개를 끄덕이는 이청아를 앞장 세우고 방을 빠져나왔다.

최대한 빨리 찾아야 한다.

방금 본 메시지의 마지막은 마음을 급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 8명의 헌터 모두 복귀하지 않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