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보육원의 인형들
“어? 청아 님? 오늘 휴가잖아요.”
김희연과 김소연, 이청아가 근무하고 있는 인천 지부.
입구로 들어서자 데스크에 있던 요원이 이청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뭐가 이렇게 긴장감이 없어?
도착했던 메시지에 따르면 이곳에 있는 헌터가 10명이 사라진 것이었다.
그럼에도 무척이나 평화로워 보이는 인천 지부.
지부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부산 갔다 왔으면 집에서 푹 쉬어야지! 어! 왜 출근을 하고 그래요!”
이청아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요원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윗선의 정보가 차단되어 있다고 한들 분위기란 게 있을 텐데.
저렇게 해맑게 손 흔드는 게 가능한가.
지금 상황이 적응되지 않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예상하던 분위기와 다른지 이청아 역시 당황하고 있었다.
“윤 님, 희연이랑 소연이, 그리고 희연이가 지원 요청했던 헌터들이 복귀하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아아! 그거요.”
말도 말라는 듯 윤이 손을 내저었다.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난리 났었어요. 헌터들이 한 방에 우르르 사라졌으니.”
윤이 어깨를 으쓱 올리며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켰다.
인천 지부에 와본 적은 없지만 평소 업무 분위기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대충 감 오죠? 괜한 걱정이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다 정상 업무 중이고요.”
“괜한 걱정이었다고요…?”
고개를 끄덕인 윤이 두어 시간 전의 출입 명부를 띄워줬다.
“두 시간 전에 지원 나갔던 헌터 두 명이 복귀했거든요. 나머지 사람들은 술 먹고 뻗어 있다고 하더라고요.”
“네…!? 술 먹고 뻗어 있다니 무슨 말이에요, 그게.”
“그쵸? 완전 어이없죠? 희연 님 지원받아서 나갔는데 아무것도 아니라는 게 밝혀졌대요. 그래서 간 김에 아쉬우니 술 한 잔하고 헤어진다는 게 과음해서 다 뻗어 있다고 하던데요.”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윤이란 사람은 어이없다며 열변을 토했지만.
말이 되는 소린가 란 생각이 들었다.
“그게 대체 무슨… 복귀한 게 누군데요?”
“이재호 선배님이랑 김철주 선배님요.”
이청아가 고개를 돌려 작은 목소리로 설명해줬다.
“두 명 다 5급 헌터들이에요. 상시 대기 중인 헌터 중에는 제일 높은 급수 선배들이고요.”
꽤 높은 급수의 선배들인 만큼 지부에서의 신망도 두터울 터.
두 사람이 복귀해 그렇게 말했으니 조금 말이 안 돼도 다들 그러려니 하는 눈치였다.
“다들 술병 나서 내일이나 내일모레면 출근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거 듣고 지부장님은 다 출근하면 아주 혼쭐내겠다고 하는 중이긴 한데, 그러면서도 별 문제 없으니 다행이라는 거 보면 많이 화나신 거 같진 않아요.”
지부장님이고 뭐고.
다른 헌터들은 몰라도 김희연이 그랬다는 건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나에게 그런 메시지를 보냈으면서 술 먹다가 술병이 났다?
말도 안 되지.
슥.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청아도 같은 생각인 듯했다.
당연했다.
김희연에게 메시지를 받았고, 집에서의 그 자료들까지 봤다면 현재 상황을 그렇구나 하며 받아들이는 건 불가능했다.
“윤 님, 복귀하셨다는 선배님 두 분 어디 가셨어요?”
복귀했다는 사람들을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정확히는 그 사람들이 알고 있을 김희연과 김소연의 위치가 필요했다.
지금은 무슨 말을 듣던 김희연 본인을 만나봐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희연 님이 지원 요청했던 현장 좀 들린다고 했어요. 처리할 게 있다고 하면서요.”
슥.
다급하게 핸드폰을 내민 이청아가 입을 열었다.
“여기에 위치 좀 찍어 주세요.”
* * *
윤이 찍어준 주소를 따라 도착한 장소.
이것 봐라.
송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보육원이었다.
도시와 멀진 않지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폐쇄적인 느낌을 주는 위치.
“가보죠.”
보육원의 안내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시설물들이 전부 깨끗한 걸로 보아 얼마 전까지 사용되던 곳 같았다.
아니네.
얼마 전 수준이 아니었다.
바로 3,4일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 생활했던 흔적들이 보였다.
급식소로 보이는 건물 앞에 정차되어 있는 차량과 그 차량에 담긴 식재료들까지.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식당으로 옮겨졌어야 할 식재료들은 트럭 뒤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왜 아무도 없을까요…?”
“그러게요, 당장 사람들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아 보이는데.”
정말 딱 사람만 없었다.
“원래는 인천 지부에서 헌터들을 더 파견할 예정이었다고 해요. 선배 두 명이 출근하면서 취소되었고요.”
“그 선배들은 어디에 계실까요?”
핸드폰을 내려다본 이청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까부터 연락을 하고 있는데 둘 다 받지 않는다는 것.
계속 들어가 볼 수밖에 없나.
….
길을 따라 얼마나 더 걸었을까.
아이들이 지냈을 걸로 보이는 숙소가 나타났다.
이곳 역시 외관상으로는 아무 문제 없는 상태.
끼익.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찌릿.
…!!
들어왔을 때도 어둡다 보니 눈에 띄는 건 없었지만.
문을 열기 무섭게 진한 피비린내가 코를 찔러왔다.
철컥.
현장에 갈 일이 많아서일까.
피비린내를 감지한 이청아도 차고 있던 총을 꺼내 들었다.
비전투 계열일 텐데 용감하시네.
총부터 뽑고 보는 이청아에 감탄하며 고개를 돌렸다.
… 아니구나.
예상과 달리 엄청난 긴장으로 눈이 땡그랗게 변해있었다.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지 총을 잡은 손에선 미세한 떨림마저 느껴졌다.
그냥 가자.
괜찮냐고 물어볼까 했지만 괜히 말 걸었다가 깜짝 놀랄 것 같아서 그만두기로 한다.
등에 총 맞을 순 없으니까.
찰박.
….
이청아에게 향했던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익숙한 감촉이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약간 묽지만 끈적한 것.
일본에서 시노카 놈들 본거지로 처들어 갔을 때 질리도록 느꼈던 감촉이었다.
끼긱. 끼긱.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피를 밟음과 동시에 괴기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주변에선 끼긱. 끼긱. 뭔가 부자연스러운게 억지로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났어요.
이청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김희연이 건넨 불탄 인형에서 본 기억.
그 기억 속에서 들었다는 소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스윽.
조용히 돌아보자 내 생각이 맞다는 듯 이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청아를 옆에 바짝 붙인 뒤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끼기긱…! 끼긱…!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불협화음.
존나 무섭네.
상황 자체가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보통 공포 영화였다면 몸을 억죄어오는 긴장감에 꺼버렸을 터.
암막 커튼은 쓸데없이 좋은 거 써가지고.
대낮인데도 빛 한 줄기 안 들어오는 건물에 괜한 원망을 해본다.
저벅.
끼기긱!!! 끼끼기긱!!!
… 이런.
발걸음을 멈추고 뒤따라오던 이청아에게 손을 뻗었다.
“…?”
긴가민가했었는데.
이쯤 걸어오니 확실해졌다.
다가가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커졌던 불협화음의 정체.
우리만 다가가던 게 아니었구만.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것들이 사방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방향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이젠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
“배… 백운 님…!”
떨리는 이청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둠에 적응된 눈이 바라보고 있는 걸 이청아도 발견한 모양이었다.
뭐지 저건? 마리오네트…?
이제야 저런 소리가 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뭐로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걸음걸이 자체가 몹시 불안정한 인형들.
인형… 맞겠지.
인형들은 비틀비틀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때마다 관절이 뒤틀리며 나는 소리가 끼긱거리며 사방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청아 님, 혹시 주변 밝힐만한 거 있나요?”
마음 같아선 수리검을 던져 천장을 박살내고 싶었다.
그러면 햇빛이라도 들어와 주변을 밝혀줄 테니 말이다.
안에 누가 있을지를 모르니 난감하네.
아무래도 어린 애들이 있을 보육원이다 보니 행동이 조심스러운 상황.
적어도 공격하기 전에 주변에 뭐가 있는지 정도는 확인이 필요했다.
“구… 구조 신호용 탄이 하나 있어요.”
몇 걸음 안 남은 거리까지 다가온 소리에 이청아의 목소리는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잠깐이면 되니까.
“천장 쪽으로 탄 터뜨려요.”
“네… 네!”
되묻지 않고 빠르게 내 말에 따르는 이청아.
끼긱!!! 끼기긱!!!
“지금 쏴요.”
“네…!”
탕!
건물의 높은 천장을 향해 쏘아 올려진 신호탄.
신호탄의 불빛에 주변에 있는 것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방에서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수십 기의 인형들.
“귀 막아요.”
“…!”
두 손을 들어 귀를 막는 이청아를 확인하고.
[사사키 코지로 - 스이카]
철컥.
[발도]
끼아아아아아아아악----!!
* * *
습하고 눅눅한 공간.
약간의 호흡만으로도 풍겨오는 후덥지근함과 악취에 숨이 턱턱 막히는 장소였다.
“음…?”
그 공간의 중앙에 있던 무언가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작은 체구에 어릿어릿한 얼굴.
그리고 이런 생김새와 어울리지 않게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와 흰자 없이 검은색만이 가득한 공허한 눈동자까지.
얼핏 보면 사람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사람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존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재밌네.”
살아있다고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발음과 목소리.
끼긱.
기괴한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난 데몬이 구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방금 전에 누가 내 인형들을 한 방에 박살 내버렸는데, 너 아는 사람이야?”
“….”
“응? 희연아.”
스윽.
“흐읍!”
목덜미로 닿는 손길에 김희연이 몸서리를 쳤다.
위로 묶여있는 두 손으로 인해 앞에 있는 데몬에게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칼 한 번 휘둘렀는데 내 애들이 다 박살나버렸네.”
‘…!!’
자세한 건 듣지 못 했지만 김희연의 머릿속엔 단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
백운.
김희연이 감고 있던 눈을 떠 앞에 있는 데몬.
이젠 데몬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정혁을 바라봤다.
“어제 데려온 놈들은 참 실망스러웠는데. 너 인맥 좋구나?”
정혁이 김희연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10년 전만 해도 그냥 보육원에 있는 외톨이 중 한 명이었는데 성공했네.”
“소… 소연이는… 어떻게 했어!”
김희연의 물음에 정혁이 지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입만 열면 소연, 소연. 진짜 지겨워죽겠네. 그거 하나는 옛날이랑 달라진 게 없구나.”
“제발… 소연이는 내버려둬. 나만 잡았으면 되잖아.”
간절하게 말하는 김희연에게 정혁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럴까?”
되묻는 듯한 물음으로 실실 웃어대는 정혁에 김희연이 입술을 깨물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정혁이 김소연의 목숨을 두고 저런 농담을 지껄인 게.
‘아직은 못 잡았어.’
이곳으로 향하던 중 보육원에서 갈라진 김소연.
정혁이 저러는 걸 보면 아직 잡히지 않은 게 분명했다.
피식.
“재미없네.”
어깨를 으쓱 올린 정혁이 입을 열었다.
“조금만 기다려.”
김희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정혁이 입꼬리를 올렸다.
“김소연도, 그리고 널 찾으러 오는 두놈년도. 네가 보는 앞에서 내 인형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