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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92화 (92/473)

92화. 10년 전에는

김희연이 갇힌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

사람의 발길이 끊긴 폐허에 푸른색의 실뭉치가 겹겹이 쌓여있다.

카각! 카각! 카각!

쉽게 풀리지 않는 실뭉치를 향해 쉴새 없이 칼질 중인 인형들.

인형들의 목적은 오로지 실뭉치 안에 든 것을 꺼내는 일이었다.

“하아… 하아.”

실뭉치에 둘러싸여 있는 김소연이 가쁜 숨을 내쉬었다.

‘언니는 괜찮을까.’

오랜 시간 찾아오던 데몬을 발견한 게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헌터 지부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와 개인적인 조사를 통해 다음 실종 사건이 일어날 곳을 미리 알아낼 수 있었다.

- 무슨 실종 사건요? 그건 미제 사건이잖아요. 불확실한 증거로 인력을 지원해드릴 순 없습니다.

사건 담당이라던 경찰에게 들은 말이었다.

똑같은 사건이 일정 주기를 두고 일어나고 있음에도 찾을 생각은커녕 어차피 또 미제가 될 거라 여기며 손을 놓고 있던 것.

‘조사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간신히 찾은 데몬은 언제 또다시 모습을 감출지 몰랐기에.

김소연과 김희연을 둘만이라도 갈 생각이었다.

- 내 개인 권한으로 지원할 수 있는 건 8명뿐이다.

밑져야 본전이란 마음으로 소속되어 있는 지부장에게 보고를 올렸고.

지부장은 공식적인 지원은 불가능하지만 개인 권한을 통해 전투 계열 헌터 8명을 증원해줬다.

- 감사합니다!

상황 자체는 믿기 힘들지만 김희연과 김소연 두 사람을 믿은 지부장.

그렇게 지부 헌터 8명의 지원을 받아 사건이 일어날 거라 예상되는 보육원으로 향했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의 발길이 쉽게 닿지 않는 곳이었다.

- 끼익.

‘….’

도착한 보육원엔 있어야 할 사람들이 한 명도 없었다.

정확히는 살아있는 사람이 없었다.

아이들은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사라진 뒤였고 어른들은 전부 살해당해 아무렇게나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 전투 준비.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시체에 함께 온 헌터들이 전투르 준비하는 사이.

- 끼긱.

피범벅이 되어 있던 시체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째선지 몸 안이 텅 비어 외형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시체들은 사람보단 인형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다.

- 쾅! 쾅! 두두!

처음엔 순조로웠었다.

함께 온 헌터들 중엔 많은 전투 경험은 가진 5급도 두 명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 10년 만이네.

그게 나타난 뒤로 상황은 바뀌어버렸다.

어린아이의 체구로 흰색 머리를 한 데몬.

10년 전 함께 보육원에서 지냈지만, 이제는 인간이 아니게 되어버린 정혁이었다.

- …!!

정혁의 등장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굳고 말았다.

일본에서 사로카라는 데몬이 말을 했다는 소식은 들었었지만, 실제로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 사… 사람…?

헌터들이 헷갈릴 정도로 정혁의 모습은 데몬보다는 인간 아이에 가까웠다.

- 데몬이에요!

김희연의 외침에 주춤거리던 헌터들이 정신을 차렸다.

솔직히 김소연 역시 헷갈렸다.

저걸 과연 무어라고 불러야 하는지 말이다.

- 섭섭하네, 데몬이라니.

마치 사람처럼.

두 손을 들고 천천히 다가온 정혁에 모두가 긴장했었다.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하면 바로 공격할 채비를 마친 상태.

- 희연아, 데몬인데.

다가온 정혁이 소름 끼치는 미소를 그려 보였고.

- 왜 안 쏘니.

새카맣기만 했던 눈에서 하얀색 그림자가 튀어나와 김희연과 김소연, 눈을 바라보고 있지 않던 한 명의 헌터를 제외한 모든 이들을 덮쳐버렸다.

- 죽여라.

정혁의 한 마디와 함께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주변의 인형들과 정혁은 놔두고 자기들끼리 능력을 난사하기 시작한 헌터들.

그중에서도 선임급인 이재호와 김철주에 의해 나머지 5명의 헌터는 순식간에 도륙당해버렸다.

- 명규 님! 소연이 데리고 도망쳐요!!

뒤늦게 방아쇠를 당긴 김희연에 인형들이 달려들었고.

유일하게 정혁의 눈에 안 당한 임명규가 단거리 이동 능력을 사용해 김소연을 옮겨왔다.

‘언니… 명규 님….’

간신히 보육원에서는 벗어났지만.

거기까지였다.

정혁의 인형은 금세 추격해왔고, 능력을 사용하기 전 김철주의 무기에 맞은 임명규 역시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카각!

‘얼마 못 버티겠어.’

사방에서 달려드는 인형을 당해낼 전투 능력은 없었다.

일단 급한대로 능력을 사용해 공격을 버텨내는 중이었다.

그마저도 점점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어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김소연의 머릿속엔 홀로 남겨졌던 김희연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김희연이 위험에 처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김소연이 두 손을 모았다.

지금 김소연이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다.

‘제발… 언니를 구해주세요.’

* * *

딸깍.

허.

스이카의 발도를 한차례 뿜어낸 후.

잠잠해진 주변에 검을 집어넣고 전동 스위치를 찾아냈다.

“아…!”

전등으로 밝혀진 보육원은 처참 그 자체였다.

피비린내의 정체는 사방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이었다.

그중엔 유니폼을 입고 있는 인천 지부의 헌터들도 섞여 있는 듯했다.

“아… 안돼.”

함께 일했던 동료의 시체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이청아.

충격이 크겠는데.

단순히 죽어서만이 아니었다.

쓰러져 있는 시체의 상태가 너무 처참했다.

어째서인지 내부가 다 비어버리고 뼈와 살만이 남겨져 있었다.

특히 저 둘.

아마 인천 지부에 돌아왔었다던 두 명 같았다.

내부가 비워지던 중 우리가 온 건지 각 장기가 끄집어져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었다.

뭐 때문에 꺼내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청아가 안 보는 게 나았을 법한 장면이었다.

조종도 가능한 건가.

조금 전 스이카를 휘둘렀을 때의 감각을 떠올렸다.

인형 같이 움직이긴 하지만, 나무토막이나 플라스틱을 베는 느낌이 아니었다.

약간 다르지만 사람을 베었을 때와 똑같은 감각.

재료가 사람인 인형이라.

스이카에 베여 조각나 있는 인형들의 외형은 대부분이 어린아이였다.

무언가에 의해 살과 뼈가 코팅되어 인형처럼 변해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기분 더럽네.

인형화 되어 조종되고 있는 데몬이었지만.

재료가 된 사람과 생김새 때문인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지금까지 있었던 보육원 실종 사건들.

설마 사라진 애들은 전부…?

생각만 해도 아찔해지는 느낌이었다.

휙휙.

고개를 내저어 이런 생각들을 털어내고.

저벅.

조심스럽게 주저앉아 있는 이청아에게 다가갔다.

현재 상황만으로도 힘들겠지만 지금은 김희연과 김소연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청아 님.”

조용히 부르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청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청아가 천천히 주변을 돌며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좀 미안하네.

능력을 사용하면서도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이청아.

눈 앞에 펼쳐진 광경만 봐도 이청아가 보고 있는 기억이 끔찍할 거란 걸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었다.

“이런…!”

“뭔가 보였나요?”

“희연이는 살아있는 상태로 끌려갔어요. 소연이는 명규 님의 능력으로 자리를 벗어난 모양이고요. 그런데… 바로 쫓아간 인형들이 많아서 어떻게 됐을지는 모르겠어요.”

동생을 피하게 하고 잡혀간 건가.

보면 볼수록 동생 바보인 사람이었다.

“장소, 알아낼 수 있을까요?”

이청아가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찾아볼게요…. 아니, 꼭 찾을게요!”

* * *

팟.

어느덧 어둠이 깔린 시간.

조심스럽게 낡은 관람차 위로 몸을 옮겼다.

- 청아 님은 지부에 지원 요청하셔서 소연 님한테 가세요.

처음엔 갈려버린 김희연과 김소연을 놓고 잠시 고민했었다.

메시지에서 꼭 김소연을 먼저 찾아달라 부탁했던 김희연.

그럼에도 김희연이 향한 월미도 쪽으로 방향을 튼 이유는 하나였다.

그 데몬은 김희연 쪽인 거 같으니까.

정확히 어떤 능력인지는 몰라도 5급 헌터까지 조종해낸 데몬.

지부에는 5급보다 상위 급수의 헌터가 없었기에 월미도로 가봐야 똑같이 당할 확률이 높았다.

내가 조종 당하는 건 아니겠지.

아까 몸이 비어있던 시체들이 떠올라 잠시 소름이 돋았다.

그럼 귀신이 돼서라도 죽인다.

믿고 있는 구석이 두어가지 있었지만, 어쨌든.

제일 높은 관람차 위에서 아래를 훑었다.

데몬의 등장 이후 버려진 지역, 월미도.

사람이 살지 않다 보니 국가에서도 관리하지 않게 된 곳이었다.

으스스하네.

버려진 장소를 보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한때 사람이 북적였던 놀이기구들이 휑하게 있으니 더 오싹한 느낌이었다.

눅눅하고 후덥지근하다고 했지.

이청아는 내가 벤 인형들을 상대로 기억을 읽었었다.

흐릿한 기억을 통해 월미도를 알아냈고.

인형들이 있던 장소가 눅눅하고 습하며 동시에 후덥지근한 장소란 것까지 읽어냈다.

충분히 했어.

티는 안 내려 노력했지만 딱 봐도 이청아의 안색은 최악이었다.

습하고 눅눅하면 일단 지하일 거 같은데.

끼긱.

…!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거리가 멀어서인지 작게 들렸지만, 분명히 보육원에서 들었던 인형 소리였다.

스윽.

관람차 아래로 몸을 날렸다.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듯한 인형의 소리.

소리를 따라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부디 둥지로 안내해다오.

* * *

월미도의 지하 깊숙한 곳.

어딘가에서 돌아온 정혁이 묶여있는 김희연에게 다가갔다.

“이렇게 둘만 있으니 옛날 생각나네.”

“….”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김희연을 향해 정혁이 말을 이어갔다.

“원장 놈한테 두들겨 맞은 날이면 네가 조용히 나와서 위로해줬잖아.”

질끈.

떠오른 기억에 김희연이 눈을 더 강하게 감았다.

1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너무나 선명한 기억이었다.

- 고마워 희연아.

모질게 맞았음에도 고맙다며 밝게 웃었던 친구.

그 친구가 지금은 데몬이 되어 사람들을 죽여대고 있었다.

“날 괴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세상엔 나보다 더 악질인 놈들이 많아. 인간 중에서도 말이야.”

정혁이 자신의 둥지를 한 번 둘러봤다.

10년 동안이나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머물렀던 공간.

“여기가 안 들킨 게 과연 나만의 힘이었다 생각해?”

“…?”

의미심장한 질문에 김희연이 눈을 떴다.

히죽.

김희연이 반응해서인지 웃어 보인 정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이 공간을 사랑하는 이유는 딱 하나야. 모든 게 썼었지만, 여긴 아니거든. 내가 만든 이곳은 깨끗해.”

“너만의 힘이 아니라면… 누군가 또 있다는 거야?”

김희연의 질문에 정혁이 어깨를 으쓱 올렸다.

“글쎄. 나의 공간을 위한 필요악이라고 해두자.”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정혁이 김희연을 응시했다.

“10년 전과 지금, 어떻게 생각해? 훨씬 살기 좋은, 깨끗한 세상이 됐다고 생각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그때도 더러운 지옥이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거야.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

김희연의 바로 앞에 자리를 잡은 정혁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떠올려봐, 10년 전을.”

* * *

10년 전, 어느 외딴 곳에 위치한 보육원.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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