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지하 낙원
… 아악 --!!
‘!!’
모두가 잠들어 있어야 할 시간.
귓가로 들려오는 비명에 김희연이 몸을 일으켰다.
‘무슨 소리지…?’
잠결에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어… 언니.”
소리를 들은 건 김희연 뿐만이 아니었다.
옆에서 자고 있던 유소연 역시 깨어나 김희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애들도 들었나?’
다른 침대 쪽으로 고개를 돌린 김희연.
김희연의 눈에 들어온 건 텅텅 비어있는 침대들이었다.
‘어디 갔지?’
보육원의 부지 자체는 넓었지만 아이들을 위한 공간은 최소한으로 배정되어 있었다.
그만큼 좁은 방에 가능한 최대 인원을 수용하고 있던 보육원.
김희연의 방 또한 둘을 제외하고도 최소 열 명 이상의 아이들이 함께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당직을 서고 있을 선생님들 때문에 나갈 수도 없는 시간대였다.
“소연아, 여기 있어 봐.”
“무서워 언니.”
“내가 보고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렇게 김희연이 2층 침대에서 내려가려는 순간.
“내려올 거야?”
목소리가 들려왔다.
1층에서 자고 있을 정혁이었다.
“혁아…?”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진 것처럼 배시시 웃기만 했던 정혁.
그랬던 정혁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또렷하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너도 방금 들었어? 비명 소리.”
“왜일까.”
“…?”
비명을 들었냐고 물었는데 정혁이 엉뚱한 대답을 해왔다.
“어째서 너는 다른 거지?”
“무슨 말이야?”
심상치 않은 정혁의 목소리에 옆에 누워있는 유소연은 바짝 얼어버리고 말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보육원의 친구가 아니었다.
김태용에게 맞으면서도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던, 마치 다른 사람 같았던 그 느낌의 정혁이 아래에 있었다.
“아직 약한가.”
정혁이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있을 때.
‘!’
잠에서 조금씩 깨어나서일까.
꿀꺽.
2층 침대에 있던 김희연이 무언가를 느끼곤 마른 침을 삼켰다.
들려오는 건 정혁의 목소리 뿐.
방은 분명 빈 침대로 가득한 상태였지만.
우글.
미세하지만 여럿의 옷깃 스치는 소리도 들려오고 있었다.
‘뭐야… 대체.’
마음을 먹은 김희연이 2층 침대 밖으로 천천히 고개를 내밀었다.
방 복도에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기를 속으로 바라면서.
잠에서 덜 깨어 잘못 느끼고 들은 것이라 생각하면서.
슥.
그렇게 김희연이 2층 침대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흐읍!!!”
김희연이 입을 틀어막았다.
평소엔 우는 소리 한마디 하지 않는 김희연이었지만.
입을 막지 않았다면 눈에 들어온 아래의 광경에 비명을 지를 뻔했다.
“너네 둘은 혼자가 아니어서일까?”
2층 침대 밑.
정혁이 있을 1층 침대 앞엔 각자의 침대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일제히 조금 전에 고개를 내민 김희연을 바라보는 상태로.
“언니, 왜 그래?”
뭔가 잔뜩 놀라 있는 김희연에 유소연도 고개를 내밀려고 했지만.
김희연의 필사적인 저지에 유소연의 몸이 다시 눕혀졌다.
“정혁… 무… 무슨 짓이야.”
아직 정혁이 한 말은 없었다.
그저 아이들이 정혁의 침대 앞에 모여 있는 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희연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정혁이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했다는 걸.
“나도 알게 된지는 얼마 안 됐어. 보여 줄까?”
“뭐… 뭘 보여준다는 거야.”
뿌득.
“!!”
정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희연을 올려다보던 아이 중 하나가 스스로의 손가락을 반대로 꺾어 벼렸다.
“내가 죽으라면 죽더라고, 정말로.”
“너… 너 지금 무슨 짓이야.”
김희연은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 방의, 이 방에 있는 자신과 유소연은 정혁의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전에 있던 보육원도 여기랑 비슷했어. 버려진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어른들.”
스윽.
자신의 침대에서 나온 정혁이 위를 올려다봤다.
“당연히 아이들은 제대로 된 반항조차 못 했지. 버려지고 버려져서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마저 버려지면? 앵벌이 집단이나 더 한 곳에 가서 고통스럽게 살다 죽겠지.”
옆에 있던 아이에게 손을 올린 정혁의 얼굴로 해맑은 미소가 그려졌다.
“그래서 정했어. 우리처럼 버려진 아이들끼리 함께 살 수 있는 곳을 만들기로.”
‘미… 미쳤어.’
왠지 모르겠지만.
정혁의 함께라는 단어에 김희연의 온몸으로 소름이 올라왔다.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전 한 아이의 손가락을 부러트리게 만든 놈이.
지금은 그 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함께 살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
- 전에 있던 보육원도 네가 그랬지 이 새끼야!!
낮에 김태용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곳에 오기 전에 있던… 아이들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아이들이었지만,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었다.
이곳 보육원의 미래가 곧 그 아이들과 같아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다 이곳에 있어. 지금은 좀 바쁘고.”
슥.
정혁이 2층 침대로 손을 뻗었다.
“같이 가자.”
손을 뻗고 있는 건 분명 지금까지 알고 있던 정혁의 생김새였다.
이전이었다면 별생각 없이 손을 잡았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가면 안돼.’
정혁이 뭐라고 말을 하긴 했지만 눈앞의 말도 안 되는 광경이 이해되는 데에는 턱없이 부족한 설명이었다.
“나… 난 안 가.”
“흐음.”
정혁이 고개를 약간 돌려 김희연의 옆을 쳐다봤다.
“소연아, 너는?”
“!!”
어느새 일어나 옆에서 아래를 보고 있는 유소연.
유소연은 아래의 광경에 바싹 얼어 비명조차 못 지를 만큼 겁에 질려 있었다.
“언… 언니가 안 가면… 나도 안 가.”
“그래?”
손을 내린 정혁이 무심한 얼굴로 두 사람을 응시했다.
쿵 쿵 쿵.
김희연과 유소연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자신들이 어떻게 될지는 정혁의 손에 달렸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정혁이 어깨를 올려 보였다.
“억지로 데려갈 생각은 없어. 버려진 너희도 결국 오게 될 테니까.”
저벅.
정혁이 문 쪽으로 몸을 돌리자 기다렸다는 듯 다른 아이들도 함께 방향을 틀었다.
“다 함께 기다리고 있을게.”
그 한 마디를 남긴 채.
정혁과 아이들은 방을 떠났다.
* * *
“거봐. 결국엔 내 말대로 돌아왔잖아.”
정혁의 말에 묶여 있던 김희연이 인상을 찡그렸다.
10년 전의 그 날을 떠올리면 마음이 괴로워졌다.
정혁과 아이들이 떠난 후.
텅 비어버린 방 안에서 김희연과 김소연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백 년 같은 밤이었다.
-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한참 뒤에 찾아온 경찰이 물어온 말이었다.
아침마다 식자재 배달을 오는 기사님이 참사가 난 보육원을 발견했고 경찰에 신고한 것이었다.
“헛소리… 하지 마. 돌아온 게 아니야.”
히죽거리는 정혁을 향해 김희연이 고개를 저었다.
- 다 함께 기다리고 있을게.
10년 동안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이 말과 함께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던 수많은 아이들의 눈동자를 말이다.
공허하지만, 동시에 자신들을 데려가지 못하게 해달라는 듯한 간절한 눈동자였다.
당시의 김희연과 김소연은 그 눈을 못 본체 할 수밖에 없었다.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떻게 했어.”
시간이 지나며 같이 자랐겠지만.
김희연의 안에서의 아이들은 10년 전 모습 그대로 멈춰진 상태였다.
그래서 찾았던 것이다.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자신들을 구하러 올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위해서.
‘….’
10년 동안에도 꾸준히 일어난 보육원 실종 사건.
점점 더 끔찍해지는 현장에 김희연은 정혁을 인간이라 여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떻게 개방 전부터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혁이 하는 짓은 데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훨씬… 강해졌어.’
동시에 능력 또한 말도 안 되게 강해졌다.
솔직히 김희연은 충분할 거라 생각했었다.
지부에서 지원 나온 5급 헌터들까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
빙긋.
대답 대신 웃어 보인 정혁이 입을 열었다.
“만나게 해줄까?”
오싹.
소름 끼치는 정혁의 웃음에 몸서리가 쳐졌다.
“기다려봐, 내가 불러 올…!!”
쾅!
김희연이 묶여 있는 곳과는 거리가 꽤 떨어진 장소.
그곳에서 무언가에 의한 먼지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꽈드득.
지금까지 여유로웠던 정혁.
그랬던 정혁의 얼굴이 지금은 종잇장 구겨지듯 찡그려져 있었다.
“감히!!!”
* * *
철컥.
탕!
달려드는 인형들을 향해 탄을 쏘아냈다.
몇 발자국 다가오기 무섭게 몸이 날아가 버리고 마는 인형들.
끼기긱!!
탄을 쏘기 무섭게 사방에서 인형들이 달려들었다.
마치 한 명이 모두를 움직이는 것처럼, 똑같은 동작과 자세로 말이다.
기분이 참.
탕! 탕! 탕!
더럽구만!
달려들고 있는 건 분명 데몬이었다.
사람이 몸 안에 가지고 있어야 할 것들을 전부 빼앗겨 버린 존재들.
그럼에도 살아 움직이며 체구에 맞는 칼과 도끼를 휘두르는 존재들이었다.
- …!
관람차에서 발견한 인형을 뒤따라 들어온 지 얼마나 됐을까.
눈앞으로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공기 자체는 눅눅하고 습해 기분 나쁜 장소였지만.
내부는 아예 딴판이었다.
어떤 싸이코 새끼지.
도착한 장소는 거대한 어린아이의 방 같았다.
아기자기한 장난감과 인형들, 그리고 작은 침대가 가득했다.
눅눅한 장소 탓에 곰팡이 투성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침대에 수많은 인형들이 눈을 감은 채 바른 자세로 누워있었다.
기괴.
눈앞의 모습을 보고 떠오른 단어였다.
이 단어가 아니면 눈 앞에 펼쳐진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해 꾸린 장소지만, 정작 누워있는 건 아이들이 아닌 싸늘하게 식은 인형들이라니.
- 끼긱!
심지어 인형들은 자고 있지 않았다.
내가 들어오기 무섭게 누워있던 인형들은 눈을 떴다.
마치 누군가의 인형놀이를 위해 잠든 척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탕! 탕!
엄청난 수에 작열탄을 쏠까 고민도 했지만.
이곳엔 인형만 있는 게 아닐 수도 있었다.
당장 어제 이청아와 갔던 보육원의 아이들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피 한 방울 안 나오네.
총에 맞은 인형은 살점과 뼈가 부서져 나갈 뿐, 사람이라면 가지고 있어야 할 피는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인형의 재료는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사라진 아이들임이 분명한데 피조차 나지 않는다는 건 한 가지를 의미했다.
인형으로 만들기 위해 피까지 모두 빼버린 것.
으득.
어떤 새낀지 면상 좀 보자.
길을 막는 인형들을 밀어내며 계속해서 달려나갔다.
미세하지만 불어오고 있는 시원한 바람.
개미굴과 다를 바 없는 이곳에서 외부로 통하는 길이 있었다.
!!
얼마나 달렸을까.
바람이 들어오는 곳으로 빠져나오자 푹 파여있는 또 다른 공간이 나타났다.
희연 님.
그곳에서 묶여 있는 김희연.
그런 김희연의 앞엔 하얗게 머리가 세어버린 남자아이… 아니, 데몬이 서 있었다.
저 새끼구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끼기기긱!!
미친 듯이 쫓아오고 있는 엄청난 수의 인형들을 만들어낸 장본인.
“너구나아!!”
데몬을 향해 몸을 날린 순간.
“눈을 보면 안 돼요!!”
김희연의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데몬의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
“늦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