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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95화 (95/473)

95화. 지금 총구 방향 어디?

“아… 안돼….”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정혁의 뒤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나 싶더니 어느새 백운이 날아들고 있었다.

- 죽여라.

정혁의 말에 아비규환이 됐던 보육원을 떠올렸다.

서로를 공격했던 헌터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정면에서 정혁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나랑 소연이는 애초에 타겟이 아니었어.’

눈을 보고 있었지만 정혁의 능력에 걸리지 않은 건 김희연과 김소연뿐이었다.

아마 함께 온 헌터들만 처리하려는 정혁의 의도였을 터.

그리고 또 한 명, 능력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존재했다.

일행에게 가려져 정혁의 눈을 볼 수 없었던 임명규였다.

‘눈이었는데…!’

정혁이 무엇을 위해 자신과 김소연은 남겨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상대를 조종하는 능력은 눈을 통해 걸릴 거라 짐작했기에 날아오는 백운에게 급히 소리 질러줬었다.

하지만,

척.

정혁의 말대로 늦은 것 같았다.

보육원에서 마찬가지로 눈에서 튀어나온 그림자가 백운을 덮쳤고, 백운은 날아들다 말고 그대로 자리에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백운 님이라 해도.’

김희연이 입술을 깨물었다.

2년 전 마운티거를 잡던 백운을 보며 개미굴 때보다 더 강해졌다고 생각했었다.

‘5급도 당했어.’

백운이 강해졌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지만.

5급 헌터들마저 한 번에 걸려든 정혁의 능력을 뿌리치는 건 무리였다.

‘다 나 때문에… 죽는구나.’

김희연이 눈을 질끈 감았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김희연은 깊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저 10년 전을 생각하며 정혁의 능력이 더 강해졌을 거란 걸 간과하고 말았다.

그 결과로 지부의 동료들이 죽었고, 김소연이 위험에 처했다.

거기다 자신들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2년 넘게 사라졌던 백운에게 도움이 필요하단 이유로 무작정 메시지를 남겨버렸다.

‘….’

솔직히 와줄 거라 생각하지 않았었다.

개미굴 이후로 얼굴을 보기는커녕 연락 한 번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절실한 마음에, 작은 도움이라도 필요했기에 남겼던 메시지일 뿐이었다.

‘백운 님.’

남일처럼 그냥 무시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메시지.

백운은 그런 메시지를 보고 여기까지 찾아와 주었는데.

“좀 다른가 싶었는데 똑같네.”

정혁이 멈춰있는 백운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눈을 마주친 상대에게 환각을 붙여 조종하는 능력.

처음엔 눈을 바라보며 최면을 걸듯 반복해 말해야 했는데, 강해진 능력 덕에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최강의 힘이다.’

누가 오든 상관없었다.

냄새를 맡은 경찰이나 군대의 헌터가 쫓아오더라도.

눈만 마주칠 수 있다면 역으로 모두를 이용할 수 있었다.

‘난 선택 받았다.’

어째서 이런 능력이 생겼는지는 정혁 역시 알지 못했다.

그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처음 깨달았을 땐 환각을 걸거나 인형을 만드는 힘은 없었지만 말이다.

“이걸 어떻게 죽일까?”

정혁이 고개를 들어 연기가 피어오르는 낙원을 바라봤다.

자신이 구한 아이들이 살아가는 장소.

어른들에게 착취당하던 보육원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오로지 버려진 아이들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그런 공간에 스크래치를 내 버린 백운은 그냥 죽일 생각은 없었다.

“들어있는 건 다 빼서 인형으로 만들어주마. 평생 나를 위해 일하도록.”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전에 죽는 순간조차 최대의 고통을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한 번씩 찌르라고 할까. 죽지 않을 정도로만.”

끼기긱! 끼긱! 끼긱!

이미 낙원에 있던 모든 인형이 백운을 쫓아 나와 있었다.

텅 비어있던 공간을 가득 채울 정도로 엄청난 숫자.

“정혁!! 그 사람은 놔둬! 내가 인형이 될 테니까! 인형이 아니어도 계속 있을 테니까!”

슥.

소리 지르는 김희연에 정혁이 고개를 돌렸다.

뭔가 의아하다는 얼굴이었다.

“인형이라니? 섭섭하게 말을 하네. 친구들이 들으면 어떻게 생각하겠어?”

“뭐…?”

짝짝.

정혁이 박수를 치자 몰려있던 인형들 중 한 무리가 앞으로 나섰다.

“!!!”

김희연의 입이 벌어졌다.

앞으로 나온 인형들은 10년간 김희연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보육원의 아이들이었다.

10년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목숨을 잃고 모두가 인형이 되어버린 아이들.

‘예상했잖아.’

보육원의 날로부터 10년이 지난 시점.

아이들이 살아있지 못할 확률이 높다는 걸 김희연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하는 것과 실제로 확인하는 것은 차이가 컸다.

희망.

죽었으리라 예상하면서도 김희연은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보육원에서 함께 적지 않은 시간을 지낸 만큼 정혁이 데려간 아이들을 해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그래서였다.

10년 만에 마주친 정혁을 향해 바로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데몬이라 생각했음에도,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바로 쏘지 못하고 망설여버렸다.

아이들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보육원의 어른들은 죽였지만 아이들에게 만큼은 정혁이 다를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착각이었구나.’

그 희망이 조금 전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앞에 있는 건 보육원에서 함께 지냈던 친구, 정혁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이상한 욕망을 위해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 만큼도 생각 안 하는, 완벽한 데몬이었다.

“그나저나, 희연이 넌 저 사람이 안 죽었으면 하는구나.”

조금 전 김희연의 반응에 정혁은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정확히는, 10년 전부터 김희연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열악한 보육원에서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건 네 가지 정도였다.

‘절망, 자기연민, 원망, 두려움.’

하지만, 김희연은 이 중 어느 것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원장과 선생들에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보육원을 위한 혹독한 일과를 치르면서도, 김희연은 스스로를 잃지 않았다.

잃기는커녕 흔들리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울기만 하는 놈들이랑은 달랐지.’

여기에 더해 자신의 능력에 걸리지 않았던 것까지.

유소연… 아니, 김소연에겐 애초에 능력을 걸지도 않았었다.

김소연에 의해 김희연이 억지로 따라오게 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무너져야 의미가 있지.’

정혁의 입가로 미소가 그려졌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던 김희연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약간 주저앉는 수준이 아닌, 철저하게 자신을 놔버릴 정도로 망가지는 모습을 말이다.

“동생 소연이랑 저 남자, 둘 중에 한 명만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떡할래?”

“…!!”

정혁이 이죽거리며 묶여 있는 김희연의 손을 풀어줬다.

‘무너뜨리자.’

스스로 무너졌으면 했기에.

김희연이 이곳을 찾을 때까지 장장 10년이란 시간을 기다려줬다.

슥.

정혁이 손을 젓자 인형 하나가 김희연의 라이플을 가져왔다.

“죽여.”

“뭐…?”

“네 손으로 저 남자를 죽이면 소연이를 놔주지, 약속할게.”

“헛소리하지 마.”

김희연에게 라이플을 가져다주려 다가간 정혁이 소름 돋는 웃음을 터뜨렸다.

“헛소리 같아? 네가 쏘지 않으면 일어날 일을 알려줄게.”

손바닥을 펼친 정혁이 작은 칼을 꺼내 들었다.

칼로 손바닥을 여기저기 그어대는 정혁.

“소연이는 이렇게 난도질당해 죽을 거고, 그다음엔 내 낙원에서 평생 살아갈 거야. 살아가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일 거고.”

김희연의 눈이 커지며 몸이 떨려왔다.

무서웠다.

자신이 살해당하고 인형이 되는 것보다 여리고 여린 김소연이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한다 생각하니 공포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스윽.

떠는 김희연에게 총을 쥐여준 정혁이 옆으로 비켜섰다.

“김소연이 잡혀 오는 순간 내 배려는 끝이야. 저 남자와 김소연 둘 다 죽는다.”

‘쏴라, 김희연.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자기 욕심을 위해, 자신을 구하러 온 남자를 죽여라.’

히죽.

‘그리고, 자기혐오에 무너져라.’

“쏴. 동생 죽일 거야?”

덜덜.

정혁의 재촉에 김희연이 총구를 들어 백운을 겨누었다.

그런 김희연을 보며 몹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정혁.

“당겨. 동생을 살려.”

끼릭.

손가락이 방아쇠에 걸쳐졌다.

곧 벌어질 광경에 정혁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김희연이 굴복하는구나!’

끼릭… 탕!!

커다란 굉음을 내며 라이플이 발사되었다.

“….”

그리고, 발사된 탄이 향한 건 백운이 아니었다.

투둑.

팔목이 떨어진 정혁이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

의아한 정혁의 얼굴에 김희연이 입을 열었다.

몸은 여전히 떨고 있었지만, 눈동자만은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괴물 새끼가 하는 말따위… 믿을 거 같아?”

“킥!”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던 정혁이 웃음을 터뜨렸다.

“키키킥!! 키키키키킥!”

정혁이 웃으며 바닥에 떨어진 팔목을 주워들었다.

끼긱.

“!!”

떨어진 곳에 붙이자 언제 떨어졌냐는 듯 팔이 이어졌다.

“넌 정말! 단단하구나!!”

정혁이 순식간에 다가와 김희연의 라이플을 빼앗았다.

뒤이어 달려와 김희연의 팔을 붙잡는 인형들.

“방금 한 선택의 결과는 아주 끔찍할 거다!!”

라이플을 든 정혁이 백운에게로 다가갔다.

이젠 아무래도 좋았다.

김희연의 눈앞에서 온갖 끔찍한 장면을 다 보여줘 무너지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 것이다.

척.

백운의 이마에 겨누어진 라이플.

질끈.

김희연이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감았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백운 님.’

탕!!

귓가로 라이플의 발사음이 들려왔다.

….

무겁게 내리깔리는 정적.

잠시 후, 그 정적을 깨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끼가 아직 적응 안 끝났는데.”

* * *

눈에 깃들어 있는 시원한 감각이 느껴졌다.

비광 님이랑 여러 번 해봤는데도 적응이 안 되네.

하루는 비광이 능력을 이용해 환각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카드 여러 장을 펼쳐놓고 환각을 이용해 다른 카드로 보이게 한 것이었다.

- 어떠냐? 아마 앞으로 만날 적 중에는 너의 오감을 흐트러뜨리는 녀석이 있을 거다.

환각을 건 카드를 한데 뒤섞은 비광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 어때? 스페이드의 에이스, 절대 못 찾겠지?

비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난 손을 뻗어 스페이드의 에이스를 집어냈다.

- ….

비광은 마치 귀신을 본 듯 놀라있었다.

물론, 나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분명 환각을 걸었다고 했는데 보였기 때문이다.

좀 희뿌연한 것들이 겹쳐있어 선명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말이다.

- 너 눈깔은 또 왜… 퍼런색이냐.

그제야 깨달았다.

- 우리 페샨의 눈은 항상 진실만을 본당. 진실 외의 것은 보이지 않는당.

리카르도가 건넸던 선물, 페샨의 눈.

적응에 시간이 좀 걸리는지 진실 외의 것과 진실이 겹쳐 좀 혼동되긴 했지만.

어쨌든 비광이 펼쳐놓은 스페이드 에이스가 구분 가능한 정도로는 보였었다.

그리고.

지금 정혁이란 데몬이 건 환각도 마찬가지였다.

사방이 희뿌옇고 기괴한 형상들 천지였지만, 눈이 조금 적응되자 실제인 것과 아닌 것 정도는 구분이 되고 있었다.

슥.

고개를 돌려 옆에서 발사된 라이플을 바라봤다.

고막 터지겄네.

귀를 슥슥 문질러준 후.

앞에서 놀라 있는 정혁을 응시했다.

“총구 사람한테 향하면 뒤지게 맞는 거 안 배웠냐?”

“뭐… 뭐?”

아 이 새끼 군대 안 갔겠네.

콰득.

정혁이 잡고 있던 라이플을 힘으로 뺏어내고.

정혁을 향해 주먹을 치켜들었다.

“이제 가르쳐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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