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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98화 (98/473)

98화. 그리스

안돼!!

그리스로 도착한 직후.

밀려오는 절망감에 고개를 파묻었다.

1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짧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편안한 여행을 위해 저번에 받아뒀던 퍼스트 클래스 이용권을 사용했다.

- 이번에도 오지게 먹어볼까!

라고 마음먹었던 게 탑승 직전이었다.

- Zzz….

하지만, 내 몸뚱아리는 굳은 결심과는 정반대로 움직여버렸다.

월미도에서의 피로가 남아있던 건지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 것.

흑흑.

비싼 술은커녕 자느라고 기내식조차 먹지 못했다.

기내식 남았으면 두 개 달라고 벼르던 참이었는데.

두 개는커녕 하나조차 먹지 못하고 말았다.

죽어! 죽어! 배가 불렀어 이 새끼!

이마를 때리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지난번 일본행 때 퍼스트 클래스에 이어 전용기를 타서인지 배가 불러도 너무 불러버렸다.

퍼스트 클래스를 탔는데 즐기긴커녕 처자버리다니.

수군수군.

너무 진심을 다해 이마를 쳐버려서일까.

“도와줘야 되는 거 아닐까요?”

“슬픈 일을 겪었나 봐요.”

주변에서 진심 어린 걱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들이 보기엔 비행을 끝내고 소중한 사람이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비극의 주인공 모습이었을 것 같다.

“아… 아임 파인.”

전 세계 언어가 통하니 굳이 알지도 못하는 영어로 말할 필요는 없었지만.

최대한 말을 못 알아듣는 이상한 인간인 척하며 호다닥 공항을 빠져나왔다.

오… 오우야.

공항까진 유럽도 똑같구만 하면서 나왔는데.

촌놈의 착각이었다.

공항을 나서기 무섭게 물씬 느껴지는 유럽의 풍경.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지만.

엄청 다르다!

유럽을 처음 접한 촌놈의 첫 감상이었다.

한국보다 훨씬 층고가 낮고 오래된 연식이 느껴지는 건물들.

뭔가 낡았다라기 보단 멋있다라는 느낌이 드는 그런 건물이었다.

… 배고픈데.

물론 이런 감성적인 감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퍼스트 클래스에서 퍼잤다는 죄책감이 사라지기 무섭게 잠시 잊고 있었던 식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번엔 환전도 든든하게 해왔으니까.

열심히 쓰고 틈틈이 벌자!

국가 하나를 경유 해야 해서 오래 걸리긴 하지만.

그리스에서 데몬을 잡아도 포상금이 들어오기에 틈이 날 때마다 때려잡아 돈을 벌 생각이었다.

저번 월미도는 못 올렸으니까 더 열심히 잡아야지.

월미도 영상은 포상금을 위해 호다닥 올릴까 했었지만 이내 삭제 버튼을 눌러버렸다.

동영상을 다시 돌려봐도 몹시 찝찝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얼굴은 안 보여도 희연 님의 10년 전 보육원 친구들도 있을 테니.

여러 사람 찝찝할 만한 동영상을 굳이 올리고 싶지 않았다.

데몬… 이지만 애매하기도 하고.

데몬과 비슷한 능력을 개방한 인간인지, 찐데몬인지 끝까지 헷갈렸던 정혁.

세상 참 복잡해.

새삼스레 진리를 깨달은 듯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밥이나 먹자.

공항 근처이니 먹을 게 여러 가지 있었다.

가능하다면 현지 찐 음식으로 먹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수블라키, 수블라키.

그리스에 도착하기 전부터 폭풍 검색을 했었다.

그리스에서 꼭 먹어야 하는 슈퍼 푸드 10선.

그중에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게 꼬치에 고기와 야채를 끼워 만든 수블라키였다.

보자 보자 수블… 응?

저 멀리서 누군가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한국에서 겁나 먼 그리스에서 나한테 손을 흔들다니?

호갱을 노린 사기꾼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뒤에 누가 있나.

휑하니 비어있는 뒷공간.

저건 사기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저벅.

본때를 보여 줘야겠구만.

겁 없이 다가오는 남자를 바라봤다.

전혀 사기칠 것 같지 않은 인자한 얼굴인데.

저번 마운티거의 윤명구도 그렇고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슥.

나에게 입을 열려는 남자를 향해 손을 들었다.

“노.”

“…?”

강한 부정을 나타냈다.

당신이 뭐라 말하든 난 거절하겠다는 철벽.

밑도 끝도 없는 노라는 말에 남자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백운 님 아니신가요?”

…?

이번엔 내 차례였다.

자동으로 남자와 같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앞을 바라봤다.

“맞군요.”

내 멍청한 표정에서 답을 얻었는지 남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슥.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내게 내미는 남자.

얼레.

핸드폰 화면엔 김희연, 김소연과 함께 찍은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그렇다는 건…?

“처음 뵙겠습니다. 그리스 한국 대사관에서 임무를 수행 중인 국가직 2급 헌터이자, 희연이와 소연이의 아버지인 김대혁이라고 합니다.”

* * *

하나씩 서빙되는 수블라키를 보며 앞에 앉아있는 김대혁을 바라봤다.

- 갈 데 없는 저와 소연이를 아무런 대가 없이 키워 주셨어요.

실종 사건 직후.

사라진 보육원에 덩그러니 남게 된 김희연과 김소연을 김대혁이 데려다 키워 주었다고 했다.

김대혁의 대사관 임무 때문에 떨어져 산지 꽤 되었지만 말이다.

소연 님이 먼저 전화했을 줄은.

김대혁은 몇 시간 전 김소연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월미도에서 있었던 일과 그곳에서 김희연을 구해준 은인이 그리스로 향한다는 설명.

내가 전화 안 할 거라 생각했었나 보네.

김소연이 먼저 전화를 한 이유는 대충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그리스에 도착해서도 내가 부담을 느껴 김대혁에게 전화하지 않을 것이라 여긴 것 같았다.

밥 먹고 꼭 하려고 했는데.

김대혁의 명함을 받아든 순간 전화를 하는 건 확정이었다.

대사관으로 가야 하니까.

그리스로 온 궁극적인 목적은 이카로스의 날개를 찾기 위함이었지만, 동시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이 시기쯤 그리스에 위치한 한국 대사관에 머물고 있었다.

“여기 수블라키가 그리스 제일입니다. 제가 살 테니 마음껏 드십시오.”

“앗… 넵. 잘 먹겠습니다.”

어색한 분위기에 머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감사 인사를 너무 많이 받아도 쉽지 않구먼.

나는 조금 전 잘 먹겠다고 한 번 고개를 숙였지만, 김대혁은 공항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 순간부터 쉬지 않고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 제가 어제까지 임무를 수행하느라 희연이의 메시지를 보지 못했었습니다. 그걸 못 참고 둘이서 데몬에게 간 모양이구요. 백운 님이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딸을 구해줘서 어떻게 감사를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 김대혁.

- 수… 수블라키 사주시죠!

그런 김대혁을 향해 나란 새끼가 내뱉은 말이었다.

내 나름대로는 과하게 감사해하는 모습에 가장 빠르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 것이었다.

- ….

물론 그런 말을 들은 김대혁의 표정은 예술이었다.

뭘 말하든 다 들어줄 생각이었는데 수블라키를 사달라니.

와작!

그렇게 해서 수블라키 가게에 도착하게 됐다.

조금 전 나와 김이 풀풀 나는 꼬치.

꼬치 가장 윗단에 있는 고기 한 점을 베어 무는 순간 확신이 들었다.

찐맛집이다.

육즙이 팡! 터지며 입안을 가득 채웠고.

겉면에 발린 버터의 고소함이 코로 스며들었다.

이것이 고기다.

그렇게 안 봤는데 그리스는 고기의 나라였다!

빠안.

…?

열심히 고기를 욱여넣다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나온 수블라키는 안 먹고 날 쳐다보고 있는 김대혁.

“아… 안 드시나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앞에 있는 꼬치를 한 입 베어 문 김대혁이 미안하다며 손을 저었다.

“하도 매칭이 안되어서요. 10급 헌터란 직급과 희연이와 소연이에게 들은 백운 님의 모습이요.”

“하하… 자주 듣습니다. 사기 치는 거 아니냐고.”

“급수를 올리지 않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김대혁의 물음에 고뇌가 시작되었다.

어딘가에 소속됨으로 행동에 제약이 생기는 게 싫어 10급을 지원했었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직급을 선택한 것.

예상대로 날 건들거나 귀찮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좋은 선택이었어.

결과론적으로 봐도 무척이나 잘한 선택이었지만.

이렇게 누군가 이유를 물을 때면 항상 변명을 생각해야 했다.

“글쎄요… 크게 이유는 없어요. 굳이 올려야 될 필요가 없어서… 라고 해야 되나.”

“그렇군요.”

만족스러운 답변이 아니었을 텐데도 김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식사 후에는 대사관에 가보고 싶으시다고요?”

“옙, 다른 나라에 있는 대사관은 어떻게 생겼나 꼭 보고 싶었거든요.”

대놓고 만나려는 사람의 이름을 말할 수는 없었다.

회귀 전에 이어졌던 인연이기 때문에 나 혼자만이 가지고 있는 기억이자 관계였기 때문이다.

괜히 이름을 말했다간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할 수도 있을 터.

“알겠습니다, 조금 전에 연락을 해뒀으니 문제없이 들어가실 수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원래도 그랬겠지만, 지금은 더더욱 타국의 공공기관을 출입하기가 힘들어졌다.

말을 하는 데몬, 사로카의 등장 때문이었다.

물론, 완벽하게 인간의 모습으로 말을 하는 데몬이 발견된 적은 아직까지 없었지만.

존재하지 말란 법이 없기에 다들 조심하는 것 같았다.

다행이야, 대혁 님이 대사관에 있어서.

그래서 김대혁의 힘이 필요했다.

10급 헌터라는 변변치 않은 신분.

정말 방법이 없다면 기태랑이나 비광에게 도움을 구할 수도 있겠지만, 최대한 지양하고 싶었다.

이미 너무 많이 받았으니까.

아직 받은 걸 갚지도 못했는데 친해졌다고 툭툭 도와달라 연락하고 싶진 않았다.

“얼른 드시죠. 다 드신 후에 대사관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멀지 않으니 금방 갈 거예요.”

“옙!”

크게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인 후.

앞에 놓인 수블라키를 마음껏 흡입하기 시작했다.

* * *

“우… 우와…!”

내 반응에 김대혁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생각 같지 않죠?”

“….”

최대한 아닌 척하려고 했는데 정곡을 찔려버렸다.

수블라키 흡입 후 도착한 한국 대사관.

대사관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태극기 안 달려있었으면 조금 큰 가정집으로 봐도 무방해.

눈앞에 나타난 검소한 대사관의 모습에 당황해버리고 말았다.

“하하! 이래 봬도 내외부로 보안은 철저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하하! 네!”

김대혁과 함께 어색한 웃음을 터뜨리곤 대사관 안으로 향했다.

두근대는구만.

드디어 대사관을 들어와 본다는 것 때문은 아니었다.

그리웠던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설렘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오는 외교관들과 기업들의 인원들이 주 방문 인원입니다. 아무래도 타국에서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보니 말이죠.”

김대혁의 설명을 들으며 열심히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빈자리가 많죠? 이미 대부분은 퇴근했을 시간이라서요.”

“아… 퇴근 시간이었군요.”

아직 저녁이 되기 전이었기에 의외였다.

오늘은 못 보겠구만.

“내일은 파르테논 신전에 가신다고요?”

“네 맞아요.”

대산의 문서에 적혀 있던 첫 장소가 파르테논 신전이었다.

내일부터는 이카로스의 날개를 찾아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날개 찾은 다음에 다시 와야겠네.

기대가 잔뜩 부풀었던 탓일까.

재회를 잠시 미뤄야 한다는 생각에 살짝 풀이 죽고 말았다.

“원래는 제가 같이 가드리려고 했었는데 급한 업무가 생겨서요. 그래서 대신 백운 님을 가이드 해줄 수 있는 친구를 불렀습니다.”

“친구요?”

“하하, 저랑 진짜 친구는 아니고 제 직속 부하입니다. 아, 저기 오는군요.”

김대혁이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기 전.

“안녕하세요, 팀장님.”

…!!

익숙하고도,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쳐다보지 않아도 말하고 있는 게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백운 님. 팀장님께 이야기 들었습니다.”

입가로 그려지려는 미소를 참으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을 향해 몸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백운이라고 합니다.”

이번 생에서는 첫 만남이었기에.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은 마음에 담아두어야 했다.

오랜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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