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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99화 (99/473)

99화. 파르테논 신전

“이곳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이자 신 아테네를 모시는 신전, 파르테논 신전입니다.”

앞서가며 설명을 하는 연화를 바라봤다.

이연화.

현 국가 소속 3급 헌터이자 대사관의 가이드를 맡고 있었다.

회귀 전에는 2급이었지.

머리도 자른 거였구먼.

지금은 허리까지 와 찰랑거리는 흑발.

전에 만났을 땐 처음부터 목 정도까지 오는 단발머리였었다.

“백운 님…?”

“아, 네.”

잠시 옛날 생각을 하느라 대답을 안 해서인지 이연화가 고개를 돌렸다.

아.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연화는 옛날과 전혀 다를 것 없는, 여전히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주는 깊고 맑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다 한국인이세요.

깊다 못해 벽안에 가까운 눈동자에 혼혈 아니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 눈동자 이쁘다는 말이죠?

농담 섞인 말을 건네며 환하게 웃었던 이연화.

그 미소를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는데.

감사합니다, 카이안 님!!

앞에 카이안이 있었다면 바로 그랜절을 박고 싶은 기분이었다.

“완전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계속 가시죠.”

싱긋 웃은 이연화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제가 다리가 좀 짧으니 천천히 가 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170이란 큰 키를 가져서인지 팔다리가 길쭉길쭉한 이연화였다.

실제로 쫓아가는 게 힘들진 않았지만 옛날에 건넸던 농담이 떠올라 건네보았다.

“풉.”

웃음을 터뜨린 이연화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도 약간 속도를 줄여주었다.

- 제 다리가 좀 길긴 하죠.

기분 좋은 얼굴을 하며 항상 이렇게 맞받아쳤었는데.

지금은 한국에서 온 상사의 지인이란 위치를 의식해서인지 거기까진 말하지 않는 이연화였다.

저벅.

파르테논 신전의 중앙 끝에 위치한 제단.

위로 올라간 이연화가 제단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아테네 신을 모시는 이들이 여러 제물을 올린 신성한 곳으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이 올라오는 건 금지 되었었다는 설명.

흠 흔적은 없네.

# 시작은 파르테논 신전의 글귀. 이카로스 날개와 연관이 있어 보임.

“여기에 아테네 신이 남긴 글귀가 있다고 하던데, 어디에 있나요?”

“아 그 글귀요.”

이연화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파르테논 신전의 구석진 공간.

어째서 이런 곳에 새겨져 있나 싶은, 아무렇게나 막 휘갈긴 듯한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진짜로 아테네 신이 쓴 거 맞나.

물론 100% 진짜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어디까지나 신전을 모시는 사람들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에게 자신들이 모시는 신과 신전을 더 드높이고 싶은 건 당연한 일.

이를 위해서는 누가 썼든 일단 아테네 신이 썼다고 하는 게 헌명하긴 했다.

그래도 이건 좀 심한데.

여신이 쓴 글씨가 학교 최고의 악필이었던 내가 쓴 글씨보다 못하다니.

이건 역으로 신성모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고 읽는 건가요?”

신이 갈겨놓은 글씨여서일까.

전에 먹어뒀던 알약으로 세계에서 사용하는 모든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앞에 있는 글귀는 읽을 수 없었다.

“욕망을 위해선 높이 날아야 한다. 하지만, 높이 오른 만큼 추락의 피해는 크다. 욕망을 실현하려는 자여, 그럼에도 그대는 하늘 높이 오를 생각인가? 라고 해요. 고대 학자들의 해석에 따르면요.”

“오… 뭔가 그럴싸한 글귀네요.”

그럴싸하다기보단 대놓고 이카로스의 날개에 대한 이야기였다.

깃털에 밀랍을 발라 만든 날개를 달고 태양 가까이 날아버렸던 이카로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욕망의 달롬함을 맛보기 무섭게 밀랍이 녹아 바다로 추락해버린 것.

이거만 봐서는 전혀 모르겠는데.

새삼스레 날개를 찾아냈던 회귀 전의 대산이 몹시 대단해 보였다.

이런 글귀 가지고 시작을 했다니.

흔적이 있었으면 했는데 아쉽네.

소피아가 건넨 자료엔 파르테논 다음 단계까지의 정보가 적혀 있었다.

그럼에도 이곳에 들린 건 혹시나 보랏빛의 흔적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보고 싶다, 보랏빛아.

더 보고 싶구나, 황금빛아.

빛들을 못 본지도 2년이 넘어버렸다.

사로카를 잡느라 어쩔 수 없었다곤 해도 2년이나 안 봐서인지 무기의 빛들이 몹시 그리웠다.

스윽.

…?

몸을 낮춰 글귀를 쓰다듬는 이연화.

묘한 얼굴로 글귀를 바라보던 이연화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저는 조금 다르게 해석하고 있어요. 저보다 더 자명한 고대학자 분들이 더 정확하겠지만요.”

이연화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사삭.

앉아있는 이연화에게 다가가 함께 자리를 잡았다.

“들려주세요. 꼭 듣고 싶습니다.”

내 친구 이연화라면 어떻게 해석했을지 궁금했다.

동시에 날개를 찾기 위해선 다방면으로 글귀에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너무 감성적일 수 있는데요. 이 글귀는 누군가를 걱정하고 있다고 전 생각하거든요.”

“걱정을 한다… 누구를 위해서요?”

이연화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알 수 없지만. 글귀를 쓴 게 아테네든 누구든, 글을 쓴 사람은 누군가를 말리고 있는 것 같아요. 확정적인 죽음을 향해 날아오르려는 소중한 사람을 말리는 듯한 느낌으로요.”

“오호.”

이연화의 말을 들으며 턱을 어루만졌다.

내용 자체는 크게 달리지지 않았지만 학자들이 한 해석과는 뉘앙스가 무척이나 달랐다.

학자들의 해석은 무뚝뚝하게 들리는 경고였다면.

연화의 해석은 소중히 여기는,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을 말리는 진심 어린 걱정이라 이 말이구만.

벌떡!

조금 전 말한 게 창피해서인지 이연화가 몸을 일으켰다.

“하하… 신전은 다 둘러본 거 같으니 다음 장소로 가볼까요?”

* * *

# 필로파포스의 언덕에서 보이는 곳은 다섯 군데. 이 중 한 곳에 날개가 있을 것으로 보임.

파르테논 신전에 이어 이연화와 함께 도착한 곳은 필로파포스의 언덕이었다.

그리스에 온다면 꼭 가봐야 하는 명소 중 한 군데로 알려진 장소였다.

“오늘도 관광객이 많네요.”

어찌 보면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데몬이 나타나며 해외여행은커녕 비행기 타는 것 자체를 꺼리는 이들이 많아졌는데.

그런 두려움을 뚫고 멀리서부터 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거 이거… 다 커플들 뿐이구만.

필로파포스의 현재 색이 있다면 무조건 핑크였다.

죽이는 경치에 노을 지고 있는 하늘까지.

없던 사랑도 솟아오르는 장소여서인지 여기저기서 커플들의 알콩달콩한 애정행각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삭.

조심스럽게 앞서가고 있는 이연화의 눈치를 봤다.

아무렇지도 않게 걷는 걸 보니 괜히 나만 주변 상황을 신경쓰고 있는 듯했다.

정신 차려, 백운! 그리스까지 와서 찐따 특성 못 버리고.

고개를 휙휙 저으며 이연화의 뒤를 따랐다.

“커플들 정말 많네요.”

“!?”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했던 이연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주변의 커플들을 부러운 듯 바라보던 이연화가 고개를 돌렸다.

“백운 님, 떨어지지 말고 바짝 붙어서 걸으세요.”

!?

이연화가 밝게 웃으며 옆을 가리켰다.

“우리만 쓸쓸해 보일 순 없잖아요.”

“네… 넵.”

긴장을 해서인지 찐따 같은 대답이 튀어나왔다.

호다닥.

하지만 시킨다면 잘 수행해야 하지 않겠는가.

곧장 이연화의 옆에 붙어 걷기 시작했다.

날개 찾아야 되는데.

온 신경은 이연화의 손과 스칠 듯 말 듯 한 오른손으로 향해 있었다.

쫘아아악!!

마음속으로 풀스윙 뺨따기를 걷어 올렸다.

정신 차려!!

날개 찾아야지.

묘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필로파포스의 언덕을 올랐다.

높은 언덕 위에 세워져 있는 오래된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엉?

건축물로 다가가자 출입금지라는 시뻘건 글씨가 보였다.

추락 위험이라는 글씨가 함께였다.

“올라갈 수 있는 건 여기까지에요. 여기서 추락 사고가 꽤 많이 일어났거든요.”

뒤따라 올라오던 커플이 표지판 앞에 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 아쉽다… 못 올라가나봐. 위에서 사진 찍고 싶었는데.”

여자친구의 아쉬운 말을 들어서인지 고민하는 듯하던 남지친구의 눈에 불꽃이 타올랐다.

“올라 가보자. 앞면으로만 떨어지면 능력 발동하니까 괜찮을 거야.”

사고가 많이 나는 이유가 있었구먼.

저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아쉬워하는 연인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올라가고 싶은 저 마음.

아 나는 모르는구나.

순간적으로 현실 자각을 한 후 옥신각신하는 커플을 바라봤다.

“뭘 올라가, 빨리 와. 위험하게 무슨 짓이야.”

계속 올라가겠다는 남자친구의 팔을 끌어당기는 여자친구.

다행히 오늘 사고가 일어날 일은 없어 보였다.

슥.

옆에 서 있는 이연화를 바라봤다.

이연화는 미소를 지은 채 건축물의 꼭대기를 응시하고 있었다.

“연화 님, 올라가실래요?”

“네…?”

넌 또 왜 그러냐는 듯한 눈동자.

억울하네.

약간이지만 억울했다.

대산의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 난 어차피 올라가야 하는 상황.

가는 김에 같이 갈까 한 건데 말이다.

“전 올라가야 해서요.”

“아….”

“무서우면 안 올라가셔도 돼요.”

스리슬쩍 몸을 돌려 혼자 올라가려는 시늉을 했다.

“어머, 저 사람 올라가려나 봐.”

“저러다 다치지. 여자친구 옆이라고 호기 부리면 안돼.”

다 들려 이것들아!

나름 안 들리게 한다고 소곤소곤 말하는 듯했지만 워낙 조용해서인지 귀로 팍팍 꽂히고 있었다.

그나저나 여자친구라니.

흐무우….

짝!

나도 모르게 흐뭇해지려는 마음에 뺨을 갈긴 후.

건축물을 응시했다.

“같이 가요.”

살짝 못 미더운 눈치로 이연화가 다가왔다.

“사실 저도 올라 가보고 싶었는데 제 능력을 썼다간 건축물이 무너질 거라 못 하고 있었거든요.”

하긴.

이연화의 능력은 마도공학.

현대 기술로는 만드는 게 불가능한 장비를 다른 차원에서 소환해내는 능력이었다.

문제는 대부분이 부피가 큰 만큼 광범위용 기술들이라는 점이었다.

“업… 히는 건 좀 그럴 거 같고.”

모양새가 좀 빠질 것 같았다.

들고 가는 게 낫겠네.

“잠시 실례.”

어떻게 데리고 가야 하나 고민하면 정적이 찾아올 것 같았기에.

호다닥 이연화를 공주님 안아 들어 건축물로 뛰어올랐다.

“!!”

이런 높이쯤이야.

2년 동안 가파른 돌산을 제 안방마냥 들락거렸다.

식은 죽 먹기보다 압도적으로 쉬운 난이도.

“우… 우와.”

“와 몸 날랜 거봐. 신체 강화 능력자인가.”

아래에서 부러움에 찬 목소리들이 들려왔지만.

그런 목소리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도착했습니다.”

좋았어.

자연스럽게 나온 목소리에 만족하며 이연화를 건축물의 정상에 올려다 놨다.

“와아… 고맙습니다.”

단 두 번의 걸음 만에 올라와서인지 이연화는 깜짝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경치 죽이네.

“시간까지 잘 맞춰서 왔네요, 너무 예뻐요.”

기뻐하는 이연화에 덩달아 만족감이 밀려왔다.

나도 기쁘네.

다시는 못 만날거라 생각했었던 친구.

그런 친구가 나로 인해 기뻐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슥.

자… 그럼.

건축물의 꼭대기에서 정면을 응시했다.

해가 떨어지고 있는 위치에 솟아있는 엄청난 높이의 지형들.

다섯 개의 지형 중에서도 유독 높은 곳을 바라보았다.

더럽게 높네.

구름에 가려져 있어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이 건축물에도 보랏빛은 없었지만.

괜찮았다.

눈에 보이는 드높은 지형물.

나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저곳에 날개의 흔적이 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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