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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00화 (100/473)

100화. 암벽 등반

그리스에 위치한 한국 대사관.

“어? 연화 님, 오늘도 백운 님 가이드 가는 거 아니었나?”

김대혁의 물음에 이연화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침에 가긴 갔었는데요. 이제 괜찮다고 하길래 돌아왔어요.”

“그래? 여기저기 관광할 기세였는데 희한하네. 아침에 간 곳이 어디었는데?”

“항구 끝에 위치한 절벽이요. 그 끝도 안 보이는 지형이 있는.”

이연화가 아침에 만났던 백운을 떠올렸다.

어제 약속한 대로 호텔 앞에서 만난 두 사람.

백운은 만나기 무섭게 아테네의 항구 끝에 있는 절벽으로 가는 방법을 물었었다.

“거기서 오래 묵을 예정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절벽에서 오래 묵는다…?”

처음에 들었을 땐 이연화도 고개를 갸웃거렸었다.

아테네의 항구 끝.

걸어서 가볼 수 있는 곳이라곤 볼거리 하나 없는 상점가 마을뿐이었다.

“여기로 돌아오는 교통편도 없지 않아?”

“네, 갈 때도 제 차로 간 건데… 정 안되면 연락하겠다고 하길래 일단 돌아왔어요.”

- 가이드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체 절벽에서 뭘 하려는 건지 궁금했지만.

먼저 말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백운에 이연화도 고개를 꾸벅인 뒤 대사관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신기한 사람이야.’

신기한 사람.

이 단어 말고는 백운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어제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마치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낸 친구 같은 느낌.

‘내가 이상한 건가?’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뭘 먹고 싶냐는 물음에 백운이 대답한 것들은 전부 이연화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들이었다.

거기다 말을 할 때마다 이연화의 개그 코드에 정확하게 적중하는 것까지.

‘별일이 다 있어.’

피식.

그 순간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왔다.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함께 있는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데 능력이 있는 백운이었다.

‘가이드 하는 중인 것도 계속 까먹어서 혼났네.’

김대혁의 부탁으로 만나게 된 사이라 조금은 어색하고 불편할 거라 생각 했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대화와 잘 맞는 개그 코드 덕분인지, 이연화는 종종 자신이 가이드 중이란 걸 잊고 백운과 함께 웃으며 떠들고 말았다.

‘같이 있으면 재밌는 사람.’

이연화가 하루 만에 내린 백운에 대한 정의였다.

‘아.’

어제 하루를 생각하던 중 필로파포스의 건축물에 올라갔던 장면이 떠올랐다.

어려서부터 높은 곳을 좋아했지만, 동시에 무서워해 올라가지 못했었다.

필로파포스의 언덕 건축물 역시도 매일 올라가 보고 싶단 생각만 했을 뿐 시도해볼 엄두조차 못 내고 있었는데.

- 올라가실래요?

언덕에 처음 왔으면서 망설이지도 않고 올라가자 말을 건네준 백운.

무서워서 조금 망설여졌지만, 왠지 모르게 백운과 함께 올라가면 무섭지 않을 것 같았다.

- 번쩍.

실례한다는 말과 동시에 안아 올렸을 땐 정말 놀랐었다.

건축물을 오르기 위해서라곤 해도 누군가에게 안긴 적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

안겼나 하는 찰나에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건축물의 꼭대기였다.

조심스럽게 꼭대기의 언저리에 내려줬던 백운.

아래를 보면 정말 아찔해서 식은땀이 났어야 할 높이인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백운이 있으면 괜찮을 거라는, 이연화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는 믿음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싱긋.

‘엄청 예뻤는데.’

꼭대기에서 본 일몰은 정말 예술이었다.

“뭘 그렇게 실실 웃어?”

“!!”

자기도 모르게 실실 웃어버린 이연화가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그런 이연화를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보고 있는 김대혁.

“저… 전 업무 때문에 이만 가보겠습니다. 점심시간에 봬요, 팀장님.”

호다닥 멀어져가는 이연화를 보며 김대혁이 어깨를 으쓱 올려 보였다.

“흠, 절벽이라.”

국가직 10급 헌터 백운.

보면 볼수록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김희연과 김소연이 아니었다면 정체를 의심했을 정도로 말이다.

- 정말… 강해요.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성격의 김희연.

김희연이 그렇게까지 강조해 무언가를 말한 건 처음이었다.

“하아.”

뭔가 알 거 같으면서도 모르겠는 백운을 떠올리며 김대혁이 항구 쪽을 응시했다.

‘절벽에서는 또 뭘 하고 있으려나.’

* * *

“흐음!”

팔짱을 끼고 멀리 떨어져 있는, 이제부터 하늘탑이라고 부르기로 한 지형을 바라봤다.

음! 이름 잘 지었어.

구름에 가려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솟아있는 탑.

이거야말로 하늘탑이지 무엇이겠는가.

연화가 있었으면 미쳤다고 무조건 말리려고 했을 테니.

절벽에 도착하기 무섭게 이연화를 돌려보낸 이유였다.

하늘탑까지 향하는 길이 하나쯤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과한 희망이었다.

- 저곳은 출입 금지에요.

출입 금지 구역 중에서도 최고 레벨로 위험한 곳이라고 이연화는 설명했다.

어제 필로파포스의 건축물은 그냥 안전사고가 자주 나다 보니 금지라는 말을 써놓은 것이지만.

하늘탑은 다르다고 말했다.

- 데몬이 등장하기 전부터도 그리스 사람들은 아무도 저곳에 다가가지 않았어요.

다가간 이들은 전부 돌아오지 못했다는 설명.

배로 가면 배가 침몰했고, 하늘을 이용해 가려고 해도 비행기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추락했다는 것이다.

추락한 비행기는 배들이 침몰했던 바다로 떨어져 잔해조차 건지지 못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 그런데 지금은 데몬까지 득실거리니. 저곳에 가려는 사람은 아마 미친 사람밖엔 없을 거예요.

순식간에 미친 사람이 되어버리다니.

애석하게 고개를 저으면서도 눈은 하늘탑에 고정되어 있었다.

데몬이 나타나기 전이든 후든 올라가 본 사람이 없는 지형.

구미가 확 당기는 곳이었다.

냄새가 난다, 냄새가 나.

날개의 냄새가 난다!

회귀 전, 대산은 이카로스의 날개를 손에 넣었었다.

그렇다는 건 저곳에 뭐가 있든 뚫고 갔다는 소리였다.

물론 날개를 찾은 곳이 하늘탑이 아닐 수도 있지만.

풀썩.

절벽에 앉아 빵을 뜯으며 전략을 세워나갔다.

눈으로 보이는 건 구름 아래 정도였기에 탑이 얼마나 높은지는 알 수 없었다.

구름이 있는 것도 이상하네.

어제는 몰랐지만 오늘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었다.

그럼에도 하늘탑이 있는 지형에만 짙은 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상태였다.

자연스러운 구름이 아닌, 무언가에 의해 만들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구름이 저 정도로 끼어있다는 건 당연히 시야 확보가 안 된다는 얘기고.

시야 확보가 안 된다는 건 비전을 사용하지 못할 확률이 크단 건데.

비전 수리검의 약점이라면 약점인 부분이었다.

시야 안에 수리검이 없으면 비전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

어제까지만 해도 구름이 걷히면 수리검을 이용해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불가능한 계획이 되어버렸다.

암반 해야 되나.

하기 싫은데.

하기 싫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하늘탑은 더럽게 높았다.

쩝.

얼마나 높은지를 모르니 답답하네.

이래저래 생각을 하다 보니 이연화가 괜히 미친 짓이라 말한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겠어.

개미친 짓이어도 가야 되는데.

슥.

옆에 놓인 두툼한 가방을 바라봤다.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어 옆에 있던 작은 마을에서 사온 식량이었다.

“으챠.”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기지개를 켰다.

우두둑.

“가볼까.”

[비전 수리검]

* * *

몇 번을 이동해 왔을까.

애초에 거리가 꽤 됐는지 가까워질 거 같으면서도 은근 안 가까워지는 하늘탑.

꽤 머네.

비전으로 이동한 뒤 다시 수리검을 집어 앞으로 던졌다.

[비전]

다시 한번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려는 순간.

쐐에에에엑!

머리 위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응?

별 생각없이 고개를 든 순간.

햇빛을 가리는 거대한 날개가 눈에 들어왔다.

시벌.

끼루우욱!

소리만 들으면 갈매기인데.

그냥 갈매기는 아니었다.

사람 몸통만 한 발톱을 가진 겁나 큰 갈매기였다.

후웅.

하늘탑 쪽으로 던지려던 수리검을 갈매기에게, 정식 명칭으론 알브론이라 불리는 데몬에게 집어던졌다.

쿠직!

꾸아아아… 악.

해안가에서 자주 출몰하며 소나 돼지 같은 가축을 통째로 집어가는 데몬이었다.

용기 있는 놈들은 사람도 집어가기에 알브론이 출몰하는 지역에서의 개인행동은 철저히 금지되고 있었다.

개인행동 하지 말라고 표지판이라도 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유럽은 한국에 비해 안내나 서비스가 한참 부족하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알브론 출몰 지역에 기본적인 표지판마저 없을 줄은 몰랐다.

끼루루루!

끼룩!!

알브론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

철새의 특징을 타고 난 건지 무리 생활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더럽게 많이.

으.

한 마리 한 마리를 수리검을 던져 처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저 엄청난 숫자였다.

수리검을 한 번 던진 후 리볼버로 조질까도 생각했지만.

굳이 써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는 곳에 리볼버를 낭비하는 느낌.

다가오는 알브론에게 수리검을 던질까 말까 잠시 고민이 됐지만.

흠, 똥이 더러워서 피하나.

[해제]

결론은 이동 경로의 변경이었다.

하늘길이 저 지랄이라면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공중이 아니면 바다로 가야지.

수영 드가자!

수리검을 던지려던 자세를 바꿔 입수 준비를 마쳤다.

풍덩!

한참 공중에서 햇볕을 쬐다 들어와서일까.

몸을 감싸는 바닷물이 무척이나 시원하게 느껴졌다.

돌산 강물 생각나네.

돌산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땀을 흘린 뒤 뛰어들었던 강물.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에 몸을 담그는 순간 느껴졌던 청량감은 지금도 몹시 그립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엄청 평화로웠지.

다른 장소였지만 지금은 바다가 그때의 강가와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깃털이 젖는 걸 싫어해 물에는 접근하지 않는 알브론.

위를 보니 알브론들이 바다 위를 빙빙 돌고 있는 게 보였다.

숨 쉬러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는 건가.

우매한 놈들.

수련을 하며 강해진 건 속도와 힘뿐만이 아니었다.

허구헌 날 물고기마냥 강물을 헤엄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늘어난 폐활량.

그 덕에 지금은 돌고래처럼 물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 수 있었다.

거기서 빙빙 돌아라

형은 평화롭게 물길로 갈 테…?

꿀렁.

희미하지만 저 아래서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갑자기 PTSD 도지네.

2년 동안 돌산의 강물에서 너무 평화롭게 지낸 까닭일까.

그 전에 가지고 있던 물에 대한 악몽을 잠시 잊고 있었다.

유탈라스를 만나러 갈 때 조우했던 거북쉨.

거북이한테 죽기 직전까지 시달린 뒤 다짐했던 게 떠올랐다.

- 또 물에 들어오면 성을 간다.

오늘부터 내 이름은 흑운인가.

강물의 좋은 기억으로 희미해졌던 옹달샘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림자가 지나갔던 아래를 응시했다.

항상 느끼지만, 바다는 정말이지 존나 무서웠다.

부디 갈매기쉨이 나았다고 생각할만한 놈이 아니기를.

꿀렁!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다 내 아래  쪽에 고정되는 그림자.

그리고,

쑤우우우욱!!

그림자가 빠르게 커지기 시작했다.

온다.

그림자의 정체가 조금씩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슨 흰수염고래만 한 상어가 이빨을 번뜩이며 빠르게 부상하고 있었다.

시발.

[비전 수리검]

빠르게 수리검을 꺼내 들었다.

갈매기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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