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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02화 (102/473)

102화. 몹시 큰 새

펄럭… 펄럭.

마치 물 만난 물고기 같은 여유로움이었다.

구름 속에서 거대한 게 나오는가 싶더니 나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날개를 펄럭이고 있는 세만트라.

마가 꼈나.

구름에서 튀어나온 게 세만트라인 걸 확인하자마자 한숨이 나왔다.

구름을 보면서도 아니겠지라고 현실부정 하긴 했지만, 만에 하나 세만트라가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은 염두해두고는 있었다.

어떡하지.

염두해뒀지만 아니길 애타게 바랐던 이유는 간단했다.

아주 작은 확률이 아니라 90%의 확률로 세만트라가 있다 한들 딱히 대처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카로스의 날개를 찾으러 그리스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 일단 가자.

그렇기에 세만트라의 가능성을 열심히 부정하며 바다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이 현실부정 하는 거 보면 한심하게 여겼는데.

어쩔 수 없으니 나도 하게 되는구만.

눈앞에 있는 세만트라를 보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떡해! 방법이 없는데.

솟아있는 하늘탑과 그 탑을 둘러싸고 있는 구름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건 불과 오늘 아침이었다.

어제 필로파포스의 언덕에서만 해도 날씨가 우중충했었다.

그렇다 보니 그냥 구름이 낀 날씨라 그러려니 했을 뿐, 여기만 구름이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었다.

연화도 아직 세만트라의 존재를 모르는 모양이네.

알았으면 어제 언덕에서 말해줬을 텐데.

세만트라가 잡혔다는 영상을 본 건 회귀 전이었다.

지금까지는 발견된 적이 없어 사람들이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저 옛날부터 위험한 장소라고 여겼으니 다가갈 일도 없었을 터.

이연화도 설마 내가 헤엄쳐서 여기를 기어오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만트라가 있는 줄 알았으면 쿄스케라도 부탁해서 데려왔을 텐데.

언력을 사용하는 쿄스케.

쿄스케의 떨어지라는 언력이 담긴 말 한마디면 세만트라 따위는 당장 바다로 다이빙했을 것이다.

하지만, 쿄스케는 지금 여기에 없다.

공중전 수단이라고는 수리검밖에 없는, 그마저도 잔뜩 끼어있는 구름 때문에 여의치 않은 뚜벅초 하나가 벽에 달라붙어 있는 게 현실이었다.

혹시 날 못 보진 않았을까.

작은 희망의 불씨가 타올랐다.

어째선지 그 자리를 지킨 채 가만히 있는 세만트라.

조심스럽게 세만트라의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빠안.

아니네.

말이 통한 건 아니지만, 날 발견하지 못했을 거란 불씨는 사그라들었다.

아주 정확히 날 내려다보고 있는 세만트라.

마치 집에서 누워있던 중 지나가는 돈벌레를 본 나의 눈빛 같았다.

건방진 새끼!

라는 생각에 냅다 한 대 갈겨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수그려야 할 때였다.

발조차 제대로 딛기 힘든 암벽.

이곳에 매달려 세만트라를 상대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를 자극해선 안돼.

아주 미세한 움직임으로 손을 슬쩍 뻗었다.

만약 나란 존재가 세만트라에게 있어 돈벌레 같은 존재라면.

어쩌면 그냥 봐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천한 벌레를 굳이 움직여가며 잡을 필요는 없으니까.

지나가는 돈벌레를 보면서도 가만히 있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귀찮으니까.

저 돈벌레 하나 잡자고 포근하게 뉘어져 있는 내 몸을 일으켜 휴지를 뜯고 쫓는 건 몹시 낭비라고 할 수 있었다.

난 벌레다.

난 딱정벌레야.

스스로 되뇌이며 슬금슬금 위를 향해 나아갔다.

“….”

여전히 아무 반응도 없는 세만트라.

좋아, 그렇게 가만히 있어.

생각이 적중한 것 같았다.

인간과 새라는 차이는 있지만 작디작은 존재를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는 별 다를 바 없는 듯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투둑!

….

다음 손을 짚은 암벽이 무너지며 돌 부스러기들이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재빨리 다른 위치를 잡았기에 떨어지거나 하진 않았지만.

꼴깍.

펄러억…!!

문제는 미묘하지만 달라진 세만트라의 날갯짓이었다.

머리 위로 느껴지는 풍압이 점점 거세지고 있는 상황.

슬쩍.

긴장된 순간에 침을 삼키며 고개를 들자.

시발.

“끼르르르르륵!!!”

세만트라가 엄청난 소리를 지르며 활강을 시작했다.

* * *

“끼륵!”

내 등을 스치고 지나간 세만트라가 다시 구름 속으로 몸을 숨겼다.

발톱과 부리를 들이대다 반응을 할라치면 구름 속으로 쏙 사라져버리고 있는 세만트라.

그 틈에 위로 올라가려 하면 귀신같이 놓치지 않고 세만트라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존나 얄밉네.

세만트라의 행동에 대한 한 줄 평이었다.

일단 던지고 보잔 마음에 수리검을 날렸지만.

- 휘익!

영상에 나왔던 헌터의 말대로 하늘에서의 세만트라는 더럽게 빨랐다.

거기다 구름까지 있어 눈 깜짝하는 사이 모습이 사라져버리기까지.

구름을 꿰뚫어 보는 눈이라도 있는 게 아닌 이상, 찰나의 순간을 제외하곤 세만트라의 모습을 제대로 보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킹냥이의 눈도 발동 안 하고.

정혁과의 싸움에서 환각이 들어오자 자동으로 발동되었던 페샨의 눈.

예상은 했지만 환각이 아닌 찐구름까지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쐐에에엑!!

[잭 더 리퍼]

대각선 방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면도칼을 꺼내 들었다.

부리를 들이대는 순간 눈을 그어줄 생각이었다.

꿀렁!

온다.

구름에 비치는 그림자에 면도칼을 들어 올렸다.

….

면도칼을 들기 무섭게 사라져버린 그림자.

“끼룩!”

사라졌던 세만트라가 밑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빠르게 거대한 부리를 앞세워 돌진하는 세만트라.

오냐, 뒤졌다 넌.

[유탈라스 - 1단계 의태]

오른손을 비늘로 덮으며 다가오는 세만트라를 응시했다.

그야말로 엄청난 상승 속도였다.

저 속도로 부리가 닿는다면 엉덩이가 조금 뚫리는 걸 넘어 파열 확정이었다.

얍삽한 새끼니까 최대한 마지막까지 숨긴다.

비늘이 둘러싼 팔을 숨긴 채 세만트라를 기다렸다.

“끼루루루루!!”

반드시 내 엉덩이를 뚫겠다는 녀석의 울음이 들려왔다.

와라 새 새끼야.

거대한 부리 끝이 내 발끝 쯤에 도달한 순간.

내 엉덩이는 이 새끼야.

몸을 빙글 돌려 아래를 향해 의태된 오른손을 뻗었다.

아무나 뚫을 수 없단 말이다!

후우우우웅..!

이건 맞췄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법칙을 거스르는 게 아니라면 이 정도 속도를 뒤집고 방향을 트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파아아앙!!

하지만, 들려온 건 무언가에 부딪힌 타격음이 아닌 허공의 공기가 찢어지는 파열음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속도로 회피를 시전하는 세만트라.

찰나의 차이로 유탈라스의 주먹이 세만트라를 비껴갔다.

와 시발! 이걸 피한다고?

빗맞았다는 아쉬움보단 놀라움이 더 컸다.

공중에서 빠르다 빠르다 하길래 얼마나 빠른지 궁금했었는데.

예상을 아득히 넘어가버리는 속도와 회피 능력이었다.

펄럭!!

그렇게 구름 속으로 사라지나 싶더니.

수십 개의 깃털이 내게로 날아들었다.

말이 깃털이지 하나하나가 내 몸과 비슷한 크기였다.

맞으면 꼬챙이다.

[유탈라스 - 2단계 의태]

용의 숨결.

팅팅팅!

몸 주변을 감싼 비늘에 의해 튕겨 나가버리는 세만트라의 깃털들.

호다닥.

유탈라스의 비늘이 주변을 감싸고 있는 지금이라면 세만트라가 와서 치든 말든 다칠 일은 없었다.

바로 위가 하늘탑의 꼭대기이길 바라며 사족보행으로 빠르게 암벽을 기어올랐다.

꼭대기만 가면 된다.

공중에선 물 만난 물고기처럼 미쳐 날뛰는 세만트라였지만.

내게도 정상적으로 발 디딜 곳이 주어진다면 문제 될 건 없었다.

꼭대기 도착하기만 하면 스이카로 죽여버린다, 이 새 새끼!

세만트라가 아무리 빠르다 한들 스이카의 발도 속도에는 비할 바가 못 됐다.

발 디딜 곳만 충분하다면 몇 번이든지 발도를 뿌려낼 수 있으니 그때까지만 참으면 되는 일.

쾅. 쾅. 쾅. 쾅.

올라가는데에 혈안이 되어있다는 걸 알아서일까.

아무 반응도 않자 신나게 날아들어 날 공격하고 있는 세만트라.

유탈라스의 비늘이 모든 데미지를 받아주고 있었지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진짜 조패버리고 싶네.

얍실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세만트라의 공격은 야비 그 자체였다.

등을 돌린 채 위를 바라보며 기어 올라가고 있음에도 한 번 공격 후엔 반드시 구름 속으로 숨어버리는 녀석.

“너 그러다 뺨 처맞어 이 새끼야!!”

오락실 격투 게임에서 동네 형을 상대로 얍삽이 약발만 갈겨대는 느낌이었다.

뺨을 처맞았어도 열 대는 처맞았을 행동.

스르르.

이런.

덕분에 꽤 올라온 듯했지만.

유탈라스의 사용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왜 끝이 안 보이는 거냐구!

최선을 다해 오르고 있는 상태.

바퀴벌레가 와도 울고 갈 정도의 사족보행 속도였다.

그럼에도 어찌나 높은 건지 하늘탑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쐐에에에에…!

다시 등을 후리기 위해 오른쪽에서 날아드는 세만트라를 곁눈질로 쳐다봤다.

구름에 가려져 완벽하게 보이진 않지만 크기가 큰 만큼 그에 맞는 엄청난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비늘이 사라지기 전에 한 방 더 먹여보자.

주먹을 휘두르지도 않을 생각이었다.

그냥 오른쪽으로 접근하는 순간 팔을 휘둘러 냅다 후려쳐버릴 생각이었다.

내가 계속 맞아주고 있으니 방심했겠지, 새대가리 쉨.

마음속으로 초를 세며 세만트라를 기다렸다.

하나… 둘.

쐐에… 서이!!

펄럭!!!

이번에도 반응을 해버리는 세만트라.

저런 개.

세만트라가 뛰어난 건 비행속도뿐만이 아니었다.

날개를 이용한 엄청난 반응속도까지.

내 팔이 움직이려는 찰나 세만트라가 먼저 강한 날갯짓을 하며 방향을 틀어버렸다.

이건 내가 날개라도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이다.

애초에 암벽에 매달려 저런 속도로 움직이는 새를 때린다는 건 불가능이었다.

얻어걸리길 바라며 계속 휘둘러봤는데도 마치 장난감 다루듯 가볍게 피해버리는 세만트라.

존나 약 오르네.

아직 공격당해 상처 입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내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생기고 있었다.

겨우 새대가리 따위가 장난감 가지고 놀듯이 날 농락하다니.

근데 이 새끼는 어디 갔어.

마지막 공격 이후로 사라져버린 새 새끼.

어디로 간 건지 날갯짓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있었다.

안 오니까 더 불안하네.

밉다가도 안 보이면 보고 싶다고 했던가.

불안한 마음에 한참을 모습을 안 보이는 세만트라가 보고 싶어졌다.

투둑.

응…?

투두둑. 투둑.

머리 위에서 돌부스러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이 시발놈이 설마…?

거울이 없어 내 눈을 보진 못하지만.

아마 동공 지진이 났을 터였다.

쿠르르릉…!!

잡고 있는 암벽으로 강한 진동이 전해졌다.

콰아아아아!!

진동이 점점 심해지는가 싶더니 위에서부터 암벽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내게 휘두르는 공격이 위험하다고 판단해서일까.

얍삽의 끝판왕 세만트라는 나에게 접근해 직접 공격하기보단 내가 잡을 수 있는 벽을 부수기로 한 것이었다.

이 시발!

여파가 점점 심해져서인지 손으로 잡고 있던 부분까지 무너져 내려버리는 암벽.

탓!

떨어지는 암벽을 딛고 위로 몸을 날렸다.

벽돌들을 발판 삼아 올라갈 생각이었다.

“끼루루루!”

쐐에에에에에!

승리를 확신한 건지 돌진해오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이 새끼가!

시야에 들어온 순간 박살내려 면도칼을 준비했지만.

…!

날아온 건 세만트라가 아니었다.

무더기로 날아든 거대한 깃털들.

시… 시발.

발을 딛고 잡고 있던 균형이 무너지는 게 느껴졌다.

몸으로 날아오는 건 전부 쳐냈지만, 발을 딛고 있던 벽돌까지는 지켜내지 못했다.

돌을 부숴버리며 딛고 있던 발판을 없애버리는 세만트라의 깃털들.

실로 얍삽하고도 더러운 플레이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새 새끼가!!!”

발판이 무너지기 무섭게 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른 곳으로 옮겨가려 했지만 그마저도 깃털을 날려 부숴버리는 새 쉨.

“맞서 싸워!! 새끼야! 맞서 싸우라고! 이 새년아!!”

약이 오를 대로 올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앤 보니&메리 리드]

두두두두두두두!!

기어 올라가느라 사용하지 못했던 리볼버를 꺼내 들어 위를 향해 난사해버렸다.

어차피 맞지 않을 건 알았지만, 얍삽한 세만트라에 너무 약이 올라 미쳐버릴 것 같았다.

“조금만 기다려라 이 새끼야!! 금방 돌아온다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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