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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04화 (104/473)

104화. 동굴 속에는

빛을 따라 도달한 곳은 작은 공간이었다.

넓은 동굴이 집이라 치면 이곳은 구석탱이에 위치한 아담한 방 같은 느낌.

그리고.

“….”

그 방은 비어있지 않았다.

바닷속에 위치한 동굴이었고 그 동굴 안에서도 복잡한 길을 따라 도달한 장소였다.

당연히 황금빛을 뿜고 있는 무기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을거라 생각했었다.

응…?

이런 내 예상과 달리, 비어있을 거라 생각했던 방 안에는 여자 한 명이 홀로 앉아있었다.

아무리 많이 쳐도 나와 나이가 크게 차이 날 것 같지 않은 생김새였다.

한국인은… 아니고.

바닥까지 끌릴 정도로 길게 늘어뜨린 긴 갈색 머리.

그리고 머리색에 어울리는 찐하디찐한 갈색 눈동자까지.

귀신은 아니겠지.

피부가 하얀 정도가 아니었다.

무서운 거라도 본 것처럼 허옇다 못해 창백한 색깔의 얼굴.

누구냐고 물어봐야 되나.

마찬가지로 날 빤히 바라보고 있는 여자에게 어떤 첫마디를 건네야 할지 고민되었다.

누군가는 굳이 왜 처음 보는 사람한테 말을 거냐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말을 안 걸래야 안 걸 수가 없었다.

금돌이를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말을 안 걸어.

찬란한 황금빛을 뿜어내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누군가의 유골이었다.

그리고 그 유골은 여자의 바로 앞에 놓여 있었다.

아무리 봐도 여자와 사연이 있을 듯한 유골이었기에 함부로 다가가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유골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지금까지 겪은 바로는 황금빛과 공명 한다고 해서 다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무기의 일부나 그 자체가 아닌 이상 공명을 한 이후엔 빛만 사라질 뿐 여전히 실존했다.

잠시 유골을 좀 만져봐도 될까요?

간단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후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무기인지는 감도 안 오지만 만약 저 유골 자체가 무기라면?

난 의도치 않게 누군가의 유골을 훔쳐가 버린 안면수심 강도 새끼가 되는 것이었다.

“오랜만이네요.”

“!!”

뭐… 뭐지?

가만히 있는 내가 답답해서일까.

먼저 입을 연 여자는 뜻밖의 말을 건넸다.

오랜만이라니?

잊힌 기억 속에서 날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인 걸까?

한 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은 외모인데 난 어째서 잊어버리고 만 걸까.

설마 카이안과 연관이 있는 인물!?

꼴깍.

“저… 절 아시나요?”

묘한 기대감을 안고 조심스럽게 되묻자 여자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사람이 오랜만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아.

머릿속에서 돌아가던 갖가지 시뮬레이션을 종료시켰다.

더 이상 돌리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거 참, 사람 헷갈리게 말을 하시네!

라고 속으로 약간의 불만을 표출한 후.

철푸덕.

난 당신을 위협할 생각이 없다는 표시로 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원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다가가지 않을 것이니 경계할 필요가 없음을 전달하고 싶었다.

“이름이 뭔가요?”

다짜고짜 이름을 묻는 여자한테선 알 수 없는 신비로움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외딴 바다 밑 동굴에서 만나서가 아닌, 무언가 다른 차원의 사람인 듯한 느낌이었다.

“백운입니다.”

“전 미네라고 해요.”

뭔가 더 엄청난 이름이 튀어나올까 바짝 쫄아 있었는데.

생각보다 사람 냄새나는 이름이라 나도 모르게 안도했다.

“여기에는 왜… 계시는 건가요?”

미네가 있는 곳에 멋대로 쳐들어온 건 나였지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묻고 싶었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나와 비슷한 또래인 미네가 이곳에서 누군가의 유골과 함께 있는 것인지를 말이다.

“왜… 라.”

미네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질문이네요.”

“죄… 죄송합니다.”

초면부터 어려운 질문을 했다는 사실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지내셨는지, 배는 안 고픈지, 배가 고프면 초코바가 있으니 드리겠다 등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끌어 갔어야 하는데.

유물관에 박혀 있던 찐이 무얼 알겠는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난 건지,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지, 제 스스로가 뭘 원하는지도요.”

“아… 그렇군요.”

감도 안 잡히네.

무언가 알아들은 듯 답하긴 했지만, 사실 와닿지 않는 대답이었다.

달리 할 말이 없으니 일단 대답하고 본 것.

“어째서 여기에 온 건가요? 이곳은 쉽게 올 수 있는 곳이 아닐 텐데.”

독수리한테 공격당해서 추락한 후에 고민하는 사이 저도 모르게 왔습니다… 가 솔직한 대답이었지만.

그것보다는 조금 더 궁극적인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제가 찾고 있는 게 있어서요.”

“찾고 있는 게 이곳에 있나요?”

미네의 물음에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빛을 뿜어내고 있는 저 유골이 무기로 날 인도해 주리라는 건 분명했다.

무슨 무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솔직히 날개는 아닐 거 같지만.

방에 들어와 빛을 뿜어내고 있는 게 날개가 아닌 유골이란 걸 확인한 순간.

사실 마음속에선 이카로스의 날개에 대한 희망이 많이 사라져 버렸다.

대산이 발견해서 발표했던 건 분명 온전한 날개 형태였어.

좀 오래 되다 보니 날개의 형태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 온전한 깃털들로 이루어진, 누가 봐도 날개라는 걸 인지할 수 있는 형태의 물건이었다.

방 안에는 날개 비슷한 것도 없으니.

좁은 방에 있는 건 미네와 유골뿐이었다.

더 찾아볼 것도 없을 정도로 깔끔 그 자체인 방.

그래도 뭐… 무기는 무기니까.

꼭 날개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찾았어야 할 무기 중 하나인 건 분명했기에.

아무 수확도 없는 것보단 훨씬 좋은 상황이었다.

“그렇군요.”

슥.

대답 후 잠시 날 바라보던 미네가 고개를 내려 유골을 응시했다.

“당신이 찾고 있는 건… 이 유골이군요.”

“…!”

도착한 순간 내 눈에 쓰여진 탐욕을 읽은 건가?

단번에 알아챈 미네에 잠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곳에 와서 무언가를 잘못하거나 몹쓸 말을 한 건 아니었지만.

미네가 가지고 있는 유골을 원하고 있다는 게 어째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말씀하신대로… 유골이 뿜어내고 있는 빛을 따라 여기까지 왔습니다.”

미네에게 내게 보이는 것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줬다.

“그리고 유골이 목적이라기보단, 유골이 뿜어내고 있는 빛을 통해 찾고 있는 걸 손에 넣을 수 있거든요.”

“신기한 능력이네요.”

신기하다며 미네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묘하게 맑네.

미네의 표정을 굳이 표현하자면 무표정이었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 해탈을 해버린 듯한,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 같은 표정.

그럼에도 살짝살짝 짓는 미소에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맑은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사락.

유골 위에서 손을 뗀 미네가 내 눈을 응시했다.

“찾으러 왔다고 하지 않았나요.”

“…!”

마치 이리 와서 찾고 있는 걸 가져가라는 듯한 뉘앙스였다.

자신이 품고 있는 유골을 개인적인 목적과 욕심을 위해 가져간다고 말했음에도 화내긴커녕 오히려 다가오라고 말하는 미네.

너무 뜻밖의 반응이라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제가 손을 대면 유골이 사라질 수도 있어요. 이건 저도 지금 당장은 알 수 없고요.”

“괜찮습니다.”

표정의 미동조차 없이 쿨한 대답을 하는 미네.

조금 마음이 찜찜하긴 하지만.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미네에게 걸어갔다.

안된다고 하면 미네가 허락할 때까지 손을 댈 생각은 없었다.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으니 다방면으로 길을 찾으려 노력은 할 테지만 말이다.

“당신은 이 유골을 통해 무얼 얻고자 하는 건가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거의 다가갔을 때.

묘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미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무기를 찾고자 합니다. 물론 제가 처음에 이곳에서 찾으려 했던 건 누군가의 날개지만요.”

“…!”

어떤 단어 때문이지는 알 수 없었으나, 순간 미네의 눈이 커졌다.

“날개… 그 누군가의 이름은요?”

살짝 머리를 긁적였다.

신화 속에서나 등장했던 인물이었다.

실제로 존재했을지 안 했을지 알 수 없는 인물.

이곳이 바다 깊은 곳에 위치한 동굴이 아니었다면 다른 이름을 둘러댔겠지만, 지금은 어째선지 그대로 말해도 될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이카로스입니다.”

“….”

이번엔 확실히 보였다.

미네의 눈동자는 대충 봐도 보일 정도로 확실히 흔들리고 있었다.

꿀꺽.

잠시 미네의 반응을 살핀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제대로 찾아왔나요?”

대산이 발표했던 날개가 아니었기에 희망이 점점 사라지고 있던 찰나였다.

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미네의 반응이 사라져 가던 내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고 있었다.

“빛에 손을 대면 고유 공간으로 들어간다고 하셨었죠.”

조금 전에 했던 내 설명이 떠오른 건지 미네가 공명에 대해 물어왔다.

“네.”

미네를 향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공간에는 누가 있나요?”

“보통 제가 공명한 것과 가장 연관이 깊은 사람, 즉 무기의 주인이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예외가 있을 수도 있지만요.”

수리검의 경우엔 도윤의 영혼이 이미 사라져 만나지 못했었다.

이 밖에도 내가 무기고에 담은 무기는 극히 소수였기에 또 다른 케이스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싱긋.

내 대답을 들은 미네의 얼굴로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스륵.

…!

미네가 손을 뻗었다.

차렷 자세로 마지막 허락을 기다리던 내 손에 포개어진 미네의 손.

미네가 천천히 내 손을 이끌기 시작했다.

“혹시 그곳에서 그를 만나거든.”

속삭이는 듯한 미네의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미안하다고 전해 주세요.”

마지막 미네의 목소리를 끝으로.

내 손이 빛에 도달했다.

* * *

찰나지만 사라졌던 오감이 천천히 되돌아왔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보통 공간엔 무기의 주인 한 명만이 있었는데.

어째서 이런 웅성거림이 들려오는 걸까.

화악.

빛이 번지며 흐릿했던 시야가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날 둘러싸고 말을 주고받고 있는 사람들.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 같이 굳어 있거나 찡그려져 있었다.

내가 그렇게 못생기진 않았는데.

길 가다 번호가 따이거나 한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혐오 어린 시선을 받은 적도 없었다.

눈 뜨자마자 저런 한결같은 얼굴들로 날 내려다보고 있는 건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저주받은 아이에요.”

“어떻게 하죠?”

“당장 죽여야 합니다. 분명 재앙을 몰고 올 거예요.”

뭐…뭐요?

이 양반들이 미쳤나.

혐오스럽게 내려다보고 있는 것까지는 오케이였다.

사람마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기준이 있으니 욕을 갈기는 것까지도 인정.

하지만 죽인다니?

이건 아무리 그래도 선을 넘는 언행이었다.

일단 일어나자.

일어나서 저 사람들을 두들길 생각은 없었지만.

계속 이 상태로 누워있을 순 없었다.

….

웅…?

분명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뭐 때문인지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머리로만 지시를 내릴 뿐 명령을 이행해야 하는 몸이 굳어버린 느낌이었다.

슥.

!?

왜 안 움직이지 궁금하던 찰나.

몸이 저절로 일으켜지며 시야가 함께 이동하기 시작했다.

호… 홀리.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내 지시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은 이유.

여… 여기가 어데고!!

내 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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