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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05화 (105/473)

105화. 저주받은 아이

이제 조금 적응이 되네.

새로운 형태의 공명이었다.

단순히 다른 이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 그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 버리는 방식.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야.

지금은 처음에 눈을 떴을 때보다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시점이었다.

설마 바둥거리는 아이 시절부터 이 상태로 있어야 하는 건가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어느 시점이 되면 눈을 깜빡이는 순간마다 시간이 후루룩 점프를 뛰었다.

저벅.

그 덕에 내가 들어와 있는 몸의 주인은 길쭉길쭉한 팔다리를 가진 청소년이 되어있었다.

물론… 여전하지만.

초반에 봤던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매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것들은 여전했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해지지는 않았다.

옛날이라고 더 정겹고 그렇진 않았네.

- 차라카! 저기로 돌아가거라!

- 어딜 저주받은 게 길을 활보해!

내가 들어와 있는 몸은 차라카라 불리는 소년의 몸이었다.

모두가 저주받았다며 태어나자마자 죽이냐 살리냐 했던 차라카.

차라카는 어딜 가든 환영받지 못했다.

그저 근근하게 마을에서 건네는 식량을 받아먹으며 목숨을 보존할 뿐이었다.

내가 듣는 것도 아닌데 참… 기분 더럽다.

몸에서 공명 중이어서일까.

차라카의 감정이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처음 사람들의 반응을 봤을 때 차라카는 의아했었다.

어째서 나한테?

라는 듯한 감정이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차라카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태어나 눈을 떴을 뿐인데 그 순간부터 사람들의 비난과 혐오가 시작됐다.

지금이었으면 그냥 문신이 화려하네 했을 텐데.

이 시대에는 아니었구만.

차라카가 저주받았다는 소리를 듣는 건 몸에 새겨진 문양들 때문이었다.

배꼽을 중심으로 몸 전체로 뻗어 나가 있는 검은색 줄기들.

마치 칠흑의 나무가 몸을 중심으로 가지를 뻗은 느낌이었다.

그나저나 이번엔 감도 안 잡히네.

차라카가 이카로슨가?

몸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지금의 공명이 납득 되지 않았다.

공명을 시작하기 전 미네의 반응을 보며 유골이 이카로스와 연관되었을 거란 희망을 불태웠었다.

하지만 정작 들어온 건 차라카라는 소년의 몸.

대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걸까.

생각해보자.

만약 차라카가 이카로스라면.

대산이 가져와 발표했던 날개는 이카로스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무기인 날개 본체가 존재했다면 유골에선 황금빛이 아니라 보랏빛이 뿜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이카로스의 날개는 그 꼭대기보단 바다 아래에 있는 게 말이 돼.

대산에서 줬던 보고서의 정보 때문에 당연히 하늘탑의 꼭대기에 날개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카로스가 태양 가까이 날다 바다로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봤을 땐 하늘탑보단 바다 아래에 날개가 있는 게 더 자연스러웠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사실인지, 구전되며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결국 조금 더 지켜봐야 하나.

아직 확실한 건 없었다.

차라카가 이카로스인지, 이카로스이더라도 내가 얻을 수 있는 무기가 정말 날개인지, 아직까지는 모든 것들이 오리무중이었다.

저벅.

응?

한창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차라카가 지내는 장소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 정확히는 아크로폴리스 양식의 도시에서는 조금 떨어진 절벽이었다.

지금까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던 장소였다.

“…?”

발소리에 놀란 건 차라카도 마찬가지였다.

천천히 커져 가는 발소리에 차라카는 긴장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모든 이들이 욕을 하거나 차라카를 해치려 했었기에.

누군가의 침투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슥.

!!!

가까워진 발소리와 함께 등장한 사람에 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까보단 짧았지만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갈색빛을 뿜어내고 있는 머리.

“안녕?”

바다 밑 동굴에서 만났던 미네가 갈색 눈동자를 빛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 * *

이게 머선 일이고.

차라카가 사는 곳으로 찾아온 미네.

미네는 그 날 이후로 하루가 멀다하고 절벽으로 찾아와 차라카를 만났다.

“나 왔어.”

오늘도 어김없이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잔뜩 들고 미네가 찾아왔다.

“이카로스, 잘 잤어?”

그동안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내가 들어와 있는 몸이 차라카이자 이카로스라는 것.

- 차라카라는 이름은 버려. 네 이름은 지금부터 이카로스야.

미네는 다짜고짜 찾아와 차라카에게 이름을 지어줬다.

물론, 뜬금없는 작명에 나와 마찬가지로 차라카 역시 고개를 갸웃거렸었다.

그런 차라카를 바라보며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던 미네.

- 차라카라는 이름은 저주를 받아들이는 자, 역병을 받아내는 자라는 의미야. 이름으로 할만한 게 아니거든.

미네가 새로운 이름을 지어 준 이유였다.

이 쌍놈의 새끼들이 애 이름을 그딴 식으로 지어?

그동안 이유를 몰랐었는데 미네의 설명을 듣고 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혐오하고 매도하는 것만 해도 뺨따귀를 한 대씩 올려 쳐버리고 싶었는데, 이름까지 그딴 의미가 담긴 걸로 부르다니.

몹시 괘씸했다.

“응, 잘 잤어. 아테네는?”

그리고 또 다른 사실 하나.

이카로스를 찾아왔던 미네는 자신을 아테네라고 소개했다.

개놀랐지.

날아갈 몸이 없어서 망정이지.

소개를 듣는 순간 뒤로 튕겨나갈 뻔했다.

왜 몰랐지.

미네르바.

아테네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미네는 미네르바의 미네가 아닐까 추측만 해볼 뿐이었다.

아니지, 모르는 게 당연한 거지.

누가 미네라는 이름에서 아테네를 추측할 수 있겠어.

더군다나… 신화로만 듣던 아테네가 바다 밑 동굴에 있을 거라고 어떻게 생각했겠어!!

“당연히 잘 잤지.”

아테네가 웃으며 이카로스의 앞에 자리를 잡았다.

약간의 햇빛도 들지 않는 절벽 안 공간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아테네의 갈색 눈동자만큼은 또렷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사실 이름을 듣기 전부터도 놀랐지.

아테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이미 내 안의 놀람 지수는 꼭대기에 도달해버렸다.

유골 옆에 앉아 있던 미네와 완벽히 똑같은 모습.

쌍둥이를 넘어 분위기까지 완벽한 동일인이었다.

몇백 년 전일 텐데.

아니지, 몇천 년 전인가?

정확한 시기를 가늠할 순 없었지만.

어찌 됐든 엄청난 시간이 흘렀다는 건 분명했다.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아테네는 내가 공명을 시작하기 전인 2021년까지도 유골과 함께 있었던 걸까.

“아테네, 오늘 의식은 끝났어?”

“응, 지금 막 끝내고 오는 길이야.”

어느 정도 이카로스와 대화를 나눈 아테네는 스스로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줬었다.

- 난 이곳의 신으로 만들어지기 위해 왔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테네의 이야기를 경청했었다.

당연히 그리스 로마 신들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아테네는 신이 아니라 평범한… 아니지, 능력을 가진 여자아이였다.

일반 아이와 다를 것 없었지만 신으로 만들어지기 위해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는 아이.

“힘들지? 하루도 쉬지 않고 의식을 하잖아.”

아테네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사실 잘 모르겠어. 처음엔 대체 왜 나인지, 어째서 매일 같이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헷갈렸는데… 또 막상 의식을 하며 나에게 진심을 다해 기도하고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이게 내 운명인가 싶기도 하거든.”

“….”

이카로스가 옅게 웃고 있는 아테네를 응시했다.

막상 아테네가 마주 보고 있을 땐 눈을 돌렸지만.

다른 곳을 보고 있을라치면 이카로스는 아테네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좋아하는구만.

이카로스의 안에 있기에 알 수 있었다.

눈을 뜬 순간부터 아테네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이카로스.

매일 지루해 죽을 정도로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아테네는 이카로스를 살게 하는 빛이었다.

어떻게 빛을 안 좋아할 수 있겠어.

킹정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아! 해 진 거 같은데? 나갈까?”

이카로스와 함께 아테네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드디어 나가겠구만.

이카로스의 몸은 특이한 체질을 가지고 있었다.

태양 아래에 서면 타는 듯한 고통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던 것.

그렇기에 이카로스가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건 해가 진 밤뿐이었다.

아테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카로스가 몸을 일으켜 절벽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

그렇게 걸어 절벽의 공간에서 빠져나온 이카로스와 아테네.

선선한 밖의 밤공기가 두 사람을 반겼다.

상쾌하구만.

실제로 내가 갇혀 있는 건 아니었지만, 하루종일 절벽에 처박혀 있다 나오는 지금은 나조차도 항상 기다려지는 순간이었다.

“오늘은 조금 더 멀리 가볼까?”

“그러자, 오늘은 더 멀리, 더 높이 부탁합니다.”

아테네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카로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더 멀리, 더 높이.

아테네의 요청을 접수한 이카로스가 등 쪽으로 힘을 흘려보냈다.

스륵.

이카로스의 몸에 새겨져 있던 문양들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파악!!

등 뒤로 검은 연기로 된 날개가 펼쳐졌다.

이카로스의 날개.

처음 이카로스가 날개를 펼친 순간 확신이 들었었다.

이것이 내가 찾고 있던 이카로스의 날개라는 확신이.

꼬옥.

날개를 펼친 이카로스가 아테네를 들어 올렸다.

정확히는 안아 올렸다.

무슨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아주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말이다.

심쿵.

달달하네.

내 심장만 쿵쿵거리는 게 아니었다.

아테네를 안아 올린 이카로스의 심장 역시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안겨 있는 아테네에게 들리는 게 아닌지 걱정될 정도로 말이다.

화아악!

잠시 후, 두 사람의 밤 비행이 시작됐다.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걸 시작으로 달이 떠 있는 하늘까지 높게 날아오르는 이카로스와 아테네.

그런 둘을 반기려는 건지 눈부신 달빛이 두 사람을 비추었다.

시원하다.

얼굴로 밤하늘의 상쾌한 공기가 느껴졌다.

두 사람을 제외하곤 모든 게 멈춰버린 듯한 고요함.

지금 이 순간 하늘에 존재하는 건 두 사람뿐이었다.

행복함.

하늘을 날고 있을 때 이카로스가 느끼는 감정이었다.

아테네와 함께 하는 모든 순간들에서 행복을 느끼는 이카로스.

그래서일까.

이카로스는 그 어느 순간보다도 아테네와 함께 하는 지금을 가장 소중히 여겼다.

그래서 기도하는 거겠지.

행복함을 느끼면서도, 이카로스는 쉼 없이 기도하고 있었다.

이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아테네와 함께 고요한 하늘을 나는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 * *

“여기다! 차라카 놈이 지내는 곳이다!”

이른 대낮.

밖이 소란스러웠다.

뭐야?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이었기에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

그저 소란과 함께 밀려오고 있는 불안감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저주받은 괴물을 끌어내라!”

뭐야, 이 병신들은.

마을 사람들이 우루루 절벽 내부 동굴로 쏟아져 들어왔다.

저마다 하나씩 무기를 든 상태였다.

“네놈이 감히 신이 되어야 할 분과 만나!?”

“저주받은 존재 따위가 함께 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잔뜩 상기되어 있는 마을 사람들.

“어젯밤 아테네 님과 하늘을 난 게 차라카, 네놈이 맞으렷다!”

누군가 어젯밤의 비행을 본 모양이었다.

“당장 이 자식을 끌어내!!”

그렇게 분노한 사람들이 이카로스에게 달려들었다.

퍽!

아니 이 새끼들이.

그냥 달려드는 게 아니었다.

들고 있는 몽둥이를 사정없이 휘두르는 사람들.

이카로스가 느끼고 있는 고통들이 간접적으로 느껴졌다.

동시에,

이카로스의 안에서 무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 악마 새끼! 죽어!”

“처음부터 죽였어야 하는데!”

두근.

…!

이카로스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몸으로 고통이 번질 때마다 빨라지고 있는 심장 박동.

잠시 후.

뚝.

참아 오던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이카로스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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