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아테네를 위하여
절벽에서의 소란이 있은 지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밝아오는 날을 보며 아테네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끝이구나.’
이카로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 이후부터 아테네는 모든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체념하고 말았다.
‘이제는… 혼자구나.’
슥.
고개를 돌려 함께 걷고 있는 이들을 바라봤다.
아테네의 바로 옆에 달라붙어 있는 테샤와 사람들.
모든 이들이 저 높은 지형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신의 땅.
도시의 사람들은 높게 솟구친 암벽 지형을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그곳에 자신들의 신이 위치하면 수호신이 되어 마을을 지켜줄 거란 믿음과 함께 말이다.
저벅.
벌써 몇 시간이나 걸은 걸까.
해가 떠오르기 전부터 도시를 출발한 아테네와 사람들은 3번 째 기둥 지형에 발을 딛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한 개의 기둥이었다.
가장 높은 지형을 중심으로 그곳을 지키기라도 하듯 둘러싸고 있는 나머지 네 개의 기둥 지형들.
도시 사람들은 이곳에 오랜 시간을 들여 서로를 잇는 길을 만들었다.
가장 높은 곳엔 아테네를, 그 주변 기둥엔 각각의 지킴이들이 머무를 생각이었기에 거주에 필요한 것들도 갖춰놓았다.
‘….’
아테네가 고개를 들어 가장 하늘 가까이 뻗어 있는 지형을 바라봤다.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발을 디디면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까지 아테네는 혼자 저곳에서 살아야 했다.
‘아마 죽을 때도 혼자겠지.’
뒤늦게나마 사람들이 와 죽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테고.
아테네의 뒤를 이을 새로운 신 후보자를 들여놓을 것이다.
‘이카로스는 잘 떠났겠지.’
그나마 아테네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사실이었다.
며칠 전에 떠났을 이카로스.
이카로스라도 이곳을 떠나 자유롭게 살 수 있다면, 그걸로 위안이 될 것 같았다.
‘잘 지내야 돼, 이카로스.’
아테네가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내디뎠다.
* * *
어느새 도착한 가장 높은 지형의 꼭대기.
테샤와 사람들이 아테네를 신으로 모시는 의식을 시작했다.
우우웅.
사람들의 손을 시작으로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노란색 빛.
빛들은 꼭대기의 주변으로 다양한 문자를 새겨 넣고 있었다.
‘이게 날 가둘 결계구나.’
아테네가 새겨지는 문자를 보며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신으로 모신다곤 하지만 혹여나 이곳에서 도망칠까 결계로 꽁꽁 싸매는 꼴이라니.
“하아…!”
거치적거리는 옷을 입은 아테네가 하늘로 고개를 들었다.
지금은 해가 뜨겁게 내리쬐고 있는 하늘이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카로스와 함께 자유롭게 날았던 곳이었다.
“딱 한 번만 더.”
가늘게 떠진 아테네의 눈으로 묘한 그리움이 어렸다.
“날아봤으면.”
그렇게 작은 소망을 읊조리고 있을 때.
“저… 저 밑을 봐!!”
정숙하기만 했던 의식에 소란이 찾아왔다.
“저… 저주받은 놈이다!!”
마을 사람의 외침에 아테네가 몸을 일으켜 절벽으로 달려갔다.
“…!!”
높은 지형의 저 아래.
꼭대기로 올라오고 있는 검은색의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너무도 낯익어 못 알아볼 수가 없는 존재.
“이… 이카로스!”
이카로스가 지형을 따라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 * *
바보네.
온몸으로 타들어 가는 고통이 느껴졌다.
나야 그런 고통이 느껴진다를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을 뿐이지, 정작 이 모든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건 이카로스였다.
그러든 말든 이카로스는 해가 중천에 떠 있음에도 날개를 꺼내 날아오르고 있었다.
내가 오르려고 했던 하늘탑.
이카로스가 날아오르기 시작하며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테네가 갇혀야 하는 장소가 세만트라의 방해로 오르지 못했던 하늘탑이란 사실을 말이다.
- 네가 너의 운명을 이겨낸다면, 아테네 님 역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마.
이카로스가 아테네와 헤어진 날.
테샤라는 도시의 책임자가 찾아와 이카로스에게 한 제안이었다.
딱 봐도 능구렁이 같은 새낀데.
제안은 간단했다.
태양 아래서 날지 못하는 운명을 가진 이카로스가 한낮에 바닥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운명을 이겨내고 날아오른다면.
평생 갇혀서 자신들의 신으로 살게 될 아테네를 풀어주겠다는 것이었다.
알면서도 가는 거겠지.
처음엔 이카로스에게 말을 건넬 수 있다면 함정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잠시 후에 이카로스의 감정을 느끼며 알게 되었다.
운명을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을 제거하기 위한 함정이란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이카로스는 가려는 중이란 걸 말이다.
드드득.
으…!
불에 타는 고통만 느껴지는 게 아니었다.
태양이 닿는 어깨를 시작으로 이카로스의 몸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검은 연기로 이루어졌던 날개 역시 희미하게 옅어진 상태.
태양 아래서 억지로 날개를 펼친 것에 대한 리바운드 같았다.
옆에 있었어도 못 말렸겠네.
실시간으로 이카로스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든 생각이었다.
아테네.
이카로스의 머릿속에 떠올라 있는 유일한 단어였다.
햇빛에 의해 몸이 타 갈라지고 있었지만.
이카로스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아테네라는 존재를 향해 최선을 다해 날아갈 뿐이었다.
그 테샤라는 능구렁이 새끼.
분명 아테네한테도 제안을 했겠지.
사람에게 상처를 입혔음에도.
이카로스에게는 어떠한 제재도 가해지지 않았었다.
아테네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카로스를 떠났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이카로스는 아테네를 위해, 아테네는 이카로스를 위해.
테샤와 사람들은 이런 둘을 이용한 것이었다.
쐐에에에엑!
올라가는 속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카로스의 몸은 억지로 햇빛을 버티며 날개를 꺼낸 탓에 엉망진창이었다.
조금이라도 무리를 하면 바스라져 흩날려질 것 같았다.
…!!
정상이다.
얼마나 날아온 걸까.
눈앞으로 꼭대기가 보였다.
화악!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이카로스가 꼭대기로 몸을 날렸다.
쿠당탕!
도착했다는 사실 때문인지 힘겹게 버텨주던 날개가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다.
사락.
이미 한계에 다다른 몸은 계속해서 무너지고 있는 상태.
이제부턴 굳이 날개를 꺼내거나 하지 않더라도 이카로스가 소멸하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숨이… 희미해지고 있다.
이카로스 생명이 꺼져 가는 게 느껴졌다.
저벅.
죽어가고 있는 이카로스 앞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햇빛을 등져 최대한 가려주면서 몸을 기울이는 누군가.
시력은 그 기능을 다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앞에 있는 게 누군지는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아테… 네.”
“….”
얼굴로 따스한 손길이 느껴졌다.
“이카로스, 안녕.”
귓가로 아테네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다시… 안녕.”
아테네 역시 이카로스의 죽음을 직감해서일까.
만남과 동시에 아테네의 작별 인사가 건네졌다.
가슴이 미어지는 순간이었다.
정말… 짧네.
짧은 만남이었다.
꼭대기까지 오르는데 든 노력에 비한다면 정말 찰나의 만남.
그런 만남이었지만,
이카로스는 진심으로 만족해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테네를 볼 수 있어 정말 다행이라는 감정.
행복을 가져다주는 이 감정이 퍼지며.
“안녕… 아테네.”
이카로스도 아테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이 대답을 마지막으로,
이카로스는 숨을 멈췄다.
* * *
죽어버린 이카로스의 모습에 테샤가 스스로의 입을 틀어막았다.
잘못했다간 웃음이 터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됐다.’
아테네는 테샤가 이카로스에게 그런 제안을 했다는 걸 모르는 상황.
유일한 증인이었던 이카로스 본인이 타 죽어버렸으니 완벽했다.
저벅.
이카로스를 안고 있는 아테네에게 테샤가 걸어갔다.
“결국… 이런 무모한 짓을 벌였군요.”
테샤가 안타깝다는 듯 아테네에게 말을 건넸다.
“….”
그러든 말든 아무 대답 없이 죽은 이카로스를 내려다보고 있는 아테네.
“욕망을 위해선 높이 날아야 한다.”
“예…?”
아테네의 읊조림에 테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높이 오른 만큼 추락의 피해는 치명적이다.”
“아테네 님, 지금 무슨…?”
“욕망을 실현하려는 자여.”
아테네가 고개를 들어 차가운 눈으로 테샤를 노려봤다.
이미 듣지 않아도 어떻게 된 건지 아테네는 알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의 뒤에 테샤가 있다는 사실까지도 말이다.
“그럼에도 그대는 하늘 높이 오를 생각인가?”
“…!”
순간이지만 아테네로부터 알 수 없는 소름을 느낀 테샤.
자기도 모르는 사이 테샤가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테샤, 한때는 당신의 그 욕망을 이해해보려 했습니다. 겉으론 도시 사람들을 위해서인 척하지만, 결국엔 당신의 개인적인 욕망을 위해서란 걸 알면서도요.”
테샤는 항상 모두를 위해서라고 울부짖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아테네를 신으로 만드는 순간 주변 일대에서 도시의 위상은 드높아질 터였다.
그 위상을 이용해 도시의 책임자인 테샤는 지금까지 없었던 권력을 손에 쥘 생각이었다.
“하지만… 당신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멀리, 너무 높이 올라와 버렸네요.”
우우우웅.
아테네의 몸에서 푸른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잠시 후엔 주변에 만들어지고 있던 결계로 뻗어 나가기 시작한 아테네의 빛.
“당신은… 그러지 말았어야 해요. 마지막 한 계단을 오르지 말았어야 합니다.”
콰드득!
주변으로 퍼져나간 아테네의 빛이 하늘탑으로 이르는 모든 길을 비틀어 끊어버렸다.
“기… 길이!!”
“아… 안돼!!”
“아테네 님! 무슨 짓을!”
테샤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꼭대기에 와 있는 상태.
길이 끊어지며 고립된 이들을 도와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테네야 어차피 평생을 이곳에 살아야 할 처지였지만, 자신들은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좌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또한… 이카로스와 하늘을 날며 가져선 안 되는 욕망을 가져버렸네요.”
포기했던 자유에 대한 욕망.
그 욕망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이카로스를 찾아갔고, 그 결과로 죄 없는 이카로스가 죽게 되었다.
“당신이나 저나, 저 사람들이나. 모두 마찬가지군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 아테네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정신을 차리고 나니 이 지경이었다.
“아… 아테네시여! 우리의 신이시여! 저희를 구해주세요!”
“다시 길을 만들어주세요!”
다급해진 사람들이 테샤 곁으로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눈물을 쏟으며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사람들.
“….”
그 사람들을 조용히 지켜보던 아테네가 이카로스를 끌어안았다.
“높이 오른 만큼 추락의 피해는 치명적이다.”
“…!?”
이카로스를 안아 든 아테네가 절벽 끝에 섰다.
“아… 아테네 님…?”
“이만… 추락할 때네요.”
후웅.
“아!!!”
추락할 때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이카로스를 안아 든 아테네가 꼭대기에서 몸을 던졌다.
* * *
아테네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을 마지막으로 의식이 사라졌었다.
그리고,
“안녕.”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몸 안에서 울렸던 목소리.
“난 태양을 향해 날다 추락한 자, 이카로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