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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08화 (108/473)

108화. 날개는 불길함과 함께

이카로스의 공간이라서 그런지 주변은 캄캄했다.

서 있는 곳도 익숙한 장소였는데.

내가 세만트라에 의해 올라가는 걸 방해받았던, 이카로스가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던 하늘탑이었다.

“안녕하세요, 백운이라고 합니다.”

이카로스는 마지막 모습 그대로였다.

정확히는 죽기 직전의 모습 그대로.

태양에 의해 여기저기 갈라진 몸과 흐릿한 연기로 이루어진 날개가 눈에 들어왔다.

“재미없는 과거지?”

“아뇨, 절대 아닙니다.”

진심이었다.

아테네와 이카로스에 대한 진실.

신화 속에서 듣던 존재들에 대해 두 눈으로 직접 본 것인데 어찌 재미없을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재미로 봤다기보단.”

작은 한숨을 내쉬며 이카로스의 몸을 응시했다.

마지막에 아테네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카로스의 결말은 굳이 따지자면 새드엔딩이었다.

스스로가 선택한 엔딩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재미가 있다 없다로 대답하기가 몹시 곤란했다.

“동정할 필요 없어. 내가 원해서 뛰어든 죽음이니까.”

내 생각을 읽은 건지 이카로스가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하나.

조금 전까지 이카로스의 안에서 모든 감정과 생각을 공유했었기에.

내가 함부로 그것들을 판단하고 공감하며 말하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잡하면서도 심플했지.

그래서 더 어려워.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자 이카로스가 앉아 있던 절벽에서 몸을 일으켰다.

“혹시 아테네가 어떻게 됐는지 알고 있어?”

이카로스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제 의식도 이카로스 님이랑 공유되고 있었으니까요. 이카로스 님의 마지막 기억이 제가 마지막으로 본 장면이에요.”

“그렇군.”

이카로스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카로스는 여전히 아테네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했다.

“아테네라도 행복하게 살길 바랐는데… 그러지 않았겠지. 그런데 넌 여기에 어떻게 들어온 거지?”

궁금해하는 이카로스에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하늘탑에서 떨어져 바다로 추락했으며 그 안에서 특수한 공간을 만났다는 설명.

“특수한 공간…?”

“그 공간에 이카로스 님의 유골이 있었어요. 전 그 유골을 통해 이 공간으로 들어온 거고요.”

이카로스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화 속 인물인 이카로스도 바다 속에 그런 공간이 있다는 이야기는 낯선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카로스 님은 혼자가 아니었어요.”

“…?”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카로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뜻밖의 이야기에 무언가를 짐작한 건지 이카로스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테네 님이 이카로스 님의 유골과 함께 있었습니다.”

“…!!”

가장 원하지 않았던 이야기여서일까.

이카로스의 미간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아테네 님께 어떤 힘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바닷속의 공간도 아테네 님에 의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고요.”

눈을 감은 이카로스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는 몰라도 아테네에겐 힘이 있었어…. 그래서 신 후보자로 지목된 거였고.”

털썩.

자리에 주저앉은 이카로스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어째서…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날…!”

아테네가 그 오랜 시간을 홀로 보냈다는 사실이 이카로스를 괴롭히는 것 같았다.

“아테네는… 어땠어?”

여러 의미가 담겨있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했던 사람이 힘들어하는 건 아니었는지, 억지로 그곳에 갇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니었는지.

“아테네 님이 원했다면 떠날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드나드는 게 강제되거나 하진 않았거든요. 표정도 제가 봤을 땐 힘들어 보인다거나 그러진 않았고요.”

이랬는데 못 나가는 거 아니겠지.

아직 나가보진 않았으니 불명확했지만.

들어갔을 때의 감각을 떠올리면 나오는 것 역시 별 무리는 없을 것 같았다.

“이카로스 님을 만나면 미안하다고 전해달라고 했어요.”

“…!”

“저도 아테네 님과 많은 대화를 나눈 건 아니지만. 제가 이카로스 님의 공간으로 들어오기 전에 확실히,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잠시 놀랐던 이카로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무언가 잊고 있었던 그리움을 떠올린 얼굴이었다.

“아테네는 여전하구나.”

혼잣말을 하는 이카로스가 생각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아테네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과 조금 전 내게 전해 들은 말까지.

머리가 복잡할 것이었다.

슥.

조금 진정이 된 건지 고개를 돌린 이카로스가 입을 열었다.

“… 원하는 게 있어서 온 거겠지?”

“예.”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벅.

몸을 일으킨 이카로스가 내게 걸어왔다.

“날개가 어떤 힘을 낼 수 있는지는 나조차 잘 알지 못해. 내가 날개의 힘을 사용한 순간은 몇 번 되지 않거든. 너도 봐서 알겠지만.”

“알고 있습니다.”

기억에서 봤었다.

쳐들어 왔던 도시 인간들을 순식간에 제압했던 검은 연기의 힘.

“….”

내 바로 앞까지 걸어와 멈춘 이카로스가 날 조용히 응시했다.

“내 날개지만, 왠지 네가 더 잘 사용할 거라는 확신이 드네.”

이카로스의 말에 대답을 하진 않았다.

대신 조용히 웃어 보였다.

무조건 잘 사용할 겁니다.

슥.

그런 나를 향해 이카로스가 손을 뻗었다.

조용히 내 이마에 닿는 이카로스의 손끝.

“밤에만 사용할 수 있는 날개야. 알지?”

스으으…!

이마와 닿아 있는 이카로스의 손끝으로 검은 연기가 흘러들어왔다.

무언가를 넘겨받는 듯한 묘한 감각이었다.

“이제부터는 너의 날개야.”

흘러들어오던 연기의 흐름이 끊기나 싶더니 이카로스가 이마에서 손을 뗐다.

“고맙습니다.”

몸에서 느껴지는 검은 연기의 힘.

흔쾌히 날개를 건네준 이카로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거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무언가 말을 하려다 머뭇거리는 이카로스.

“말씀하세요, 이제 파트너잖아요.”

“….”

기… 기분 나쁘셨나.

파트너란 말에 이카로스의 눈이 커졌다.

다짜고짜 뱉은 뜻밖의 말에 좀 놀란 듯했다.

내 무기고로 들어오는 순간 영혼도 함께니까.

항상 말을 걸거나 부를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소멸해버린 도윤을 제외하고 모든 무기에 깃든 영혼들은 나와 함께였다.

지금까지도 그랬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을 알기에 나도 모르게 파트너란 단어를 사용한 것.

“파트너라… 낯설지만 듣기 좋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라서 말이야. 그럼….”

이카로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머뭇거리던 말을 건네왔다.

….

“알겠습니다, 걱정마세요.”

고개를 끄덕이는 이카로스와 함께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제 떠날 시간이었다.

“부탁할게, 파트너.”

* * *

번쩍.

이카로스의 공간에서 빠져나와 눈을 떴다.

공명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아테네가 앞에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끝났나 보군요.”

“예…. 헉.”

아테네는 미소를 지었지만 난 해맑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빛만 사라질 거란 예상과 달리 이카로스의 유골이 황금빛 입자로 흩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호로 새끼야!

무기를 얻기 위해 아테네가 오랜 시간을 지켜온 유골을 홀라당 가져가 버리다니.

“죄…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왠지 모르게 시원섭섭한 표정을 짓는 아테네.

고개를 저은 아테네가 작은 한숨을 쉬었다.

“이제 저도 떠날 시간이 되었으니까요.”

“떠날 시간…?”

묘한 말을 한 아테네가 고개를 들어 날 바라봤다.

“이카로스는 당신과 함께인 거죠?”

고개를 끄덕였다.

이카로스의 영혼을 불러내 대화를 시켜준다거나 할 순 없지만.

분명 이카로스는 나의 무기고에 존재했다.

“다행이에요.”

…!

아테네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그려졌다.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한 번도 안 웃은 건 아니었지만, 아테네의 미소는 어딘지 모르게 서글퍼 보이거나 씁쓸해 보였었다.

하지만 지금 보여 준 웃음은 아니었다.

아무런 걱정도, 아무런 미련도 없이 다행이라는 안도감 하나만이 가득 느껴지는 밝은 미소였다.

슥.

자리에서 일어나 아테네에게 손을 뻗었다.

“여기서 나가요.”

날 묘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테네.

“이카로스의 부탁인가요?”

“그중 하나죠.”

아테네가 웃으며 내밀어진 내 손을 붙잡았다.

* * *

어둠이 짙게 깔린 하늘.

달빛만이 유일한 빛인 밤하늘로 구름을 넘어선 지형, 하늘탑이 솟아있다.

하늘탑의 꼭대기에서 몸을 앉힌 채 유유히 여유를 즐기고 있는 거대한 독수리 데몬, 세만트라.

“끼루우우!!”

달을 바라보던 세만트라가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자아냈다.

온전히 자신만의 공간이었다.

지금까지 가졌던 둥지들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장소.

꾸욱.

세만트라가 하늘탑을 거닐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낡고 허물어졌지만 누군가 지어 놓은 듯한 건축물들.

발에 차이며 거슬리긴 했지만 이 건축물들 덕에 자신의 둥지가 더 멋있어진 것 같아 굳이 없애버리진 않았다.

“끼루!”

무언가의 유산이 가득한 하늘에서 홀로 보내는 이 시간.

자신과 함께 하는 건 오로지 하늘을 비추고 있는 달 뿐이었다.

뽕이 안 차오를 래야 안 차오를 수 없는 환경.

“끼루우우…!?”

차오르는 뽕에 다시 한번 소리를 지르기 위해 입을 벌렸지만.

세만트라의 울음은 무언가에 저지당해 내질러 질 수 없었다.

“….”

물리적인 힘에 의한 저지는 아니었다.

단지.

사아아아…!

말도 안 되는 기운이 등 뒤에서 밀려들고 있었다.

이곳은 높은 하늘에 위치한 장소.

분명 자신의 영역이었음에도 세만트라는 뒤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모든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끼… 끼루…?”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자신만이 존재해야 하는 장소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

당장 누군지 확인해 쫓아내야 했다.

다시는 이곳에 오르지 못하도록, 자신의 땅을 넘보는 모든 이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날카로운 발톱으로 잔인하게 짓이겨 저 깊은 바닷속으로 추락시켜야 했다.

그래야 하는데.

고개를 돌려야 하는데.

세만트라는 쉽사리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어째선지 모르겠지만, 고개를 돌리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마주해야 할 존재.

그 존재의 크기가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크기일 것 같아 망설여졌다.

도망쳐.

세만트라의 본능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둥지든 뭐든 일단 도망쳐야 한다고.

도망치지 않으면.

사아아…!

밤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저 기운이 널 죽일 거라고 말이다.

“끼… 끼루… 끼.”

세만트라가 애매한 신음을 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기에 몹시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 그 순간.

“내가 말했지.”

“!!”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잊기에는 너무 최근에 들었었기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목소리였다.

“금방 돌아온다고.”

공포에 질려 떨려오는 몸을 이겨내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죽을 거란 공포를 이겨내며 세만트라가 간신히 고개를 돌렸다.

“!!”

자신보다 더 높은 위치.

달빛을 등진 채 검은 날개가 펄럭이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 돋게 만드는 검은 연기로 이루어진 날개.

너무나 불길해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꺼려지는 그런 날개였다.

“….”

날개를 단 남자, 말도 안 되는 기운으로 이 하늘을 지배하고 있는 존재는 차가운 눈으로 세만트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낮에 세만트라가 남자를 바라봤던,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밟아 죽일 수 있는 하찮은 존재를 바라보는 그런 눈이었다.

“이번엔 네가.”

남자의 날개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떨어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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