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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12화 (112/473)

112화. 하늘에 열린 문

음.

커튼 사이로 따듯한 햇빛이 스며들어왔다.

짹짹짹---!!

짹짹이쉨.

시끄럽게 울어대는 참새 소리까지.

환경만 갖추어진다면 앞으로 몇 시간은 더 오지게 잘 수 있을 거 같은데.

햇빛은 이불을 뒤덮고 자더라도 저 짹짹거리는 소리 때문에 있던 잠도 달아나버렸다.

조패고 싶네.

알브론부터 세만트라에 이제는 참새까지.

그리스에서 조류는 내게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밖으로 나가 죄다 잡아버리고 싶었지만.

짹쨱이에 대한 분노보다도 몸을 일으키는 게 더 귀찮았기에 인내하기로 한다.

“하아… 아침은 참새구이로 해야 하나.”

실행에 옮기지도 않을 말을 하며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김대혁의 배려로 머무르게 된 대사관의 숙소.

밖에서 들려오는 분주한 소리를 보니 출근 시간인 듯했다.

빙글.

몸을 뒤집어 머리맡에 있는 핸드폰을 집었다.

잠드는 데는 핸드폰이 쥐약이라고 했는데 사실이었다.

그렇게 나른하고 노곤노곤 했음에도 핸드폰을 켜자 잠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던 오늘 새벽.

달아나 버린 잠을 그리워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핸드폰을 두들겼었다.

이왕 멀리 온 거 좀 더 뽕을 뽑아야지.

이대로 한국에 돌아가기엔 아쉬웠다.

열 몇 시간의 비행을 하고 왔는데 가능하다면 가까운 곳으로 가 무기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었다.

한국으로 돌아가 찾을 건 척준경의 악귀참도니까.

대산조차 찾는 걸 포기해버렸던 악귀참도.

무척이나 손에 넣고 싶지만 찾을 수 있는지 여부는 미지수였기에.

가까운 곳에 다른 무기가 있다면 먼저 찾아 무기고의 다음 능력을 개방하고 싶었다.

땅덩어리가 이렇게 넓은데 무기 하나 없을까.

막연한 듯하지만 희망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대산의 정보를 통해 찾은 무기도 있지만, 반대로 그저 무언가에 이끌리듯 가다가 찾아낸 무기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우연에 일치인 듯하지만 어쨌든 손에 들어온 면도칼과 리볼버, 비늘이 그 반증이었다.

운명… 이랄까.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침대를 굴러다녔다.

난 카이안의 뒤를 이은 무기왕이었다.

애초에 무기들의 왕인 만큼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운명으로 무기들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허나… 운명도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법!

운명을 믿는다고 그것에 기대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저 운명이 알아서 해주겠거니 하며 기다리고 있다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이던가.

띠링.

비행기 티켓 예매를 완료하며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착지에 선명하게 적혀 있는 세 글자.

이집트.

최대한 빠른 비행기가 5일 뒤라니.

빨리 가고 싶은데 한참 기다려야겠구먼.

보다 빠른 시일 내에 운명을 끌어당기기 위해, 이집트에 가기로 했다.

그리스 아테네 공항에서 약 두 시간의 비행만으로 도착할 수 있는 나라.

그리스만큼이나 많은 신화를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그리스에도 수많은 신화가 남아 있지만.

핸드폰으로 이곳저곳을 훑던 중 회귀 전 유물관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신화를 떠올렸다.

태양의 신, 라.

태양의 권능을 이용해 악한 이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는 신이다.

불꽃을 사용할 수 있다라.

씰룩.

생각만 해도 입꼬리가 올라갔다.

물론 라에 관련된 무기가 있을지 없을지 역시 미지수였지만.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가 존재가 미지수인 악귀참도를 찾는 것과 별다를 것 없었기에.

재밌게 읽었던 신화의 도시도 구경할 겸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무기를 찾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라와 관련된 무기가 있으면 초대박이고.

없더라도 다른 무기가 있다면 대박.

없으면… 우울하겠지.

급시무룩해지려는 생각을 떨쳐내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둘 다 미지수라면 가까운 곳부터 탐색하는 게 효율적이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운명에 이끌리듯 찾아낸 무기들 덕분에 자신감도 넘치는 상태.

라의 무기든 다른 이의 무기든 무기고에 넣을 수 있는 걸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가기 전에 연화 만나고 가야 하는데.

슥.

주머니에 들어 있는 신용카드를 꺼내 들었다.

어젯밤 헤어지기 전에 그리스에서 급할 때 쓰라며 이연화가 건네준 카드였다.

내가 아무리 날강도여도 카드를 먹고 쨀 순 없지.

다른 이의 카드였다면 신나게 한 번 긁을까 했겠지만.

아무리 굶주렸어도 친구의 카드를 시원하게 터뜨려버릴 정도로 바닥은 아니었다.

주섬주섬.

방에 흩어놨던 짐을 챙긴 후.

빼놨던 액션 캠을 다시 장착했다.

안 보일 정도는 아니지만 마이크로 렌즈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작디작은 액션 캠.

나중에 조회수 확인해야지.

흐뭇.

잠도 안 오는 김에 헌터청으로 영상을 보냈었다.

포상금 지급 후 한튜브에 올라갈 게 분명한 그리스 아테네에서의 영상.

반응이 어떤지는 좀 쌓인 다음에 한 번에 몰아 볼 생각이었다.

대박 터져라!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푹 잠들진 못했지만 편하게 묵었던 숙소의 문을 나섰다.

* * *

“연화 님은 오늘 외근이네요.”

“외근요?”

방에서 호다닥 달려 내려온 대사관의 카운터 데스크.

카드를 주며 점심 먹으러 가자고 하려 했는데 이연화는 대사관에 없는 모양이었다.

“어제 기둥 무너져서 난리 났었잖아요. 헌터 몇 분이랑 해서 무너진 곳으로 조사 가셨어요.”

“조사… 요?”

뜨끔한 표정을 숨기며 되묻자 데스크의 요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김대혁 팀장님이 그리스 기자단에 발표하셨거든요. 한국에서 온 정체불명의 헌터가 기둥에 사는 데몬 토벌 중에 무너뜨린 거라고요.”

김대혁에게 부탁을 해보겠다고 말했던 이연화.

아마도 김대혁이 이연화를 통해 들은 내 부탁을 들어준 모양이었다.

“그걸 들은 기자단이 우려를 표했어요. 이제 기둥이 무너졌으니 사람들이 그곳을 항로로 이용할 텐데, 혹시 무너진 곳에 위험한 데몬들이 더 있는 거 아니냐고요. 그래서 연화 님이 헌터들이랑 함께 탐색을 간 거예요.”

미안하구나, 연화야.

괜히 내가 기둥을 무너뜨려 버린 탓에 이연화에게 생각지 못한 업무가 주어져 버렸다.

밖으로 나가 환전을 한 다음 이연화한테 맛있는 거라도 대접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런데 주변 지형 탐색까지 대사관에서 가는 건가요?”

질문을 들은 요원이 고개를 저으며 어깨를 으쓱 올려 보였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아테네 소속 군이나 국가직 헌터들도 있거든요. 그런데 항상 전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저희한테 떠밀더라고요. 김대혁 팀장님이나 연화 님이나 일반적으로 배치되어있는 헌터들에 비해 우수한 전력인 건 사실이긴 하지만요.”

우수해서 짬 맞았구만.

역시 눈에 띄면 힘들다니까.

저절로 고개가 흔들어졌다.

군대에 가서 배운 게 있다면 중간만 가는 게 가장 좋다는 것이었다.

잘나지도, 그렇다고 욕먹을 정도로 못 나지도 않는 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해야 하는 것.

이것이 달달한 군생활을 위해 가장 필요시 되는 능력이었다.

“어?”

이제 고맙다고 인사를 한 후 돌아 나가려는 순간.

카운터 요원이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봤다.

“한국에서 온 헌터… 설마…?”

무심코 이야기를 하다가 이틀 전 한국에서 도착한 내가 눈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저 10급이에요.”

“아… 맞다. 안녕히 가세요.”

카운터 요원이 괜한 걸 물었다는 듯 머쓱해하며 고개를 숙였다.

같은 헌터라면 10급이 그 높이에서 데몬을 잡거나 기둥을 무너뜨리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 터였다.

좋은 가불기야.

항상 잘 먹히는 가불기에 만족하며 몸을 돌렸다.

이연화가 돌아오기 전까지 주변을 둘러봐야겠다.

* * *

전 날밤 백운과 세만트라의 전투가 있었던 지역.

무너진 잔해만 가득한 곳으로 두 척의 보트가 들어왔다.

열댓 명의 헌터들이 나누어 타고 있는 보트.

“조금 더 붙여주세요.”

타고 있는 이들 중 가장 높은 급수를 가진 이연화가 볼록 튀어 나와 있는 기둥의 잔해로 보트를 이끌었다.

투투퉁.

잔해로 다가가자 엔진이 꺼지는 보트.

보트에서 내린 헌터들이 잔해로 조심스럽게 건너갔다.

“안정적인 곳이 없긴 한데 최대한 버텨줄 만한 곳에 설치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헌터들이 가방에서 원형의 통을 꺼냈다.

통 안에 든 건 일정 범위의 생명체를 감지할 수 있는 탐지기였다.

기자들과 도시의 주민들을 위해 근처 지역이 안전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데몬이 나올 수도 있으니 긴장 풀진 마세요.”

“예!”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이 근방은 데몬이 많이 출몰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평소엔 주민들 모두가 높이 솟은 기둥들 때문에 지나갈 생각을 안 했기에 굳이 대사관에서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어제 백운이 기둥을 박살 내준 덕에 신경 쓰자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해야겠어.’

어제 그런 일이 있었으니 아직까지 자고 있을 백운을 떠올리며.

이연화가 재밌다는 듯 미소를 머금었다.

백운은 같이 있으면 참 재밌는 사람이었다.

꽈악.

순간 딴생각을 해버린 이연화가 팔뚝을 꼬집었다.

다른 헌터들한테 긴장 풀지 말라 하고선 딴생각을 하다니.

‘정신 차리자.’

별일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어쨌든 임무 수행 중이었다.

위이잉!

그렇게 자신을 혼낸 이연화가 설치되는 탐지기를 바라봤다.

탐지기가 조용한 걸 봐선 주변엔 별다른 생명체가 없는 것 같았다.

“연화 님, 다 설치했습니다.”

가져왔던 탐지기가 모두 설치되고.

이연화가 주변을 둘러보며 탐지기가 정상 작동하는 걸 확인했다.

“5분만 더 지켜보다가 철수하죠.”

이곳에 설치된 탐지기는 반영구적으로 대사관과 연결되어 탐지 기록을 보내올 것이다.

사람이 상주하고 있지 않더라도 언제나 대사관에서 주변에 있을 생명체를 탐지할 수 있게 된 것.

‘별일 없이 끝났네.’

팔짱을 낀 이연화가 동작 중인 탐지기들을 바라봤다.

그래도 나름 데몬이 자주 출몰하던 곳이라 해서 긴장하고 있었는데.

꽤 넓은 반경을 감지하는 탐지기들이 전부 조용한 걸 보니 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

“문제없는 거 같네요. 돌아가요.”

“알겠습니다.”

탐지기를 지켜보던 이연화가 몸을 돌려 보트로 향했다.

삑.

“…?”

편한 마음으로 보트로 향하던 이들이 모두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잠잠했던 탐지기.

삑…! 삑…! 삑!

“뭐… 뭐야, 왜 이래.”

무언가를 탐지한 기계가 알림 소리를 키워갔다.

삐빅! 삐비빅! 삐빅! 삑!!

“모두 전투준비 해요!”

“예!”

이연화가 미간을 찌푸린 채 울려대는 탐지기를 바라봤다.

‘뭔가 이상해.’

탐지기가 저렇게 급작스럽게 울리는 건 불가능했다.

멀리서부터 무언가 다가오는 거라면 서서히 커졌어야 할 소리가 너무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었다.

투둑.

‘…?’

이연화의 앞으로 떨어지는 돌 부스러기와 함께.

삐이이이이이익!!

설치되어있는 모든 탐지기가 가장 강한 신호음을 뱉어냈다.

근처를 넘어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코앞까지 도달했단 신호였다.

“여… 연화 님, 위… 위에.”

“…?!”

다른 헌터의 말을 따라 이연화가 고개를 들었다.

“!!”

커지기 시작한 이연화의 눈.

“저… 저게 대체…?”

화창하기만 했던 이른 낮의 맑은 하늘.

그 하늘에 작은 균열이 생겨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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