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꽃
콰앙!
하늘에서 문이 열리기 무섭게 나타난 몇 마리의 데몬.
자리에 있던 헌터들이 각자의 무기와 능력을 사용해 하늘을 조준했다.
‘마도공학 3절.’
이연화의 손으로 연분홍의 빛이 뿜어지는가 싶더니 네 개의 총구를 가진 미니건이 만들어졌다.
현대에 존재하는 부품이나 데몬에게 얻은 재료를 이용해 무기 혹은 기타 기계로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이연화의 마도공학이었다.
우우우⋯ 콰앙!
이연화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쿵!
곁에 있는 원거리 헌터들의 화력까지 더해져 순식간에 정리되기 시작한 데몬들.
화려한 등장에 비해선 상대하는 게 딱히 어렵지 않은 데몬들이었지만, 그럼에도 이연화와 헌터들은 조금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삐이이이이익----!!
탐지기가 여전히 미친 듯이 울려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내려오던 데몬들을 몇 마리 없앴음에도 조금도 작아지지 않은 알림음.
눈에는 안 보이지만 탐지기가 감지 하고 있는 무언가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뭐가 있는 거지.’
“연화 님⋯?”
얼마나 공격을 쏘아댔을까.
하늘의 균열에선 더 이상 데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음에도 탐지기는 여전히 미친 듯이 울려대고 있었다.
다른 헌터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이연화의 명령을 기다렸다.
“잠시 대기해요.”
이연화는 능력을 풀지 않았다.
하늘에 열린 저 균열이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직 닫히지 않았기에 언제든 데몬이 나올 수 있었다.
“지원 요청은 해뒀습⋯!?”
말을 건네던 헌터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어갔다.
주변에 있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데몬이 잦아들어 약간이지만 마음을 놓으려던 중이었다.
드드드.
균열 속에서 무언가 나오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나오던 데몬들을, 아래에 서 있는 사람들을 다 합친 것만한 거대한 손이었다.
길다란 검은색 손톱을 가지고 뼈만 앙상히 남은 소름 끼치는 손.
‘⋯ 저거야.’
나오고 있는 손을 보며 이연화가 마른 침을 삼켰다.
탐지기가 감지해 미친 듯이 경고음을 내뱉고 있던 존재.
지금 문에서 나타나고 있는 게 그 존재의 일부라는 확신이 들었다.
“공격!”
잠시 찾아왔던 정적을 깨며 이연화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다시 한 번 헌터들의 포격이 이어졌다.
두두두두두두!!
‘마도공학 4절.’
다른 헌터들의 공격이 손을 둘러싸고 있는 동안.
이연화가 손에 있던 미니건을 거대한 활로 변형시켰다.
단 한 발밖에 사용하지 못하지만 도달하는 곳에 큰 폭발을 일으키는 화살.
퉁!!
이연화의 손에서 쏘아진 화살이 문으로 나오던 거대한 손으로 날아갔다.
콰가아아아아---!
엄청난 굉음을 내며 폭발하는 화살.
지금까지 쏟아졌던 헌터들의 화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다.
‘⋯.’
공격을 멈춘 이연화와 헌터들이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조금 전 공격의 여파로 하늘 가득히 퍼진 화약 안개.
모두가 긴장한 순간이었다.
이연화의 화력에도 끄떡하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 있는 헌터들로는 상대할 수 없는 데몬이었다.
“!!”
잠시 후 안개가 걷히며 균열에서 나오던 손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다섯 개의 손가락 중 약지와 중지가 사라져 있었다.
조금 전 이연화의 화살이 유효한 데미지를 입힌 것.
드드드⋯!
예상 밖의 데미지를 입어서일까.
잠시 멈춰 있던 손이 균열 안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삐⋯삐⋯삐⋯
동시에 서서히 약해져 가는 탐지기의 알림음.
“후!”
“대체 뭐였죠!”
그제야 손의 등장에 긴장하고 있던 헌터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다들 괜찮아요?”
“예! 괜찮습니다.”
“부상자 없습니다!”
부상자가 없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연화.
‘⋯.’
동료들이 무사해서 다행이라는 표정과 함께.
이연화의 얼굴로 불안한 빛이 드리워져 갔다.
* * *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다 다시 대사관으로 돌아왔다.
일이 많나 보네.
이연화는 아직 대사관으로 복귀하지 않은 상태.
또 나가기가 애매해서 대사관 1층 여기저기를 거닐었다.
아.
뭘 하며 시간을 보낼까 하다가 생각난 한튜브.
새벽에 동영상을 보냈으니 지금쯤이면 올라왔을 것 같았다.
모아서 보려고 했는데 안되겠구만.
호다닥 달려 1층 쇼파에 자리를 잡았다.
머리를 휙휙 돌려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후.
한튜브로 들어가 검색 창에 무기왕이란 단어를 완성 시켰지만.
홀리 민.
검색 버튼을 누를 필요는 없었다.
글자를 치는 와중에 눈에 들어온 핫 동영상 탭.
탭의 가장 위에 새벽에 보냈던 동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 그리스 뉴스에 등장했던 한국 헌터가 무기왕!?
제목 어그로 끄는 데 재능이 있는 친구들이야.
쏟아지는 동영상의 홍수 속에서도 살아남는 법을 확실히 알고 있는 한튜브 친구들이었다.
나중에 만나면 감사의 표시로 밥이라도 한사바리 사줄 계획이었다.
보자보자.
댓글을 보자.
동영상 안으로 들어갔다.
올라온 지 몇 시간 안 됐음에도 쌓여 있는 몇천 개의 댓글.
굳이 쌓았다가 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개수였다.
두근대네.
내 동영상의 댓글을 본 게 처음은 아니었다.
휴대폰을 산 이후엔 심심할 때마다 이전에 올렸던 동영상에 들어가 댓글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근거렸다.
사람들은 과연 내가 겪은 일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는지가 몹시 궁금했다.
@ 그리스 진출이라니⋯. 가슴이 웅장해지네요.
@ 국뽕에 취하는 거 같습니다.
@ 주모를 안 찾을 수가 없네요.
좀 볼 줄 아는 친구들이구먼.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 주작 아닌가요? 무슨 바다 밑에 저런 공간이 있지.
@ 잡으라는 데몬은 안 잡고 편집 기술만 배워온 듯.
어느 동영상에나 있는 주작무새도 존재했다.
동굴 들어가기 전에 데몬 잡았잖아, 새기들아.
앞에 있으면 당수를 한 대씩 갈겨주고 싶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댓글의 대부분이 동영상에 열광하고 있다는 것.
처음 바다에 들어갈 때는 저 미친놈이? 란 댓글이.
샤킨의 등장 때는 해저 공포증 때문에 숨을 참았다는 댓글이.
바다 동굴로 들어갔을 땐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라는 댓글이 가득 달려 있었다.
그리고.
@ 이제 하늘도 날아⋯?
칼데아를 꺼내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에선 혀를 내두르는 댓글이 많았다.
# 떨어질 시간이다.
무엇보다 가장 많은 댓글이 달려 있는 부분은 세만트라의 머리채를 잡고 기둥으로 처박아버리는 곳이었다.
@ 어디까지 멋있어지려는 거냐.
@ 완전 어나더 레벨이네요.
@ 기둥 박살 난 거 실환가요⋯?
소설로 치면 날 괴롭히던 조류를 시원하게 아작내는 사이다 부분이니 댓글이 폭발적으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 완전 멋있다구우우우웅!!
또 이 친구네.
송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구독자.
내가 올린 영상마다 엄청난 반응의 댓글을 달고 있는 사람이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부담스러울 정도의 반응.
날 욕하는 댓글이 있을라치면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상대를 무릎 꿇리는 투사 스타일의 구독자였다.
송이 무기왕의 부계정이란 주장에 더 무게가 실리겠구만.
하도 욕하는 댓글마다 등장해 죽일 듯이 싸우다 보니 사람들은 내 부캐가 아니냐며 의심하고 있었다.
잘하고 있어.
더 싸워!
물론 그런 의심을 하든 말든 아무 상관도 없었다.
오히려 날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는 게 고마울 따름.
앞으로도 지금처럼 열심히 싸워주길 바랄 뿐이었다.
끼익.
음?
정문이 열리더니 한 무리의 헌터가 우루루 대사관으로 들어왔다.
무리에 섞여 걸어오고 있는 이연화.
왠지 모르게 피곤한 얼굴이라 쉽사리 아는 척하기가 힘들었다.
괜히 피곤한데 부담 주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잠시 아는 척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날 발견한 이연화가 먼저 손을 흔들었다.
“백운 님!”
* * *
“데몬이 나왔다고요!?”
1층에서 만난 이연화와 나온 도심지의 식당.
하마터면 먹고 있던 국수가 코로 튀어나올 뻔했다.
예상보다 내가 화들짝 놀라서인지 괜찮다며 손을 내젓는 이연화.
“뭘 그렇게 놀라요, 데몬 나온 거 가지고. 전 완전 멀쩡해요. 다친 헌터들도 없고요.”
데몬이 나왔다는 것 자체는 놀랄 일이 아니었다.
단지 나로 인해 가게 된 곳에서 정체불명의 데몬을 만났다는 게 날 놀라게 만들었다.
생각을 못 한 건 아니지만.
회귀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나란 존재가 개입했다는 것.
이로 인해 회귀 전엔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 생길 수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만나지 않았을 데몬 때문에 이연화에게 변수가 생겼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런 손은 처음 봤어요. 탐지기가 그렇게 미친 듯이 울리던 것도 처음이고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는 이연화를 보면서도 마음에선 불편함이 가시질 않았다.
이미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회귀 전엔 없었던 것들이었다.
이로 인해 미래가 바뀌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
당장 지금만 봐도 쿄스케의 얼굴에 생겼어야 할 흉터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신은 아니니까.
지금까진 해피였지만 그 일로 인해 더 끔찍한 미래가 닥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 미래를 내가 어쩔 수 없다는 것 역시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회귀 전에 겪어 이미 알고 있는 일이라면 바꾸지만 그 외의,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것까지 바꾼다는 건 불가능한 일.
불가능한 것들까지 모두 내 탓과 책임으로 돌리려는 건 아니었기에 이연화가 데몬을 만난 것도 그렇게 치부하면 될 일이었다.
“백운 님? 듣고 있어요?”
“그럼요, 그럼요. 귀 쫑긋 세우고 듣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안 만나도 될 걸 만났다는 게 미안하고 마음이 불편할 따름이었다.
무기를 찾느라 어쩔 수 없이 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슥.
애써 미소를 지으며 이연화를 바라봤다.
“연화 님, 정말 다친 데는 없는 거죠?”
“아휴.”
걱정 좀 그만하라는 얼굴로 이연화가 팔 한쪽을 들어 올려 보였다.
“완전 괜찮다고요!”
* * *
그날 밤.
끼익.
집 화장실로 들어온 이연화가 샤워를 위해 옷가지를 벗었다.
스윽.
“⋯.”
윗옷을 벗으며 이연화가 화장실 거울로 어깨를 비춰봤다.
작지만 선명하게 그려져 있는 정체불명의 검보라색 꽃문양.
- 드드드.
별일 아닐 거라 생각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하늘에서 나온 거대한 손은 사라지기 직전 검지로 이연화를 가리켰었다.
가리켜짐과 동시에 찌릿하는 느낌이 어깨와 목 사이의 부위에서 느껴졌던 것.
“흐음.”
작은 한숨을 내쉰 이연화가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