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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14화 (114/473)

114화. 아테네의 사신

잉여하다.

잉여란 단어는 아마 지금의 날 위해 생겨난 말이 아닐까.

이집트 카이로로 떠나는 비행기는 3일 뒤.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이니 금방 갈 거라 생각했는데.

더럽게 안 가네.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다.

3일 동안 다른 곳 좀 돌아다닐까 했는데 하나같이 거리가 멀어 애매한 위치뿐이었다.

결국엔 아테네에서 3일을 보내야 한다는 말인데 왜 이렇게 할 일이 없는 걸까.

- 제가 놀아 줄게요!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세요.

어젯밤 헤어지기 전에 이연화가 한 말이었다.

이집트로 떠나면 이제 또 언제 볼지 모르니 밥 친구가 되어주겠다는 것.

문제는 이연화가 퇴근할 때까지 할 게 없었다.

이거라도 알아봐야지.

그나마 할 일이라곤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의 용도를 알아내기 정도였다.

그래서였다.

대사관에서 잠깐 마주쳤던 김대혁에게 질문을 했던 것은.

- 목걸이의 용도를 알고 싶은데요, 혹시 아시는 능력자 있을까요?

김대혁에게 물건의 용도를 알아봐 줄 만한 사람이 있는지 물어봤었다.

아쉽게도 대사관엔 그런 능력자가 없다고 대답한 김대혁.

그랬던 김대혁이 오늘 아침 문자를 한 통 보내왔다.

# 도심지 중앙 시장 골목에 물건을 봐주는 사람이 있음.

자신도 실제로 본 적은 없어 정확하지 않지만, 들리는 소문으론 어떤 물건이든 척척 용도를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무엇이든 알려주는 척척박사라니.

얘기만 들었을 땐 사짜 냄새가 물씬 풍기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기에 찾아가는 길이었다.

“으아아! 죽고 싶지 않아! 살려줘!! 제발! 아무나 좀!”

오 씨, 깜짝이야.

갑자기 들려오는 비명에 고개를 돌렸다.

사람이 많은 시가지 한복판에서 주저앉아 있는 아저씨 한 분.

왜 저러지.

딱히 누가 위협을 하고 있다거나 어디가 다친 것 같지도 않은데 아저씨는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주변 사람들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아저씨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마치 무슨 일인지 알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반응들.

“아이고, 저 아저씨도야?”

“말도 마세요. 3일째 저렇게 울고 있다니까요.”

사사삭.

“무슨 일이에요?”

“아이고 깜짝이야!”

바퀴벌레 같은 은밀한 움직임으로 다가가서일까.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화들짝 놀라며 날 돌아봤다.

“왜 저러는지 아시는 거예요?”

“여기 사람이 아니구만?”

“정확히 보셨습니다. 여기 온 지 일주일도 안 됐어요.”

그럼 모를 수 있다는 얼굴로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신이여 사신.”

“사신요?”

뜻밖의 대답에 눈을 크게 뜨자 아주머니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1년 전인가부터 그랬을 거여. 사신이 나타나기 시작한 게.”

아주머니가 혀를 차며 말을 이어갔다.

“다들 개방하면 사고가 나거나 병에 걸리지 않는 이상 평생 살 거라고 생각하잖여. 그 생각이 극에 달했을 때 처음으로 사신이 나타났어.”

사람들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영생을 얻었다는 기쁨에 취해있었다고 한다.

그런 아테네의 사람들 앞으로 사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아주머니의 설명.

“사신의 존재가 퍼지기 시작한 건 인터넷이었어. 자기가 사신을 봤는데 3일 뒤에 죽을 거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고 하더라고.”

안 믿었겠는데.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괴담 수준이었다.

밤에 칼을 물고 화장실 거울을 보면 안 된다던지.

분신사바를 할 때 들려오는 목소리에 대답하면 귀신에 씌인다던지 하는 그런 괴담.

“처음엔 그냥 심심한가 보다 했었지, 요즘 세상에 사신이라니 말이여.”

“나도 다 읽어보지도 않았다니까? 무슨 사신이야 21세기에, 안 그려?”

옆에서 동의를 구해오는 아주머니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신이란 존재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존재였다.

소설이나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등장하는 존재지만 과학적으로는 한 번도 입증되지 않아 가상의 존재라고만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똑같은 글이 엄청 올라오더라고.”

“글뿐만이 아니었지, 유명 인사 중에도 사신을 만났다는 사람이 나왔고 실제로 방송국과 인터뷰를 한 사람도 많았어.”

유명 인사까지 그랬으면 뭐가 있긴 있나 본데.

공인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었다.

어그로 좀 끌어보자고 그런 예민한 걸로 허위 주장을 하진 않았을 터.

“그 사람들 어떻게 됐는데요? 거짓말로 밝혀졌나요?”

거짓말이었냐는 내 물음에 아주머니 두 분이 목소리를 낮추며 바짝 다가왔다.

“다 죽었어.”

“!?”

조금 전까지만 해도 루머나 주작 엔딩일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 밖의 정직한 결말이었다.

“방송에 나왔던 유명 인사도 예외는 아니었어. 사신을 만났다는 사람들은 정확히 3일 뒤에 전부 죽었거든.”

“그래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지. 군, 경찰, 대사관에서 전부 투입됐을 정도로.”

난리가 안 나는 게 이상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예고하고 실제로 그 사람에게 죽음이 찾아온다면.

예고 살인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됐나요? 범인은 잡았나요?”

“잡았으면 아저씨가 저러고 있겄어? 한동안 잡는다 어쩐다 떠들썩하더니 다 포기해버렸지 뭐.”

“포기요⋯?”

이해되지 않는 결론이었다.

계속해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포기라니.

“아무리 노력해도 막을 수가 없다고 하던디. 심지어 죽는 시간에 그 옆을 지키고 있었는데도 말이여. 그냥 시간이 되면 슥삭 하고 죽어버리더래.”

“그래서 처음엔 사람이나 데몬에 의한 살인이라 생각했던 사람들도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지. 우리가 도달하지 못하는 신적 존재의 행동이라고 말이야.”

톡톡.

내 어깨를 두드린 아주머니가 휴대폰 화면을 보여줬다.

# 사신을 만난 분들은 신고 부탁드립니다.

“오죽하면 이런 제도도 생겼겠는가. 죽을 날이 정해진 사람들을 위해 나라가 복지를 만든 거여.”

화면 아래로는 여러 가지 혜택이 적혀 있었다.

사는 동안 딱 한 번만 누릴 수 있는 혜택엔 그리스 전체의 호텔 및 식당, 각종 부대시설을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것 등 여러 가지가 적혀 있었다.

최후의 만찬 같은 건가.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어쩔 수 없는 죽음으로 인정해버리다니.

예상하지 못한 해결 방법이었다.

“저 아저씨도 어쩔 수 없는 건 알지만⋯. 무서우니까 저러는 거여.”

아주머니 두 분이 딱한 듯 혀를 찼다.

“나 좀 살려달라고!!”

아무리 절규해도 도와주는 이는 없었다.

그저 가까이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네는 사람이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다.

막을 수 없는 죽음이라.

절규하는 아저씨를 보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섭구먼.

* * *

김대혁이 알려줬던 시장으로 들어왔다.

데몬이 나타난 후 줄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관광객과 현지인이 섞여 있는 시장이었다.

어디 보자.

뒷골목이라.

어째서 찐 능력자들은 항상 뒷골목에 있는 걸까.

대기업마냥 큰 간판을 걸어 놓고 장사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저벅.

어둑어둑해 보이는 골목길로 걸음을 옮겼다.

뒷골목의 시작부터 어둑어둑한 안쪽까지 늘어서 있는 정체불명의 상인들.

다들 좌판을 깐 채 무언가를 팔고 있었지만, 상품에 명확한 주제가 있다기보단 이것저것 파는 느낌이라 도통 그 상인의 주체를 알기가 힘들었다.

초큼 막막하네.

김대혁이 대략적인 위치를 알려주긴 했지만.

내가 찾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히 어디에 앉아 있는지는 모르는 상황이었다.

정확히 뭐가 주력인지 모르는 뒷골목 상인들을 상대로 한 명씩 물어보는 것 외에는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저기.”

“안 살 거면 꺼져.”

“넵.”

왠지 이 할아버지는 아닐 것 같다는 판단에 바로 다음으로 넘어갔다.

어째서 저렇게 날이 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몹시 무서웠다.

그렇게 슬쩍슬쩍 눈치를 살피고 있을 때.

“애야, 이쪽으로 좀 와볼래.”

내가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의 여자가 날 불러 세웠다.

애야 라고 부를 만큼 나이 차이가 커 보이진 않지만, 어쨌든.

부르는 여자에게 다가가 몸을 숙였다.

“왔습니다.”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는 여자가 고개를 들며 싱긋 웃었다.

⋯!

여자의 눈엔 초점이 없었다.

그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들었을 뿐이었다.

“그 목걸이 어디서 났니?”

“뒷골목에 물건을 보면 용도를 알려 주는 척척박사가 있다고 했는데 혹시⋯?”

“척척박사인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물건을 잘 보긴 하지.”

스윽.

“에밀리야.”

이름을 밝힌 에밀리가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백운입니다.”

내민 손을 맞잡으며 힘차게 자기소개를 했다.

“목걸이 달라고. 손은 잡지 말고.”

“앗 네.”

호다닥 손을 놓으며 에밀리에게 목걸이를 건넸다.

“그래서 목걸이 어디서 났다고?”

“친구가 주고 갔어요.”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도 설명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뒷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이카로스와 아테네의 신화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순 없지 않은가.

“능력 좋은 친구를 뒀구나.”

목걸이를 다시 건넨 에밀리가 입을 열었다.

“이건 어떤 좌표든 새길 수 있는 바인딩 석이다.”

“⋯! 뒷골목을 새겨 놓으면 다른 곳에서도 바로 날아올 수 있는 건가요?”

“그런 미친 짓은 하지 마. 딱 한 번 밖에 못 새기고, 딱 한 번밖에 못 사용하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에밀리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어느 곳이든 새길 수 있어. 현재에 존재하는 곳이든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곳이든. 그러니 신중하게 사용해. 나중에 가야 하는데 지금밖에 갈 수 없는 장소⋯. 그런 곳을 새겨 넣어라.”

“어⋯ 음⋯ 네.”

설명을 들으면서도 딱히 와닿지는 않았다.

좌표를 새긴다니.

살면서 내가 쓸 일이 있을까 싶은 기능이었다.

“지금은 필요 없더라도 목걸이를 소중히 여겨라. 이런 목걸이는 보통 다른 차원의 존재와 소통할 자격과 힘이 있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었으니까 말이야.”

고개를 끄덕이며 아테네를 떠올렸다.

사람들에 의해 억지로 신격화될 뻔했던 아테네였지만, 분명 남들에겐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띠링.

아테네의 특수한 힘을 생각하고 있을 때 휴대폰으로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 퇴근 완료.

이연화의 메시지였다.

“고맙습니다, 혹시 사례는 얼마나 드리면 될까요?”

“필요 없어.”

“⋯!?”

비싸게 부르면 어쩌지란 찰나였는데 뜻밖의 대답을 하는 에밀리.

“왕에게 반말을 해본 것으로 충분하니까.”

에밀리의 입가로 의미심장한 미소가 그려졌다.

* * *

백운에게 문자를 보낸 후 화장실에 들른 이연화.

이연화가 거울 앞에서 입고 있는 셔츠를 내려 목덜미를 살폈다.

어제보다 확실히 커진 검보라색의 문양.

문양은 마치 꽃이 개화되는 것처럼 서서히 커지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

스으으으⋯!

갑자기 이연화의 등 뒤로 거대한 낫을 든 남자가 나타났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공허한 눈과 창백한 피부를 가진, 칠흑같이 어두운 흑발을 가진 남자였다.

입고 있는 검은 망토를 약간 펄럭이며 나타난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3일 뒤.”

고개를 든 남자가 이연화의 눈을 응시했다.

“당신은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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