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날라차기
어찌저찌 시간은 흐르는구먼.
벌써 비행기 타는 날이 오다니.
공항 쪽으로 걸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카로스의 날개를 찾아 날아온 그리스 아테네.
대략 일주일 정도를 머물렀을 뿐인데 왠지 모르게 벌써 정이 든 것 같았다.
무슨 일 있나.
옆에 있는 이연화를 바라봤다.
언젠가부터 이연화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 무슨 일 있어요?
그때부터 몇 번이나 물었지만 아무 일 없다며 이연화는 손을 내저을 뿐이었다.
“연화 님,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같은데.”
“네⋯. 네? 에이 없다니까요, 자꾸 그러시네.”
그제야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연화가 미소를 지었다.
분명 뭔가 있다.
겨우 3일이었다.
3일 동안 사람이 하루가 가기 무섭게 이렇게 어두워지다니.
회귀 전에도 전혀 본 적 없었던 모습이었다.
“비행기 탑승 번호나 잘 확인해요. 놓치지 말고.”
“사람을 뭘로 보시고.”
자연스럽게 대답하면서도 머릿속엔 온통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이렇게까지 물어보는데도 대답을 안 하는데 더 물어본다고 말해줄 것 같진 않았다.
더 물어보는 것도 이상하고.
이 정도로 극구 아니라 하는데도 더 물어보는 건 실례일 것 같았다.
연화도 연화만의 사정이 있을 테니까.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예상도 해봤지만.
이연화는 어렸을 때 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었던 걸 떠올렸다.
- 저도 외톨이에요.
한국에서 만났을 때 이연화가 웃으며 건넨 말이었다.
같은 외톨이끼리 친구 하자며 먼저 다가와 줬던 이연화.
지금도 웃으며 말을 걸어주던 이연화의 얼굴이 바로 어제 일인 것처럼 선명했다.
아마 연화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를 일이었다.
당시엔 쿄스케의 죽음 이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무력감에 스스로를 좀 먹고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백운 님.”
“네?”
나란히 걷던 이연화가 말을 걸어왔다.
오늘 만난 이후로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계속 침묵하고 있었던 이연화.
“영화에 보면 가끔 나오잖아요. 시한부 삶을 가지고 하루나 이틀 정도의 삶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요.”
“그렇죠, 마지막에 눈물 안 쏟아내기가 힘든 장르죠.”
“백운 님은 그런 상황이 오면 뭘 할 거 같아요?”
“!?”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서일까.
이연화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뭘 그렇게 놀라요? 설마 제가 뭐 죽기라도 할까 봐요?”
“하하⋯. 그쵸, 그냥 한 번 놀란 척 해봤어요.”
찐으로 놀랐지만.
너무 오바했다는 생각에 급히 정정 멘트를 날렸다.
아무리 사람이 3일 동안 어두웠기로서니 이연화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 살아봐요.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거예요.
살아야 하는 의미를 못 찾고 있던 내게 이연화가 건넨 말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든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든.
이연화는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고 그런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이 내게 무척이나 힘이 됐었다.
“그래서! 뭐 하실 거예요? 백운 님은.”
“글쎄요.”
어려운 질문이었다.
회귀 전에는 그저 희망 없이 하루하루 살아나가기 바빴고.
회귀를 한 지금은 신이 와서 날 죽이려고 해도 어떻게든 뿌리치고 나아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애초에 죽을 거란 생각조차 안 하고 살았던 요즘이었다.
“엄청 맛있는 걸 먹지 않을까요? 그리고 재밌는 친구를 만나거나 영화를 볼 거 같아요. 아니면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풍경이라던가.”
“왜요?”
“뭐랄까 이미 죽을 걸 안다는 건 무척이나 슬프고 절망적인 일이지만.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받아들일 거 같거든요. 그리고 하루 밖에 안 남은 시간을 울면서 보내고 싶지도 않고요. 최소한 마지막엔 웃으면서 행복하게 죽고 싶다⋯. 요런 느낌?”
이연화가 오호⋯.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떠오르는 대로 막 뱉은 말인데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말을 한 듯했다.
그런 이연화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연화 님은 뭐할 건데요?”
내 질문에 이연화가 손을 들어 턱을 만지작거렸다.
바로 떠올려 말한 나와는 달리 무언가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다 활짝 웃으며 날 바라보는 이연화.
“저도 백운 님이랑 똑같아요! 마지막 남은 시간을 어두운 방에 박혀서 질질 짜며 보내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크게 심호흡을 한 이연화가 고개를 들어 날 바라봤다.
“저도 밖에 나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최대한 웃으면서 보낼 거 같아요.”
슥.
말을 마친 이연화가 주먹을 쥔 채 내게 내밀었다.
“동지네요, 동지. 마지막 날에 똑같은 일을 할 동지.”
“뭐에요 그게.”
뭐냐고 물으면서도 주먹을 들어 이연화의 제스쳐에 화답을 해줬다.
# 이집트 카이로행 F-384, 2시간 뒤 출발 예정입니다.
귓가로 내가 타야 하는 비행기의 방송이 들려왔다.
덥석.
!?
내 팔뚝을 잡은 이연화가 빠르게 날 끌어당겼다.
“얼른 와요, 맛있는 거 한 번 더 먹게.”
이연화가 공항 안에 있는 가게를 가리켰다.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미소를 되찾은 이연화.
“하하⋯. 네, 천천히 가요 넘어지겠네.”
“안돼요, 빨리 와요!”
이연화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내 눈을 바라봤다.
“시간이 별로 안 남았으니까요.”
* * *
빠르게 맛집을 탐색해 한 끼 식사를 마쳤다.
그 날따라 얼마나 많이 시켰는지 값비싼 음식을 몽땅 주문해버린 이연화.
마지막으로 많이 먹고 가라며 이연화는 시원하게 카드를 긁었다.
“배 터질 거 같아요.”
“그걸 다 먹었으니까 터지려고 하죠.”
농담이 아니라 누가 치면 바로 뿜어져 나올 기세였다.
아무리 내가 대식가라도 이연화가 시킨 음식 양은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다 먹은 나도 미련하지만.
어쩌겠어. 많이 먹고 가라고 사주는걸.
남기고 갈 순 없었다.
가는 날까지 날 챙겨 준 이연화.
옛날이나 지금이나 신세만 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 카이로행 비행기, 30분 뒤 출발 예정입니다.
항공사의 방송이 들려왔다.
주어진 건 약 5분의 시간.
방송에서 날 찾는 이름이 신나게 불리지 않으려면 5분 뒤에는 탑승 게이트로 가야 했다.
저벅.
어느새 도착한 출입국 심사 입구.
멈춰 선 이연화가 묘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이제 정말 안녕이네요.”
“그러게요.”
시원섭섭한 얼굴의 이연화를 보니 나도 덩달아 아쉬움이 느껴졌다.
2년 뒤에 한국에서 만나요.
이연화는 아테네의 대사관에서 2년을 더 근무한 뒤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내가 다시 아테네를 방문하지 않더라도 어찌 됐든 만나게 되는 것.
물론 이연화는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기에 나보다 더 섭섭해하고 있었다.
“저 한국 놀러 가면 놀아 주시나요?”
“당연하죠, 먹고 싶은 거 리스트 작성해서 오세요. 다 사줄 테니까.”
“오올⋯. 이런 건 녹음 해둬야 하는데.”
이연화가 농담을 건네며 미소를 지었다.
“잠수 타거나 안 그럴 테니까 걱정 마세요.”
“당연하죠, 그러면 반칙이지.”
띠링.
# 이집트 카이로행 비행기, 25분 뒤에 출발 예정입니다.
휴대폰으로 공항사에서 보낸 문자가 도착했다.
인사 몇 마디 나눴을 뿐인데 벌써 5분이 지났다니.
시간은 상대적이라는 게 다시 한번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슥.
“마지막으로 악수 한 번 해요, 우리.”
어느 때보다 해맑게 웃으며 손을 내민 이연화.
그런 이연화에 나도 함께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
“놀아 주셔서 고마웠어요, 백운 님. 정말 재밌었어요. 그럼⋯!”
잡은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이연화가 입을 열었다.
“안녕.”
안녕이란 말을 마지막으로 이연화가 빠르게 멀어졌다.
내가 타야 하는 비행기에 늦기라도 할까 배려를 해준 것이었다.
뭐지.
멀어지는 이연화를 바라보다 고개를 내렸다.
조금 전 이연화의 손을 맞잡았던 손.
손을 통해 틀림없이 전해졌었다.
어째서⋯ 그렇게 떠는 거야?
이연화의 숨길 수 없는 떨림이 말이다.
* * *
“하아⋯!”
백운과 헤어진 뒤 집 옥상으로 올라온 이연화.
이연화가 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치익!
들고 올라온 맥주를 따 한 모금 들이켰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맥주의 탄산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먹는 맥주라⋯. 맛없네.”
어째서일까.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먹는 시원한 맥주.
분명 맛없을 수 없는 것인데 그냥 맹물을 먹는 듯한 느낌이었다.
“잘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던데⋯. 때깔 곱기는 글렀네.”
백운과 만나 많은 걸 먹었지만.
집에 도착하기 무섭게 다 토해내고 말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백운과 함께 있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이제 마음의 정리도 했기에 죽음에 대한 공포도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백운과 헤어지기 무섭게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공포가 다시 이연화의 몸을 집어삼켰다.
“사라진 게⋯ 아니었구나.”
무릎에 파묻은 이연화의 얼굴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죽음.
그저 다른 이들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했었다.
- 당신은 죽습니다.
남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3일 전 이연화를 찾아온 사신.
데몬으로 생각해 빠르게 공격했음에도 사신은 별 반응 없이 죽음의 예고만을 남긴 채 사라졌었다.
- ⋯.
처음엔 혼란스러웠다.
3일 뒤에 죽는다니.
- 어떡하지⋯?
처음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신에 의해 일어났던 일들을 떠올리며 접고 말았다.
군, 경찰, 이연화가 근무하고 있는 대사관까지 모두가 나섰음에도 결국엔 사신을 잡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약한 모습 보여주고 싶지도 않아.’
대사관으로 달려가 김대혁과 팀원들에게 사신을 만났다는 걸 울며불며 토로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많은 이들의 동정과 위로를 얻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 전 이만 들어가 볼게요!
- 잘 들어가요! 연화 님!
- 잘 가라.
오늘까지도 대사관에 출근해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냈었다.
똑같이 일을 했고, 똑같이 인사를 하며 퇴근했다.
- 다 사줄 테니까.
헤어지기 직전 한국에 놀러 오면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한 백운이 떠올랐다.
신기한 일이었다.
죽기 직전 떠오른 게 만난 지 일주일 밖에 안 된 백운이라니.
‘이상하게 친근하단 말이지.’
묘한 끌림이었다.
한눈에 반했다거나 하는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끌림.
오랫동안 알고 지낸 듯한 신기한 느낌이었다.
‘한국⋯. 가서 또 놀고 싶었는데.’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이연화의 눈에 들어온 비행기 한 대.
비행기가 몇 대 안 뜨는 아테네의 특성상 시간대를 봤을 때 아마도 백운이 탄 카이로행 비행기일 터였다.
‘큰일 날 뻔했어.’
백운과 악수를 한 마지막 순간.
이제 혼자가 된다는 생각에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었다.
들킬세라 빠르게 공항을 빠져나왔던 이연화.
‘이제⋯ 됐어.’
스르르⋯!
마음을 들은 것일까.
이연화의 눈앞으로 3일 전에 봤던 사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간이 됐습니다.”
“⋯.”
이연화가 모든 걸 내려놓은 눈으로 사신을 바라봤다.
다시 만나면 뭐라도 묻고 싶었었다.
왜 내가 죽어야 하는지를 말이다.
“고통스럽진 않을 겁니다.”
‘됐어.’
그런데 막상 만나니 그럴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공격을 해도 통하질 않으니 어차피 피하지 못할 죽음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연화가 눈을 감았다.
츠츠츠⋯!
보이진 않았지만 남자의 낫이 들어 올려지는 게 느껴졌다.
‘정말⋯ 끝이구나.’
질끈.
혹시나 눈이 떠지면 무서울까 봐.
주변의 풍경을 보면 다시 살고 싶어질까 봐.
눈을 더 꽉 감았다.
츠악!
낫이 휘둘러져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쐐에에엑!
그 순간.
낫이 아닌 다른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쾅!!
이연화의 피부에 닿은 건 낫의 차가운 쇠가 아니었다.
똑같이 차갑긴 하지만 무언가 연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스륵.
이연화가 본능에 이끌려 눈을 떴다.
‘!!!’
그런 이연화의 앞에서 칠흑의 날개를 일렁거리며 서 있는 백운.
백운이 옆으로 날아간 남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새끼가 어디다 낫을 들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