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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16화 (116/473)

116화. 목숨을 거두는 남자

진정하자.

심호흡해.

- 흥분하지 마라. 싸울 때 가장 최악인 행동이니까.

비광의 말을 되뇌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할 틈 따위는 없었다.

이미 누군가의 낫이 이연화에게 휘둘러지고 있었기에.

칼데아를 최대 출력까지 올려 걷어 차버렸다.

쿠궁⋯!

덕분에 저 멀리 처박혀버린 낫 자식.

꽈악.

나도 모르게 떨리는 오른손을 붙잡았다.

조금 전 걷어찬 놈이 무섭거나 해서 떨리는 게 아니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이연화가 죽었을지도 모른단 사실이 내 몸을 떨리게 만들었다.

“배⋯ 백운 님.”

쉽게 진정되지 않는 상태.

숨을 고르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연화의 얼굴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눈물 자국.

나와 헤어진 뒤 이연화는 이 옥상에 올라 홀로 죽음을 맞이하려 했었다.

“어떻게 여기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운이었다.

이연화와 헤어져 탑승 게이트 앞까지 갔지만.

이상하게 잊을 수가 않았다.

헤어지기 전 떨려 오던 이연화의 손을 말이다.

- 손님? 탑승하셔야 합니다. 손님?

그렇게 마지막 탑승객을 기다리던 직원들에게 사과를 한 뒤 공항을 뛰쳐나왔다.

왠지 모르게 가야 할 것 같았다.

가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본능적인 감각에 의한 행동이었다.

“백운 님, 이집트는 어쩌고⋯?”

“지금 이집트가 중요해요?”

엉뚱한 말을 하는 이연화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조금 전 걷어찬 놈은 분명 이전에 시장에서 들었던 사신이었다.

3일 전에 나타나 죽음을 예고하고, 3일 뒤에 찾아와 목숨을 거둬 간다는 사신.

그렇다는 건 이연화 역시 3일 전부터 죽을 거란 사실을 알았다는 얘기였다.

“왜 말 안 했어요?”

늦지 않게 도착해서일까.

걱정 뒤에 숨어 있던 화가 올라왔다.

3일 동안 사신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이연화.

심지어 무섭다거나 죽고 싶지 않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었다.

“⋯.”

“후우.”

고개를 숙이는 이연화에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켰다.

왜 말하지 않았냐고 굳이 묻긴 했지만.

대답을 듣지 않아도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른 이에게 밝은 에너지를 주려고만 할 뿐 남에게 기대거나 앓는 소리를 한 적이 없었던 이연화.

- 갔다 올 테니까 울지 말고 딱 기다리고 있어.

죽음이 확정적인 전투로 나가면서도 이연화는 마지막까지 미소를 지었었다.

가지 말라고, 함께 숨어 있으면 된다는 내 만류에도 끝끝내 문을 나섰던 이연화.

- 제2, 3의 백운이 있을 테니까. 내가 싸워서 지켜내야지.

붙잡는 내 손을 잡고 이연화가 했던 말이었다.

- 내가 지켜줄게. 그러니까 걱정 말고 여기에 있어.

그렇게 전투로 향했던 뒷모습이 내가 본 이연화의 마지막이었다.

며칠이 지난 후 뉴스에서 본 건 참가했던 90% 이상의 헌터가 사망했다는 뉴스뿐.

어디에도 이연화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

이미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 생각했을 터.

그래서였을 것이다.

내게 한마디의 말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은 척 시간을 보냈던 건 말이다.

이 멍청이가.

홀로 죽음을 기다리며 겉으론 웃었을 이연화를 떠올리니 가슴이 미어졌다.

슥.

고개를 돌려 사신이란 놈이 나가떨어진 벽을 바라봤다.

어쨌든.

으득.

늦지 않았다.

* * *

“크윽⋯!”

무너진 벽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들려왔다.

자기 몸보다 더 큰 낫을 들고 있는 남자.

남자는 생각보다 앳된 모습이었다.

“너 뭐 하는 새끼냐.”

어려 보이든 말든.

중요하지 않았다.

어찌 됐건 눈앞의 놈이 이연화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켜⋯라.”

“아직 정신 못 차렸네.”

비키라는 말에 천천히 남자에게 다가갔다.

후두둑.

남자의 옆구리 쪽에서 무언가가 박살 나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걷어찼을 때 뭔가에 막힌 거 같았는데.

저건가 보네.

우둑.

주먹을 풀며 일어나는 남자를 응시했다.

처음엔 어떻게든 막았겠지만.

몸을 감싸고 있는 게 박살이 난 이상 두 번째는 없었다.

“어떻게 날⋯ 볼 수 있는 거지⋯?”

⋯?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 남자.

얼레.

그제야 알아차렸다.

어느새 발동한 페샨의 눈.

색이 변한 눈동자에서 푸른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원래 볼 수 없는 놈인가 보네.

다시 한번 킹냥이 리카르도에게 감사를 표하며.

남자를 두들기기 위해 다가갔다.

[유탈라스 - 1단계 의태]

“죽음이 확정된 자만이⋯ 날 볼 수 있을 텐데.”

남자는 아직도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입에서 흐르는 피를 닦으며 흔들리는 눈으로 날 응시하고 있는 걸 보니 말이다.

그나저나 죽음이 확정된 자라니.

지가 죽이려고 했으면서도 무슨 소리일까.

“죽음이 확정됐다는 게 무슨 소리냐.”

“후우⋯!”

조금 전 공격 때문인지 남자는 숨을 고르며 고통을 다스리려는 듯했다.

“당신은 아니지만⋯ 뒤에 있는 여자는 죽음이 확정되었습니다.”

“알아듣게 설명해. 당장 죽이기 전에.”

남자가 고개를 돌려 이연화를 바라봤다.

“당신의 목에⋯ 죽음의 꽃이 피었을 터.”

“⋯!”

남자의 말에 이연화가 놀란 표정으로 목덜미를 만졌다.

죽음의 꽃⋯?

“그 꽃⋯ 피안화가 이미 개화했기에 당신은 죽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간을 찌푸린 남자가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줘 입을 열었다.

“아테네가 사라질 겁니다.”

* * *

아테네가 사라진다니.

남자는 계속해서 알아듣지 못할 말만을 하고 있었다.

이상하다.

처음엔 이연화를 죽이려는 남자에 눈이 돌아 머리가 멈췄었지만.

계속해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무언가 어긋남이 느껴졌다.

마치 자기가 죽이고 싶어서 죽이는 게 아닌, 이연화가 이미 죽음이 확정됐기에 죽이려고 한다는 듯한 뉘앙스였다.

들어봐야겠어.

조금만 더 이상한 소리를 하면 즉결 사형을 주려 했지만.

만약 이놈을 처리한 뒤에도 이연화에게 죽음의 위험이 드리워져 있는 거라면.

이놈에게 들어야만 했다.

“아테네가 사라진다니 무슨 말씀이죠⋯? 그리고 당신은 누구길래⋯ 그런걸.”

어느 정도 정신을 추스른 건지 이연화가 옆으로 걸어왔다.

이연화의 질문을 받은 남자가 천천히 들고 있던 낫을 집어넣었다.

이후엔 어쩔지 몰라도 당장은 공격할 의사가 없는 듯 보였다.

“제 이름은⋯ 로인, 5일 전 확정된 죽음을 볼 수 있습니다.”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얼굴로 말을 이어가는 로인.

확신할 순 없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제 목에 있는 문양은 당신이 한 게 아니었나요⋯?”

로인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목에 핀 꽃은 피안화⋯. 꽃말의 이름은 죽음. 문양이 새겨진 순간이 있을 겁니다.”

“⋯!”

이연화가 놀란 눈으로 하늘에서 열렸던 문 이야기를 했다.

당시에 내민 손가락이 자신을 가리켰고 그 뒤로 문양이 생겼단 설명.

“그다음 날⋯. 당신이 절 찾아왔고 죽음을 예고했어요.”

그래서 이연화는 하늘의 문과 로인이 한통속일 거라 생각한 듯했다.

“당신에게 문양을 새긴 건 메토스. 다른 차원에 살고 있는 데몬입니다.”

메토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군대를 지닌 군주죠. 그 군주는 자신이 지목한 사람에게 피안화를 새기고 5일 뒤 그 목숨을 거두러 옵니다.”

“⋯!”

로인이 하는 말이 전부 진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진짜라면 이연화에게 죽음을 확정시킨 건 로인이 아니었다.

“메토스는 혼자 목숨을 거두러 오지 않습니다. 자신의 군대를 끌고 오죠. 그리고 그 군대는⋯ 일대의 모든 생명체까지 죽일 테고요. 그래서입니다⋯. 당신이 죽어야 하는 이유는.”

“요컨대 그쪽은 5일 뒤의 죽음을 볼 수 있고, 연화 님은 메토스란 놈에게 죽게 될 테니⋯ 그 메토스란 놈이 더 큰 피해를 끼치기 전에 연화 님을 죽이려 하는 거다?”

로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메토스란 놈을 박살내면?”

“⋯.”

날 조용히 응시하던 로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까지 제가 미리 봤던 죽음은 전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실행됐습니다.”

“뭐⋯?”

“당신은 메토스를 죽일 수 없습니다.”

스으으.

“어차피 제가 뭐라 설명하든 당신은 절 막아서겠죠.”

로인의 몸이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날 넘어 이연화를 죽이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한 듯했다.

대신, 고개를 돌려 이연화를 바라봤다.

“당신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을 겁니다. 옳은 판단을 하십시오.”

사락.

“한 번 확정된 죽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죽을 운명이란 건⋯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사라지며 남긴 로인의 마지막 말이 공기를 타고 옥상에 울려 퍼졌다.

* * *

로인이 사라진 직후.

이연화와 나란히 앉아 고요한 아테네 시내를 내려다봤다.

“왜 공격은 안 한 거예요? 연화 님.”

조금 전 옥상에서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던 이연화.

내가 알고 있던 이연화는 끝까지 살기 위해 공격을 할 사람이었기에 의아했었다.

“제가 아무것도 안 했겠어요⋯. 처음에 로인이 나타났을 때 공격했어요. 데몬이라 생각해서.”

으쓱 어깨를 올려 보이는 이연화.

“안 맞더라고요. 마치 공기를 베는 느낌이랄까. 애꿎은 화장실 타일만 다 깨졌어요. 피할 생각도 않고 로인이 그러더라고요. 사람은 인지하지 못하는 걸 건들 수 없다고, 당신은 내가 일부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기에 보이기만 할 뿐 건들 순 없다고.”

진짜 사신인가 그 새끼.

슥.

고개를 든 이연화가 날 응시했다.

넌 어떻게 로인을 걷어찼는지를 묻는 눈이었다.

“제가 눈이 좀 특별하거든요. 남들은 못 보는 걸 볼 수 있어요.”

그래서였을 것이다.

페샨의 눈을 통해 난 로인을 인지했기에.

동시에 물리적인 힘을 가할 수도 있었던 것.

“참⋯ 대단한 사람이에요, 백운 님은.”

무릎에 머리를 댄 채 날 바라보는 이연화.

이연화의 얼굴엔 복잡한 심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 아테네가 사라질 겁니다.

아마 로인이 했던 말 때문이리라.

자신이 죽지 않으면 메토스가 찾아올 것이고.

그럼 아테네의 많은 이들이 죽는다는 말.

내일까지 옆에 있어야겠어.

쉽게 목숨을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지만.

자신 때문에 다른 이가 죽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회귀 전에도 다른 이들을 지키기 위해 죽음이 확정된 전장으로 나섰던 사람이니까.

“연화 님, 엉뚱한 생각 하지 말아요.”

- 내가 지켜줄게.

이번엔.

“제가 확실히 지켜 줄 테니까 걱정 마요.”

“⋯!”

역시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이연화가 놀란 눈으로 날 바라봤다.

“하지만⋯ 운명이라고.”

“연화 님이 죽는 일은 없어요. 그게 운명이었다고 해도 말이죠.”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이연화를 응시했다.

“막연히 하는 말이 아니에요.”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한 로인.

난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왜냐면 이미 내가 바뀌었고, 쿄스케의 정해졌던 운명 역시 바꾸었으니까.

조금 경우는 다르긴 하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연화 님이 죽는 운명.”

이연화를 향해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운명, 박살 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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