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18화 (118/473)

118화. 맞이할 준비

조기 출근이라니.

왠지 모르게 드는 미안함을 느끼며 회의실에 모인 헌터들을 바라봤다.

이른 아침.

아직 출근 시간 전이었지만 회의실은 김대혁의 연락을 받고 모인 헌터들로 가득했다.

- 이연화, 너 진짜!

피안화에 대해 말하자 그렇게 온화했던 김대혁의 얼굴이 시뻘게졌었다.

아끼는 부하인 이연화를 아무것도 모른 채 잃을 뻔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 모양이었다.

백 번 천 번 이해합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화내는 김대혁을 굳이 말리진 않았다.

- 죄송해요.

고개를 숙이는 이연화에 화 가득한 한숨을 내쉰 김대혁.

어쨌든 지금 급한 건 이게 아니기에 다음에 보자는 표정이었다.

“도심지 각 위치에 가용한 대사관 헌터들을 배치했습니다.”

“군과 경찰에도 연락을 해둔 상태고요. 바로 지원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김대혁의 부름으로 출근한 헌터들은 모이기 무섭게 각자의 역할을 수행해 나갔다.

빠르게 아테네에 위치하고 있는 군과 경찰에 소식을 알렸고, 도시 근방에 위치한 타 도시의 병력들에게도 지원을 요청했다.

- 연화의 피안화에 대한 건 나만 알고 있는 걸로 하지.

사신 로인을 만난 일과 메토스의 피안화에 대해 들은 김대혁의 결론이었다.

이연화만 죽으면 이 사태가 끝난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떤 여론이 형성될지 가늠할 수 없었기에.

공식적인 소식엔 피안화에 대한 내용을 누락시키기로 한 것이었다.

역시 이쁨 받는구만.

어느 누가 이연화 같은 부하를 아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누구보다 타인을 생각하며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막상 들으면 쉬운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아직 시민들에게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각각의 보고를 들으며 김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메토스를 맞이하기 위해 급조된 회의긴 했지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정부로부터의 대답은?”

“아직입니다. 문의한 대피에 대한 답변도 아직 오지 않았어요.”

단 하나.

문제가 있다면 시민 대피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정부에서 결정이 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망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나타나지도 않은 데몬 때문에 대피령을 내려야 하는지를요.”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지만 정부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이렇게까지 진행이 된 것만 해도 나와 이연화의 말을 믿어준 김대혁 덕분이었다.

김대혁이 아니었다면 아무도 전면에 나서주지 않았을 터.

그만큼 아직 나타나지 않은 데몬 군대가 나타난다는 말은 무시할 수도,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도 없는 애매한 문제였다.

“흠⋯. 빨리 와야 할 텐데.”

준비는 다 마쳤지만 국가의 결재가 떨어지지 않아 시민들에게 알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

당장 오늘이었기에 이렇게 망설이고 있는 시간 일분일초가 아까울 수밖에 없었다.

끼익.

회의실로 들어온 헌터가 입을 열었다.

“대혁 팀장님, 차량 도착했습니다.”

나와 이연화, 그리고 김대혁이 선별한 헌터들이 타고 갈 차량이었다.

피안화로 타겟팅 된 이연화를 데리고 도시 외곽의 공부지로 가겠다고 말했었다.

- 백운 님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제가 안 이상 둘만 보낼 순 없습니다.

현재 상황을 책임지고 있는 김대혁의 말이었기에 거부할 순 없었다.

- 연화와 함께 기둥에 나갔던 인원들로, 원거리 공격에 능한 헌터들로 선별했습니다.

어차피 가까이 오는 적들은 내 선에서 처리할 수 있을 터.

리볼버와 수리검을 제외하곤 딱히 원거리 공격 수단이 없는 날 고려했을 때 좋은 조합 구성이었다.

“백운 님.”

차량으로 가기 위해 일어서자 날 부르는 김대혁.

김대혁의 눈엔 무언가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테네에서 벌어지는 일에 도착하지 얼마 되지 않은 날 끌어들었다는 미안함과.

아끼는 부하를 외곽으로 보내면서도 현장 지휘 때문에 함께 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 등이 말이다.

“걱정 마세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김대혁이 하고 싶은 말을 알 것 같았기에.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지금까지 진 적 없으니까요.”

잠시의 1패는 있었지만, 어쨌든.

“도시의 대피만 끝나면 바로 합류하겠습니다.”

김대혁에게 고개를 끄덕인 후 이연화와 몸을 돌렸다.

이 정도면 메토스가 오기 전 미리 해놔야 하는 것들은 해둔 셈이었다.

이젠 외곽으로 가 메토스를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가시죠, 연화 님.”

* * *

그 시각.

그리스의 정부에서도 비상 대책 회의가 열렸다.

다름 아닌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였기에 그 심각성을 인지한 것이었다.

“한국 대사관에선 계속 답변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한다고요.”

“아니! 그러니까 대체 뭘 믿고 그런 말을 하냐는 겁니다. 아직 데몬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대체 왜요?”

“크흠⋯ 그건.”

회의에서의 의견은 갈라지고 있었다.

나타날지 안 나타날지 모르지만 보고를 받아들여 시민을 대피시켜야 한다는 의견과, 그랬다가 데몬이 나타나지 않으면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다며 극구 반대하는 의견으로 말이다.

“다 대피시켰다가 안 나타나면? 그땐 어떻게 할 겁니까? 시민들은 패닉에 빠질 테고 대피 중에 부상자가 생길 수도 있어요!”

“그럼 데몬이 나타나 사상자가 생긴 다음에 대피를 시작하자는 말입니까? 정부가 보고를 미리 받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게 알려지면 더 걷잡을 수 없이 비난받을 겁니다.”

보고를 해온 것이 한국 대사관이란 것도 문제였다.

자국군이나 기관에서 해온 보고가 아닌 타국의 대사관이 주장하고 있는 데몬의 출몰 가능성.

아테네에서 그 전력을 인정받아 활약하고 있는 한국 대사관이었지만, 타국의 대사관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었다.

“한국 대사의 입장도 같습니까?”

싸우고 있는 의원들은 바라보던 대통령 카풀라가 입을 열었다.

“예, 한국 대사는 김대혁 팀장을 100% 신뢰하고 있습니다. 이제껏 김대혁 팀장이 한 일 중에 틀린 일은 한 번도 없었다면서요.”

“그렇군요.”

카풀라가 눈을 감고 신음을 냈다.

김대혁 팀장과 그의 휘하 헌터들의 활약상은 익히 들은 바가 있기에.

마음 같아선 당장 그 보고를 받아들여 아테네의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수도의 대피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대피령을 내렸는데 만약 데몬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여론은 물론이고 야당의 의원들은 그걸 노리고 집요하게 공격하겠지.’

아테네 시민들을 위한 회의였지만, 그 뒤엔 의원들의 치밀한 정치 싸움이 함께 하고 있었다.

띠리링.

다시 한번 울리는 벨에 카풀라가 눈을 떴다.

보나 마나 한국 대사관의 전화일 터였다.

“한국 대사관에 전하세요.”

고민을 마친 카풀라가 입을 열었다.

“일단 대기하라고요.”

* * *

차량으로 두어 시간을 달려 도착한 부지.

재개발 예정이었다 버려진 장소로 사용되지 않은 지 한참 되었다는 땅이었다.

딱 좋네.

사방이 넓게 트여 있으면서도 폐건물들로 인해 모습을 감추고 있기에도 좋은 장소였다.

고개를 돌려 이연화의 목덜미를 바라봤다.

이젠 입고 있는 옷을 넘어 목 위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피안화 문양.

로인의 말대로 메토스가 나타날 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있는 듯했다.

철컥.

철컥.

함께 온 원거리 딜러 헌터들이 개인 화기 및 능력을 증폭시킬 수 있는 기계들을 설치해나갔다.

저번과는 달리 이번엔 적을 기다리고 있는 입장이었다.

사냥을 하기 전 버프를 두르는 것처럼 가능한 준비를 다 해두는 것.

- 대피가 끝나고 데몬이 확인되면 군대도 움직일 겁니다.

도심지에서의 여기까지는 차량으로도 꽤 걸리는 거리였다.

대피가 제때 다 끝나더라도 지원이 오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터.

내가 빠르게 끝낼 수 있으면 최상이겠지만.

아직 메토스가 얼마나 강한지, 녀석의 군대는 얼마나 많은지를 모르는 상태.

혼자서 마음껏 썰어댈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질지는 미지수였다.

양이 너무 많고 다가오기 전에 정리가 안 된다면 앞으로 나서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어.

메토스를 박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에게 있어 이 싸움의 목적은 이연화를 안전히 지켜내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위험이 된다 생각하면 무리를 하며 본진을 뒤로 한 채 앞으로 나서진 않을 생각이었다.

“12시가 넘었는데도 아직 대피 소식이 없네요.”

“그러게요, 정부에서 아직도 결정을 못 내렸나 봐요.”

준비를 마친 헌터들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지금쯤이면 도시 시민들이 대피를 시작했어야 했다.

대피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김대혁과 군의 발이 묶일 테고 그만큼 지원이 오는 시간도 늦춰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거 탄이라도 한 트럭 더 가져왔어야 했나 싶네요.”

이미 충분히 많아 보이는 양의 탄을 옆에 쌓아 놓은 대사관의 헌터, 찰리.

능력을 이용해 거대한 대공포 몇 개를 순식간에 세팅한 찰리는 마지막 영점을 조준하고 있었다.

“기력 분배를 잘 해가면서도 싸워야겠어요.”

다들 각자의 능력에 들어가는 리소스가 부족하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장기전이 될 거 같으니⋯ 현명하네.

아니길 바랐지만 아직까지 대피가 이루어지지 않은 걸 보아 우리끼리 버텨야 하는 시간이 짧진 않을 듯했다.

해라도 지면 좋을 텐데.

고개를 들어 쨍쨍한 하늘을 바라봤다.

아무리 많은 적이 있고 여러 장애물이 있더라도.

이카로스의 칼데아만 있다면 순식간에 메토스에게 접근하는 게 가능했다.

메토스가 균열에서 나와 있다면 말이다.

이번에 무조건 죽여야 해.

무리하진 않더라도 메토스를 못 잡으면 이연화는 계속해서 위협을 받게 될 것이었다.

전투에서 함께 온 이들을 지키면서도 메토스는 꼭 잡아야 하는 쉽지 않은 상황.

하늘의 균열에서부터 온다는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 칼데아가 절실해지는 순간이 올 터였다.

수리검으로도 접근할 수 있겠지만.

하늘에 장애물이 많을 수도 있으니.

날개와 달리 언제든 쿨타임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비전 수리검이 있었지만, 메토스로 향하는 길에 다른 데몬이나 장애물이 많으면 접근이 용이치 않을 확률이 높았다.

우우웅.

⋯!

여러 상황에 대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고 있을 때.

옆에 서 있던 이연화의 피안화가 빛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의 하늘이 일렁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전투 준비.”

끼릭.

철컥.

이연화와 헌터들이 비장한 얼굴로 공격을 준비했다.

저거구만.

이전에 한 번 균열을 통해 데몬과 만났던 이들이었다.

드드드⋯!

신기한 광경이었다.

하늘을 채우고 있던 구름이 사라지고.

구름이 있던 자리에 거대한 균열이 생겨났다.

문⋯?

균열 속에서부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특이한 재질의 문.

수많은 해골이 문을 감싸고 있었다.

지옥행 문인가.

지옥으로 향하는 문이 있다면 아마 저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쿵!!!

점점 선명해지는가 싶더니 굉음과 함께 문이 열려 젖혀졌다.

꿀꺽.

긴장한 헌터들의 침 넘김 소리와 함께.

삐이이이이이이---!!

미리 설치해뒀던 탐지기에서 알림음이 터져 나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