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거대한 뼈다귀 등장
웨에에에에엥---!
아테네 도시로 비상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하늘이 일렁이나 싶더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엄청난 수의 데몬.
균열 자체가 열린 위치는 도시와 꽤 거리가 있었지만, 하늘에 열린 문에서 내려온다는 특성상 언제든 도시로도 도달할 가능성이 있었다.
“저⋯ 저게 뭐야.”
“⋯.”
경보음에 밖으로 나온 시민들이 하늘로 눈을 돌렸다.
하늘이 갈라지며 문이 생겨나다니.
데몬은 각 종류에 따라 여러 경로에서 나타날 수 있다고 알려졌었지만.
하늘에 문을 뚫고 나온다는 건 듣도 보도 못한 등장 방법이었다.
“뛰실 필요 없습니다! 천천히, 차례대로 와주세요!”
균열이 생겨남과 동시에 대피령을 허가한 그리스 정부.
정부는 곧장 도시로 시민들을 이송할 수송 차량을 보내왔다.
으득.
김대혁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하는 시민들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말했는데⋯!’
아직 데몬이 도시를 공격하거나 한 건 아니었기에 패닉이 오진 않았지만.
김대혁이 말했을 때 대피를 시작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정적으로 통제가 가능했을 터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정부도 완전히 손 놓고만 있진 않았는지 수송에 필요한 차량들을 미리 준비시켜놨단 것이었다.
“팀장님, 저 방향은⋯!”
백운의 말대로였다.
균열과 함께 문이 생겨난 곳은 백운과 이연화가 가 있는 장소였다.
그리고 지금, 그곳으로 엄청난 수의 데몬이 내려가고 있었다.
‘지금 가도 되는 건가.’
김대혁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피 중인 시민들을 바라봤다.
군과 경찰들이 통제하고 있기에, 갑작스레 데몬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면 자신과 대사관의 헌터들까지 굳이 있을 필요는 없었다.
“모두 이동할 준비해! 연화가 있는 곳으로 간다!”
“예!”
김대혁의 명령에 따라 대사관의 헌터들이 빠르게 준비를 시작했다.
시민들의 대피도 중요하지만 요원들의 머릿속엔 동료인 이연화의 걱정이 가득했다.
그때.
드드드⋯!
“!!”
불길한 소리에 김대혁이 하늘로 눈을 돌렸다.
‘이런 젠장⋯!’
도시 위 하늘이 일렁이며 조금씩 갈라지고 있었다.
백운이 있는 부지 쪽과 동일한 현상이었다.
‘문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나.’
김대혁을 포함해 이동 준비를 하던 헌터들의 얼굴에 걱정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미 이연화가 있는 쪽도 다수의 데몬이 나타난 상황.
한시라도 빨리 저곳으로 달려가야 하는 타이밍에 데몬이 나타나며 발이 묶이고 만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군대와 경찰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더라도 문제였다.
지금 도시를 놔두고 이연화가 있는 부지로 향하면 한국 대사관 전체가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연화에게 새겨진 피안화에 대해서는 보고를 누락한 상황.
추후 도시를 버린 채 외딴 부지로 향한 이유와 책임을 물어올 게 분명했다.
드드득!
균열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데몬들.
기본적으로 큰 크기의 데몬들이 도시로 내려오고 있었다.
“으아! 데몬이다!”
“도망쳐!”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도시.
시민들 역시 개방을 완료한 능력자들이었지만.
데몬에 대항할 수단이 없어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전투 준비! 일단 도시를⋯!?”
그런 시민들을 버리고 갈 순 없기에.
김대혁이 팀원들에게 도시를 지키라는 명령을 내리려던 참이었다.
콰가가가가가!
내려오고 있는 데몬들을 뒤덮는 엄청난 양의 가시와,
콰아앙!!
문을 향해 물샐 틈 없이 쏟아 부어지는 메카닉 폭탄들까지.
“저건⋯!”
저벅.
놀라고 있는 김대혁 옆으로 낯익은 사람들이 걸어왔다.
정부 대통령 직속 경호대.
국가직 1급 헌터에 속해 있는 자들이었다.
‘저들이 어떻게 벌써 와 있는 거지.’
균열이 생긴 뒤 왔다고 하기엔 너무 빨랐다.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게 아니라면 불가능한 대응 속도.
“김대혁 팀장님이시죠?”
“각하의 명으로 도시를 수비하러 왔습니다. 김대혁 팀장님은 따로 행동하셔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이후 한국 대사관엔 아무것도 묻지 않을 거라 하셨으니 걱정말고 가셔도 됩니다.”
요원들의 말을 들은 김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1급 헌터들이 도착했다면 더 이상 자신이 도시에 남아 있을 필요는 없었다.
저벅.
김대혁이 곧장 몸을 돌려 기다리고 있는 팀원들을 향해 소리 질렀다.
“바로 출발한다!”
“예!”
차량에 탑승하는 팀원들을 확인한 후.
김대혁이 고개를 들어 이연화가 있는 부지를 바라봤다.
“조금만 기다려라⋯!”
* * *
와 더럽게 많네.
내려오고 있는 데몬들을 보고 있자니 혀가 절로 내둘러졌다.
- 두두두두두두!!
문이 열리기 무섭게 리볼버를 꺼내 들어 작열탄을 문으로 퍼부었다.
나와서 퍼지기 전에 한 번 쓸어버릴 생각이었던 것.
후두두둑!
작열탄 세례와 헌터들의 공격이 쏟아 부어져서인지 문에선 엄청난 수의 데몬 시체가 떨어졌었다.
멀리서 본다면 비가 내리는 것 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 ⋯?
하지만, 떨어져 내린 녀석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한동안 죽은 녀석들이 다 쏟아지고 나자 등장한 훨씬 많은 수의 데몬.
조금 전 떨어진 게 소나기라면 등장하기 시작한 녀석들은 태풍을 동반한 폭우 수준이었다.
콰앙! 콰앙! 콰앙!
옆에서 쉬지 않고 불덩이를 뿜어내는 마도 공학 기계를 바라봤다.
화산이 용암을 뿜어내듯 계속해서 하늘로 날아가는 불덩이.
발사되는 건 한 발씩이지만 한 발 한 발이 웬만한 미사일보다 강력했다.
“쉬지 말고 쏴!”
“탄도 아직 넉넉하다!”
함께 온 헌터들의 화력도 유효타로 먹혀들고 있었다.
원거리에 특화되어서인지 단단한 갑주류를 입은 종을 제외하곤 효과적으로 데몬들을 추락시키고 있었다.
“1시 방향에 열 마리! 8시 방향에 7마리 접근 중입니다!”
그럼에도 숫자가 너무 많았기에.
빗발치는 화력을 피한 데몬들이 쉴새 없이 본진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녀석들은 내 몫이었다.
끼아아아아아악---!
본진을 넘어 펼쳐져 있는 경계 안으로 들어오기 무섭게 반 토막이 나 떨어지는 데몬들.
- 다가오는 놈들은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제가 말씀드린 건 챙겨오셨죠?
군대 사격에서 사용되는 이어플러그.
내 말에 따라 양쪽 귀에 이어플러그를 착용한 헌터들이 뿌려지는 백색 검기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아직 적응이 안 되나 보네.
귀를 째는 비명과 함께 뿜어지는 검기.
눈으로 따라갈 수조차 없는 속도로 뿌려지는 검기에 헌터들은 지금도 적응되지 않는 눈을 하고 있었다.
“와⋯.”
바로 옆에 있는 이연화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검에서 터지는 비명소리에 화들짝 놀라더니, 잠시 후엔 다가오던 사방의 데몬들이 떨어지는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쯧.”
철컥.
스이카를 다시 검집으로 집어넣으며 하늘을 바라봤다.
아직 이연화가 봤다던, 로인이 경고했던 메토스는 등장하지 않은 상태.
말도 안 되는 숫자의 데몬만이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었다.
저릿.
검 손잡이를 잡고 있는 손을 꼬물거리며 발도를 뿌리고 있는 팔의 상태를 살폈다.
돌산에서도 수없이 휘둘렀지만⋯ 쉽지 않네.
스이카의 사용법 자체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단지, 기본적으로 검에 대한 이해가 기본 베이스로 깔려있지 않았다.
물론 기본기와는 별개로 신체 능력이 올라가면서 발도의 속도와 파워는 증가했다.
하지만.
문제는 발도를 휘두를 때마다 팔에 누적되는 데미지였다.
수련을 하면 할수록 강해지는 것과 별개로 발도의 리바운드로 팔에 쌓이는 피로와 데미지는 줄어들 기미가 안 보였던 것.
“후우⋯!”
고개를 내려 혹사당하고 있는 오른팔을 바라봤다.
데미지가 누적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멀쩡했다.
쿠구구!
잠시의 쉬는 시간도 주지 않겠다는 듯 계속해서 밀려오는 데몬들.
호흡을 정리하며 밀려오는 녀석들을 응시했다.
버텨라, 내 팔아.
드드⋯ 끼아아아아아---!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까!
* * *
데몬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하늘의 문에서 지금까지 나오던 데몬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크기의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메토스⋯!
처음 보는 녀석이었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나오고 있는 녀석들을 지휘하고 있는 녀석.
그놈이 이제 됐다고 생각한 건지 직접 행차를 한 것이었다.
“이제야 나오는군요.”
“귀한 몸이라는 건가.”
“이제부터 시작인가 본데요, 하.”
헌터들이 여유롭게 말을 주고받았지만.
메토스를 발견한 모든 이의 얼굴은 긴장으로 바짝 굳어 있었다.
한쪽 손에 남은 손가락이 세 개.
이연화가 바다에서 만난 녀석이 분명했다.
슥.
고개를 돌려 이연화와 헌터들을 둘러봤다.
데몬의 접근은 없었기에 다친 곳은 없었지만.
다들 몹시 지쳐 있었다.
이미 몇 시간 째 멈추지 않고 능력을 쓰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뚝. 뚝.
수백 번 스이카를 휘두른 내 오른팔 역시 마찬가지였다.
손잡이엔 이미 손에서 베어낸 피가 맺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고.
팔 내부의 핏줄이 몇 개 터진 건지 검붉은 멍이 여기저기에 생겨 있었다.
“백운 님⋯!”
메토스가 등장하며 잠시 찾아온 평화.
그제야 내 오른팔을 발견한 이연화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개 아프지만.
누가 다가와서 장난으로 오른팔을 건드린다면 주저 없이 뺨을 갈길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데미지가 누적되어 아픈 상태였다.
쿠구구.
아니 이 미친놈들은 자가복제라도 하는 건가.
진짜 끝이 없네.
자기들의 군주인 메토스와 함께 등장한 엄청난 수의 데몬.
지금까지는 1차 웨이브였다고 말하는 듯 혀가 내밀어지는 숫자였다.
메토스도 나타났고, 해도 졌다.
이카로스의 칼데아를 이용해 메토스를 공격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것.
문제는.
끼아아아아아아---!
이 자리에서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자리를 벗어나는 순간 스이카는 해제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밀려드는 데몬들로부터 본진을 지킬 수 없게 된다.
리볼버의 쿨타임은 돌았다.
여기서 냅다 메토스에게 리볼버를 갈기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 사이에 있는 데몬들의 숫자를 보면 효과적으로 탄이 닿지 못할 것 같았다.
“사방에서 몰려 옵니다!”
메토스가 훨씬 더 많은 데몬을 끌고 나온 탓도 있지만, 오랜 전투에 지쳐 이연화와 헌터들의 화력도 약해진 상태.
아까보다 더 많은 데몬이 화력망을 통과해 접근해왔다.
후우.
다시 한번 스이카를 휘두르기 위해 자세를 낮췄다.
발⋯?
스르르⋯!
발도를 휘두르기 직전.
공간이 잠시 일렁이는가 싶더니 페샨의 눈이 발동했다.
콰직! 콰득! 서걱!
순식간에 나타나 거대한 낫으로 다가오던 데몬을 썰어버리는 존재.
로인⋯?
저놈이 왜?
어제까지만 해도 메토스는 못 막는다며 이연화를 죽이려 했던 녀석이었다.
“뭐⋯ 뭐죠? 왜 갑자기 데몬들이?”
로인이 보이지 않는 헌터들이 당황하고, 옆에 있던 이연화가 고개를 돌려 푸른빛을 뿜고 있는 내 눈을 바라봤다.
“로인이에요.”
“⋯!”
이연화 역시 놀란 표정이었다.
그리고,
퍼어엉!!
멀지 않은 곳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왔다.
“팀장님⋯!”
펑! 펑! 펑! 펑!!
와 씨.
한 방만 터져도 엄청난 폭발이 연쇄적으로 터지며 근방에 있던 데몬들을 가루로 만들었다.
저벅.
가루가 된 데몬을 뚫고, 양손에 붉은 기운을 두른 채 걸어오고 있는 김대혁.
도착한 김대혁과 헌터들이 본진으로 합류하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각자의 위치를 잡으며 접근하고 있는 데몬을 바라보는 김대혁과 헌터들.
됐다.
2급 헌터인 김대혁이 도착한 이상 나까지 본진의 방어에 발이 묶여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스윽.
고개를 들어 군대의 뒤에 숨어 있는 메토스를 바라봤다.
조금만 기다려라.
금방 간다.
[이카로스 - 칼데아 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