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이집트로
“옴뇸뇸 맛있겠다아.”
여의도에 위치한 카페 안.
오랜만의 힐링을 위해 카페를 방문한 송유빈이 신나게 케이크와 커피의 사진을 찍어댔다.
“와… 딸기 봐. 미쳤다 미쳤어.”
얼굴이 많이 알려지다 보니 사람이 적은 구석진 곳을 찾아 도착한 곳이지만.
예상치도 못한 엄청난 케이크와 커피가 있어 송유빈을 몹시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자기야, 이거 하나 먹어봐.”
“아이, 부끄럽게 왜 그래.”
“뭐 어때 보는 사람도 없는데.”
‘보는 사람 여깄다, 이것들아.’
부끄럽다면서도 와작와작 잘 받아먹는 커플을 보며 송유빈이 고개를 내저었다.
‘커플 지옥, 솔로 천국이거늘.’
카페에 홀로 찾아와 달달한 케이크를 먹으며 보내는 아늑한 시간.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생각하며 송유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폭.
맨 위에 올려진 딸기와 케이크를 크게 떠 입으로 포크를 옮긴 송유빈.
“와우.”
한 번에 온몸을 녹여 주는 달달함에 육성으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냠.
한 입 더 옮긴 케이크를 우물거리며 송유빈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국가직 헌터들의 동영상이 올라오는 한튜브.
얼마 전에는 그토록 기다리던 무기왕의 동영상이 올라왔었다.
‘닳겠다, 닳겠어.’
몇 번이나 돌려본 건지 이젠 스스로도 세는 걸 포기할 상태였다.
‘진짜 활동반경 미쳤네.’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론 고개가 내저어지는 사람이었다.
어디 갔나 싶으면 일본에 가 있고.
한동안 잠잠하다 싶으면 갑자기 나타나 노네임드 급 데몬을 잡아 버리고.
이제 뭘 하려나 싶었는데 그리스에 가 있다니.
‘사건이 무기왕을 따라다니는 건가. 아니면 무기왕이 사건을 불러일으키는 건가.’
이쯤 되니 헷갈리는 수준이었다.
어렸을 때 봤던 장수 탐정 만화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하도 주인공이 있는 곳에서 사건이 일어나다 보니 사실 만화의 메인 빌런은 주인공이란 농담이 돌 정도였다.
‘동굴 진짜 이쁘다.’
제일 많이 돌려본 구간이었다.
영상으로만 봐도 반짝이는 게 느껴지는 바다색의 동굴.
갈 수만 있다면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꼭 가보고 싶었다.
# 뉴스 속보입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일어난 데몬 사태에 대한 그리스 대통령 카풀라의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습니다.
커피를 홀짝인 송유빈이 켜져 있는 TV로 고개를 돌렸다.
동영상이 올라온 것도 분명 그리스 아테네였다.
‘이번에도 관련 있으면 진짜 사건을 몰고 다니는 거야.’
웃음이 나왔다.
동영상이 올라온 후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기에, 지금 나오는 뉴스가 무기왕과 연관 있을 확률은 적었지만 말이다.
이어지던 카풀라의 브리핑이 끝나가는 시점.
‘다행이네, 이번엔 관련 없어서.’
마무리될 듯한 기자회견 분위기에 송유빈이 다시 케이크를 한 점 떠올렸다.
# 대한민국 국가직 소속 헌터, 무기왕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입으로 케이크를 가져가던 송유빈이 그 자세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째앵!
송유빈이 놓친 포크가 케이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 * *
줄줄줄.
헌터 중앙청에서 오랜만에 모여 차를 마시던 강태황과 기태랑, 비광.
차를 마시던 중 굳어버린 비광의 옷으로 차가 흘러내렸다.
“….”
비광 뿐만이 아니었다.
호탕하게 소리를 치던 강태황도, 다과를 집으려 몸을 숙이던 기태랑도.
모두가 굳은 채 흘러나오고 있는 뉴스 속보로 눈을 향하고 있었다.
“지금 뭐라고 한 거냐.”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비광이 줄줄 흐른 차를 닦으며 잔을 내려놨다.
잔이 책상에 놓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기태랑이 입을 열었다.
“무기왕이라고 한 거 같은데.”
“잘못 들은 거 아니야?”
“너는 뭐라고 들었는데?”
“무기왕이라고.”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비광과 기태랑이 강태황에게 눈길을 돌렸다.
팔짱을 낀 채 멍하니 앉아 있던 강태황이 입을 열었다.
둘과는 또 다른 질문이었다.
“지금 말하는 사람 그리스 대통령 맞지?”
모두가 비슷비슷한 상태라는 걸 깨달은 세 사람이 다시 TV로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비광과 기태랑의 입가로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미쳤네.”
“미쳤지.”
고개를 끄덕인 기태랑이 쇼파에 몸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너무 미쳐서 종잡을 수가 없네.”
* * *
“백운 님, 한순간에 너무 달라진 거 아니에요?”
옆에서 날 따라오고 있는 이연화에게 뭘 모른다는 듯 손가락을 내저었다.
“어허, 아니라니까요. 진짜 알아보는 거 같았다니까.”
한밤중이었지만 내 눈엔 새까만 선글라스가 씌워져 있었다.
머리엔 촌스러운 스카프와 이연화에게 빌린 마스크까지.
유명 연예인이 시내 활보 시 얼굴을 숨기기 위해 갖추는 풀세팅이 장착되어 있었다.
“이상해서 쳐다본 거예요. 누가 야밤에 그러고 다녀요.”
“그… 그런가요.”
멋쩍게 웃으며 스카프와 선글라스를 벗었다.
선글라스를 벗으니 세상이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이제야 잘 보이네.”
“….”
후련한 듯한 내 목소리에 이연화가 혀를 찼다.
인정.
내가 생각해도 한심한 소리였다.
“그런데 정말 놀랐어요. 대통령님이 직접 얘기하실 줄은.”
“그러게요.”
진심으로 놀랐다.
별생각 없이 낮의 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이 나오길래 보고 있었을 뿐인데.
다른 사람도 아닌 그리스 대통령이 내 이름을 직접 언급하다니 말이다.
물론 이름이 아니고 무기왕이지만.
“전에도 백운 님이 원하지 않으셨던 거 같아서 이름 대신 무기왕 닉네임을 알려주셨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다행이네요. 대혁 님 앞에 계셨으면 바로 둥가둥가 해드렸을 텐데.”
피식 웃음을 터뜨리는 이연화.
“아쉽지 않아요? 백운이란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릴 절호의 찬스였는데.”
하긴.
생각해보니 그렇기도 했다.
언제 또 한 국가의 대통령이 내 이름을 언급해 줄 기회가 생기겠는가.
그렇다 하더라도.
“에이, 아니에요. 유명해지는 게 좋기야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피곤할 거예요. 저도 안 그랬으면 하고요.”
“으으음…!”
…?
눈을 게슴츠레 뜨고 의심 가득한 눈으로 날 쳐다보는 이연화.
“나중에 범죄 같은 거 저지를 생각은 아닌 거죠? 보통은 다 유명해지고 싶어서 난린데 그 반대라니.”
날카롭군.
언제든 열려 있는 가능성이었다.
최대한 자제하겠지만 실제로 국가에 소속된 유물을 털거나 하는 일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하… 범죄라니. 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살 수 있지.
법이었던 것들을 신나게 악용하면서 말이다.
저벅.
얼마나 걸어왔을까.
처음에 바다로 뛰어들었던 절벽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 바로 앞이라 그런지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오늘따라 유독 밝고 크게 떠 있는 달까지.
떠나기 딱 좋은 날이네.
“그런데 진짜 이렇게 가실 거예요? 김대혁 팀장님이 서운해하실 텐데.”
“연화 님이 잘 말씀드려주세요. 나중에 또 놀러 온다고.”
공항에서 이집트로 가는 비행기가 없다는 걸 확인한 후.
내가 한 선택은 그리스에 머무르는 게 아니었다.
이집트까지 한 방에 가진 못하겠지만.
제한되어있는 날개의 연기.
아마 이 연기만으로 한 방에 이집트에 도달하진 못할 것 같았다.
수영도 하고 달리기도 해야지.
그야말로 철인 3종 경기.
최대한 날아가다 연기가 바닥나면 아래의 지형에 따라 종목을 변경할 생각이었다.
“왜 이렇게 급하게 떠나시는 거예요?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뭐랄까.”
기태랑의 일도 일이었지만 시간상으로 봤을 때 엄청 촉박하거나 한 건 아니었다.
솔직히 이틀 삼일 정도 그리스에 머무르며 천천히 인사도 하고 휴식을 취한 뒤에 가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내 깊은 곳에선 계속 떠나야 할 때라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단 멈춰 있지 말고 다음으로 넘어가라는 본능의 목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멈춰 있는 게 익숙하지 않다고 해야 하나, 불편하다고 해야 하나.”
말하면서도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말에 머리를 긁적였다.
단순히 말하면 공항에 가만히 서 있을 때보다 이집트로 향하기 위해 걷고 있는 지금이 백 배는 마음이 홀가분했다.
마치 이 길이 옳은 길이라는 느낌이었다.
“… 백운 님은 정말 바람 같은 사람이네요.”
잠시 날 바라보다 바람 같다고 표현하는 이연화.
이연화의 목소리엔 왠지 모를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바람요?”
“누군가 잡으려고 해도 절대 잡히지 않는,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흘러가는 게 바람의 특징이니까요.”
척.
어느새 도착한 절벽에 이연화가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냥… 멋있다고요!”
“하하….”
멋쩍게 웃으며 절벽 끝으로 가 섰다.
단순히 멋있다는 의미만 담긴 게 아닌 듯하지만, 여기서 더 안다고 해서 내 결정이 달라지는 건 아니기에.
[이카로스 - 칼데아 윙]
지체 없이 날개를 꺼냈다.
“와… 아까도 봤지만 참.”
밝은 달빛을 등진 채 펼쳐진 검은 연기의 날개.
날개를 잠시 쳐다보던 이연화가 입을 열었다.
“아름답네요.”
아름답다라.
날개를 보며 멋있다고 생각은 많이 해봤지만 아름답다는 건 또 처음이었다.
“이집트로 가면 뭐하실 거예요?”
“찾아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실존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겠지만, 가능한 데까지는 찾아볼 생각이에요.”
“모험가네 모험가야.”
이연화가 부럽다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음에 또 만나겠죠?”
“그럼요.”
너가 안 만나고 싶어도 만나게 될 거란다.
나만 아는 미래를 생각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여기까지 마중 나와주셔서 고마워요. 밤이라 혼자 왔으면 무서울 뻔했는데.”
“풉, 백운 님은 참 속에도 없는 말 잘하네요.”
웃는 이연화를 바라보며 천천히 날개를 움직였다.
이제 갈 시간이었다.
슥.
악수를 하기 위해 이연화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가볼게요, 나중에 또 봐요.”
“….”
잠시 손을 내려다보던 이연화가 한 발자국 내게 다가섰다.
꼬옥.
“…!”
가볍게 날 안는 이연화.
“오해하지 마요, 그리스식 인사니까.”
“네… 넵!”
내가 깜짝 놀라서인지 이연화가 미세하게 웃는 게 느껴졌다.
“또 봐요, 백운 님.”
* * *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 세사앙.”
오월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아는 노래를 부르며 날개를 펄럭였다.
핸드폰에 있는 GPS를 통해 미리 방향은 잡아뒀다.
이대로 쭉 날아가기만 하면 되는 일.
휘릭.
공중에서 몸을 뒤집어 머리 위에 떠 있는 달을 바라봤다.
하늘 위에서 보니 더 가깝고 크게 느껴지는 달이었다.
쏴아아아.
아래는 잔잔한 바람을 따라 물결치는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 이게 맞구나.
떠나고 나니 새삼스레 느껴졌다.
무척이나 홀가분해진 마음.
이 길이 내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휙!
다시 몸을 원위치시키고 날개로 연기를 모았다.
자 이집트로….
파앙!
연기를 터뜨리며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드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