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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27화 (127/473)

127화. 근원지

눈 앞에 펼쳐진 건 암흑이었다.

위아래 할 것 없이 사방이 온통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

드득.

그리고, 단순히 어두운 게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어둠은 약간씩이지만 움직이고 있었다.

다크메탄가.

빙하에서 보랏빛을 띠고 있던 다크메타는 그리 큰 크기가 아니었다.

기껏해야 성인 남성의 주먹만 한 크기였다.

주먹만 한 놈이 수온 높은 이집트 바다에 빙하를 만들어냈다.

그런 다크메타가 지금 내 주변을, 정확히는 내 시야가 닿는 모든 곳을 메우고 있었다.

주먹만 한 게 빙하 하나를 만들어내는 수준이라고 봤을 때.

그리고 내가 보고 있는 게 다크메타가 맞다면.

끔찍하네.

바다에 흘러나온 건 극히 일부의 다크메타일 뿐 문제는 아직 시작조차 않은 것이었다.

거기다 사방에 있는 다크메타로부터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한기…?

허.

주륵.

이마에서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분명 몸은 한기에 반응해 오싹한 상태임에도 땀이 흐르는 이유는 간단했다.

다크메타가 뿜어내는 게 아니었네.

공간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알 수 있었다.

빙하에서 만진 다크메타가 뿜어내던 한기부터 지금 날 둘러싸고 있는 한기까지.

처음엔 다크메타란 물질 자체가 뿜어내는 거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두근.

누구냐.

꽤 떨어진 거리였다.

내 시야가 닿는 끝자락.

그곳 역시 다크메타가 가득했지만, 그 뒤로 누군가가 있었다.

밖으로 빠져나온 다크메타에서마저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몸에 베여버리는 엄청난 한기를 지닌 누군가가 말이다.

뭐가 있는 거냐.

저벅.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한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흔적의 공간에서 상대는 날 보지 못한다.

일방적으로 내가 볼 수 있을 때 봐둬야 했다.

장소도 봐야 돼.

한기를 향해 걸어가면서도 쉬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피부로 느껴지는 바람 한 점 없는 공간.

이것만 봤을 땐 사방이 막혀 있는 실내 공간인가 잠시 생각도 들었지만,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 이곳이 실내가 아니라는 걸 강하게 어필하고 있었다.

태양은 또 왜 저래.

두 개의 태양… 아니지.

정확히는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이 검은색의 구체에 의해 서서히 삼켜지고 있었다.

달이 태양의 일부나 전체를 가리는 일식과 모양 자체는 몹시 흡사했지만.

다른 게 있다면 태양을 가리는 수준이 아니라 삼키고 있다는 것, 그리고 태양을 삼키고 있는 게 달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얼마 안 남았는데.

태양은 이미 1/5 정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나머지는 침범하고 있는 어둠에 의해 완벽히 집어 삼켜진 상태였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화악!

…!?

순간이지만 오른쪽 뺨으로 무언가의 온기가 느껴졌다.

다크메타와 몸서리치게 만드는 한기만이 가득한 공간.

온기란 게 절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공간에서 느껴진 따듯함, 정확히는 뜨거움에 가까운 온기였다.

슥.

고개를 돌려 온기가 느껴졌던 오른쪽을 주시했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다크메타 속.

번쩍.

!!!

계속해서 움직이는 다크메타에 의해 잠시였지만, 익숙한 황금빛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나오는 거야!

[이카로스 - 칼데아 윙]

날개를 꺼내 빛이 보였던 곳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뜨거워지는 온기.

이젠 온기라고 부르기 힘든 수준이었다.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갔다간 타버리고 말 듯한 강력한 열기.

파악!

“우악!”

무언가에 반응한 칼데아 윙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몸이 다크메타 속으로 나동그라졌다.

[지… 켜]

수많은 다크메타가 몰려들고 있는 중심 속.

아주 작지만 선명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저렇게 작은 불꽃임에도 이 정도 거리까지 열기를 뿜어내다니.

[지켜라]

다시 한번 귓가로 들려오는 목소리.

지키라고…? 뭐를?

꿀렁.

…!

불꽃이 보이는 위치까지 와서야 알게 되었다.

사방에서 움직이고 있는 다크메타들.

규칙 없이 아무렇게나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니었다.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든 다크메타는 지금 바라보고 있는 불꽃을 향해 밀려들고 있었다.

마치 타오르고 있는 마지막 불꽃을 꺼버리려는 듯 말이다.

[불꽃을]

화륵.

[지켜라]

화아악!

불꽃을 지키라는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주변을 감싸고 있던 공간이 흩어졌다.

* * *

“꺄악!”

“으아아!”

시야가 돌아오기도 전 들려온 건 사람들의 비명이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 내가 공간에 들어갔다 온 건 찰나의 순간일 터였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생겼을 리가 없는데 어째서?

“…?”

다시 돌아온 빙하를 바라보며 고개를 돌렸다.

여기저기 발라당 넘어져 나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는 사람들.

“다들 왜 그러세요?”

사람들의 눈을 보니 어지간히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배… 백운 님, 괜찮으세요?”

“백운 님이 다크메타를 잡는 순간에 말도 안 되는 한기가…!”

아.

손에 쥐여진 다크메타를 바라봤다.

지금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건 내가 잡고 있는 다크메타의 한기가 아니었다.

조금 전 공간을 들어갔다 나오며 내 몸에 밴 한기였다.

진짜 미친 한기구만.

보통 한기라는 건 약간 몸을 들썩이며 오싹함을 느끼게 하는 정도인데.

잠시 있었던 것만으로도 여러 사람이 저렇게 발라당 넘어갈 정도의 한기가 몸에 베어버리다니.

결국 못 봤네.

다크메타에 둘러싸여 있던 존재.

공간 자체를 말도 안 되는 한기로 가득 채우고 있던 존재가 뭔지는 결국 확인하지 못했다.

쯧.

들고 있는 다크메타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왔다.

아까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공간에 다녀오며 다시 한번 확신이 들었다.

이번 무기 찾기는… 개빡세다.

* * *

콕콕.

….

옆에서 조심스럽게 날 찔러보는 셀린.

무슨 사람이 콕콕콕 스파게티도 아니고 말이야.

뭐하냐는 얼굴로 바라보자 셀린이 입을 열었다.

“이제야 좀 가라앉았네요.”

“그렇게 심했었나요?”

셀린이 몸을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더 가까이 있었으면 숨이 멈출 것 같은 한기였어요. 뭔가 춥다… 라는 느낌이 아니라 숨통을 조여오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몸에 배인 한기로도 그 정도라면.

보통 사람이 그 공간에 들어갔다간 숨조차 제대로 못 쉬고 죽음을 맞이할 터였다.

“백운 님은 정말 괜찮으세요? 어디서 갑자기 그런 한기가 나온 걸까요.”

“전 괜찮아요, 그러게요. 다크메타를 손으로 잡아서 그런가.”

보랏빛을 통해 들어갔다고 말할 수는 없기에 다크메타 탓을 하며 케이스를 바라봤다.

쉽사리 다가오지 못하는 사람들에 내가 직접 케이스로 옮겨 담아 준 다크메타.

“어때요? 셀린 님이 탐구 능력이 제대로 발동할까요?”

“네, 충분할 거 같아요. 케이스가 흔적이 흩어지는 걸 막아주고 있으니 이대로 연구실로 가져가면 돼요.”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전 들어갔던 공간을 떠올렸다.

다크메터가 움직이며 불꽃이 드러났고, 그 불꽃에 다가가자 칼데아가 순식간에 풀렸었지.

칼데아의 주인인 이카로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카로스는 태양을 견딜 수 없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칼데아에는 태양이 없는 밤에만 꺼낼 수 있다는 제약이 걸려있었다.

날개가 풀린 걸 보면 일반적인 불이 아니야.

순간적으로 머리에 떠오른 건 이집트로 향한 이유, 태양의 신 라였지만.

아직 단정 짓기에는 단서가 너무 부족했다.

슥.

고개를 돌려 케이스 안의 다크메타를 살피는 셀린을 바라봤다.

예상했던 것과 같이 내가 들어갔던 공간이 어딘지 특정하지 못한 상황.

“셀린 님, 혹시 연구소에 빈 쇼파 하나 없나요?”

“네…?”

이집트조차 처음 와보는 내가 혼자 찾기보단.

현지에서 학자를 하고 있는, 탐구라는 능력을 가지고 다크메타를 쫓고 있는 셀린과 함께 하는 게 역시 옳은 선택이었다.

공간 특정됐으면 째려고 했는데 보류다.

뜬금없는 질문에 잠시 놀란 셀린의 입가로 미소가 그려졌다.

같이 좀 가자는 말을 이제 알아챈 모양이었다.

“하나가 아니라 두 개도 있으니까 걱정마세요.”

* * *

배에서 내려 도착한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내리자마자 밤인데도 불구하고 후덥지근한 날씨가 느껴졌다.

여기가 피라미드의 나라구만.

다른 나라를 이렇게 어거지로 온 건 또 처음이었다.

매번 비행기를 탄 뒤 합법적인 입국 절차를 거쳐서 들어왔는데 말이다.

- 백운 님의 입국 심사는 저희가 알아서 처리해두겠습니다. 한국 국가직 소속 헌터시니 신분상 문제는 없을 겁니다.

배에서 내리며 정부 소속 헌터들이 해준 배려였다.

맞네, 나도 모르게 불법 체류자 될 뻔했네.

막무가내로 이집트로 가즈아 하면서 출발해서일까.

입국 심사 같은 건 전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그럼 연구소로 갈까요?”

“아, 네.”

케이스를 든 정부 헌터 두 명과 함께 앞장서 걸어가는 셀린을 따라갔다.

“아직 통성명도 제대로 못 했네요, 전 이집트 정부 소속 헌터, 무하타라고 해요.”

머리를 스포츠로 짧게 짜른 무하타가 손을 건넸다.

“백운입니다!”

무하타는 샤킨이 배를 쫓아올 때 구슬을 뿌려 폭발을 일으킨 헌터였다.

“전 헤리아라고 해요.”

보라색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어디선가 소환한 쇠사슬로 케이스를 들고 있는 헤리아.

손이 남지 않는 헤리아에겐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 제가 좀 들까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이게 룰이라서요.”

룰…?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향해 헤리아가 입을 열었다.

“제 능력은 사슬 봉인으로.”

휘릭.

헤리아가 케이스를 든 반대쪽 손을 들어 올리자 굵은 쇠사슬이 뿜어져 나왔다.

“제가 죽기 전까지는 안 풀리는 사슬을 조작할 수 있거든요. 정부에서 지정한 장소까지는 맡은 물건에 감은 사슬을 절대 해제시키지 않는다. 이게 정부의 룰이에요.”

“아하!”

설명을 들으니 마음이 한층 가벼워졌다.

헤리아 혼자 들고 가는 게 마음이 불편하긴 하지만, 내가 좀 불편하다고 남에 국가 룰을 어길 순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나란히 걷고 있던 무하타가 입을 열었다.

“대한민국 헌터들은 다 백운 님처럼 강한가요? 아까 배에서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으음.”

무하타의 물음에 잠시 턱을 문질렀다.

강하다라는 단어를 들으니 단번에 떠오르는 두 사람, 비광과 기태랑.

“다는 아니지만 괴물들이 있긴 하죠.”

무하타가 역시!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집트에도 있거든요, 괴물같이 강한 분이.”

“오…?”

자신이 존경하는 상관인지 유독 눈을 반짝이는 무하타.

“이집트의 수호자 혹은 모래의 신이라 불리는 분이에요. 이집트 국가직 1급이죠.”

“오오…!”

모래의 신이라니.

듣기만 해도 벌써 강한 향기가 물씬 풍기는 이름이었다.

어…?

연구소로 가는 김에 얘기나 더 들어보자는 생각에 입을 열려는 찰나.

익숙한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백운 님…?”

갑자기 멈춰 서서인지 의아한 얼굴로 날 바라보는 세 사람.

그런 세 사람을 뒤로하고 발견한 문양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카이로의 도심 한가운데 바닥.

….

거대한 태양과 그 태양의 반을 가리고 있는 어둠의 원.

공간의 하늘에서 봤던 문양이 조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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