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아포피스
라의 신화에 빠짐없이 등장하던 게 있었다.
라와 치열하게 싸웠었다 알려진 악의 생명체, 아포피스.
신화마다 아포피스의 모습을 묘사하는 방법은 제각각이었는데, 그럼에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어느 신화에서든 아포피스의 크기는 더럽게 크다는 것이었다.
쾅!!
왜 아포피스까지 나오냐고오!
할머니 말씀 들을걸!
세 사람 뒤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진짜 더럽게 큰 코브라였다.
보자마자 신화 책에서 읽었던 아포피스가 떠오르는 그런 생김새였다.
드드득…!
아니 뱀 새끼 힘이 왜 이래.
현재 수리검에 맞닿아 있는 건 코브라의 머리통이었다.
세 사람을 향해 시전한 몸통 박치기를 달려들어 수리검으로 막아낸 것.
“백운 님!”
“일단 밖으로 나가요! 빨리!”
머뭇거리는 세 사람을 향해 소리 질렀다.
앞에 있는 게 아포피스던 그냥 코브라 데몬이던 간에 이렇게 어둡고 좁은 공간에서 누군가를 지키며 싸운다는 건 힘들었다.
나도 나가야겠는데.
스스스…!
수리검 너머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는 듯한 혓바닥의 움직임 소리.
현란하구만 현란해.
드드… 쿵!
힘을 집중해 코브라를 밀어낸 후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시야가 닿는 곳은 무하타에게 받은 구슬의 빛 범위가 다였기에 비젼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
쩌적.
시발?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고, 굳이 빛으로 비추어보지 않아도 무슨 소린지 알 것 같았다.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알.
그 알에서 무언가가 탄생하는 소리였다.
사아악! 사아악!
울퉁불퉁한 땅에 뱀의 비늘이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들으니 소름 그 자체.
녀석은 커다란 덩치에 안 어울리게 꽤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칼데아는 꺼낼 수 있는데… 어째야 되나.
코브라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햇빛이 없는 만큼 날개는 꺼낼 수 있지만 굳이 아무것도 안 보이는 곳을 싸움의 장소로 정해야 하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가자.
사아아아!!!
나에게 다시 한번 돌진해오는 소리를 들으며.
[이카로스 - 칼데아 윙]
날개를 꺼내 연기를 폭발시켰다.
스프링처럼 통로 쪽으로 튕겨 나가지는 몸.
쾅!!
조금 전 서 있던 땅에 코브라가 처박히며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딛고 있던 땅마저 진동시키는 무식한 힘이었다.
머리 터져서 뒤지진 않았겠지.
잠시 짤막한 소망을 말한 뒤 무기를 바꿔 들었다.
[앤 보니&메리 리드 - 작열탄]
킹코브라를 제외하고라도 사방에 놈의 알이 드글드글한 걸 본 이상.
그냥 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작열탄 안 뿌리고는 못 참지.
철컥.
통로에 발을 딛기 무섭게 리볼버를 안쪽으로 겨냥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두---!!
불을 휘감은 빛의 탄환이 모스크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콰과과앙!!
날아간 탄환이 폭발음을 내며 모스크 전체에 불을 질렀다.
“쉬이이이이익!”
“시시시식!”
소리 봐라.
소름 돋게 만드는 소리를 들으며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에 힘을 줬다.
“뱀 구이나 되라!”
* * *
콰아아아아아!
“음?”
파삭!
“끄륵…!”
도심지에 등장한 데몬을 차례차례 찍어 누르고 있던 중이던 비칼이 굉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 들어온 사람들인가.’
도시를 수비하던 부하 헌터에게 바리게이트를 친 후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난 후 걸려온 부하의 전화.
정부의 의뢰를 받은 인원들이 들어가려는데 들여보내도 되겠냐는 전화였다.
- 안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국가직 헌터 2인 외에 호위해주는 한 명의 헌터가 더 있습니다.
스스로의 목숨은 알아서 지키는 것이기에.
알아서 하라는 대답을 들려줬었다.
‘헌터 2명은 모두 7급이라 했었는데… 나머지 한 명이 한 건가.’
“쯧.”
비칼이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저런 굉음이 터진 이상 주변에 있을 데몬들이 전부 저곳으로 향할 터였다.
“괜히 들어오라고 했군.”
한숨을 내쉰 비칼이 굉음이 들려온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 * *
호다닥!
모스크의 출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콰아아아아!!
뒤이어 통로를 뚫고 터져 나오는 엄청난 화염.
내가 구워질 뻔했네.
너무 열심히 갈기느라 폭발에 의해 화염이 터지는 걸 잠시 간과했었다.
달려 나오는 순간에도 비늘을 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을 정도.
“백운 님! 괜찮아요!?”
“멀쩡합니다. 뱀쉨들도 다 태워버렸고.”
“방금 뭐였어요…?”
“개 큰 뱀이요.”
내가 뛰란 말에 곧장 통로로 달린 세 사람은 코브라의 모습을 못 본 모양이었다.
안 보는 게 낫긴 하지.
100% 꿈에 나온다 이거.
오늘 잠은 다 잤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뱀이라면 아포피스…?”
뒤에서 읊조리는 셀린의 말이 들려왔다.
더럽게 큰 뱀이라 듣더니 나와 같은 걸 떠올린 듯했다.
신화 속에서나 등장하던 놈이니 설마 진짜 아포피스겠나 싶지만 말이다.
어차피 구워버렸으니까 뭐.
“아포피스는 불사에 가까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불길한 소리를 하는 셀린을 바라봤다.
그런 복선 깔리는 말 하지 말라는 눈빛을 강하게 보내자 웃어 보이는 셀린.
“어디까지나 신화 속의 존재니까요, 하하.”
우르릉…!
“하…?”
발아래로 느껴지는 진동에 서 있던 사람들의 눈이 셀린에게 향했다.
“어…?”
설마 아니겠지.
뱀 주제 그런 화염 구덩이에서 살아남았으면 진짜 말도 안 되는데.
드드드…!
나의 작은 바람과 달리 진동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차라리 땃쥐여라.
이렇게 된 거 이왕 등장할 거라면 아까 봤던 뱀 새끼 말고 귀여운 땃쥐가 등장했으면 했다.
“조심해요!”
드드드… 쾅!!
땃쥐는커녕 징글맞은 뱀 새끼가 튀어나왔다.
아포피스다.
등장한 뱀 새끼에 확신이 들었다.
일반적인 코브라 데몬 같은 게 아니었다.
작열탄의 폭발을 정중앙에서 다 처맞았음에도 그을린 곳 하나 없이 모습을 드러낸 녀석.
“와우.”
밝은 데서 보니 또 색다른 느낌이었다.
어두운 곳에서 야광빛에 의지해 봤을 때 보다 더욱 웅장한 모습.
몸 전체적으로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양들이 가득 새겨져 있어 그 기괴함을 더하고 있었다.
이무긴가.
크기만 보면 청룡 유탈라스와 삐까 뜰 것 같았다.
“백운 님! 다크메타는 저놈한테서 나온 거예요!”
“…?!”
격렬하게 반응하는 다크메타를 살핀 뒤 들려오는 셀린의 외침.
저런 생김새와 크기, 말도 안 되는 생명력에 더해 다크메타를 내보내는 능력까지.
아직까지 다크메타가 세트와 연관되어 있을 거란 확신은 없었지만, 만약 맞다면 눈앞에 있는 건 정말 아포피스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일단 아포피스라 치고.
어떻게 죽인다?
작열탄에 불태워도 뒈지질 않는 생명력.
어떤 매커니즘으로 버텨낸 건질 모르기에 함부로 공격을 쏟아부을 수 없었다.
일단 탐색전 가볼까.
“도시 밖으로 피해 계세요.”
크기가 크기이니만큼 무슨 공격을 하든 범위급으로 데미지를 입힐 터.
웬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걸론 전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쉬리릭!
[잭 더 리퍼]
아포피스의 공격을 회피하며 면도칼을 휘둘렀다.
서걱! 서걱!
외피 자체는 두껍지 않은지 손쉽게 갈라지는 아포피스.
… 뭐야?
문제가 있다면 면도칼을 통해 손으로 전해지는 감촉이었다.
무언가 살아있는 생물체의 살을 베었다기보단 뭉쳐 있는 연기 혹은 액체를 벤 느낌이었다.
서걱!
아포피스의 공격을 피하며 썰어봐도 마찬가지였다.
베는 순간만 갈라질 뿐 순식간에 다시 원상복귀 되는 녀석의 피부.
- 불사신.
오반데.
작열탄의 불도 안 통하고 베는 것도 안 통한다라.
녀석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며 머리를 회전시켰다.
한순간에 몸 전체를 부술 만큼의 데미지라면?
아포피스의 회복력이 어디까지인지부터 알아내야 했다.
[비젼 수리검]
수리검을 꺼내 하늘 높이 집어 던졌다.
나름 녀석도 빙글빙글 돌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기에.
공중에서 못 움직이는 상대를 보면 좋다고 달려들 것 같았다.
[비젼]
하늘로 몸을 이동시키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사라진 날 찾느라 두리번거리는 녀석.
“여기다 새끼야!”
“시이이이!!”
공중에 뜬 날 발견한 아포피스가 무서운 속도로 돌격해왔다.
면상에 한 번 먹여보자.
비늘을 두른 채라면 면상부터 꼬리 끝까지 박살내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쩌억!
홀리.
아포피스가 날 향해 입을 벌렸다.
아가리가 어찌나 큰지 전방이 전부 가려질 정도.
[유탈라스 - 1단계 의태]
최대한 강한 한 방을 위해 오른팔로 모든 비늘을 집중시켰다.
목표는 면상 대신 매섭게 날아들고 있는 거대한 송곳니.
“오라오라… 오라아!!”
꽈아앙!
바로 앞까지 다가온 아포피스의 송곳니에 주먹을 꽂자 굉음이 터져 나왔다.
몸을 순식간에 밀쳐내는 엄청난 충격파.
아포피스의 무게를 실은 몸통 박치기와 유탈라스의 주먹이 만들어낸 충격이었다.
퍼어엉!
경쾌한 소리와 함께 송곳니부터 시작해 머리, 몸통 순으로 힘의 이동 경로에 따라 아포피스가 터져나갔다.
끝까지 터져라!
반짝.
응?
아포피스의 실시간 폭파를 구경하던 중.
폭파보다 앞서 빠르게 꼬리 쪽으로 향하는 빛이 보였다.
아주 작은 빛이 문양을 따라 폭파를 피해 이동하는 듯한 모습.
펑….
이런.
꼬리 끝에 위치한 문양까지 빛이 도망쳤지만.
파워가 조금 부족했는지 폭파는 꼬리 언저리에서 끝나고 말았다.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생각을 할 만한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쿠아아아!
꼬리 부분에서 검은색의 액체가 터져 나오며 순식간에 박살났던 송곳니까지 완벽하게 복구해버린 아포피스.
아니 십… 사기 아닌가 저거.
그런 아포피스를 보고 있자니 아찔함이 느껴졌다.
몸의 4/5가 날아갔음에도 저런 속도의 재생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규격 외의 재생력이었다.
“시이아아아아아!!”
한 번 몸이 박살 나서일까.
잔뜩 화가 난 아포피스가 내가 서 있는 건물로 돌진해왔다.
잠시 쨀까.
조금 전 번쩍였던 빛.
확실친 않지만 실마리를 잡았으니 작전상 후퇴를 할까 고민하는 사이.
쾅!!
“!!”
땅 아래서 솟아오른 모래가 아포피스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쾅! 쾅! 쾅! 쾅!
“오우.”
사람의 주먹 모양으로 변해 쉴새 없이 아포피스를 두들기는 모래 주먹.
갑자기 나타난 주먹에 아포피스는 일방적으로 맞으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맞은 부위는 금세 회복하고 있는 녀석.
저벅.
“…?”
뱀을 조패고 있는 장본인인지 태연한 걸음으로 내게 다가오고 있는 회색 머리의 남자.
저 사람이 비칼인가.
딱 봐도 장난 아닌 아우라가 느껴지는 걸 보니 저 사람이 무하타가 말했던 이집트의 1급 헌터인 것 같았다.
척.
바로 앞까지 다가와 걸음을 멈춘 비칼이 무미건조한 눈으로 날 응시했다.
“저거 어떻게 죽이는 거지? 알고 있나?”
통성명 할 새도 없이 훅 들어오는 비칼의 질문.
“짐작 가는 건 있는데요.”
“뭐지?”
비칼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좀 도와주셔야 돼요.”
“….”
말없이 날 바라보던 비칼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