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아포피스의 송곳니
“….”
비칼이 쓰러지고 있는 아포피스를 바라봤다.
백운의 말대로였다.
무슨 공격을 해도 금새 회복하던 녀석이 빛을 베이자 순식간에 무너져버렸다.
쿠구구구궁!
크기가 크기이다 보니 쓰러지는 것 자체만으로도 장관을 연출해내고 있는 아포피스.
아포피스가 완전히 쓰러지자 비칼이 조금 전 말도 안 되는 소리와 함께 검기를 뿜어내고 바닥에 착지한 백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뭐 하는 놈이지.’
이곳에 도착한 순간부터 비칼의 관심은 아포피스보단 백운에게 가 있었다.
- 파아앙!
처음 주먹 한 방에 저 거대한 데몬을 머리부터 꼬리 끝 언저리까지 터뜨려 버린 말도 안 되는 위력.
그리고 사방에서 날아드는 비늘을 피하며 등을 타고 올랐던 속도와 반사신경까지.
- 저 빛을 베면 될 거 같아요, 발판 좀 만들어 주세요.
순간 순간의 상황 판단과 눈썰미까지 좋았다.
아무리 적게 쳐도 S급은 되어 보이는 데몬을 상대하면서도 겁에 질리긴커녕 냉정한 상황 판단과 파훼책을 생각하는 여유.
‘안될 거라 생각했는데.’
비칼 역시 백운이 말한 문양의 빛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빛의 속도에 저걸 파괴하는 건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이번 시도까지만 해본 후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모래의 힘을 더 끌어다 쓰려는 중이었다.
아포피스의 몸 전체를 찍어 누를 수 있을 만한 모래를 모으기 위해서 말이다.
- 콰앙!!
발판이 무너지고 자세를 잡고 있던 백운이 추락하는 걸 보며 안되겠구나 라고 확신하는 순간.
흐릿해지던 푸른 경계가 다시 선명해지며,
- 끼아아아아아악---!
귀를 찢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비칼조차 갑작스런 소리에 눈을 찡그렸을 정도의 소리.
- …!
그리고, 눈을 찡그렸다 다시 뜨는 그 짧은 순간에 모든 게 끝나 있었다.
비칼의 눈으로조차 따라가지 못했던, 언제 뿌려진 지 알 수조차 없는 백색 검기는 흐릿해지고 있었고, 검기가 베고 지나간 아포피스의 몸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일들을 떠올리며 비칼이 바닥에 엎어져 있는 백운을 응시했다.
“꾸어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혀가 내둘러지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더니, 지금은 오른팔을 붙잡은 채 이리저리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있는 백운.
그런 백운을 보며 비칼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이상한 놈이군.’
* * *
살려줘!
끔찍한 고통이었다.
정확히 빛을 베고 착지한 순간.
됐어!
확실하게 베어진 빛에 주먹을 움켜쥐려는 찰나였다.
찌이잉… 우두둑!
허공에서 뿌려낸 발도의 리바운드로 근육이 시원하게 뒤틀려버렸다.
가만히 듣기에도 공포가 밀려오는 뒤틀림 소리와 함께 밀려온 끔찍한 고통.
바닥을 굴러다니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제한을 걸어둔 이유가 있었어억!
다행이었다.
오늘 이전에 이런 고통을 겪었었다면 딛고 있는 땅 없이 스이카를 휘두르는 게 망설여졌을 터였다.
“백운 님!”
아포피스가 쓰러지고 잠시 후.
정부의 지원을 요청한 건지 셀린을 포함한 여럿의 헌터가 내쪽으로 달려왔다.
그런 셀린을 향해 온전한 왼손을 들어 뒤쪽을 가리켰다.
“다크메타! 저 말고 다크메타부터 빨리이!”
머리맡.
아포피스의 몸이 분쇄된 곳엔 전에 발견했던 것보다 훨씬 큰 다크메타가 일렁이고 있었다.
* * *
호로록.
“으음, 딜리셔스 하구만.”
이집트 카이로의 수도 병원.
붕대로 꽁꽁 싸매어진 오른팔을 보며 음료수를 홀짝였다.
모래를 마셔가며 아포피스와 싸워서인지 몹시 칼칼했었는데, 얼음장 같은 음료를 때려 넣으니 뇌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진짜 개아프다.
두 번 쓰라면 못 쓰겠는데.
물론 필요하면 쓰게 되겠지만.
최대한 자제하고 싶은 고통이었다.
땅을 딛고 안 딛고에 이런 큰 차이가 있다니.
- 많은 게 가능해질 거다.
시간이 풀리기 전 사사키 코지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정확히 어떤 의미에서 그런 말을 한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대충 떠올려봐도 어떤 자세로든 자유롭게 스이카를 휘두르는 게 가능해졌다는 건 정말 큰 강점이었다.
웬만한 이의 눈으론 쫓아올 수조차 없는 발도.
꽤 많은 활용이 가능할 것 같았다.
수리검을 먼저 던지고 비젼을 사용한 후에 스이카를 휘두르는 게지.
그럼 적은 비젼으로 나타난 내 움직임에 놀람과 동시에 목이 댕강! 하고 날라갈 터였다.
흡족하구먼.
물론, 어디까지나 팔이 이렇게 안 된다는 가정하에서 가능한 전략이었다.
한 번 휘두르면 팔이 이 지경이 되어버리니 무턱대고 휘두르는 건 불가능했다.
“흐음.”
한숨을 쉬며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셀린 님은 뭐 좀 발견했으려나.
병원으로 따라오려는 셀린을 애써 연구실로 돌려보냈었다.
아포시스가 무너지며 남긴 다크메타.
다크메타의 흔적이 따끈따끈하게 남아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추적해야 했다.
그 송곳니는 또 뭐지.
쓰러진 지 얼마 안 되어 검은 액체로 흩어져 버렸던 아포시스.
아포시스가 남긴 건 다크메타 뿐만이 아니었다.
몸과 마찬가지로 신박한 문양이 잔뜩 새겨진 송곳니를 놓고 간 것이었다.
어디다 쓰긴 쓰는 거 같은데.
일단은 다크메타와 송곳니 둘 다 셀린의 연구실로 옮겨진 상태.
부디 셀린이 무언가 알아내기를 바라야 했다.
시간이 많진 않을 거야.
헬리오폴리스에서 만났던 할머니.
할머니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면 아직 불꽃은 살아있었다.
하지만, 시간 문제였다.
공간에서 봤던 상태를 보면 얼마 가지 않아 불꽃은 다크메타들에 집어 삼켜질 게 분명했다.
벌떡!
공간의 상황을 떠올리며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안돼!!
이집트의 미래가 너무 걱정되어서는 아니었다.
이집트 사람들이 들으면 경을 칠 노릇이었지만.
더 지체했다간 사라져 버릴 나의 불꽃이 걱정됐다.
아직 내건 아니지만.
공간의 생김새와 이집트의 신화, 헬리오폴리스에서 만났던 할머니와 아포피스까지.
이것들이 가리키는 건 분명 혼돈의 신 세트와 태양의 신 라였다.
그리고 선명한 황금빛을 냈던 불꽃.
어떤 형태의 무기인지는 아직 감이 오지 않았지만 라가 가지고 있었을 무기임엔 틀림이 없었다.
시… 신의 무기야!! 놓칠 수 없어!
아테네와 이카로스의 경우처럼 라 역시 진짜 신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신이나 아니냐의 여부를 떠나 그런 불꽃을 뿜어낼 수 있는 무기를 놓쳤다간 살아가는 내내 꿈자리가 사나울 터였다.
꽈악!
멀쩡한 왼손을 움켜쥐며 굳은 결의를 다졌다.
라의 불꽃.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손에 넣는다!
“환자분.”
“옙!”
어느새 벌떡 일어나 있는 내 침대로 다가온 의사 선생님.
무표정한 의사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누우세요.”
“네… 넵.”
많은 이의 시선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침대로 몸을 눕혔다.
* * *
카이로 대학교의 연구실.
책임자인 셀린이 조심스럽게 송곳니를 살폈다.
생김새만 봤을 땐 신화 속에 나오는 아포피스의 재림이라 봐도 무리가 아니었던 데몬.
‘이 문양은…!’
본 적이 있는 문양이었다.
빠르게 책장으로 걸어간 셀린이 책들을 훑기 시작했다.
어느 낡은 책 앞에서 손을 멈추는 셀린.
# 아포피스와 라.
제목만 봤을 땐 흔하디흔한 내용일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책 속엔 다른 책엔 적혀 있지 않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단순 라와 아포피스 사이의 관계를 정리한 게 아닌, 아포피스가 지니고 있는 기능성에 대한 내용이었다.
# 아포피스는 라의 단순한 적이 아니었다. 적임과 동시에 라에게 접근하기 위해 필요한 걸 지니고 있는 존재이다.
라에게 접근할 수 있는 존재.
그리고 책엔 이어서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 아포피스의 독기를 품은 송곳니. 그 송곳니를 뽑을 수 있는 자만이 라에게 도달할 수 있으리라.
거대한 몸체에서 송곳니와 다크메타만을 놓고 사라진 데몬.
이 책이 어느 시대에, 어떤 걸 보며 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상황에 있어선 몹시 신빙성이 느껴지는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라가 실존하고 어딘가에 숨어 있다면. 분명 쓰이는 곳이 있을 거야.’
송곳니에 새겨진 문양도 해석이 더 필요하긴 하겠지만, 어떤 거대한 문양을 이루는 일부분으로 보였다.
송곳니와 이어질 거대한 문양을 찾는 게 관건인 셈.
슥.
셀린이 고개를 돌려 이번에 가져온 다크메타를 살폈다.
보존이 잘 되어 흔적이 그대로 유지되어있는 상태였다.
꿀꺽.
연구실로 들어왔음에도 셀린은 다크메타를 쉽사리 살펴보지 못하고 있었다.
다크메타를 통해 아포피스가 탄생하고 온 곳을 알아낼 수 있을 터.
그럼에도 망설여지는 건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
이전의 다크메타를 통해 진행한 여러 가지 실험.
아무리 작게 쪼개고 잘라내도, 폭발을 일으키고 다른 헌터의 힘을 때려 박아도, 다크메타는 소멸되지 않았었다.
그때마다 적절한 형태로 바뀌어 가며 계속해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것.
‘숙주가 죽으면 사라진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그 자리에서만 없어진 게 아닐까.’
숙주가 죽으며 잠시 모습을 나타냈다 사라지는 다크메타를 보며 단순히 죽은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무슨 짓을 하던 절대 죽지 않는 다크메타를 보며 셀린은 새로운 가능성을 떠올렸다.
숙주의 죽음과 상관없이 다크메타는 소멸되지 않으며, 그저 그 자리를 떠나 새로운 숙주를 찾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가능성.
‘만약 다크메타가 애초에 우리가 어쩔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면… 근원지를 알아낸다 한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불안한 빛이 드리워진 셀린의 눈.
‘….’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셀린이 고개를 흔들며 다크메타로 다가갔다.
* * *
카이로 근처의 피라미드.
“이쪽으로 오세요!”
“이집트의 자랑인 피라미드입니다. 옛날 파라오들이 묻혀 있는 곳이죠!”
이집트로 관광 온 사람들이 피라미드 주변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가이드가 쉴새 없이 피라미드의 역사와 역할에 대해 설명해 나갔다.
흔들.
“…?”
한창 설명을 하던 가이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전 발밑에서 느껴진 정체불명의 진동.
“잘못 느꼈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구경 중인 사람들을 바라보며 가이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자! 여기까진 보고 다음 장소로 이동…?”
관광객들의 뒤쪽.
광활한 사막만이 존재하는 방향에서 엄청난 크기의 모래 먼지가 일어났다.
“어…?”
어째서인지 점점 선명해지고 있는 모래 먼지.
정체불명의 모래 먼지는 빠른 속도로 가이드와 관광객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
일 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어느새 정확한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가까워진 모래 먼지.
모습을 드러낸 건 단순한 먼지 수준이 아니었다.
콰가가가가가!!
엄청난 크기의 모래 폭풍.
“피… 피하세요! 피라미드 안으로!! 빨리!!”
뒤늦게 모래 폭풍을 발견하고 몸을 피하려 했지만.
“으… 으아아!”
이미 늦어버렸다.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코앞까지 다가온 모래 폭풍.
바로 앞까지 닥쳐온 폭풍을 보며 가이드가 무릎을 꿇었다.
“시… 신이시여.”
그런 가이드의 눈에 들어온 무언가.
거대한 다크메타가 모래 태풍 안에서 일렁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