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증식
와 이놈의 몸은 대체 뭘까.
하루 오지게 자고 일어나서일까.
잠에서 일어나자마자 확인한 건 어제 박살났던 오른팔이었다.
요근래 그리스에서부터 쉼 없이 혹사당하고 있는 나의 불쌍한 오른팔.
그럼에도 오른팔은 다시 한번 엄청난 회복력을 보이며 놀라움을 주고 있었다.
까딱.
어제까지만 해도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던 손가락이었다.
조금만 힘을 줘도 침대에서 튀어 오를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아프긴 하지만.
지금은 조심스럽게 힘을 주면 손가락 정도는 까딱일 수 있을 정도로 기능이 많이 돌아와 있었다.
물론 아주 조심스럽게 힘을 흘려보내야 했다.
조금이라도 과하게 힘을 흘려보내면 엄청난 고통이 느껴지는 건 어제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조심조심.
조심스럽게.
쾅!!
빠악!
“끄억!”
갑자기 벌컥 열린 문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오른팔.
손에서 전기로 지진 듯한 고통이 밀려 왔다.
원망 섞인 눈초리로 바라본 곳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셀린이 서 있었다.
“백운 님! 찾았어요!”
“네… 네?”
상기된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는 셀린.
“아포피스가 온 곳, 그리고 다크메타들의 근원지요!!”
* * *
침대에 걸터앉은 셀린이 지도를 펼쳤다.
카이로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사막 지대.
그곳에 거대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바다에 빙하를 만들었던 건 아포피스로부터 나온 녀석이었어요. 새끼의 새끼인 셈이죠.”
핸드폰에 아포피스로부터 얻었던 다크메타를 보여주는 셀린.
“이 다크메타엔 엄청나게 강한 흔적과 한기가 묻어 있었어요. 처음엔 단순히 크기가 커서라고 생각했는데.”
셀린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었어요, 탐구를 통해서 본 장소. 아포피스에 들어 있던 다크메타는 이전 것과 비교조차 안 되는 거대한 곳에서 분리되어 나왔기에 다른 거였어요. 그게 얼마나 거대한 건지는… 뭐랄까, 제 인식 범주를 아득히 벗어나서인지 가늠이 잘 안 되고요.”
인식 범주를 벗어난 장소.
공명으로 봤던 공간이 떠올랐다.
이번이 진짜겠네.
공간이 아포피스를 낳았고, 아포피스가 또 다른 다크메타를 낳았다.
아마 이렇게 태어난 다크메타는 또 다른 곳으로 퍼져 새로운 다크메타를 낳고 있을 터.
다크메타가 어디까지 퍼져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지도에 동그라미 그려져 있는 곳은 카이로 근처 사막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에요.”
피라미드.
아무 기계도 없던 고대에 어떻게 지은 건지 아직까지도 갑론을박이 활발한 건축물이었다.
이집트의 왕들의 무덤으로 지어졌으며 사후 세계와 현세를 잇는 임시 거처라고도 불리는 장소.
“….”
여기까지 설명을 한 셀린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지금까진 장소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흥분해 말을 이어갔지만, 무언가 걱정이 있는 얼굴이었다.
“이곳으로 가도 될지는 확신이 잘 서지 않아요.”
탐구를 통해서 뭔가 느낀 건가.
내가 공명으로 봤던 것만큼은 아니더라도, 인식 범주를 벗어났다는 말을 보면 셀린 역시 비슷한 무언가를 느꼈을 가능성이 있었다.
아찔하긴 했지.
많이 순화해서 아찔이었다.
공간에서 느껴진 건 세 가지 정도였다.
몸을 저릿하게 만드는 한기와, 아득함, 그리고 막연함이었다.
“제가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는데… 다크메타는 소멸되지 않더라고요.”
지금까지 사라졌던 다크메타도 소멸된 게 아닌 것 같다고 셀린은 말했다.
“저희가 간다고 해서 무언가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일단 정부로 지원 요청을 해서 피라미드 앞에서 합류하기로 했는데 이게 옳은 선택일까요? 괜한 피해만 늘리는 게 아닐까요?”
셀린은 걱정하고 있었다.
다크메타를 통해 근원지를 알아낸 시점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다 한 것과 마찬가지였음에도.
자신이 알아낸 정보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이 다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었다.
저희가 안 가면 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거예요.
사람이 다치냐 안 다치냐의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결국 불꽃이 삼켜지고 공간에 묶여 있던 다크메타가 터져 나온다면.
다치는 걸 넘어 상상도 안 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피라미드 앞에서 합류하기로 했다고 하셨죠?”
“아, 네.”
오른팔에 감긴 붕대를 풀며 셀린을 바라봤다.
근원지의 위치가 확정되면 셀린 님은 데리고 나가게 해야 돼.
공간에서 느꼈던 한기의 양을 봤을 때, 셀린은 그곳에 들어가선 안 됐다.
직접적으로 몸에 피해를 주는 건 아니었지만, 보통 사람의 정신으로는 이겨낼 수 있는 한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벅.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희한테는 선택지가 없어요. 제 생각엔 다크메타가 퍼지면 퍼졌지 알아서 사라질 거 같진 않거든요.”
“… 맞아요.”
“그러니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셀린을 바라보며 고개를 까닥였다.
“일단 가보죠.”
* * *
한 시간 전, 정부의 작전실.
“장관님! 기자에서 거대 데몬들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어제 피라미드를 관광하던 팀이 통쨰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각 국가의 관광객들이 섞여 있던 터라 대사관들에서 확인 요청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국방부 장관인 모함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일이지.’
어제까지도 엄한 곳에서 데몬이 튀어나오고 이상 기후가 나타나는 문제는 있었지만.
모함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단순한 이벤트 정도로 여겼기에 적절하게 대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그라들 거라 생각한 것.
“헌터들 배치는?”
“각 데몬이 나타난 곳에 배치는 하고 있습니다만… 끝이 없습니다.”
“끝이 없다니? 무슨 말입니까.”
삑.
작전실에 있던 참모가 화면으로 카이로 근처 마을의 영상을 띄웠다.
들이 닥친 거대한 데몬을 제거하자 튀어나오는 다크메타.
이전엔 숙주가 죽으며 사라졌던 데크메타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숙주가 죽기 무섭게 사라지더니 곧이어 다른 데몬을 거대화시켜 나타났다.
“무한 반복이라고 합니다. 오히려 현장에 있는 헌터들의 힘만 점점 소모되고 있습니다.”
“그럼 다크메타를 부수는 건요? 숙주에서 나오기 무섭게 없애면 되지 않습니까?”
모함자 장관의 말에 참모가 고개를 내저었다.
“파괴가 되지 않습니다.”
“뭐라고요…?”
“온갖 능력으로 공격해봤지만 소멸되기는커녕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꿀꺽.
모함자가 아찔함을 느끼며 마른침을 삼켰다.
데몬 발생의 원인인 다크메타가 파괴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었다.
“자… 장관님. 큰일입니다.”
“…?”
이보다 더 큰 일이 날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지만, 모함자가 빨리 말하라는 눈으로 참모를 바라봤다.
삑.
“!!”
잠시 후 바뀐 화면.
참모가 말한 큰일이 뭔지는 굳이 보고로 듣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카이로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말도 안 되게 큰 모래 폭풍.
이집트에서 수십 년을 산 모함자조차 본 적이 없는 엄청난 폭풍이었다.
“….”
화면이 띄워지기 무섭게 작전실로 무거운 정적이 찾아왔다.
사방에서 나오고 있는 데몬도 큰 문제였지만, 다가오고 있는 폭풍은 더 큰 위기였다.
“어떻게 저런 게 일어난단 말입니까.”
모함자가 아득함을 느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물론 이런 비상식적인 사태에 모함자에게 대답해줄 수 있는 건 아무도 없는 상태.
‘다 쓸려나갈 거다.’
가끔 사막에서 모래 폭풍이 불긴 했지만, 이동 정도를 어렵게 만드는 수준이었다.
단 한 번도 저런 토네이도 급의 폭풍이 발생했던 적은 없었다.
기상학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떻게 해야…!’
한 번도 발생한 적 없기에 이집트의 도시는 저런 폭풍에 대비되어 있지 않았다.
도착하는 순간 복구 불가능한 피해가 생길 터였다.
“장관님! 조금 전 연구를 맡고 있던 셀린 교수로부터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다크메타의 근원지를 찾아냈다고 합니다!”
“…!!”
오늘 전까지는 다크메타에 큰 신경을 기울이지 않았었기에, 대학 교수에게 맡겨둔 후 잊고 있었던 의뢰.
오늘 들은 보고들 중 처음으로 반길만한 보고였다.
“헌터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1급 헌터 중 바로 지원 가능한 인원 있습니까?”
“모두 각 도시를 방어하고 있는 중이고… 카이로 근처에 비칼 님이 있습니다.”
장관 모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셀린 교수 지원하라고 하세요! 지금 당장!”
* * *
셀린을 따라 도착한 피라미드 앞.
“허.”
셀린의 보고를 받아서인지 미리 피라미드 앞에 도착해 있는 헌터들.
다가가서 인사를 건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피라미드 근처를 가득 채우고 있는 엄청난 수의 데몬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저… 저게 무슨…!”
옆에 있던 셀린도 놀란 얼굴이었다.
죽은 데몬들 몸에서 튀어나오고 있는 다크메타.
다크메타는 나오기 무섭게 다른 데몬에 옮겨붙어 더욱 덩치를 키워가고 있었다.
셀린 님 생각이 맞았네.
숙주가 죽어서 소멸된 게 아니었다.
다른 숙주로 옮겨 가느라 사라졌던 것.
쾅!!
데몬 무리로 거대한 모래 주먹이 떨어졌다.
아포피스 때 봤던 비칼도 와 있는 모양이었다.
“셀린 님! 백운 님!”
나와 셀린을 발견한 무하타와 헤리아가 달려왔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왜 갑자기 데몬들이…!”
“모르겠어요. 피라미드에서 갑자기 많은 수의 다크메타가 튀어나왔어요. 동시에 데몬들이 나타났고요. 여기뿐만이 아니에요, 이집트 각지에서 다크메타에 의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어요!”
불이 꺼지고 있다.
나도 덩달아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다크메타의 발이 풀렸다는 건 불꽃에 의한 억제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아직 꺼진 건 아니야.
만약 불꽃이 완전 삼켜졌다면.
이 정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대처할 생각은커녕 손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참사가 났을 터.
“시간이 없어요, 빨리 들어야겠어요.”
다급한 내 말에 셀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탐구 능력을 통해 느낀 것 때문인지 셀린은 시간이 없다는 내 말에 굳이 되묻지 않았다.
“헤리아 님, 송곳니는요?”
“가져왔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오는 길에 셀린이 설명했던 송곳니.
정확하진 않지만 다크메타의 근원지로 들어갈 때 필요할 거 같다며 챙겨온 것이었다.
“제가 들고 갈게요.”
“네…?”
거대한 송곳니를 구르마에 실은 채 힘겹게 끌고 있는 헤리아와 무하타.
물론 구르마라는 싸구려 단어에 비해 무척이나 최신식 수레로 보였지만, 어쨌든.
덥썩.
“어… 어!”
상황이 상황인 만큼 대답을 기다려줄 틈은 없었다.
헤리아의 수레에서 송곳니를 집어 어깨에 짊어졌다.
“헤리아 님, 몸이랑 고정 좀 시켜주세요!”
“네… 네!!”
사슬을 뿜어내 내 등과 송곳니를 고정시키는 헤리아.
“가죠!”
당황하는 세 사람을 뒤로하고 피라미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쿠아아아아!!
“!?”
피라미드를 향해 얼마나 움직였을까.
앞쪽으로 밀려든 모래의 파도가 길을 막았다.
“비… 비칼 님!?”
따라오던 무하타와 헤리아가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비칼.
가까이 다가온 비칼이 입을 열었다.
“피라미드로는 못 간다.”
“그게 무슨…?”
무미건조하게 말한 비칼이 나와 셀린을 응시했다.
“출입 금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