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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38화 (138/473)

138화. 라의 불꽃

본능에 의한 순간적인 판단이었다.

사방에서 덮친 다크메타를 리볼버로 뿌리친 후 바닥으로 향한 것은 말이다.

뿌리치고 나왔는데 더한 곳으로 다이빙 해버렸네.

눈에 보이지 않는 확신에 의한 행동.

누군가 보면 무모하며 정신 나간 짓이라고 할만한 행동이었지만 난 내 확신을 믿었고, 믿었기에 실패했을 때 확정적인 죽음을 안겨 줄 수도 있는 다크메타에게 뛰어들었다.

“하아아.”

다크메타로 다이빙한 후 보인 것 역시 캄캄한 어둠뿐이었다.

온통 다크메타 투성이라 호흡조차 불가능했던 어둠 속.

얼마나 깊숙이 들어온 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호흡이 부족하려는 찰나 본능과 감각에 의지해 열기가 느껴지는 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결과.

싱긋.

죽지 않고 무기의 공간으로 도착하게 되었다.

비광 님한테 맨날 도박 중독이라고 놀렸었는데.

나도 남말 할 처지는 못 되네.

물론 무기왕의 감각과 확신이 있었지만, 100% 확률에 목숨을 건 것은 아니었기에 딱히 변명할 말은 없었다.

슥.

눈앞엔 기억에서 봤던 높은 층고의 계단이 놓여 있었다.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지만 도시 사람들이 라를 숭배하던 신전이었다.

동시에 세트와의 기묘한 동거가 이루어졌던 장소.

“올라와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흔적에서 불꽃을 지키라고 말했던 목소리.

보랏빛 흔적이었던 만큼 날 인식하고 말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단지 불꽃에 근접하여 있는 모든 이에게 향했을 메시지였다.

날개는 안 꺼내지네.

계단이 높은 만큼 칼데아를 꺼내서 단숨에 올라갈까 했었는데.

태양의 신이라 불리는 라의 앞이라 그런지 칼데아는 꺼내어지지 않았다.

저벅.

계단을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사람들에게 신으로 숭배받은 라가 오랜 시간을 홀로 보내온 장소.

자신이 왜 신이라고 숭배받는지, 어째서 저들을 도와야 하는지, 왜 그들을 도울 때마다 불꽃에 의한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모른 채 지내왔을 터였다.

뜨겁네.

계단을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몸으로 느껴지는 열기가 강해졌다.

세트의 공간에 있는 아주 작은 불씨로부터 느꼈던 열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불꽃이 꺼질 거라 생각했다.”

거의 정상에 도착하자 커다란 의자에 앉은 라가 보였다.

라는 날 바라보며 안도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떻게 찾아왔는지 물으려고 했는데.”

잠시 날 훑던 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묻지 않아도 되겠구나.”

지금까지 만났던 무기의 영혼들이 했던 말과 비슷했다.

마치 자격이 있는, 응당 찾아올 만한 사람이 자신을 찾아냈다는 듯한 뉘앙스.

처음엔 무슨 말인지 궁금하기도 했었지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내가 무기왕이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답.

그래서였다.

답을 얻은 뒤에는 굳이 궁금해하지 않기로 한 것은 말이다.

“밖의 상황은 어떻지?”

“세트의 다크메타 때문에 아수라장입니다. 사방에서 데몬이 끝도 없이 쏟아지고 있고요.”

“흠… 혼돈과 사톤인가.”

혼돈과 다크메타, 사톤과 데몬.

단어는 달랐지만 의미는 동일했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세트를 만났겠군.”

고개를 끄덕이며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 봤던 모든 것들을 이야기했다.

세트의 공간엔 엄청난 양의 혼돈이 있으며 불꽃이 꺼지는 순간 세상으로 퍼져나갈 준비를 마쳤다는 이야기.

“세트는 어떻지?”

“라 님이 마지막으로 봤던 모습 그대로입니다. 불꽃으로 접근하는 걸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느낌이었고요.”

음.

조금 전 상황을 떠올리다 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때 당시엔 워낙 정신이 없어 따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

마지막에 세트는 왜 공격하지 않은 거지?

리볼버로 빠져나온 뒤 불꽃을 감싸고 있던 다크메타로 다이빙한 직후.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난 다크메타 속을 헤맸었다.

다크메타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세트라면 충분히 날 공격할 수 있었을 터.

어째서 그 시간 동안 날 내버려둔 건지 의문이었다.

“의아해할 필요 없다. 그 녀석도 혼란스러운 걸 테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날 향해 라가 입을 열었다.

마치 내가 의아해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아는 듯한 말이었다.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좀 의아한 상황이 있긴 했으나 쉽게 이해되진 않는 말이었다.

사방으로 혼돈을 뿜어내며 불꽃과 태양을 삼키고 있던 세트였다.

“세트와 혼돈은 동일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다른 존재이기도 하다.”

어려운 말이었다.

눈썹을 찡그리고 있자 더 자세히 설명을 해주려는 듯 몸을 앞으로 내미는 라.

“혼돈은 끊임없이 파괴와 종말에 대한 유혹을 내뱉지. 혼돈 그 자체를 담고 있는 세트는 그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담고 있다…?

겉에서 보기엔 혼돈 그 자체로 보이지만, 사실 세트는 혼돈을 담고 있는 그릇에 불과하며 그렇기에 자신의 의지와 혼돈의 유혹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단 말일까.

“혼돈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강해졌기에 점점 더 세트를 침식해나갔지. 세트의 감정과 생각 등 모든 걸 말이다.”

“그럼 세트는 자의와는 다르게 혼돈의 유혹으로 인해 라 님을 집어 삼켰다는 건가요…?”

라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라가 내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쉽게 납득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기억의 문에서 봤던 라는 세트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새도 없이 혼돈에게 집어 삼켜졌었기 때문이다.

“불꽃에 도달하기 전, 혼돈에 둘러싸여졌을 때 느껴진 게 있을 거다.”

워낙 급했던 상황이라 머릿속엔 오로지 불꽃을 찾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떠올려보니 불꽃의 감각 외에도 느껴졌던 것들이 있었다.

목소리가 들리거나 하는 건 아니었어.

뭐랄까… 몸을 감싸고 있던 다크메타를 통해 메시지가 전달되는 듯한 느낌.

“갈등, 후회, 혼란, 그리고 죄책감.”

많은 것들이 다크메타를 통해 전달됐었다.

한 단어로는 정리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

떠오르는 대로 읊은 감정들에 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삼켜지는 순간 너와 같은 걸 느꼈다.”

“그 속에서 느껴졌던 게 세트의 감정이란 말인가요?”

“지금의 세트가 날 삼킬 때와 같은지는 알 수 없다.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까. 하지만, 혼돈이 증식하며 힘이 강해져 이전보다 세트를 더 깊숙이 잠식했을지언정. 그릇으로써 존재하는 이상 세트도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닐 거다.”

혼돈의 유혹에 의해 행해지는 행동과 세트로써 행하는 행동이 다르다.

마치 이중인격처럼.

“그렇기에 난 세트를 원망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원망할 수가 없었다.”

기억에서 봤던 장면을 떠올렸다.

라가 불꽃에 의해 고통을 느끼려 하자 지체 없이 손을 잡아 통증을 막아줬던 세트.

처음에 기억만 봤을 땐 배신을 하기 전의 가면일 거라 생각했었다.

그럼 마지막 순간 일부러 날 불꽃으로 보내줬다…?

그 전까지 미친 듯이 공격했던 세트를 보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라의 이야기를 듣고 다크메타 속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떠올리니 조금씩 납득이 가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세트의 모든 걸 아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가 세트의 의지인지, 어디서부터가 혼돈에 의한 것인지는 말이다. 하지만… 삼켜진 순간 느꼈던 건 분명 세트의 후회와 죄책감이었다.”

무엇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인지는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밀어 준 라를 집어삼킨 것에 대한 후회.

불꽃으로 향하며 다크메타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세트의 감정을 느꼈기에 가능한 추측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후회하고 있다.”

후회한다 말하는 라의 눈으로 슬픈 빛이 어렸다.

“망설였으면 안 됐다. 세트는 더 깊은 혼돈의 수렁으로 빠졌고 그 결과로 이런 사태가 일어났으니까.”

이거 참.

예상이랑 많이 다르네.

조금 전 들은 세트에 대한 이야기와 자책하는 라의 모습.

자신을 배신하고 집어삼킨 것에 대해 바득바득 이를 갈고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이를 갈긴커녕 라는 세트를 구해주지 못했다며 자책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구나.”

고개를 든 라가 따듯한 눈으로 날 응시했다.

“불꽃이 꺼지기 직전, 모든 걸 되돌릴 수 있는 이가 왔으니.”

“….”

잠시 생각을 하다 찜찜한 기분에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전 라 님과 세트 사이에 있었던 과거를 바로잡으려 온 건 아니었습니다.”

둘의 사연에 대한 건 애초에 몰랐었다.

여기까지 온 이유는 그저 라의 불꽃에 대한 나의 욕심이었다.

“알고 있다. 그대에게 있어 난 그저 싸우기 위한 무기에 불과…?”

라가 말을 끝마치기 전에 호다닥 손을 들어 올렸다.

무기를 찾으러 온 건 맞지만, 불과하다라는 단어는 맞지 않았다.

“그것도 절대 아닙니다. 저한테 있어 무기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거든요. 음 뭐랄까.”

갑작스레 말을 하려니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기에,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그 뭐랄까, 함께 싸워나가는 도… 동료랄까…? 아니면 친구…?”

동료와 친구라니.

내 입으로 말해놓고도 무척이나 머쓱해지는 단어였다.

“….”

화났나.

오그라드는 말을 해서인지 벙찐 표정을 짓고 있는 라.

태양의 신이라 불렸던 존재도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하!”

잠시 후, 라가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동료와 친구라.”

한참을 웃던 라가 동료와 친구란 단어를 곱씹었다.

도시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정작 모든 순간이 혼자였던 라.

라에게 있어 두 개의 단어가 주는 의미는 단순하지 않은 듯했다.

“그럼 여기 온 것까지는 너의 욕심이었다 치고.”

“네… 네.”

라가 조금 전보다 한껏 풀린 얼굴로 날 바라봤다.

“새로운 동료이자 친구로서 부탁을 하나 할까 하는데, 들어줄 수 있겠나?”

“…!”

“내가 망설여 하지 못했던 걸 떠넘기는 느낌이라 미안하지만 말이야.”

미안하다 말하는 라를 향해 힘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라의 부탁이 아니었을지라도 어차피 내가 하려던 일이었다.

“천만에 말씀을요.”

다시 한번 웃어 보인 라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벅.

천천히 바로 앞까지 걸어온 라.

“불꽃을 주기 전에, 네가 알아둬야 할 게 있다.”

라가 희미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 * *

스윽.

천천히 눈을 떴다.

다크메타의 속.

보이는 건 어둠뿐이었다.

좀 차분해지니 더 잘 느껴지네.

라의 말대로였다.

다크메타를 통해 느껴져 오는 세트의 감정들.

정신이 없었던 때보다 더 선명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후우.”

작은 호흡을 뱉어낸 뒤.

[유탈라스 - 동기화]

무기고에서 비늘을 꺼내 들었다.

“가겠습니다.”

“지켜주마.”

귓가로 유탈라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신 의태 - 갑주]

다크메타 안에서 흩어져 있던 비늘이 내 몸을 빠짐없이 감싸기 시작했다.

이전에 주변을 감싼 것과는 달리 피부와 완전히 밀착한 비늘들.

지금껏 날 지켜왔던 유탈라스.

난 유탈라스를 믿는다.

다시 한번 유탈라스에 대한 믿음을 확인한 후.

“불꽃이여, 활활 타올라….”

사방을 감싸고 있는 다크메타를 응시했다.

“어둠을 밝혀라.”

[라 - 불꽃의 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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