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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40화 (140/473)

140화. 정화

쾅!!

피라미드의 밖에선 데몬들과 헌터들의 싸움이 한창이었다.

그런 난장판의 뒤에서 땅에 손을 짚고 있는 남자, 비칼.

울컥!

비칼의 입에서 한 움큼의 피가 터져 나왔다.

다크메타로 이루어진 모래 폭풍을 막느라 힘의 사용 한도를 한참 넘어선 대가였다.

‘밀린다.’

비칼의 모래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약해지고 있었다.

한도를 넘어 끌어올린 힘이 비칼의 몸을 좀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다크메타로 이루어진 모래 폭풍은 다른 데몬에게서 나온 다크메타를 흡수하며 계속해서 덩치를 불려갔다.

“끄아악!”

“지원은 언제 오는 거야!”

“더 이상 지원은 없습니다! 이곳 말고도 데몬이 들끓고 있다고 합니다!”

상황이 안 좋기는 뒤쪽의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줄어들긴커녕 점점 숫자를 늘려 가는 데몬 때문에 질 수밖에 없는 소모전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보낸 지원 병력도 오는 길에 데몬을 만나 막혀 있는 상황.

잠시 후면 아슬아슬하게 맞춰져 있던 균형이 무너지며 순식간에 다크메타에게 덮쳐질 터였다.

드드드드!

명백하게 불리하고 결말이 정해진 싸움이었지만, 그렇다고 후퇴를 선택할 순 없었다.

전략적으로 후퇴가 가능한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 물러서는 순간 카이로는 폭풍과 데몬에 삼켜져 초토화될 테고, 그건 다른 도시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사우디와 그리스, 터키에서 헌터 병력을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희망적인 이야기였지만, 현 상황에 봤을 땐 무의미한 지원이었다.

각 국가에서의 병력이 도착할 때쯤이면 이집트는 이미 사라져 있을 테니 말이다.

‘1분 정도인가.’

비칼이 남아있는 힘을 가늠하며 입가에 고인 피를 뱉어냈다.

절대 소멸하지 않은 채 강해지기만 하는 모래 폭풍과의 싸움.

처음부터 예상했던 결말이지만 막상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 오니 스스로의 무력함이 느껴졌다.

‘마지막이다.’

점점 막아내기 벅차지는 힘을 느끼며 비칼이 마지막 모래를 끌어 올리기 위해 눈을 감았다.

이것까지 쏟아내고 나면 아마 서 있을 힘조차 사라질 터였다.

‘비술, 모래의…?’

최후의 힘을 끌어올리려는 찰나.

손을 짚고 있는 땅으로 정체불명의 떨림이 느껴졌다.

후끈.

느껴진 건 떨림 뿐만이 아니었다.

떨림과 함께 손을 타고 올라오는 열기.

왜 모래 안에서 이런 열기가 느껴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푸화아아아아아!!

“…!!”

백운이 들어갔던 피라미드 안에서 불꽃이 터져 나왔다.

피라미드를 쌓고 있는 돌 사이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불꽃.

꽤 먼 거리에 있음에도 후끈함이 느껴지는 강한 열기였다.

“부… 불꽃?”

데몬을 막고 있던 헤리아와 무하타, 셀린을 포함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헌터의 눈길이 불을 뿜어내고 있는 피라미드로 향했다.

한참을 뿜어져 나오더니 서서히 사그라들기 시작한 불꽃.

불꽃이 사그라듦과 동시에 마주하고 있던 것들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모… 모래 폭풍이!”

비칼이 필사적으로 막고 있던 모래 폭풍.

강해지기만 할 뿐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던 폭풍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데몬도 약해지고 있습니다!”

비정상적으로 크기가 키워져 본래보다 강한 힘을 냈던 데몬도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줄어드는 크기에 비례해 미친 듯이 날뛰던 공격성마저 잃어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스윽.

그제야 몸을 일으킨 비칼이 사그라들고 있는 모래 폭풍을 응시했다.

덩치를 키워가던 다크메타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 도시를 습격하던 데몬이 물러나고 있습니다!

# 조금 전보다 훨씬 약해졌습니다! 이젠 저희만으로도 충분합니다!

‘….’

인이어로 들려오는 각 도시의 보고를 들으며 비칼이 고개를 돌렸다.

불길은 사그라들었지만 여전히 후끈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는 피라미드.

비칼이 시계가 채워진 왼손을 들어 올렸다.

‘아직 10분 남았는데.’

내내 무표정했던 비칼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빠르군.’

* * *

마지막 불꽃을 터뜨림과 동시에 몸을 감싸고 있던 비늘도 사라졌다.

“후우.”

고개를 돌려 다크메타가 가득했던 공간을 둘러봤다.

사방을 채우고 있던 다크메타가 터져 나온 불꽃에 닿으며 모두 소멸해버린 공간.

공간은 거짓말처럼 깨끗해져 있었다.

신전이었구만.

다크메타가 모두 걷히니 이곳이 어딘지 알 것 같았다.

세트와 라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됐던 장소.

마지막으로 세트가 라를 집어삼켰던 신전이었다.

다크메타로 둘러싸여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

해님도 말짱하시고.

공간에서 집어 삼켜져 제 기능을 모두 잃어갔던 태양.

태양을 삼키던 어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고, 그 덕인지 태양은 본래의 기능대로 찬란한 빛과 열기를 뿜으며 공간을 밝히고 있었다.

스르르…!

태양의 빛 때문일까.

세트에 의해 유지되고 있던 공간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장소가 사라진다는 건 한 가지를 의미했다.

끝.

라와 세트가 바라던 끝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끝임엔 분명했다.

회귀 전엔 어떻게 됐을까.

흩어지는 공간을 보고 있자니 새삼스레 의문이 생겼다.

마지막 사태까지 가기 전에 막아내긴 했지만, 공간에 있던 다크메타가 터져 나갔다면 보나마나 엄청난 참사가 일어났을 터였다.

내가 아니었어도 누군가 막았으려나.

다크메타는 라의 불꽃이 아니면 소멸되지 않는 존재.

내가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면 불꽃은 그대로 사그라들었을 터인데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모르는 일이지.

아무리 생각해봐야 풀리지 않을 의문이었기에.

생각하는 걸 멈추고 두 팔을 뻗어 올렸다.

우두둑!

“끄어어!”

뼈 마디마디가 시원하게 풀리는 걸 느끼며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천천히 소멸되고 있는 공간.

설마 문도 소멸되나.

뼈마디와 함께 멈춰있던 뇌도 제 기능을 찾은 탓일까.

불현듯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문을 통해 들어온 공간인 만큼 저 문이 아니면 나갈 방법이 없었기에.

호다닥!

문을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 * *

무사히 문을 빠져나온 뒤.

등 뒤에서 서서히 흐릿해지는 문을 바라봤다.

오 씨.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하더니.

공간과 연동되어있는 문 역시 사라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 보여서 수리검을 던지는 대신 달려 나온 건데.

이젠 완벽히 사라진 문을 보고 있자니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밖은 어떠려나.

다크메타가 존재하기 위해서 필수 조건이었던 그릇, 세트.

밖에 드글거렸던 다크메타는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했다.

세트와 공간이 소멸되며 함께 사라졌을 것 같긴 하지만, 보기 전에는 단정 지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저벅.

통로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세계의 문화유산이자 이집트의 자랑거리인 피라미드.

역시 오래 살고 봐야 돼.

인터넷을 통해서만 봤었는데 이곳에 직접 들어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으음, 피라미드 스멜.

사실 스멜이라고 할만한 건 딱히 없었다.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어서인지 오래되고 꿉꿉한 냄새가 나는 게 다였기 때문이다.

오래된 스멜.

어찌 됐든 이집트의 랜드마크에 와봤단 만족감을 느끼며 빛이 보이는 통로의 출구로 발을 뻗었다.

응…?

출구로 빠져나가며 눈 앞에 펼쳐진 광경.

가볍던 발걸음이 멈춰지고, 여유롭던 눈동자가 오돌오돌 떨리기 시작했다.

들어갈 때의 통로와는 다른지 내가 나온 곳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였다.

꼭대기에 존재하는 유일한 문.

신화에 따르면 이집트의 신 혹은 왕만이 드나들 수 있다던 문이었다.

….

물론 그런 문에서 나왔다는 사실 때문에 굳은 건 아니었다.

몇 번 겪긴 했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꿀꺽.

피라미드 아래에 있는 모든 이들.

비칼과 무하타, 헤리아, 셀린을 포함한 정부 소속 헌터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향해 있었다.

* * *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향해 있는 셀린의 눈동자.

셀린의 두 눈은 꼭대기 문에서 등장한 백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덜덜.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백운이 나타난 순간부터 셀린의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두려움이나 공포에 의한 떨림은 아니었다.

‘….’

이집트를 집어삼키려던 다크메타의 소멸과 함께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등장한 남자, 백운.

피라미드 꼭대기의 뒤론 사막의 태양이 찬란한 빛을 사정없이 뿌려대고 있었다.

태양의 후광으로 인해 정작 백운이 있는 곳엔 그림자가 드리워졌지만.

그림자는 마치 온전히 보이지 않는, 감히 똑바로 바라봐선 안 되는 존재를 가려주는 역할인 것처럼 느껴졌다.

‘경외감.’

셀린은 자신의 몸이 떨리는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과학자로 살며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셀린은 이집트에 퍼져있던 숭배 사상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지금이야 개방이 나타나며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개방이 없었을 과거에 평범한 사람을 신격화하며 숭배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겪어보지 못했던 것뿐이구나.’

하지만, 지금은 그 마음을 완전히 이해해버리고 말았다.

셀린의 몸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경외감.

이 경외감 역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증명할 수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채워지고 우러러보게 만드는 신비로운 감각이었다.

주륵.

셀린도 모르는 사이, 얼굴로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곧이어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렇게 셀린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피라미드 꼭대기를 바라보며 경이로움을 느끼고 있는 사이.

우당탕!!

“꾸어어어어!!”

근엄한 척 계단을 내려오던 백운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기 시작했다.

* * *

너무 긴장한 탓이었다.

피라미드에서 등장하기 무섭게 집중포화를 받듯 쏟아진 사람들의 눈길.

감당하기 힘든 부담스러움에 몸이 굳어버렸고, 나도 모르게 근엄한 척 몸을 빳빳하게 세운 채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

그리고 잠시 후.

어울리지 않는 왕의 걸음을 흉내낸 것에 대한 벌이었을까.

삐끗.

어?

계단을 잘못 밟으며 몸의 균형이 무너졌다.

평소라면 반사신경을 이용해 다시 자세를 잡았을 테지만.

세트와의 싸움 직후여서인지 지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데굴데굴… 쿵!!

그렇게 초스피드로 도달하게 된 피라미드의 아래.

푹신한 모래여서 망정인지 딱딱한 바닥이었다면 머리가 터질 뻔했다.

욱씬.

물론 계단에 우당탕 처박으며 내려온 몸은 몹시 욱씬거렸다.

하지만 그런 욱씬거림 따위는 간단히 이겨내 버리는 게 있었다.

쪽팔림.

쉽사리 일어날 수가 없었다.

굴러떨어지기 전 날 바라보고 있던 수많은 눈.

그 눈들이 조금 전의 모습을 다 봤을 테니 말이다.

이건 기네스 감이야.

기록을 본 적은 없지만 분명했다.

세계에서 가장 길게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인간.

근엄한 척하지 말걸.

잠시나마 왕의 흉내를 냈던 게 몹시 후회됐다.

“백운 님! 괜찮아요!?”

“백운 님!”

곧이어 달려온 무하타와 헤리아가 애타게 내 이름을 불렀다.

큰 소리로 부르지 마요.

똑똑히 들리고, 몸을 일으킬 수도 있었지만.

창피하니까.

그 대신, 정신을 잃은 척 눈을 꽉 감았다.

주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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