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전령
으음.
느껴지는 인기척에 천천히 눈을 떴다.
빠아아안.
셀린이 바로 옆에 앉아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셀린 님…? 왜 자는 사람을 그렇게 보고 계세요?”
“아, 죄송해요.”
왜 보고 있냐고 묻자 그제야 호다닥 물러나는 셀린.
멋쩍게 웃어 보인 셀린이 입을 열었다.
“그냥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나서요. 지금 침 흘리면서 자고 있는 사람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신처럼 내려오던 그 사람이 맞나.”
츄릅.
셀린의 말에 뺨까지 흐른 침을 닦아냈다.
해가 뜰 때 들어와 잠을 청해서인지 사람이 온 줄도 모르고 깊은 잠을 자버렸다.
너무 신나부러쓰.
무기고에서 빠져나온 이후.
내 기분은 성층권을 뚫고 우주로 날아가 있었다.
평소처럼 한 걸음이 아니라 두세 걸음은 더 나아갔다는 생각과 나아갈 길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기대감까지.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하늘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며 기쁨을 만끽했었다.
그나저나 셀린 님은 말이야.
사람이 침을 흘리고 있으면 못 본 척해줘야지!
약간은 괘씸하다는 생각에 셀린을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밖에 나가요, 백운 님.”
그러던가 말던가 활짝 웃으며 나가자고 말하는 셀린.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걸 알아서인지 오늘따라 밝게 웃는 셀린이었다.
“밖은 왜요?”
방구석 히키코모리 출신답게 되묻자 셀린이 당연한 걸 묻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집트 바다에서부터 고생 밖에 안 하셨잖아요. 제 부탁 때문이긴 하지만요.”
그거 아니라니까.
불 구하러 간 거라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제가 이집트 구경시켜 드릴게요.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요.”
“맛있는 거요?”
꼬로록.
맛있는 거라는 말에 배가 즉각적인 신호를 보내왔다.
생각해보니 어제부터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었다.
병원 밥은 더럽게 맛없었지.
사막 나라 아니랄까봐 정말 모래알 씹는 맛이었다.
스윽.
손을 들어 셀린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좋습니다!”
침대에서 빠르게 일어나려는 찰나.
셀린이 손을 들어 내 움직임을 막아섰다.
“…?”
다시 한번 빙긋 웃는 셀린.
“세수는 하고 가셔야죠.”
“네… 넵.”
마음을 가라앉힌 뒤 병실 안쪽 세면대로 걸음을 옮겼다.
* * *
앞에 놓인 다리를 집어 한 입 베어 물었다.
“와우.”
“맛있죠?”
고개를 끄덕이며 폭풍 흡입을 시작했다.
앞에 놓인 건 흡사 닭의 모습을 하고 있는 비둘기.
이집트가 자랑하는 요리 중 하나라고 셀린은 설명했다.
- 비둘기는 좀.
처음 식당에 들어와 셀린을 향해 고개를 저었었다.
왠지 모르게 비둘기라 하면 번화가 길거리에서 쓰레기나 널브러진 토를 쪼아먹는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 이집트 비둘기는 직접 사육해서 깨끗하니까 걱정마세요.
나를 달래는 셀린을 미심쩍은 눈초리로 쳐다봤지만.
막상 한 입 베어 무니 무척이나 담백한 맛이었다.
“육즙이 팡팡 터지네요.”
“그쵸? 맛있다니까 안 믿고 그러세요.”
“제가 겁이 많아서요.”
빠르게 대답을 하고 단백질 섭취를 위해 가슴살을 뜯었다.
겁이 많다는 말에 푸훕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셀린.
다르네 달라.
다크메타를 조사하는 게 고됐는지 셀린은 항상 녹초 상태였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전과 달리 생기가 팡팡 터지는 모습.
다크메타 일이 해결되며 근심이 사라진 모양이었다.
“백운 님은 이제 어디로 가시나요?”
“한국으로 돌아가야죠.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그렇군요, 언제 가시려고요?”
비둘기 날개를 씹으며 어제 봐뒀던 비행기 시간을 떠올렸다.
“다크메타 때문에 아직 공항이 폐쇄된 상태더라고요. 빨라야 일주일 뒤일 거 같아요.”
“다행이네요.”
“네?”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셀린이 미소를 지었다.
“무하타 님과 헤리아 님도 백운 님을 보고 싶어하거든요. 이집트가 큰 신세를 졌으니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고요.”
“하하… 이거 참.”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몇몇 이들에게 이집트를 구한 영웅이 되고 말았다.
나쁘진 않아.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정의로운 목적으로 시작된 일은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결과는 해피엔딩이니 또이또이 한 거 아니겠는가.
“두 분은 바쁘신가 보네요.”
“백운 님, 못 들으셨나요?”
“네? 뭐를요?”
셀린이 무언가를 검색한 뒤 내게 핸드폰을 건넸다.
“푸훕!”
웃음이 터진 건 아니었다.
핸드폰에 검색되어있는 내용에 놀란 것이었다.
# 세기의 미스테리, 스핑크스 하루아침에 실종.
시… 시발.
진짜 스핑크스였어?
문을 열기 전 무슨 수수께끼를 내려던 사족보행 데몬을 떠올렸다.
마음이 급했던 터라 들어보지도 않고 가루로 만들어버렸는데 진짜 스핑크스였을 줄은.
내가 세계의 문화 유산을 가루로 만들었구나!
“백운 님, 왜 그러세요? 괜찮아요?”
“네, 하하! 사레가 들려서.”
이실직고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집트를 구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어.
암, 그렇고말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자기 합리화를 할 뿐이었다.
“어쨌든 사라진 스핑크스 때문에 바쁘신 거 같더라고요. 어떻게든 찾아내라는 명령을 받아서요.”
죄송합니다.
무하타 님, 헤리아 님.
아마 못 찾을 거예요.
“아, 백운 님. 비행기 예약은 하셨어요?”
“시간만 확인하고 아직 예약은 안 했어요.”
까먹을 수도 있으니 미리 해둘까.
말 나온 김에 하고자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아.
텅 비어 있는 주머니에 깨닫게 되었다.
피라미드에서의 싸움으로 내가 잃게 된 것들을 말이다.
꼬챙이 됐었지.
칼날 모양으로 날아든 다크메타에 내 몸과 함께 꿰뚫려버린 핸드폰.
상처가 너무 빨리 아물어 다크메타에 꼬치가 됐었다는 사실도 까먹고 있었다.
산지 얼마 안 됐는데.
그리스로 향하기 전 유연경, 배이슬과 함께 샀던 신상 핸드폰이었다.
기능을 제대로 써보기도 전에 생명을 다해버린 것.
심지어 액션 캠도 망가졌네.
샹.
육성으로 터지려는 욕을 간신히 참아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다크메타 안으로 들어갔을 땐 것 같았다.
아닌가? 피라미드에서 굴러떨어질 때였나.
어쨌든 핸드폰과 함께 하늘나라로 가버린 액션 캠.
한국으로 돌아가면 액션 캠과 핸드폰 먼저 장만해야겠다.
“핸드폰 없나요?”
뒤적거리다 말고 멍 때리더니 혼자 고개까지 저어서일까.
셀린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쳐다봤다.
“망가진 거 깜빡했었네요. 뭐 연락 올 곳도 없으니 상관없지만요.”
“그럼 비행기 예약은 제가 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셀린에게 고개를 끄덕인 후 비둘기 흡입을 재개하려는 찰나.
와장창!!
옆에 있던 창문을 꿰뚫고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 * *
며칠 전, 백운이 이집트에 도착하기 전의 대산 본사 80층.
회장 소피아가 엔티크한 의자에 앉아 아티라를 바라봤다.
“아티라, 어떻게 됐나요?”
옆에 서 있던 아티라가 대답 대신 고개를 저어 보였다.
“이런.”
평소엔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온화하고 유한 얼굴을 유지하는 소피아였다.
그런 소피아의 얼굴에 드리워지는 그늘.
심각한 건 아티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부 사라졌습니다. 파견을 나갔던 인원들도, 사라진 이들을 찾으러 나간 헌터도요.”
소피아와 아티라가 심각한 이유였다.
얼마 전부터 포착된 다른 회사들의 움직임.
대산과 연관된 회사도 아니었기에 그냥 넘겨도 무방했지만.
소피아는 그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채고 몰래 인원을 투입해 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 투입됐던 인원들의 연락이 끊겼습니다.
투입되고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들려온 보고였다.
끊임없이 본사와 컨택을 하고 있던 인원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심어뒀던 추적 장치마저 무력화되어 찾는 게 막막해진 상황.
- 헌터들을 투입해서 찾으세요. 비밀리에 찾지 않아도 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땐 제가 책임질 거예요.
비공식적인 수사엔 한계가 있었기에.
소피아는 사라진 이들을 찾기 위해 공식적으로 헌터를 투입하기에 이르렀다.
모든 정보망을 이용해 사라진 이들을 찾기 시작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소식이 들려올 거라 생각했고, 소피아의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소식이 도착했다.
- 헌터들이 사라졌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소식은 아니었다.
오히려 악화되어버린 상황에 대한 보고였다.
“아티라, 어떻게 생각해요?”
상황이 여기까지 치닫자 소피아는 아티라 휘하에 있는 직속 헌터 부대인 마틸다를 현장에 투입했었다.
아티라 만큼은 아니더라도 2급 혹은 3급 정도의 전력을 가진 실력자들이었다.
“조직적이고 계획된 움직임입니다. 만만치 않은 전력이고요.”
그렇게 투입됐던 마틸다는 다행히 실종되지 않고 본사로 복귀했다.
현장에서 만난 적에게 많은 상처를 입은 채로 말이다.
“그리고.”
말을 하던 아티라가 잠시 망설이자 말해보라는 듯 소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부 정보가 새어나가고 있습니다.”
소피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티라가 말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던 것이었다.
직속 부대 마틸다의 투입은 소피아와 아티라를 포함해 알고 있는 이가 몇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도 적은 마치 마틸다가 올 걸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었다.
“….”
소피아가 의자에 몸을 기대며 생각에 잠겼다.
‘어디서일까.’
마틸다의 정보에 대해 알고 있던 건 극히 소수.
이 중에서 분명 내통자가 있었다.
‘그리고 기업들의 움직임은 대체 무얼 위해서?’
한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숨죽이고 있던 기업들.
그런 기업들이 서로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움직이고 있었다.
‘누굴 믿어야 하고, 누굴 믿으면 안 되는 거지.’
소피아의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내통자가 있는 건 분명했지만, 짐작조차 가지 않는 상황에서 들쑤시는 건 현명하지 못했다.
오히려 많은 반감과 분열을 일으켜 상황이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어.’
사방에서 불길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순 없는 노릇.
어떻게 해서든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소피아 님, 내부의 적이 누구인지 모르는 이상 섣불리 움직이긴 힘듭니다.”
“맞습니다. 오히려 우리 인원들이 위험해지기만 할 뿐이죠.”
슥.
의자에서 일어난 소피아가 책장으로 걸어가 케이스 하나를 꺼냈다.
“그건…?”
전령.
어떠한 전파망도 거치지 않고 특정인에게 무조건 도달하는 전령이었다.
“회담 때 선물로 받아뒀었습니다. 핸드폰이나 위성망이 발달된 세상이다 보니 직접 쓰는 일이 생길 줄은 몰랐지만요.”
아직 소피아의 의중을 눈치채지 못한 아티라.
소피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럴 땐 피아식별이 되지 않는 내부 인원보단, 완벽한 외부인이 더 안전한 법이니까요.”
“누구에게… 보내시려는 건가요?”
전령에게 메시지를 적어 넣은 소피아의 입가로 미소가 그려졌다.
“완벽한 외부인이자, 최대한 아껴두려고 했던 비장의 카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