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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44화 (144/473)

144화. 망자의 길

며칠 전 그리스의 성당.

성당 꼭대기에 망토를 두른 남자, 로인이 앉아있다.

‘….’

성당과 사신.

어떻게 보면 상극이라 부를 수도 있는 조합이지만.

로인은 이곳을 좋아했다.

시내에선 시끌벅적했던 사람들도 정숙을 지키는 장소.

로인은 성당의 고요함을 좋아했다.

“엄마! 오늘 저녁은 뭐해 줄 거야?”

로인의 아래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젠 집에 간다는 사실 때문인지 아이는 무척이나 신이 난 얼굴이었다.

“티나야, 조용히 해야지. 성당 앞이잖니.”

그런 아이에게 엄격한 표정으로 주의를 주는 어머니.

어머니의 꾸중에 아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슥.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이의 머리로 어머니의 손이 올려졌다.

“오늘 저녁은 바베큐란다. 아주 맛있게 구워줄게.”

어머니의 따듯한 음성이 들려오고.

이내 밝아진 아이가 어머니의 팔에 매달리며 함박 미소를 지었다.

‘….’

누가 봐도 따듯한 모녀를 바라보고 있는 로인.

로인의 얼굴로 묘한 빛이 스쳤다.

‘어째서 저렇게까지 웃을 수 있는 거지.’

기억이 닿는 한도 내에서 로인은 단 한 번도 저런 미소를 지어본 적이 없었다.

정확히는 제대로 웃어본 적이 있는지조차 확실치 않았다.

로인에게 감정이 아예 없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단지 저 정도 크기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는 것뿐이었다.

- 그 메토스란 놈을 박살내면?

로인의 머리로 이연화의 앞을 막았던 백운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로인을 만났던 이들의 행동은 가지각색이었다.

누군가는 사신을 물리치겠다며 성경을 읽었고, 누군가는 죽고 싶지 않다며 울부짖었다.

그들이 갖고 있던 공통된 감정은 단 하나.

사신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는 달랐다.’

처음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그런 눈으로 쳐다본 건 말이다.

뒤에 있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다가왔다간 망설임 없이 죽여버리겠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지킨다라….’

로인은 사신의 힘을 개방한 이후 수명이 다해가는 사람의 목숨을 거두어 왔다.

이미 몇 년째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도록 반복한 일.

- 제발 살려줘!

처음 목숨을 거두러 간 날.

로인은 개방한 힘이 스스로에게 잘 어울리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할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았었다.

보통은 살려달라고 비는 사람을 보면 한 번쯤은 망설여질 법도 한데 말이다.

- 스칵!

어차피 죽을 사람의 목숨을 거두어 가는 것.

그저 순리의 일부분이라 생각했기에 아무렇지도 않았으리라.

‘….’

오랜 시간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의 목숨을 거두기만 한 로인이기에.

몹시 어려운 개념이었다.

거두는 것이 아닌 지킨다는 개념은 말이다.

‘무모하며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연화를 지키기 위해 운명을 거스르는 길을 선택했던 백운.

그 선택으로 인해 모두가 죽을 거라 생각했지만.

백운은 로인과 운명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볍게 이연화를 지켜냈다.

‘어떻게?’

그 날부터였다.

순리에 따라 목숨을 거두던 로인의 머릿속.

머릿속에 해결되지 않는 첫 번째 의문이 생겨나 버렸다.

어떻게 한낱 인간이 그런 힘을 가지고 있으며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건지 궁금했다.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가볍게 운명을 비웃어버린 방법.

그 방법을 알고 싶었다.

그리고.

‘어째서?’

로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두 번째 질문이었다.

메토스가 나타났던 부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로인은 이연화와 백운을 지키며 낫을 휘두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말이다.

그래서, 물어보고 싶었다.

자신이 어째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렇게 되게끔 만든 백운에게 묻고 싶었다.

슥.

하루가 멀다하고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의문들.

자리에서 일어난 로인이 바닷가를 향해 눈을 돌렸다.

‘백운.’

당사자인 백운은 모르고 있겠지만, 로인을 걷어찬 순간부터 백운에게는 갑주의 파편이 묻어 있었다.

파편을 통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상황.

저벅.

몇 날을 고민하던 로인이 걸음을 옮겼다.

‘물어봐야겠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의문들을 풀기 위해서.

스륵.

성당 위에 있던 로인의 모습이 사라졌다.

* * *

뜬금없이 나타난 로인.

저게 왜 여기에 있어.

부지에서의 전투 이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던 로인이었다.

무슨 의도로 도와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사라졌길래 여기까지인 인연이구나 했었다.

“셀린 님, 괜찮아요. 생긴 건 저래도 음… 아니다. 이상한 놈일수도 있으니까. 어쨌든 제가 있으니 괜찮아요.”

“네… 네. 사신이라니.”

누가 학자 아니랄까 봐.

로인을 보고 깜짝 놀라길래 덜덜 떨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반대였다.

눈을 반짝이며 로인의 여기저기를 관찰하고 있는 셀린.

흥미로운 걸 발견한 학자의 눈이었다.

“한국으로 가야 하지 않습니까?”

스토커야 뭐야.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날 찾은 건지.

내가 한국으로 가야 한다는 건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 물을까 했지만,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로인이 나를 한국으로 데려다줄 수 있는지였기 때문이다.

“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길을 열어주겠다는 로인을 응시했다.

사신과 관련된 능력을 개방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정확히 로인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는 알지 못했다.

“무슨 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길로 가면 한국까지 빠르게 갈 수 있는 거야?”

“하루면 갈 수 있습니다.”

“!?”

하마터면 정체불명의 낫돌이한테 방긋 웃어버릴 뻔했다.

셀린이 비행기를 알아보고 그게 잘 풀린다 할지라도.

언제 출발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

그런 상황에서 확정적으로 하루만에 갈 수 있다니 몹시 반가운 소리였다.

“인간이 아닌, 경계가 모호한 이들이 다닐 수 있는 망자의 길입니다.”

오싹.

길 이름이 뭐가 저렇게 무서워.

망자의 길이란 이름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이 새끼 이거 설마?

설마 저번에 걷어찬 것 때문에 자신의 홈그라운드로 끌고 들어가 죽이려는 건가 살짝 의심이 들었지만.

- 서걱!

이내 부지에서 우릴 도왔던 게 떠올라 접어두기로 했다.

그리고… 묘하게 착하게 생겼단 말이야.

사신이란 능력과는 어울리지 않는 얼굴이었다.

엄청난 동안이 아닌 이상 10대로 보이는 어릿어릿함이 한몫했겠지만 말이다.

뭐, 허튼 짓 하더라도.

어떻게든 찢어내고 나오면 됐기에.

로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나도 한국까지 빨리 가봐야 해서 말이야.”

“조건이 있습니다.”

설마 제 손에 죽어주십시오 이런 거 아니겠지.

그런 말을 하는 순간 바로 달려가 입을 쳐버릴 것이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답을 주시죠.”

“오케이! 길 열어, 가자.”

뭐가 궁금한지, 내가 대답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였다.

그렇기에 일단 길로 들어가야 했다.

대답해 줄 수 없더라도 일단 길을 사용한 뒤여야 하니까.

“….”

대답이 너무 빨랐던 걸까.

조용히 날 응시하는 로인에 나도 모르게 뜨끔 해버렸다.

슥.

다행히 별말 없이 낫을 휘두르는 로인.

로인의 앞으로 흐릿한 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

괴기하게 생긴 문이었다.

로인의 모습과 비슷한 사신의 문양이 박혀 있는 문.

5m 정도 되는 높이로 그렇게 큰 문은 아니었다.

“가시죠.”

로인이 손을 휘두르자 문이 열렸고.

문틈 사이로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음산한 공기가 흘러나왔다.

소피아 님만 아니었으면 들어갈 일 없었겠는데.

보통이라면 색다른 경험을 해보자 하고 신나서 들어갔겠지만.

앞에 있는 망자의 길은 달랐다.

온도적으로 차갑다! 라기보단 온몸을 소름 돋게 만드는 오싹한 느낌이었다.

부디 착한 사신이길 바랍니다.

스스로의 명운을 한 번 빌어 준 뒤.

뒤에서 멍하게 서 있는 셀린을 바라봤다.

식당 창문으로 참새가 날아든 뒤부터 전개가 너무 빨랐던 모양이다.

“셀린 님.”

“아 네.”

“저 가요!”

한층 더 멍해지던 셀린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 애는 무언가 상식적으로 따라가려 하면 안되는구나를 이제야 깨달은 듯한 웃음이었다.

“무하타 님이랑 헤리아 님한테 안부 전해주세요. 나중에 또 놀러 온다고.”

“하하… 알겠어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겠네요. 한밤중에 갑자기 배에서 나타난 걸 시작으로 거대한 뱀을 잡아내고, 그것도 모자라서 피라미드로 홀로 들어가 다크메타를 없애버리기까지. 거기다 말도 안 되는 회복력에, 창문으로 날아든 참새와 사신 친구까지.”

친구는 아니에요.

라고 하고 싶었지만 무언가 말을 이어가려는 듯한 셀린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백운 님, 정말이지… 뭐 하는 사람이에요?”

밝게 웃으며 물어오는 셀린.

내가 잠시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셀린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농담이에요. 얼른 가세요, 백운 님.”

“네 하하… 저 진짜 갑니다! 또 봐요.”

“네, 또 봐요.”

저벅.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어울리는 속성 작별 인사.

인사를 마친 뒤 로인이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 뭐 하는 사람이에요?

뭐 하는 사람이냐… 라.

조금 전 셀린이 물은 걸 떠올리다 보니 어느새 망자의 길 바로 앞까지 와있었다.

척.

“…?”

망자의 길로 들어서기 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셀린에게 몸을 돌렸다.

나도 정확히 정리는 안 되지만.

“셀린 님, 아까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보셨죠.”

열심히 손을 흔들다 내가 돌아서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셀린.

셀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네.”

“설 사람이에요.”

“네…?”

“올라가고 올라가서.”

슥.

손을 쭉 뻗어 하늘 위를 가리켰다.

“저 하늘 끝까지 올라가서.”

나도 모르는 사이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정점에 설 사람입니다!”

* * *

대산의 본사 건물 80층.

많은 문서를 책상에 펼친 소피아가 입을 열었다.

“대운, 세강, 마천, 정국… 전부 똑같아요.”

소피아가 읊은 것은 대산과 함께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기업들이었다.

그리고 이 기업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회장들이 요 근래에 사라졌어요.”

미간을 찌푸리는 아티라를 보며 소피아가 말을 이어갔다.

“처음엔 몸이 아프거나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게 한 명이 되고, 둘이 되고 하면서 이상함을 느꼈고요.”

사라진 회장들에 대한 공식적인 기사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인식하지 않는다면 그리 이상하게 보일 일도 아니었다.

그저 모종의 이유로 대외 활동을 줄인 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상함을 느낀 후부터 여러 방면으로 모습을 감춘 회장들에게 연락을 시도했어요. 결과는 당연히.”

“닿지 않았군요.”

고개를 끄덕인 소피아가 옆에서 서류 한 장을 건넸다.

“회장들이 없어진 기업들 간의 교류에요.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기업들이 물 밑 교류 뒤에 조용히 계약을 체결했죠.”

거기다 이 일을 알아보기 위해 보냈던 인원들이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제가 만약 이들 중 한 명이라면. 다음 타겟은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어 사라지더라도 아무도 모르는 회장, 동시에 그들에게 가장 눈엣가시일 사람.”

톡.

“…!”

소피아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저일 거예요.”

“그런….”

소피아를 향해 아티라가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쿠웅!

건물을 울리는 진동과 함께.

대산의 건물이 어둠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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