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수리검의 외침
빛을 뿜어내고 있는 수리검을 향해 걸어갔다.
작아졌다 커졌다를 반복하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수리검의 빛.
어떻게 빛을 뿜어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영혼이 없는 수리검에게 감정이란 게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절박함.
수리검의 빛에선 알 수 없는 절박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내가 공간에 나타나자 더 격렬하게 뿜어내기 시작한 빛.
수리검은 내게 외치고 있었다.
빨리 눈치채라고.
빨리 눈치채서 어떻게든 해보라는 빛이었다.
왜 그러는 거냐.
저벅.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심하게 요동치는 수리검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화악…!
….
익숙한 빛이 눈 앞을 가리고.
“키르르…!!”
시야 대신 먼저 들려오는 무언가의 울음소리.
낯설지 않은 울음소리였다.
스륵.
시… 시발.
욕이 튀어나오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눈을 뜨기 무섭게 바로 앞에서 울어대고 있는 피렌조의 면상.
처음 발견했을 때조차 공명이 일어나지 않았던 수리검이었다.
그런 수리검에 엉뚱한 타이밍에 공명이 되어버린 지금.
“같이 가자꾸나…!!”
난 공명을 통해 도윤의 시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변의 배경은 토벌전 때 발견했던 부적을 통해 본 적이 있는 장소였다.
도윤과 스님들이 피렌조를 상대로 마지막 싸움을 벌였던 곳이었다.
“키르륵!!”
그리고 지금은 당시에 봤던 기억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도윤이 봉인의 문으로 피렌조와 함께 이동해 무언가들의 손에 끌어 당겨지고 있었다.
여유 넘치던 피렌조도 울부짖는 걸 봐선 자신을 끌어 당기고 있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는 듯했다.
스스스…!
기분 더럽네.
도윤의 시점으로 와있어서일까.
실시간으로 문에서 튀어나온 손들에 의해 육체가 분해되어 가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손에 의해 시야까지 뺏긴 후.
쿵!
거대한 소리가 나며 문이 닫히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스륵.
눈이 떠졌다.
뭐지?
내가 알고 있던 대로라면 봉인의 문에서 튀어나온 손들에 의해 도윤의 육체와 영혼은 전부 사라졌을 터였다.
그럼에도 지금 눈을 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는 건.
허.
도윤의 영혼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의미했다.
“어디냐 여긴.”
의아해하는 건 도윤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시야가 사라지기 전 도윤 역시 영혼의 소멸을 각오했었기 때문이다.
뭐가 됐든 다시 무언가를 보는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눈앞으로 펼쳐진 백색의 공간.
“키르르!”
백색의 공간에 있는 건 도윤뿐만이 아니었다.
함께 끌고 들어왔던 피렌조.
피렌조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앉아있었다.
딱 봐도 끊을 수 없는 엄청난 사슬들을 몸에 두른 채로 말이다.
철컥.
“….”
몸이 묶여 있는 건 도윤도 마찬가지였다.
피렌조가 도윤과 다른 게 있다면 하늘로 뻗어있는 정체불명의 사슬이 있다는 것이었다.
육체의 유무인가.
내가 알고 있는 사실 안에서 도윤과 피렌조의 차이점은 그것뿐이었다.
인간의 몸으로 완전히 육체가 분해된 도윤과 달리 데몬인 피렌조는 어느 정도의 육체가 남아있었고.
대산에서 개최한 토벌전으로 인해 피를 먹고 부활해 버렸으니까 말이다.
사아아.
공명으로 보고 있는 기억의 시간이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2배속 정도 되었던 빠르기는 5배, 10배, 30배, 50배로 차근차근 늘어갔다.
정확히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인간의 인식 범주를 넘긴 시간대가 흘러간 것 같았다.
“….”
항상 똑같은 광경이었다.
변화가 있었다면 딱 하나.
중간에 사슬을 타고 흘러들어온 피로 인해 갇혀 있던 피렌조가 사라졌다는 것.
도윤은 그대로였다.
들어왔을 때의 자세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 것 그대로 억겁의 시간을 보냈다.
핏.
그리고.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 * *
눈을 뜨자 다시 망자의 길이었다.
가만히 멈춰 서 있는 날 무미건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로인.
딸랑.
다시 한번 귓가로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수많은 망자들에 의해 천천히 짊어져 가고 있는 문.
그래서 난리를 부렸구만.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비젼 수리검이 미친 듯이 요동친 이유를 말이다.
수리검의 반응과 조금 전 공명을 본 기억.
이 두 가지는 하나의 결론으로 합쳐졌다.
도윤의 영혼은 소멸되지 않았다.
처음 저 문을 봤을 때 익숙했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광산 토벌전에서 부적의 공명을 통해 봤던 봉인의 문.
망자들이 끌고 가는 문이 바로 그 문이었다.
스윽.
고개를 들어 멀어지고 있는 문을 바라봤다.
저 문 안에 도윤이 있다.
무기와의 직접 공명은 영혼이 있을 때만 가능했었다.
그런데 조금 전 수리검과 공명이 되었다는 건 도윤의 영혼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터.
도윤이 있을 만한 곳은 저 문 너머뿐이었다.
나와 로인이 걷고 있는 길에서 한참 벗어난 곳으로 이동 중인 문.
- 제 범위에서 벗어나는 순간 망자들이 눈치챌 겁니다.
“망자들이 날 눈치채면 어떻게 돼?”
“…?”
갑작스러운 질문.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던 로인이 입을 열었다.
“같은 존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어떻게든 망자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요.”
“혹시 저 문은 뭔지 알아?”
로인의 눈이 들어 올려진 손으로 옮겨졌다.
잠시 문을 살피던 로인.
“귀문.”
“귀문…?”
“아까 말한 겁니다. 망자가 아니지만 망자화가 되어버린 것. 셀 수 없이 많은 경우 중 하나가 귀문이죠.”
현실과 망자의 세계를 이으며 특정 매개체를 통해 열 수 있는 문이라고 로인은 설명했다.
“망자의 기본 특성입니다. 자신과 다른 것을 어떻게든 끌어당겨 망자화 시키려고 하죠.”
문에서 튀어나왔던 수천 개의 손이 떠올랐다.
그게 망자의 손이구만.
“만약 저 문에 누군가의 영혼이 들어있다면. 그걸 꺼내 줄 순 없는 거야?”
“한 가지 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귀문이 열렸던 곳에 육체 같은 연결고리가 남아있는 거죠.”
도윤에게 육체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면?”
잠시 생각하던 로인이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불가능합니다. 영혼은 살아있을지언정, 저 문에 갇혀 평생 망자의 세계를 떠돌겠죠.”
조금 전 공명에서 흘렀던 시간을 떠올렸다.
최소 수백 년이었다.
기억 속에서의 도윤조차 무언가를 생각하는 걸 포기했던 기나긴 시간.
도윤은 아무것도 기다리지도,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무한히 반복되는 시간에 몸과 정신을 맡긴 채 스스로를 잃어가고 있었다.
“문을 옭아매고 있는 저것들이 다 없어진다면?”
“망자는 살아있는 것들과는 다른 법칙을 가집니다. 인간의 공격으로 인해 작은 상처도 입지 않습니다.”
로인은 애초에 문을 옭아매고 있는 망자를 없애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건 바꿔 말하면.
망자를 없앨 수만 있다면 변수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한 가지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법칙이 다르다면 공격이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겠지.
“앞에 가고 있는 문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다시 마주칠 수 있는 확률은?”
“운명이라면 만날 수도 있겠지만 희박합니다. 망자의 세계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세계. 지금 마주친 것도 수십억 분의 일에 가까운 확률이겠죠.”
“그렇구만.”
나중에 망자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생기더라도.
다시 망자의 세계에서 저 문을 마주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지금 보고 있는 문이 평생의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
지금 구하지 못하더라도.
찾아갈 수 있는 길은 확보해야 한다.
슥.
고개를 내려 목에 걸려 있는 아테네의 목걸이를 응시했다.
- 어떤 좌표든 새길 수 있는 바인딩석이다.
뒷골목에서 감정사인 에밀리가 알려 준 목걸이의 기능이었다.
음.
슬쩍 로인의 눈치를 살핀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가끔 만화책이나 영화를 보면 꼭 하지 말라는 짓을 사서 하는 놈들이 있더라고.”
뜬금없는 말 때문이었는지 로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급하단 놈이 아까부터 길을 따라 걷진 않고 이상한 말만 하고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볼 때마다 욕 엄청 했었는데. 고구마에 답답한 새끼라고.”
내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이었다.
한참 즐겁게 보던 만화도 주인공이 그런 행동을 하는 순간 욕을 박아버렸으니 말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고개를 내려 날 바라보고 있는 로인을 응시했다.
로인이 쌍욕을 박지 않도록 눈빛에 약간의 간절함을 담았다.
“넌 바로 욕하면서 가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문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게 가능할지는 미지수였다.
간신히 갔는데 에밀리의 말이 틀려 목걸이가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놓쳐버릴지도 모르는 도윤의 영혼.
이대로 못 본 척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지금… 뭐 하려는 겁니까?”
수상쩍은 기운을 느껴서일까.
로인이 불안한 눈동자로 날 응시했다.
“잠깐 친구 좀 만나고 올게.”
“무슨…!!”
로인이 무언가를 대꾸하기도 전.
[비젼 수리검]
수리검을 멀어지고 있는 마차를 향해 집어 던졌다.
* * *
대산의 본사 70층.
“한국에 오셨다면서요.”
# 회장님이 웬일로 한국에 있는 업무를 맡겼더군.
자리에 앉은 최리아가 몸을 기댔다.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걸걸한 목소리.
대산의 기둥 중 하나로 불리고 있는 헌터 장판석이었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화로 최라아가 장판석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었지만.
- 모든 말과 행동을 조심하세요. 어디서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최근 소피아에게 들었던 말 때문에 함부로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 무슨 일이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일단 본사로..
뚝.
“판석 님…?”
전기가 나감과 동시에 끊어져 버린 전화.
똑똑똑.
“실장님!”
마침 불렀던 전수희가 문을 두들겼다.
“들어와.”
허겁지겁 달려온 건지 전수희의 얼굴은 땀으로 젖어있었다.
“무언가 이상해요!”
전수희가 들고 있던 핸드폰을 앞으로 내밀었다.
조금 전 전기가 나가 시큐리티실로 했던 전화의 녹음.
# 지금 확인 중입니다. 저희도 갑자기 나… 탕탕탕!! 서걱!! 끄억!
“…!”
녹음의 끝엔 들려선 안 되는 소리가 녹음되어 있었다.
누군가에 의해 공격당한 듯한 소리.
전수희가 다급히 달려온 이유였다.
슥.
최리아가 회장실로 향하는 전화를 들어봤지만.
# 띠--- 띠---
먹통이긴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이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대산 전체의 전기가 나가고 모든 통신이 먹통이 되어버리다니.
그렇게 잠시 최라아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띵.
“…?”
최리아의 사무실 앞에 있는 엘리베이터.
전기가 나가 움직여선 안 되는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30층.
# 31층.
계속해서 위로 올라오고 있는 엘리베이터.
“수희야 문 닫아.”
“네… 네!”
끼이이… 텁!
“꺄악!!”
전수희가 커다란 문을 닫기 전.
문 사이로 누군가의 손이 뻗어져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