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문으로
“꺄악!!”
갑자기 등장한 손에 전수희가 뒤로 넘어가고.
최리아가 그런 전수희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익숙한 얼굴들이 등장했다.
“대… 대현 님?!”
대외협력부서의 이대현과 전국현.
조금 전 불쑥 등장한 건 이대현의 손이었다.
꾸벅.
최리아를 발견하자 먼저 고개를 숙이는 이대현과 전국현.
두 사람도 계단을 통해 올라온 건지 이마에 땀이 가득했다.
잠시 숨을 고른 이대현이 입을 열었다.
“아래층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아래층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총성과 전투 소리.
이대현과 전국현이 위를 향해 올라가고 있는 이유였다.
“대화 소리가 들려서 와봤습니다.”
그러던 와중 들려온 최리아와 전수희의 목소리에 이곳으로 온 것.
무언가를 생각하던 최리아가 두 사람을 향해 들어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들어가겠습니다.”
이대현과 전국현이 사무실로 들어가 문을 닫으려는 찰나.
띵.
올라오던 엘리베이터가 70층에 멈춰 서고.
열댓 명의 헌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
끼릭… 쿠아아아!
“문에서 떨어져요!”
문을 마저 닫은 이대현이 전수희와 전국현을 안고 뒤로 몸을 날렸다.
콰앙!
문밖에서 터지는 거대한 폭발음.
우당탕!
몸을 날린 이대현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문을 바라봤다.
“로… 로켓런처.”
이대현의 말에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곳은 대산 본사의 70층.
어디 내전이 일어난 전쟁터 같은 곳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사람이 있는 걸 확인한 뒤 로켓런처를 쏘다니.
현실감이 없는 일이었다.
쿠아아아… 쾅!
이젠 믿으라는 듯 다시 한 발 날아와 문을 두들기는 로켓런처.
굳게 닫혀 있는 사무실의 문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얼마 못 버틸 거예요.”
최리아가 흔들리는 문을 바라봤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방탄의 기능을 가진 특수 소재로 만들어 놓긴 했지만.
건물 한가운데서 로켓런처가 쏘아질 것까지 대비된 건 아니었다.
“무기는 가지고 있나요?”
최리아가 묻자 이대현과 전국현이 품에서 몇 자루의 화기를 꺼냈다.
심상치 않은 듯한 상황에 혹시나 싶어 챙겨온 것들이었다.
“각자가 가진 능력은요?”
최리아의 물음에 이대현과 전국현이 각자의 능력을 설명했다.
‘제대로 전투가 가능한 건 대현 님뿐인가.’
최리아 역시 암시 능력을 통해 전투에 도움은 될 수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서포터의 능력이었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 이상 발동할 수 없는 능력이었기에 총탄이 오가는 상황에는 적합하지 않은 암시.
‘금방 제압당할 거야.’
방금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적만 열 명은 되어 보였다.
이대현 하나만으로 뚫기에는 무리인 상황.
쾅!
다시 한 발의 로켓이 문으로 날아들고.
사무실의 문에 생겼던 균열이 깊어졌다.
앞으로 문이 버텨낼 수 있는 건 한 발 정도였다.
철컥.
이대현 역시 이 사실을 안 건지 견착한 총을 문으로 겨누었다.
“나가는 길은 문 옆에 있는 계단뿐이에요.”
최리아가 남은 총기를 집자 옆에 있던 전수희와 전국현도 각자의 무기를 챙겨 문을 향해 겨눴다.
통할지 안 통할지는 몰라도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쿠우우…!
문을 부수기 위한 마지막 한 발이 날아들고.
콰아아!
굉음과 함께 사무실을 지키던 문이 박살났다.
자욱해진 먼지 속에서 비춰지는 레이져 포인터를 보며 사무실의 인원들이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
쿠직!
쩌억!
“끄악!”
“누… 누구냐! 꺽!”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먼지 속에서 타격음이 들려왔다.
탕탕탕!! 쩌억!!
정렬되어 사무실로 향하던 적들의 레이져 포인터 역시 사방으로 흔들리고 있는 상황.
도착한 누군가가 사무실로 향하던 헌터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누구지?’
용병단은 본사에 거주하고 있지 않은 상황.
전수희의 말을 들어봤을 때 본사에 있던 시큐리티 역시 이미 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이대현처럼 회사에 남아있던 누군가일 수도 있지만 다가오던 헌터들을 상대로 이 정도로 싸울 수 있는 전력은 없었다.
….
쩌억!
“끄… 억.”
누군가의 신음을 마지막으로 정적이 찾아온 70층.
꼴깍.
들려오는 건 옆에 있는 사람들의 침 넘김 소리뿐이었다.
마지막에 들려온 게 누구의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엔 강한 상대를 이겨낼 만한 전력이 없었기에 부디 같은 편이길 바라야 했다.
“최리아 실장님?”
아직 걷히지 않은 먼지 속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리나 님!?”
“무사하셨군요. 다행입니다.”
먼지를 뚫고 아티라의 직속 부대 마틸다의 일원, 세리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에 있었던 작전으로 인해 부상을 입었는지 한쪽 팔과 목에 붕대를 감은 상태였다.
툭.
걸어 들어온 세리나가 잡고 있던 적 헌터 한 명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바닥으로 쓰러지며 벗겨진 헬멧에 헌터의 얼굴이 드러났다.
“…!”
누군지를 확인한 최리아의 눈이 커졌다.
낯설지 않은 얼굴이었다.
대산 용병단에 속해 있는 헌터 중 한 명의 얼굴.
‘어째서…?’
대산을 지켜야 하는 용병단이 건물 안에서 로켓을 쏴대다니.
쉽게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저도 무슨 일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단순한 습격이 아닙니다.”
세리나도 부상으로 인해 체력이 부치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띵.
언제 내려간 건지 다시 한번 70층을 향해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아군이 타고 있을 확률은 낮았다.
“80층으로 가시죠. 회장님과 아티라 님께 가봐야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최리아와 일행이 세리나를 따라 비상구로 향했다.
* * *
“그럼 소피아 회장님은…!”
계단을 오르며 세리나에게 간략한 설명을 들은 최리아.
회장인 소피아는 얼마 전부터 주변 기업들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주목을 했으며.
심상치 않은 세력이 움직이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는 것이었다.
“예, 어느 정도 예상하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타이밍에 대놓고 쳐들어올 줄은.”
만약을 대비해 마틸다 전원을 본사에 대기 시켜놨다는 소피아.
그런 소피아조차 지금의 공격은 예상을 한참 벗어나는 타이밍이었다.
‘설마 판석 님도…?’
소피아의 명령을 받아 한국으로 들어왔다는 장판석의 말을 떠올렸다.
보통 대산의 기둥들은 해외에서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도 장판석을 직접 불러들였다는 건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거라 볼 수 있었다.
“적의 전력은 보통이 아닙니다. 아마 저희와 싸웠던 적보다 더 강한 전력이 현재 본사로 들어와 있겠죠.”
앞장서고 있는 세리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을 포함한 마틸다를 기다리고 있던 함정.
가까스로 뿌리치고 빠져나오긴 했지만 함정에 대기 중이던 적들은 무척 강했었다.
“회장님께서 추가로 조치를 취해놓으셨을 겁니다. 80층에서 방어진을 구축하고 버텨야 합니다.”
세리나의 말을 들으며 최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한국에 들어와 있는 장판석.
인천과 본사는 꽤 거리가 되기에 도착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기둥 급 헌터가 오고 있다는 건, 어떻게든 버티면 희망이 있다는 걸 의미했다.
“75층은 층을 가로질러야 다음 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나옵니다.”
세리나가 앞에 있는 75층의 문을 열어젖혔다.
“제가 앞장설 테니 뒤쳐지지 않게….”
쩌억!!
“!!”
세리나가 75층으로 발을 딛는 순간.
갑자기 날아온 공격이 세리나를 날려버렸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모두의 몸이 굳은 상황.
뚜벅.
불이 꺼진 75층에서 복면의 남자가 서서히 걸어 나왔다.
“이거 이거… 마틸다도 한물 간 모양이구먼.”
기계음이 섞여있지만 뭔가 연륜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내가 가르칠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무르진 않았었는데 말이야. 아주 개판이 됐어.”
‘가르쳐…?’
“마틸다가 되기 위해서 마지막엔 5명이서 서로를 죽이게 시켰었지. 그게 마지막 관문이었거든. 요새는 개나소나 어느 정도 테스트만 통과하면 마틸다를 시켜 주는 것 같지만 말이야.”
얘기를 듣던 최리아의 눈이 점점 커져갔다.
“당신은 설마…!”
직속 부대 마틸다가 아티라에게 소속되기 전.
재능 있는 인원들을 뽑아 마틸다에 소속될 수 있도록 키운 사람이 있었다.
“교관, 카리조.”
“오호… 우리가 구면이던가?”
“유명하시니까요.”
최리아가 놀란 이유는 단순히 카리조가 유명한 인물이어서가 아니었다.
카리조를 부르는 이름은 두 가지가 있었다.
마틸다를 육성하는 죽음의 교관, 혹은 대산의 기둥.
카리조는 현 대산의 기둥 중 한 명이었다.
‘기둥마저…!’
“그대로 내버려 뒀어야지. 날 밖으로 내쫓으니 마틸다가 이렇게 약해빠진 거 아니겠나? 그 덕분에.”
서서히 다가오는 카리조.
“자네들도 죽는 거고 말이야.”
카리조의 팔에서 뿜어져 나온 물체가 최리아를 향해 날아들었다.
* * *
“잠깐…!!”
로인이 무언가를 말하기 전.
[비젼]
문 쪽으로 날린 수리검으로 몸을 옮겼다.
스윽!
오씨.
로인의 곁을 떠나 비젼하는 순간 나를 향해 쏟아지는 무수한 망자의 눈길.
살면서 이렇게 많은 눈길을 받아본 적이 있나 싶었다.
“구어어어!”
생긴 거에 어울리는 소리를 내며 망자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수천의 망자가 한꺼번에 달려드는 모습이라니.
무사히 빠져나가더라도 악몽은 확정이었다.
철그럭.
도윤이 갇혀 있을 문엔 수많은 사슬이 연결되어 있었다.
땅 아래로 뻗어있어 정확히 어디와 연결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느껴졌다.
저 사슬을 처리하지 않으면 도윤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말이다.
일단.
“구어!”
이거부터 치우자.
문으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는 수 많은 망자들.
이것들부터 치워야 문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앤 보니&메리 리드 - 동기화]
숫자가 하도 많아 자기들끼리 타고 오르고 난리가 난 망자놈들.
발아래서부터 머리끝까지 채운 망자가 내게 쏟아져 들어왔다.
좋아할지 모르겠는데.
일단 이거 좀 먹어봐라.
[데스페라도]
두두두두두두두두두!
덮어지는 망자들을 향해 쏘아지는 빛의 탄환 세례.
날 덮어 오던 망자들이 서서히 지워지기 시작했다.
스르르…!
뭔가 탄에 제대로 데미지를 받았다기보단 관통당한 길 그대로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사용 시간이 끝날 때까지 돌고 나자 사방을 덮어 오던 망자들이 모두 바스라진 상태.
그 틈을 타 사슬 바로 옆까지 다가갔다.
[사사키 코지로 - 스이카]
팔이 나가지 않도록 땅에 발을 짚은 뒤.
[발도]
끼아아아아아아아----!
검기를 뿜어냈다.
서걱.
베였…!?
처음부터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끊어진 듯한 사슬의 모습에 잠시 기대를 품었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비웃듯 곧바로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 사슬.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는 건 사슬뿐만이 아니었다.
“구어어어어어!!”
조금 전 리볼버로 쓸어냈던 녀석들 역시 다시 모습을 되찾으며 내게 밀려들고 있었다.
“후우!”
로인의 말대로 공격이 통하지 않는 녀석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하늘로 몸을 도약했다.
지금 데려가진 못하더라도.
쐐에에엑.
조금씩 가까워지는 봉인의 문.
알려줘야 한다…!
뒤에서 밀려드는 망자들을 뒤로하고.
눈앞에 있는 문을 향해.
쑤욱!
힘껏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