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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48화 (148/473)

148화. 열리지 않았던 문

새하얀 백색의 공간.

공간에 존재하는 건 한 명의 남자, 도윤이었다.

쿠구구.

한 가지 더 존재하는 게 있다면.

도윤과 마주 보고 있는 거대한 문이었다.

부적이 덕지덕지 붙은 채 굳게 닫혀 있는 문.

스윽.

도윤이 고개를 들어 오랫동안 닫혔던 문을 바라봤다.

망자들의 손에 이끌려 들어오게 된 백색의 공간.

공간으로 들어올 때 한 번 열린 뒤 두 번 다시 열리지 않았던 문이었다.

‘한 번 있군.’

현생에 육체가 존재하던 피렌조가 사라진, 피렌조를 묶고 있던 육체의 사슬에서 피가 흘러내린 날을 제외하고 말이다.

‘….’

도윤이 피렌조가 사라지던 날을 떠올렸다.

결국엔 자신이 이겼다는 듯 광적인 웃음을 토해내고 사라졌던 피렌조.

그런데 어째서일까?

그런 피렌조를 보면서도 도윤은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었다.

‘수십 년을 쫓아왔던 녀석인데 어째서일까.’

도윤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피렌조는 도윤이 도사가 된 뒤로 오랜 시간을 쫓았던 악귀였다.

사람과 동물의 피를 먹으며 점점 강해지는 피렌조.

손 쓸 수 없을 때까지 강해지기 전에 처리하고자 하루도 쉬지 않고 쫓았었다.

결국 너무 강해져 봉인의 문으로 함께 몸을 던지게 됐지만 말이다.

‘이젠 아무래도 좋다는 건가.’

고개를 들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응시했다.

매일 매일이 똑같은 것들의 연속이었다.

그저 백색인 공간뿐만이 아니었다.

몸을 묶고 있는 사슬로 인해 가만히 앉아있어야 하는 몸.

몸에서는 살아있을 때 느꼈던 수면욕이나 식욕 같은 것들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눈을 뜬 채 가늠조차 안 되는 시간을 보내온 도윤.

‘난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문뜩 궁금해졌다.

더 이상 슬픔도, 기쁨도, 즐거움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공간에서 지내온 자신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말이다.

‘난 뭐지?’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마저 들고 있었다.

난 대체 왜 여기에 앉아있어야 하며 이 상태로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걸까란 의구심.

이렇게 눈만 뜨고 있는데 나는 과연 도윤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인가란 의구심.

이런 의구심을 떠올려 봐야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하는 무용론까지.

하루에도 수십 번 이런 생각들이 도윤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

이럴 때마다 도윤은 애써 과거를 떠올렸다.

여러 의구심이 쌓이며 자신이란 존재를 지워가는 느낌이 들었기에.

조금이라도 도윤이라는 존재를 잊지 않기 위해 기억을 되살렸다.

도사 도윤.

피렌조와 함께 봉인 당하기 전 도윤이 불리던 이름이었다.

다른 사람과 비교되지 않는 힘과 신비로운 능력을 사용하며 조선에 나타났던 악귀들을 처치했기에.

많은 이들은 도윤을 도사라 부르며 악귀 사냥꾼이란 칭호도 붙여주었다.

- 콰앙!

악귀를 사냥하던 중 얻게 된 수리검.

어떤 연유로 만들어진 건진 알 수 없었다.

단지 엄청난 무게로 인해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에.

사람들에게 외면받으며 먼지만 쌓여가던 녀석이었다.

- 제가 가져가죠.

애초에 도윤의 힘은 사람의 한계를 넘은 상태였다.

수리검의 엄청난 무게.

너무 많이 사용하면 팔에 무리가 가는 건 도윤도 마찬가지였지만.

도윤은 수리검이 좋았다.

손에 감기는 묵직함과 어떤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경도가 마음에 들었다.

- 팟.

수리검을 사용하게 되며 얻은 능력도 있었다.

도윤의 도력과 합쳐지자 수리검이 위치한 곳으로 몸을 이동시키는 게 가능해진 것.

- 우린 최고의 동지구나.

누군가에겐 단순히 무겁고 사용하기 힘든 무기에 불과했던 수리검.

도윤에게 있어선 아니었다.

항상 홀로 악귀를 사냥하며 방방곡곡을 떠돌았던 도윤이었기에.

수리검은 도윤에게 있어 무기인 동시에 함께 악귀를 사냥하는 동지 같은 존재였다.

‘….’

마지막으로 수리검을 떠올리며 도윤이 눈을 감았다.

언제까지 이런 방법으로 스스로를 붙잡고 있는 게 가능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수백 년 동안 아무런 변화도 없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의 정신을 나가게 하기엔 충분한 것이었다.

‘… 가능할 때까진… 놓지 말아보자.’

스스로를 놓치는 순간 자신이 사냥해 오던 악귀와 다름없게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다.

아무 기약도 없는 공간에서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놓지 않고 잡고 있었던 이유는 말이다.

가끔은 어차피 미치든 악귀가 되든 벗어나지 못하는 공간이기에 아예 내려놔 버리고 편해질까 생각도 들었었지만.

반짝.

아직까지 기억 속엔 작은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함께 싸울 때 황금빛을 뿜어내던 수리검과 같은 빛이 말이다.

드드드…!

‘…?’

여느 날과 같이 생각을 마치고 눈을 감은 도윤.

도윤의 귓가로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끼긱… 끼긱!

어째서인지 흔들리고 있는 거대한 문.

도윤이 눈살을 찌푸리며 문을 응시했다.

도윤 역시 봉인의 문이 어떠한 원리로 이런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이곳에서 지내며 분명히 깨닫게 된 건 있었다.

저 문은 앞으로 절대 열리지 않을 거란 사실이었다.

드드드… 콰앙!!

하지만.

그런 도윤의 깨달음을 비웃듯.

앞에 있던 문이 활짝 열어 젖혀졌다.

* * *

“으아아아!”

열린 문에서 힘을 쥐어짜는 소리가 들려왔다.

쏘옥.

그리고 도윤이 있는 공간 안으로 들이 밀어진 얼굴.

짙은 흑발을 가진 남자의 얼굴이었다.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애초에 도윤이 살던 시대의 사람과는 무척이나 다른 생김새였다.

“응? 도윤!!”

하지만.

남자는 도윤을 알고 있었다.

간신히 내민 얼굴로 도윤을 발견하자마자 이름을 외치는 남자.

‘…!!’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놀라움.

갑작스런 상황에 도윤이 말을 잃은 채 남자를 응시했다.

덥썩! 덥썩! 쩌적!

“아 좀!”

남자의 얼굴과 몸으로 달라붙는 망자의 손길들.

남자는 안간힘을 쓰며 손길의 힘을 버티고 있었다.

“놔봐 이 병신들아 좀!”

그렇게 몇 개의 손을 간신히 뿌리친 남자가 도윤을 향해 무언가를 내밀었다.

비젼 수리검.

수리검을 발견한 도윤의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

어찌 알아보지 못할 수 있을까.

오랜 시간을 자신과 동고동락해 온 동지였다.

‘새로운 수리검의 주인.’

도윤이 수리검을 내밀고 있는 남자, 백운을 바라봤다.

수리검을 본 뒤에야 알 것 같았다.

충분한 자격이 있는 자였다.

아니, 정확히는 원주인인 자신을 넘어 보다 더 수리검에 어울리는 새로운 주인이었다.

“도윤… 조… 끄… 끄아아!”

도윤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던 백운이 수십 겹 쌓인 망자의 손길에 끌리기 시작했다.

드드드… 쿠웅!

그렇게 백운이 밖으로 끌려나가고.

문이 언제 그랬냐는 듯 굳게 닫히며 공간으로 정적이 찾아왔다.

“….”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바로 앞에서 보고 있는 도윤조차 알 수 없었다.

문은 대체 어디에 연결되어 있으며 백운이 어떻게 문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건지 말이다.

….

그렇게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 도윤이 멍하니 문을 바라봤다.

콰아앙!!

“으랴아!!”

그리고 다시 한번 열어 젖혀지는 문.

문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 백운은 온몸에 푸른 비늘을 감싸고 있었다.

조금 전과 비교조차 안 되는 망자의 손이 백운을 붙잡고 있었지만.

말도 안 되는 힘으로 버텨내고 있는 백운이었다.

“도윤!!”

고요하던 백색 공간으로 백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난 무기왕 백운이다!!”

어떻게든 앞으로 고개를 내민 백운이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도윤을 응시했다.

“딱 기다리고 있어!”

“…!”

수천 개의 손에 붙잡혀 있는 와중에도.

입가에 확신 가득한 미소를 짓는 백운.

망자들에게 끌려나가기 직전, 백운이 도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무조건 데리러 온다!!!”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다해 소리 지른 백운이 망자들에 의해 문밖으로 끌려나갔다.

* * *

쿵!

있다.

문이 닫히고 끌려나가는 와중에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문을 여는 순간까지 약간 걱정했었다.

- 만약 문 너머에 도윤이 없으면 어떡하지?

란 걱정이었다.

물론 로인의 곁을 떠나기 전에 마쳤어야 하는 걱정이었지만.

이런 걸 따지며 무엇이 합리적인 행동인지를 계산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있으면 됐다.

고개를 내려 아테네의 목걸이를 바라봤다.

문에 손을 대며 들이대자 빛을 뿜어냈었던 목걸이.

한 번도 바인딩석을 사용해 본 적은 없지만 목걸이에 무언가 기록되었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단 한 번뿐이지만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길도 확보했다.

남은 문제는.

“구어어어어어!”

“크라아아아아!”

이런 구울 새끼들!

도윤에게 말을 전하기 위해 유탈라스까지 꺼내며 어떻게든 버텨봤지만.

더 이상은 불가능했다.

수천을 넘어 이제는 만을 거뜬히 넘어 보이는 손이 몸에 얽혀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엄청난 괴력.

침입자에 광분한 망자들은 온 힘을 다해 날 끌어내리고 있었다.

“이 새끼들아 내가 여기서.”

[라 - 불꽃의 문양]

화륵.

비늘로 만들어진 갑주 위로 라의 문양이 새겨졌다.

벌써부터 새어 나오기 시작한 엄청난 온도의 불꽃.

“망자가 되어 줄 거 같으냐!!”

화르르르… 퍼엉!!

전력을 다해 불꽃을 뿜어냈다.

상체에서부터 폭발하듯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라의 불꽃.

“그어어…!!”

나를 감싸던 망자들이 불꽃에 휩쓸려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물론 완전히 사라지길 기대하진 않았다.

쯧.

문과 문을 묶고 있는 사슬들은 라의 불꽃에도 아랑곳 않고 멀쩡한 상태.

사라졌던 망자들 역시 잠시 후엔 다시 몰려들게 분명했다.

불꽃으로 인해 생긴 틈.

잠깐의 틈을 이용해 도윤이 있는 문을 바라봤다.

“조금만 기다려.”

“그어어!”

잠시 사라졌던 망자들이 다시 재생되기 시작했다.

“무조건 돌아온다.”

도윤에겐 닿지 않을 말을 남기고 수리검을 꺼냈다.

마지막으로 문의 모습을 눈에 확실히 담은 후.

후웅…!

로인이 있는 길을 향해 수리검을 던졌다.

* * *

공간으로 들어온 백운에 의해 순간이지만 소란스러웠던 공간.

다시 고요함이 찾아온 공간에서 도윤이 문을 응시했다.

‘문이 열렸다.’

절대 열리지 않을 거라 확신했던 문.

작은 희망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었는데.

조금 전 그 문이 열렸다.

그것도 활짝 말이다.

‘….’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떠한 희망도 변화도 없는 공간에서.

가늠하기 힘든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이지만 자신을 잃어가던 것을 말이다.

화륵.

하지만.

점점 비워지고 비워져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던 도윤의 속에서.

무언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 무조건 데리러 온다!!!

마지막으로 백운이 남겼던 말을 떠올리며.

“무조건.”

싱긋.

도윤의 입가로 수백 년 만에 미소가 그려졌다.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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