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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50화 (150/473)

150화. 호출받은 사람

- 소피아, 소피아 일리스. 잘 부탁해요.

개방이 나타나기 전의 일이었다.

아티라가 소피아를 만난 것은 말이다.

- 똑똑한 친구라고 들었어요. 어때요? 저랑 같이 가지 않을래요?

갑자기 비싼 차를 타고 나타나 손을 내밀었던 소피아.

대부분의 이가 황당해할 일이었다.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던 찰나.

지내고 있는 곳과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사람이 나타나 함께 가자고 하다니.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면 몰래카메라가 아닐까 의심하는 게 당연했다.

- ….

비현실적인 일이고 어린 나이의 아티라에겐 당장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누군지도,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같이 가자니.

따라가서 무슨 짓을 당할지 알고 함께 간단 말인가.

- 갈게요.

하지만, 아티라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소피아의 손을 잡았다.

어린 나이부터 부모님에게 버려져 시설에서 자랐던 아티라.

시설에서 지내며 아티라는 항상 생각했었다.

과연 여기서 발버둥 친다 한들 인생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던 중 나타난 소피아의 손길.

따라가서 뭘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희망이 없는 지금보다는 훨씬 나을 거라 생각했다.

- 좋아요.

머릿속에선 밑져야 본전이라는 계산이 있었지만.

단순히 이것 때문에 소피아의 손을 잡은 건 아니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소피아에게선 빛이 났다.

무언가 포근하게 감싸주는 빛.

이 사람은 믿고 따라가도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 잘 부탁해요.

그렇게 따라나선 소피아의 길.

10년이 넘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길이었지만.

한순간도 후회하지 않았다.

후회는커녕 한순간도 행복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 푸확!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개방이 등장하며 생겨난 대산의 적들.

갑자기 생긴 힘은 사람들에게 무모함을 선물했다.

개방 전에는 기업의 경영과 전략으로 승부 했었다면.

이제는 새로 생긴 힘을 이용해 불리한 점을 메꾸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가 멀다하고 적들이 나타났고, 쉴새 없이 대산을 공격했다.

- 토베 3식.

그때마다 아티라는 조금의 불평도 없이,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싸움터로 나가 대산의 적을 제거했다.

상처가 쌓이고 쌓여 몸이 천근만근 무거운 날에도 아티라는 주저 없이 적에게 향했다.

- 아티라!

소피아가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었다.

대산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굳이 아티라가 나서지 않아도 되는 싸움에도.

아티라는 직접 소피아를 노리는 적을 섬멸하기 위해 검을 들었다.

‘검투사의 능력이 개방된 이유.’

자신에게 길을 열어 준.

손을 내밀어 빛으로 꺼내준 소피아를 지키는 것.

그것이 아티라가 싸우는 이유였다.

푸욱… 푹!!

“끄아악!”

아티라의 세검이 적 헌터의 어깨를 꿰뚫었다.

‘대산을.’

푸화악!

‘소피아 님을.’

피를 흩뿌리며 뒤로 물러나는 침입자.

‘지킨다.’

“하아… 하아.”

아티라가 숨을 몰아쉬며 물러난 적을 바라봤다.

저벅.

저벅.

조금 전의 적은 물러났지만 문제가 있었다.

물러난 자는 수많은 적들 중 한 명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짝. 짝. 짝.

아티라와 가장 떨어진 곳.

80층의 외곽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는 대산의 용병단장 이천호가 서 있었다.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천호.

“역시 대단하군요.”

이천호가 널브러진 다수의 헌터를 보며 질린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각 기업에서 착출되어 보내진 전투원들이었다.

“지난 싸움에서의 상처로 엣 기량을 잃었다고 들었는데. 여전한 거 같은데요?”

“하아… 더러운 입 다무시죠, 배신자가.”

“풉.”

힘겹게 말한 아티라의 말에 이천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꼴이셔서 그런가. 하나도 안 무서운데 어쩌죠?”

“….”

이천호의 말대로였다.

어느 수준 이상의 헌터들을 쓰러뜨리며 아티라에게도 상처가 없을 순 없었다.

치명상은 피해냈지만 아티라의 몸 역시 데미지가 쌓여 한계에 도달한 상태.

주륵.

찢어진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로 왼쪽 시야도 온전치 못했다.

찌릿.

거기다 세검을 들고 있는 오른팔.

오른팔에선 불길한 찌릿함이 계속해서 느껴지고 있었다.

- 다시는 예전처럼 싸우시면 안 됩니다.

한계에 맞닥뜨린 사람이 맞이하게 되는 결말은 두 가지였다.

한계를 뛰어넘어 괴물이 되거나, 한계에 부딪혀 무너지거나.

아티라는 후자였다.

기업 간의 전쟁이 끝나가던 쯤.

아티라의 몸은 지속된 과부하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버렸다.

“팔도 좀 떨리시는 거 같은데 계속하실 수 있겠습니까?”

“단장이 되더니… 말만 많아졌네요.”

타닥!

“이년이!”

“토베 3식, 쐐기.”

푹!!

“꺼억!”

달려들던 헌터 한 명이 다시 나가떨어지고.

그런 헌터를 보며 한심한 듯 혀를 차는 이천호.

“멍청한 놈, 혼자 달려들지 말라니까.”

용병단장을 맡으며 가지각색의 능력을 꿰차고 있는 이천호였다.

아티라의 싸움도 수없이 봐왔기에.

검투사의 강점과 약점을 알고 있었다.

“일대일에서는 무적에 가까운 위용을 발휘하지만, 비슷한 수준의 다수에겐 약하다.”

‘….’

검투사의 특성을 정확히 꿰뚫는 이천호에 아티라가 눈살을 찌푸렸다.

“어떻습니까? 아티라 님. 좀 망가지긴 했어도 여기서 죽기엔 아깝지 않습니까? 나이도 젊은데.”

스윽.

꽤 먼 거리.

닿지 못할 거리였지만.

이천호가 아티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어차피 당신은 대산을 위해 싸우지 않습니까? 새로운 대산에서 함께 하시죠.”

“….”

“그게 아니면.”

저벅.

저벅.

잠시 대기 중이던 헌터들이 아티라의 주변을 감싸나갔다.

이미 한계에 다다랐기에 이 숫자를 상대론 아마 일 분도 버티지 못할 터.

아티라를 기다리고 있는 건 확정된 죽음이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와 함께 가시죠. 지금까지와는 달리 대산은 훨씬 강해질 겁니다!”

“….”

피식.

조소를 터뜨리는 아티라에 이천호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가 웃기죠?”

“웃겨서 웃은 건 아닙니다.”

피로 얼굴 반이 가려진 아티라.

아티라가 고개를 들어 이천호의 내민 손을 가리켰다.

“너무 달라서요. 소피아 님에게선 빛이 났는데… 당신의 손에선 썩은 내가 풍기거든요.”

“뭐…?”

“그 냄새 나는 손을 잡는 건 모두 썩어버린 것들뿐이겠죠. 전 죽을지언정 비위가 상해서 그 손을 잡진 못하겠습니다.”

“어리석군. 결국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건가.”

“그리고 하나 착각하고 있는 게 있는데.”

아티라가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이천호를 응시했다.

“전 단 한 번도 대산을 위해 싸운 적이 없습니다.”

“…?”

“전 대산이 아닌, 소피아 님을 위해 싸웁니다. 이제껏 그래왔고.”

슥.

아티라가 세검을 들어 눈앞에 위치시켰다.

“지금도 그럴 겁니다.”

스륵.

눈을 감고 몇 번의 호흡을 하는 아티라.

- 잘 부탁해요.

소피아의 손을 붙잡았던 순간을 마지막으로 떠올리며.

‘검투사 아티라 토베.’

쿠우우우…!

아티라의 주변으로 공기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소피아 님을 위하여.’

“온다…!”

승리는 확실해져 있지만 누군가는 저 일격에 목숨을 잃을 것이기에.

둘러싸고 있는 헌터들이 무기를 치켜세웠다.

‘내 마지막 검을…!!’

절정까지 모여든 공기가 터지려는 순간.

끼이익.

“…?”

아티라가 지키고 있던 문이 열렸다.

저벅.

멍하니 바라보는 아티라를 평온한 미소로 맞이해 주는 소피아.

“소… 소피아 님… 어째서?”

밖으로 나온 소피아가 피바다가 된 외곽 엘리베이터 앞을 살핀 후 입을 열었다.

“문 뒤에 숨어 있다고 한들 일 분은 더 버틸 수 있을까요?”

소피아의 말대로였다.

80층을 몇 번이나 들락거렸던 이천호.

이천호는 이번 일을 준비할 때 회장실의 방어술식까지도 이미 계산에 넣어둔 상태였다.

술식을 깨기 위한 헌터들까지 데려왔기에, 문을 지키고 있는 아티라만 사라진다면 일 분이면 충분했다.

저벅.

아티라의 옆으로 걸어온 소피아.

“어차피 죽을 거라면 뒤에 숨은 채로 죽고 싶지 않습니다.”

소피아가 여전히 멍한 아티라를 올려다봤다.

“제가 무능력해 아티라 님을 살려줄 순 없겠지만… 최소한 지금까지 절 지켜 준 사람의 옆을 지키며 죽고 싶네요.”

“…!!”

소피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그려지고.

스윽.

아티라가 치켜들었던 세검을 천천히 내려놨다.

몸이 버틸 수 있는 마지막 공격을 하려던 중이었다.

한 명을 더 죽이냐 못 죽이냐 정도의 차이였기에.

큰 의미가 있는 공격은 아니었다.

잠시 후.

“하… 하!”

짝짝짝!!

80층으로 광적인 박수 소리가 가득 채워졌다.

두 사람을 보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천호.

“이거 참 감동적인 장면이군요…!! 훌륭합니다! 훌륭해!! 부하와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회장이라니!”

짝짝… 짝… 짝.

꾸드득.

박수 소리가 잦아들고.

이천호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그런 무른 자세 때문에! 기업의 성장보다는 사람을 더 아끼는 그 무른 성정 때문에! 대산이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거란 말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여유가 넘치던 이천호였다.

하지만 소피아의 행동을 보기 무섭게 이천호의 평정심이 무너졌다.

“제가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습니까!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고! 대를 위해선 소를 희생해야 한다고! 회사에 소속된 이들의 행복!? 그딴 게 뭐가 중요합니까! 결국 그 선택이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겁니다! 소피아!”

광기 섞인 이천호의 외침.

그런 이천호를 잠시 바라보고 있던 소피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광분한 이천호와 달리 소피아의 표정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딱한 사람.”

“뭐…?”

“이천호… 당신의 빛은 뜨겁고 아름다웠습니다. 보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열정을 샘솟게 만드는 빛이었죠.”

소피아가 안타깝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탁해져서 빛이라고 부를 수도 없게 되어버렸군요.”

으드득.

소피아의 말에 이천호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당신 따위가 뭘 안다고…! 맨날 뒤에 앉아 감정에 치우쳐진 결정이나 내린 주제!”

“이 지경이 되어서도 전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딱 하나, 후회하는 선택이 있다면.”

떨긴커녕 이천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는 소피아.

“탁해진 빛을 되돌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당신을 내치지 않은 것입니다.”

“그딴 눈으로… 하.”

무언가 말하려던 이천호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죽을 사람을 상대로 제가 뭘 하는 건지.”

스윽.

이천호가 머리 위로 손을 들어 올렸다.

무기를 치켜든 채 아티라와 소피아를 향해 다가가는 수십의 헌터들.

“지금까지의 정을 봐서 고통 없이 보내드리죠.”

다가오는 적들을 바라보며.

꼬옥.

소피아가 아티라의 손을 붙잡았다.

아티라를 향해 환한 미소를 그리는 소피아.

“지금까지 저 지키느라 수고 많았어요. 고마워요, 아티라.”

“소피아 님….”

소피아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일까.

아티라의 얼굴에 괴로운 빛이 어렸다.

“그런 얼굴 하지 마세요. 아티라가 아니었다면 옛날에 죽었을 목숨입니다.”

“쯧.”

그런 둘의 모습에 이천호가 더 이상 못 들어주겠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까딱.

마침내 이천호가 신호를 보내고.

쐐에에에엑---!

수십 개의 무기가 두 사람을 향해 찔러졌다.

죽음을 직감하며 천천히 눈을 감는 소피아와 아티라.

“두 분 모두 안녕히 가십….”

콰아아앙!!

이천호가 마지막 인사를 건네려는 찰나.

무언가에 의해 80층의 천장이 박살났다.

“콜록!! 뭐… 뭐냐…!”

순식간에 뒤덮인 먼지에 이천호가 코와 입을 가린 채 앞을 응시했다.

잘 보이진 않았지만 무언가 있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등장과 동시에 80층의 공기를 바꾸었다.

스으으….

사방을 뒤덮었던 먼지가 서서히 걷히고.

드러난 시야의 일부분으로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끼긱… 끼긱!

3초.

사방에서 내질러진 칼이 소피아와 아티라에게 닿는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이게!!”

“무슨…!!”

수십 개의 칼날은 무언가에 막혀 두 사람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단 하나.

짙은 불길함과 함께 일렁이는 검은 연기가 소피아와 아티라를 감싸고 있단 것이었다.

그리고.

“와씨.”

조금 전까지의 80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슬아슬했네.”

“웬 놈이냐!!”

몸을 오싹하게 만드는 불길함에 이천호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 물었다.

슥.

그런 이천호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목소리의 주인, 백운.

잠시 이천호를 응시하던 백운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참새한테 호출받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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