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대산의 각층에선
쿠아아아아--!
방어술식이 걸려 있는데도 심하게 떨려오는 문.
군데군데 생긴 균열이 조금 전 폭발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엄청난데.
무엇에 의한 폭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청난 인간이었다.
사람 몸에 이런 걸 심어 넣을 생각을 하다니.
가루만 남았겠어.
몸속에서 이 정도의 폭발이 일어났으니 목숨은커녕 조각조차 찾기 힘들 것 같았다.
슥.
감싸고 있던 몸을 치우며 소피아와 아티라를 바라봤다.
“괜찮으세요?”
“예, 괜찮습니다.”
“저도 괜찮습니다.”
아티라도 군데군데 상처는 많았지만 목숨이 위험한 부상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연수정이라.
- 여… 연수정 이 썅년이…!!
마지막에 이천호가 쌍욕을 박은 이름이었다.
아마도 이천호의 몸에 폭발을 심어 넣은 장본인일 터.
그리고 폭탄을 심었다는 건 곧 이번 대산 공격에 깊게 관여되어 있음을 의미했다.
“백운 님, 방금 저희를 구해주셨는데 죄송하지만.”
잠시 날 바라보던 소피아가 입을 열었다.
얼굴 한가득 걱정이 퍼져있는 소피아.
“회사엔 최리아 실장과 전수희 팀장이 있습니다.”
찹쌀떡!?
안 그래도 이제 가려던 참이었기에.
소피아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곧바로 몸을 돌리긴 했지만 그렇게 마음이 다급하거나 하진 않았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
안심하라며 말을 건네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소피아.
그런 소피아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어줬다.
“아마 가 있을 거예요.”
“가 있다니…?”
저벅.
문을 향해 걸어가며 어깨를 으쓱 올렸다.
“이집트산 사신요.”
* * *
끼긱…!
“뭐… 뭐야!!”
대산의 본사 77층.
자잘한 상처가 쌓인 최리아와 전수희가 구석에 몰린 채 앞에 있는 김대석을 응시했다.
‘어떻게… 된 거지?’
장판석이 카리조를 막아선 사이 도착한 77층.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77층에도 적이 있었다.
그것도 까다로운 적이 말이다.
차라리 부상을 당해 76층에 남기로 한 이대현, 전국현과 함께 있는 게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적.
- 드디어 찾았다! 이 여우년!
마치 최라아가 올 걸 알았다는 듯이 77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대석과 적 헌터들.
최리아를 보자마자 김대석은 얼굴 가득히 소름 돋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는 듯 반가움을 숨기지 않았던 김대석.
김대석은 대검을 휘두르며 천천히 두 사람을 구석으로 몰기 시작했다.
- 낄낄낄! 뭐야 이 숙녀분들은? 왜 이런 싸움터를 무방비하게 돌아다니는 거야?
- 날 대신해 싸워라…!
그 와중에 방심한 몇몇의 헌터에게 암시를 거는데 성공했지만.
- 콰득! 콰직!
김대석은 헌터들이 암시에 걸린 뒤 움직이는 걸 기다려주지 않았다.
암시가 걸리는 와중에 달려들어 헌터의 몸에 칼을 박아 넣은 김대석.
- 어차피 적이 되어서도 죽었을 테니, 억울해하진 마라.
숨이 끊어지는 헌터를 바라보며 한 마디를 읊조린 후.
- 쫘아아악!
김대석은 거침없이 최리아의 뺨을 갈겼다.
- 짜악!
그 앞을 가로막은 전수희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굴욕적인 공격을 당하며 몰아 세워진 구석.
- 어떻게 죽여줄까? 응? 팔다리부터 날려줄까?
이죽거리며 다가오는 김대석을 보면서도 최라아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애초에 상대의 눈을 보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암시.
김대석은 누구보다 최리아의 암시를 경계하고 있었기에 도저히 암시를 걸 틈이 나오지 않았다.
- 아니면 그렇게 싸고도는 부하년부터 죽여줄까?
빠득.
얼마나 세게 입술을 깨물었던 걸까.
그때의 상처로 입술에선 아직까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 콰아아아아아--!
80층에서 들려온 엄청난 폭발음과 진동.
층마다의 간격을 생각하면 보통 크기의 폭발이 아니었다.
- …!?
당황한 건 김대석 또한 마찬가지였다.
표정으로 보건대 무언가 일이 틀어진 게 분명했다.
문제가 있다면.
- 여유가 없을지도 모르겠군. 그냥 죽어라, 여우년아.
잘못됨을 느낀 김대석이 바로 대검을 치켜들었다는 것이었다.
일이 잘못 될 땐 잘못되더라도 눈앞의 최리아 만큼은 죽이고 가겠다는 결정이었다.
- 슥.
그런 김대석을 앞에 두고.
최라아가 아끼는 부하인 전수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저 손을 들어 떨고 있는 전수희의 눈을 가려주는 것이 최선이었다.
- 쐐에에에---!
잠시 뜸을 들인 뒤 두 사람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한 김대석의 대검.
어느 정도 대검이 다가오자 최리아 역시 눈을 감았다.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란 희망이 사라졌다.
지금 누군가 도착한다 하더라도 바로 앞까지 다가온 대검을 막아줄 순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끼긱!
김대석의 대검이 멈춰 섰다.
분명 눈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도.
대검은 무언가에 단단히 막힌 듯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 이게 왜!!”
광산에서의 사고로 실체가 까발려지기 전.
김대석이 유명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거대한 대검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괴력의 소유자로 시원시원한 전투 장면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런 김대석이 아무리 용을 써도 꼼짝도 하지 않는 대검.
사아아…!
‘…!’
잠시 후.
최리아와 대검 사이로 누군가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신에 칠흑 같은 망토를 걸친 채 거대한 낫을 들고 있는 남자.
남자는 어디선가 들었던 사신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 사신…?”
놀란 건 옆에 있는 전수희도 마찬가지였다.
등장과 동시에 몸으로 서려오는 차가운 한기.
“뭐… 뭣들 하는 거냐! 당장 와서 이놈을 죽여!”
잠시 얼어있다 정신을 차린 김대석이 소리를 질렀다.
….
하지만.
김대석을 돕기 위해 달려온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 새끼들아 뭐 하는 거냐… 고…?!”
낫과 대치한 채 뒤로 고개를 돌린 김대석.
심상치 않은 적을 앞에 뒀음에도 한 번 돌아간 김대석의 고개는 돌아올 생각을 않고 있었다.
슥.
조심스럽게 몸을 내민 전수희가 김대석의 시야를 쫓았다.
“헙…!”
안 그래도 큰 눈이 더욱 커진 전수희.
전수희가 입을 틀어막으며 비명을 집어삼켰다.
김대석을 제외하고도 족히 스물은 있었던 헌터들.
아까 있었던 헌터들 중 지금 77층에 서 있는 헌터는 김대석 한 명뿐이었다.
줄줄줄.
조금 전 일어났던 폭발에 의해 쓰러진 게 아니었다.
다들 무언가 날카로운 것에 베여 죽은 것이었다.
‘폭발이 일어난 그 짧은 순간에…!?’
폭발이 일어나 모두의 눈과 귀과 윗층을 향한 찰나의 순간.
그때 말곤 없었다.
그때가 아니라면 스물 남짓한 헌터들이 죽는 동안 김대석이 눈치채지 못하는 건 불가능했다.
“모두 오늘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멈춘 듯 모두가 굳어 있는 사이.
감정이 전혀 섞여 있지 않은.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서늘케 하는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죽을 운명이었다니…?’
물론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만화에서 봐오던 사신의 모습을 하고 있긴 하지만.
진짜 사신일 거라 생각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이 개새끼가!!”
스으으윽.
흥분한 김대석이 막혀 있는 대검을 뒤로 젖혔다.
더 이상 앞으로 미는 건 의미 없다는 걸 알았기에.
다시 한번 경로를 잡고 공격할 생각인 김대석.
“….”
김대석을 잠시 바라보던 사신, 로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다하지 못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당신도.”
“죽어!!”
쐐에에에엑---!
대검이 날아오든 말든.
로인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낫을 틀어막을 생각 역시 하지 않았다.
조금 전에 낫으로 막은 건 어디까지나 최리아와 전수희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콰아앙!
김대석의 대검이 로인의 몸에 타격되며 굉음이 터져 나왔다.
“…!!”
물론, 거기까지였다.
반으로 쪼개질 거란 김대석의 바람과는 달리.
로인은 약간의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뭐로 이루어진 건지 김대석의 풀스윙 대검을 막고도 멀쩡한 갑주.
“마… 말도 안 된다…!”
최선을 다한 공격이 허무하게 막혀서일까.
김대석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런 김대석을 향해 로인이 입을 열었다.
방금 하던 말을 끝맺기 위해서였다.
“당신 또한 오늘 죽을 운명입니다.”
“뭐….”
서걱!!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잠시 사라졌다 생각한 낫이 김대석의 상체를 베어버린 것은 말이다.
“꺼… 꺼걱…!”
푸확!
공기 중으로 김대석의 피가 흩뿌려지고.
허망한 눈을 한 김대석의 몸이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쿠웅.
“….”
쓰러진 김대석을 잠시 바라보던 로인.
슥.
“!!”
로인이 몸을 돌려 겁에 질린 최리아와 전수희를 바라봤다.
“….”
“당신은… 누구시죠? 어째서 저희를.”
아무 말 없는 로인을 향해 질문을 건네는 최리아.
고민을 하는 건지 잠시 눈을 찌푸렸던 로인이 입을 열었다.
“백운이란 남자와 거래를 했습니다.”
“…!”
사아아.
나타났을 때처럼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 로인.
“거래의 일환일 뿐입니다.”
차분하면서도 나지막한 말을 남긴 후.
이집트에서 온 사신 로인이 모습을 감추었다.
* * *
쾅! 쾅! 쾅!
“늙었어도 여전하구만!”
“애송이가…!”
‘조금 전 폭발은 뭐냐…!’
교관 카리조.
한눈을 팔 수 없는 상대였지만.
장판석의 신경은 80층으로 향해 있었다.
‘소피아 회장.’
으득.
“날 앞에 두고 누굴 걱정하는 건가!”
푹!
장판석의 어깨로 파고든 카리조의 공격.
피가 솟구쳐 나오는 상처였지만 장판석은 잠시 눈살을 찌푸릴 뿐이었다.
푸슉!
지금까지의 싸움으로 이미 몸엔 셀 수 없이 많은 구멍이 뚫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몸에 구멍 한두 개가 더 추가된다고 놀랄 일이 아니었다.
“후우…!”
데미지가 쌓인 건 카리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장판석의 발톱에 깊게 베여 사방에서 피를 뿜고 있는 상태.
‘끝내야 한다.’
장판석이 카리조를 응시하며 자세를 잡았다.
80층의 소피아가 걱정되어서도 있지만.
찌릿.
무엇보다 누적된 상처로 인해 몸이 더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영감, 끝냅시다. 내가 갈 길이 좀 바빠서.”
“클클… 좋지.”
드드드드…!
장판석의 몸으로 바람이 모여들고.
양팔의 핏줄이 터질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쿠우우…!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 카리조도 마찬가지였다.
사방으로 퍼져있던 검은 액체가 오른팔로 모여들고 있었다.
장판석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고 있는 카리조.
“….”
“….”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 사이로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늑대의 포효.”
“악귀의 손톱.”
스팟!
읊조림과 동시에 장판석과 카리조가 서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콰드득!!
소름 돋는 마찰음을 남긴 채 서로를 지나쳐 간 두 사람.
….
이미 승부가 났다는 걸 두 사람 모두 알았기에.
뒤를 돌아 상대의 상태를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나도 늙은 모양이군.”
말을 끝마치고 잠시 후.
푸하아아악!
카리조의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씁쓸한 미소와 함께 바닥으로 쓰러지는 카리조.
쿵!
카리조가 쓰러지는 소리를 듣고 잠시 후.
“쿨럭!”
장판석의 입에서 엄청난 양의 출혈이 튀어나왔다.
치명상은 피했지만 조금 전의 공격에 움직이기 힘들 정도의 데미지를 받고 말았다.
“이런.”
80층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보며 장판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띵.
그때 75층에 멈춰 서는 엘리베이터.
우루루!
한 무리의 헌터가 75층으로 발을 디뎠다.
“자… 장판석이다!”
“쫄지 마! 부상이 심하다! 지금 죽여둬야 해!”
장판석을 발견한 헌터들에게 잠시 동요가 일었지만.
그뿐이었다.
외관만 봐도 장판석의 상태는 심각했기에.
적들은 도망치긴커녕 오히려 장판석을 죽이려 하고 있었다.
‘또 적인가.’
분명 많은 수의 침입자들을 죽이며 올라왔었는데.
모두를 정리하진 못한 모양이었다.
“움직이지 못한다! 원거리에서 죽여라!”
맨 앞에 선 헌터의 외침에 따라 늘어선 적들이 공격을 준비했다.
원거리 타격이 가능한 화기 혹은 마법과 비슷한 능력을 사용하는 헌터들인 듯했다.
‘곤란하군.’
적의 말대로 장판석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
평소라면 한주먹거리도 안되는 적들이었지만.
지금은 위험했다.
스윽.
장판석이 눈살을 찌푸린 채 간신히 두 팔을 들어 올렸다.
피하진 못하더라도 치명상은 피해야 했다.
“쏴라!”
적 헌터의 외침이 울려 퍼지고.
“빛의 구원.”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말도 안 되는 화력이 쏟아졌다.
“…!!”
장판석의 반대 방향으로 말이다.
장판석이 놀란 눈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적들은 원거리 화기를 쏘지 못했다.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말도 안 되는 빛의 탄환이 적들을 덮쳤기 때문이다.
콰가가가가!!
경로에 있던 헌터들은 물론 건물마저 뚫고 밖으로까지 뻗어 나가는 탄환 세례.
그렇게 장판석을 죽이려던 헌터들이 쓸려나가고.
“깔끔하구만!”
긴장감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벅.
그리고 잠시 후.
놀라 있는 장판석 앞으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