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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53화 (153/473)

153화. 검은 천사

슥.

멍한 눈으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장판석을 바라봤다.

- 아래층에 판석 님이 계세요…!

무슨 릴레이 구원도 아니고.

75층에서 들려오는 엄청난 굉음에 찹쌀떡 전수희가 한 말이었다.

대충 소리만 들어봐도 무언가 거대한 힘끼리의 부딪힘이 분명했기에.

혹시나 싶어 아래로 내려와 보았다.

근육 봐라.

일단 내려오고 봤기에 정확히 장판석이 대산에서 어떤 위치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풍겨오는 포스와 외관만을 봤을 때 알 수 있는 건 한 가지.

뭐가 됐든 겁나 센 사람이었고 대산에서도 한자리하고 있을 거란 것이었다.

휘이이.

뺨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조금 전 리볼버를 갈긴 벽을 응시했다.

음.

장판석을 향해 공격을 쏟아부으려던 적 헌터들.

급한 마음에 일단 리볼버를 갈겨버렸었는데.

큰일이야.

날아가 버린 엘리베이터는 고사하고 찬바람이 쌩쌩 불 정도로 뚫린 구멍을 보니 너무 막 갈겼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기왕.”

“!?”

잠시 날 응시하더니 한 단어를 말하는 장판석.

오랜만에 불려보는 이름이었다.

“무기왕이자 일본에서 최리아 실장을 구하고 시노카 암살대를 전멸시킨 백운… 맞지?”

의외였다.

얼굴을 보며 마주친 건 오늘이 처음일 터인데.

최리아가 말해준 건지 장판석은 나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맞습니다. 선생님은 장판석 님 맞죠?”

장판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푸슉.

!?

고개를 끄덕였을 뿐인데 뿜어져 나오는 붉은 선혈.

“괘… 괜찮으시죠? 그 구멍이 좀… 많이 나 있네요.”

강한 사람인 만큼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냐만은.

피가 솟구치고 있는 여러 개의 구멍을 보고 있자니 괜찮냐는 말을 안 건넬 수가 없었다.

“별로 안 괜찮은데, 그렇다고 죽을 정도는 아닌 거 같군.”

쌍남자구만.

다름 아닌 자기의 몸인데도 남의 몸 말하듯이 하는 장판석.

장판석의 말대로 목숨에 지장은 없어 보였기에.

조금 전 물으려던 걸 묻기 위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저거 괜찮겠죠? 아시다시피 불가항력이었거든요.”

손을 들어 밤바람이 불어오는 구멍을 가리켰다.

그러자 놀란 듯 눈이 커지는 장판석.

지금 보신 건가.

너무나 시원하게 뚫려버린 구멍을.

저건 선 넘었지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살짝 걱정이 들었지만.

“큽… 하하하하!”

“…?”

걱정과 달리 장판석은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선 넘는 양심리스라 너무 어이가 없으신 건가.

적당히 뚫어놓고 물어보는 게 도리였나 잠시 생각하는 사이.

장판석이 입을 열었다.

“대산을 구해놓고는 뚫린 벽 걱정이라. 재밌는 친구네.”

간신히 웃음을 그친 장판석이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백 개는 더 뚫어놨어도 내가 메꿔줄 수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어.”

“오…!”

왠지 쌍남자 같더라니.

역시 시원시원한 사람이었다.

“위에서 들렸던 폭발음은?”

이천호의 폭발에 대해 묻는 장판석에 위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소피아와 아티라는 무사하다는 것과 80층이 시원하게 날아가 버렸다는 것.

“그런가.”

장판석이 묘한 얼굴로 고개를 내려 부상투성이인 몸을 바라봤다.

호탕하게 웃던 조금 전과는 달리 왠지 모르게 씁쓸한 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대신 해줬군.”

아.

대충이지만 알 것 같았다.

자신이 지켰어야 하는 사람인 소피아.

강적을 만난 탓이라고 해도 장판석은 소피아가 죽을 뻔했다는 사실에 자책하고 있는 듯했다.

저건 아니지!

웬만하면 그러려니 하며 간섭 안 하는 성격이지만.

잘못된 자책이라고 생각했기에 입을 열었다.

“최리아 님과 전수희 님도 무사하세요. 이대현 님과 전국현 님도 마찬가지고요.”

“….”

장판석이 이곳에서 적을 맡아줌으로써 목숨을 구한 이들.

전혀 자책할 필요가 없었다.

“다들 그러시더라고요. 장판석 님이 아니었다면 모두 죽었을 거라고.”

“….”

잠시 아무 말 없던 장판석이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동영상만 봤을 땐 그냥 무지막지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묘하게 상냥하구만.”

“사… 상냥요?”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말에 당황하는 사이.

저벅.

장판석이 힘겹게 다리를 끌어 내게 다가왔다.

얼굴에 있던 웃음기는 어느새 사라진 뒤였다.

“몸이 이래서 말이야.”

“네?”

그렇게 다가와 조용히 날 응시하던 장판석이 입을 열었다.

“대산의 기둥 헌터 장판석.”

“…?”

“날 대신해 대산을 구해준 은인에게.”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장판석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네.”

* * *

폭발의 여파가 남아있는 80층.

어딘가로 전화를 돌린 최리아가 소피아를 바라봤다.

“아직 대산을 감싸고 있는 장막은 유효한 것 같습니다. 밖의 사람들은 안에서의 일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건 다행이네요.”

“장막이 어떤 시스템인지도 찾아낼 생각입니다만. 지금은 이대로 유지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소피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여기저기 상처가 난 최리아와 전수희를 바라봤다.

“두 분께는 드릴 말씀이 없네요. 저 때문에 죽을 뻔하셨으니.”

“아… 아닙니다!”

침통한 얼굴로 말을 건네는 소피아에 전수희가 손을 내저었다.

대산의 회장을 직접 마주하고 있는 건 처음이었기에.

상처의 쓰림보단 놀라움과 경외심이 더 앞서는 중이었다.

띠링.

아티라가 핸드폰으로 도착한 문자를 확인했다.

“시큐리티 헌터가 도착했다고 합니다. 마틸다가 동행할 예정입니다.”

용병단이 아닌 대산을 담당하는 외부 시큐리티 업체.

이미 싸움은 끝난 뒤였지만 현재 상황의 뒷정리를 위해 부른 것이었다.

“그래요, 직원들에게도 연락해주세요. 한 달간 재택근무로 전환한다고요.”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최리아가 곧장 핸드폰으로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그런 최리아를 잠시 바라보던 소피아가 고개를 돌려 여기저기 엉망이 된 건물을 바라봤다.

자신의 모든 걸 받쳐 키워 온 회사, 대산.

대산의 성장까지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더 노력했었다.

그들의 희생을 헛되게 만들지 않도록 말이다.

“오랜만이네요. 회사 건물이 공격당한 건.”

엄밀히 따지면 대산의 건물이 공격받은 건 처음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각 기업들이 자리를 잡아 공식적으로 물리적인 충돌이 벌어지진 않지만.

개방이 처음 등장했을 때까지만 해도 말도 안 되는 공격이 비일비재했었기 때문이다.

“그렇네요.”

옆에 있던 아티라도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티라와 장판석.

두 사람 모두가 소피아가 말한 시기에 함께 했던 이들이었다.

“판석 님은 무사하신가요?”

“예, 카리조 님과의 싸움으로 부상을 입긴 했지만. 목숨에 지장은 없다고 합니다.”

“다행이네요.”

소피아가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기둥 중 한 명인 웨어울프 장판석.

기둥들 중에서도 소피아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해온 사람이었다.

한 회사의 수장으로써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기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소피아는 속으로 알게 모르게 장판석에게 많은 의지를 하고 있었다.

“카리조 님은… 제가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아니에요.”

최리아의 말에 소피아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교관 카리조.

다들 큰일을 치른 뒤라 따로 말하고 있진 않았지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기둥 중 한 명이 반기를 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카리조를 조사해보겠다는 말에 소피아가 고개를 젓는 이유는 명확했다.

“알 거 같거든요.”

“예…?”

“카리조 님이 왜 반기를 들었는지요.”

돈이나 명예 따위를 위해 적과 손을 잡은 건 아닐 터였다.

“카리조 님의 불만은 오래전부터 쌓이고 있었으니까요.”

카리조를 떠올리며 소피아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대산은 그 어느 기업보다 강해야 하며 그걸 위해선 전쟁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카리조.

어느 정도 안정이 된 만큼 더 이상 사람들의 희생을 보고 싶지 않았던 소피아와는 정반대되는 의견이었다.

“마틸다의 교관 자리까지 뺏어버렸으니. 어찌 보면 오늘 일은 예견된 일이나 마찬가지였네요.”

소피아가 카리조의 교육 방식을 알게 된 건 수십의 마틸다 후보생들이 죽은 이후였다.

사고가 날 때마다 소피아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조작되어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날로 카리조를 교관에서 물러나게 한 뒤 기둥의 임무를 맡겨 해외로 보냈었다.

“좀 더 확실히 마무리를 지었어야 하는데. 이것 또한 제 불찰입니다.”

“….”

자책하는 소피아를 보면서도 최리아는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없었다.

자기가 그런 말을 건넨다고 해서 소피아의 자책이 줄어들 거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띠리리리.

핸드폰을 확인한 최리아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시큐리티 헌터들이 75층까지 도착했다고 합니다. 제가 내려가 보겠습니다.”

“저도 가보겠습니다!”

덩달아 고개를 꾸벅 숙이는 전수희.

소피아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꼭 마틸다와 동행하세요.”

“알겠습니다.”

끼익.

최리아와 전수희가 회장실을 떠나고.

소피아가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겨 있는 아티라를 응시했다.

“백운 님… 인가요?”

“… 예.”

정확히 맞췄는지 아티라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 만났을 때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저만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게 아니었군요.”

절체절명의 순간에 천장을 뚫고 등장한 백운.

외관이 바뀌거나 한 건 아니었다.

3년 전 광산의 일로 만났던 백운이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소피아는 나타난 백운에게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었다.

한튜브에 무기왕의 영상이 올라오면 항상 챙겨봐 왔음에도 말이다.

“인간의 움직임이 아니었습니다.”

한동안 현장에서 물러나 있었다고는 하나.

아티라는 수많은 전장을 헤쳐온 사람이었다.

그만큼 다양한 능력을 가진, 수많은 강적을 만나왔던 아티라.

“처음이었습니다. 그런 움직임은.”

아티라가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이천호와 헌터들.

분명 수준 이상의 적들이었다.

- 서걱!

그런 적들을 장난감 가지고 놀듯 가볍게 쓸어버린 백운.

속도도 속도지만, 백운이 보여준 유연함은 불가능에 가까운 곡예였다.

반응하지 못해야 정상인 걸 반응하고, 찌를 수 없어야 정상인 걸 찔러 넣었던 백운.

그 덕에 많은 수의 적을 상대하면서도 백운은 작은 생채기조차 생기지 않았다.

“대체 지난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3년 전에 만났을 때도 백운이 어느 정도 강한 사람이란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백운은 강하다, 많이 강하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대적불가.”

“…!”

소피아의 말에 아티라의 눈이 커졌다.

아티라가 느끼고 있는 걸 한 단어로 설명한 소피아.

“저도 같은 걸 느끼고 있었습니다.

스윽.

고개를 들어 뻥 뚫린 천장을 바라보는 소피아.

소피아가 옅은 미소를 띠며 백운이 등장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불길하고 차가우면서도 동시에 묘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검은 연기의 날개.

날개를 흩날리며 나타난 백운의 모습은 마치.

“검은 천사.”

작은 한숨을 내쉰 소피아가 입을 열었다.

“다행이에요.”

“네…?”

의아해하는 아티라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소피아.

얼굴에 그려져 있던 미소는 사라진 상태였다.

“그가 우리의 적이 아니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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