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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54화 (154/473)

154화. 인지하다

다음 날 아침, 대산 근처의 레스토랑.

앞에서 모락모락 김을 뿜어내고 있는 고기를 집어 들었다.

와작!

이빨을 넣기 무섭게 터져 나오는 투뿔 한우의 육즙.

참새가 창문을 뚫은 다음부터 제대로 된 식사를 못했던 탓일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미친듯이 배가 고팠다.

- 백운 님!

그러던 중 내가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온 전수희.

얼굴 여기저기에 반창고를 붙인 전수희는 도착하자마자 내 팔을 붙들고 호텔 근처에 위치한 레스토랑으로 끌고 갔다.

“백운 님! 더 드세요! 뭐 드실래요!”

“양갈비 3인분 더요!”

“네!”

고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주문을 넣고 있는 전수희.

그 덕에 난 끊임없이 고기를 입으로 집어 넣을 수 있었다.

“수희 님 파산하는 거 아니에요? 여기 엄청 비싸던데.”

물론 실낯 같은 양심은 있던지라 먹던 중 전수희의 지갑 걱정도 한 번 해주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최리아 실장님이 법인카드 주셨거든요.”

전수희가 나름 최선을 다해 앞에 있는 고기를 뜯었다.

법인카드를 쥐고 있어서 그런지 오늘 만큼은 자신도 끝까지 먹어보겠다는 각오가 돋보였다.

“날 밝자마자 백운 님 식사 사드리라고요!”

- 감사합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장판석을 업은 채 올라갔던 80층.

80층으로 향하던 중 만난 최리아는 날 보자마자 고개를 숙였었다.

첫 만남 때를 생각하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모습.

“어제 그분도 같이 드셨으면 좋을 텐데요. 감사하다고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거든요.”

새로 나온 양갈비를 뜯으며 로인을 떠올렸다.

최리아와 전수희를 구한 뒤 사라져버린 로인.

분명 근처에 있을 텐데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제가 만나면 대신 전해 줄게요. 부끄럼이 많은 친구라 잘 안 나타나요.”

부끄럼인지 뭔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잘 안 나타나는 건 맞으니 일단 아무렇게나 뱉어봤다.

“회사가 언제 정상화 될지 모르겠네요.”

전수희가 대산 쪽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의 일로 한바탕 난리가 난 본사 건물.

건물의 천장이 뚫린 건 물론 이천호의 폭발로 80층 자체가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각층별로 적 헌터들의 시체가 즐비한 것은 덤이고 말이다.

“어제 공격을 한 게 어떤 놈들인지는 밝혀진 건가요?”

“그게… 아직이요.”

전수희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저도 자세한 건 모르지만.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상태라고 들었어요.”

단장인 이천호를 따라 대산을 공격했던 용병단.

어제의 싸움에서 몇몇은 살아남았지만 아는 게 전혀 없어 별 소득이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소속 헌터로 여겨지는 시체에서도 나온 건 없다고 하더라고요. 대놓고 의심이 가는 회사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전수희가 답답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 올렸다.

도심에 있는 회사가 습격받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는데도.

기업과 기업 간에 얽혀있는 복잡한 관계로 무언가 강경 조치를 취하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응?

빠아아안.

“…?”

다음 한 점을 입으로 집어넣으려는 순간.

대놓고 날 빤히 바라보고 있는 전수희에 잠시 손을 멈췄다.

뭐… 뭐야 찹쌀떡.

잠시 헛된 망상으로 떠올리려는 순간.

전수희가 입을 열었다.

“정말 신기하네요.”

“뭐가요?”

눈을 가늘게 뜨며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젓는 전수희.

“80층의 일도 들었거든요. 백운 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소피아 회장님과 아티라 님도 위험하셨다고요.”

“그… 렇죠.”

위험한 수준이 아니라 사망 100%였다.

어제 80층에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건 나뿐이었으니 말이다.

“백운 님은 대산을 구하신 거잖아요. 그런데도 이렇게 아무 일 없다는 듯 계시는 게 뭐랄까… 대단해요.”

“흐음.”

별생각이 없었는데.

“그러게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옛날 같았으면 내가 대산을 구했다니!! 하며 들떠있었을 텐데.

들 뜨는 걸 떠나 어딘가에만 알려져도 대산의 영웅으로 우대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

무뎌진 건가.

질겅질겅.

조금은 더 익어버린 고기를 씹으며 턱을 만지작거렸다.

어찌 보면 무뎌지는 게 당연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여기 오기 전만 해도 이집트를 구했다고 숱한 찬양을 받고 왔으니.

음… 꼭 그게 아니더라도.

요새 겪었던 일들의 스케일이 하나 같이 보통이 아니긴 했다.

유물관 골방에 처박혀 찬물에 세수할 때까지만 해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의 연속.

그 일들의 중심에 항상 있었으니 나도 모르게 무뎌진 모양이었다.

“조금 다르지만 수희 님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네?”

한점 집다 말고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전수희.

“어제 죽을 뻔했잖아요. 보통 죽을 뻔했던 사람이 다음날에 고기를 이렇게 먹진 않으니까.”

“아…!”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건지 전수희의 새하얗던 얼굴이 붉게 물들어갔다.

“흠!”

잠시 포크를 내려놓더니 헛기침을 하며 스스로를 진정시키는 전수희.

전수희가 애써 먼 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얼른 잡혀야 될 텐데 말이죠. 대산을 공격한 몹쓸 놈들!”

피식.

그런 전수희에 약간의 실소를 터뜨린 후.

어제 마지막에 이천호가 읊은 이름을 떠올렸다.

연수정.

암살대 놈들이랑 할배가 마지막이 아니었구나.

물증이 없기에 확정할 수 있는 건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이번 사건과 히메지 성에서 있었던 일들이 연관되어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회귀 전 쿄스케를 죽였던 건 분명 암살대와 할배다.

이렇게 놓고 보면 암살대를 전멸시키며 쿄스케에게 위험이 될만한 요소는 제거되었다고 봐도 되겠지만.

대산을 기준으로 조금 더 범위를 넓히면 완전히 마음 놓고 있을 수도 없었다.

쿄스케가 모시고 있는 히라이 쇼고가 계속해서 대산과 협력하는 관계이기에.

대산을 향하고 있는 칼날이 언제 또 쿄스케를 노릴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쉽게 당할 놈은 아니지만.

언력이란 능력은 희귀한 만큼 강했다.

문제가 있다면 저번처럼 누군가를 지키며 소모전으로 들어가는 순간 약점이 드러난다는 것.

이번 대산을 공격했던 수준의 전력이 쿄스케를 공격한다면 또다시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다.

….

잠시의 생각을 마친 뒤.

콰작!

앞에 놓인 고기를 물어뜯었다.

안 되겠어.

“그러게요, 빨리 잡혀야 할 텐데요.”

지금은 해야 하는 일들이 있기에 당장은 불가능하지만.

어느 정도 정리가 된 후에.

“아니면… 빨리 누군가한테 다 죽던가요.”

찾아낸다.

* * *

무거운 침묵이 깔려있는 회의실.

화상이지만 꽤 많은 이가 모여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아무 말이 없는 이유는 단 하나.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 대산으로 향했던 헌터들은 모두 전멸했습니다.

# 살아 돌아온 이는 한 명도 없습니다.

# 이천호에게 심어뒀던 폭발로 대산의 80층이 날아갔습니다.

# 소피아 회장은 살아있지만요.

“….”

이어져 들려오는 보고에 연수정이 쇼파에 몸을 파묻었다.

몽땅 절망적인 내용들 뿐이었지만, 어찌 보면 다행이었다.

입을 열 만한 자가 한 명도 살아있지 않다는 것은 말이다.

‘이천호에게 술식을 심어 놓은 건 현명한 판단이었다.’

연수정이 이천호와 마주한 건 한 번뿐이었지만.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연수정은 이천호에게 폭발 술식을 걸어놨었다.

이렇게 사용하려고 걸어놓은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으득.

대산의 공격이 마무리된 후.

이천호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려고 할 때를 대비한 제어 수단으로 걸어두었던 것이었다.

처음의 목적과는 달랐으나 결과적으론 정보를 뱉기 전에 이천호를 처단했으니 해야 할 바를 다하고 사라진 술식이었다.

‘생각도 못 했다.’

연수정만 그런 게 아니었다.

아마 지금 회의실에 모여 있는 모든 이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번 대산 공격이 실패할 거라는 생각을 못 한 건 말이다.

‘분명히 제로였다.’

미간을 찌푸린 연수정이 이마에 손을 얹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막무가내로 벌인 공격이 아니었다.

치밀한 계산을 통해 100%를 넘어 200%에 가까운 성공을 확신한 뒤 행한 일이었다.

‘최후의 보험으로 카리조까지 끌어들였는데.’

카리조가 없었더라도 100%는 거뜬히 뛰어넘는 성공 확률이었다.

그럼에도 보험의 역할 및 이후의 대비를 위해 많은 자원을 소비해가며 카리조를 같은 편으로 회유한 것이었는데.

‘대산은 공격을 막아낼 전력이 없었다.’

아티라가 강하다는 것.

그녀의 아래에 있는 마틸다도 상당한 전력이라는 것.

어느 하나 간과하지 않았었다.

‘중간에 장판석이 도착한 건 예상 밖이었지만.’

이건 소피아에게 한 방 얻어맞고 말았다.

모든 정보망과 카리조의 정보를 동원해 각 기둥의 위치를 파악해뒀었는데.

유일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게 장판석의 위치였기 때문이다.

이번 공격을 알아채고 미리 한국으로 불러 들여놨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통제 가능한 변수였다.’

장판석 같은 변수를 제거하고자 카리조까지 불러들인 것이었다.

객관적인 전력 차는 비슷하거나 카리조가 한 수 위인 상태.

설령 카리조가 졌더라도 가 있던 헌터들의 전력이 상당했기에 문제 될 건 없었다.

# … 어째서 실패했다고 보십니까?

실패 보고를 들은 후 연수정이 끊임없이 생각해온 것.

생각해왔지만 아직까지 답을 얻지 못한 물음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실패해선 안 되는 작전이었다.

‘카리조는 장판석과 싸웠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그 많은 전력은 대체 누가…?’

“파악 중입니다.”

# 피해가 적지 않습니다.

# 이천호로부터 약속받았던 대산의 지분도 물거품이 됐고요.

# 죽은 헌터들 역시 모두 비싼 자원이었습니다.

‘입 닥쳐! 이 늙은이들아!!’

있는 힘껏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아냈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을 구태여 입 밖으로 내며 징징대는 회의의 늙은이들.

그 자리까지 올려준 게 누구인데 한 번 실패했다고 저렇게 징징대는 게 너무 꼴 보기 싫었다.

똑똑.

연수정이 화를 꾹꾹 눌러내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연창환입니다.

“들어오세요.”

누군가의 등장에 다시 한번 정적이 찾아온 회의실.

연수정의 친동생이자 정보부를 맡고 있는 연창환이 유에스비 하나를 건넸다.

“이건…?”

“대산 근처에 있던 드론 중 한 대에 담겨있던 자료입니다.”

무언가에 휩쓸려 전부 파괴되었던 연창환의 드론들.

그중 하나에 담겨있던 자료를 되살린 것이었다.

슥.

자료를 건네받은 연수정이 앞에 놓인 노트북에 유에스비를 연결했다.

삐이---!

약간의 로딩 시간을 거치고.

유에스비에 있던 동영상과 사진이 연수정의 노트북 화면으로 띄워졌다.

“…!!”

무언가를 보고 깜짝 놀란 연수정의 얼굴.

# 뭡니까?

# 빨리 공유하세요!

회의에 참석한 이들의 재촉이 이어졌지만.

연수정의 귓가에 들리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 서거! 서걱! 콰득!

동영상에서 이어지는 말도 안 되는 장면들이 연수정의 모든 사고를 빼앗아버렸기 때문이다.

‘이거다.’

상식적으로 떠올릴 수 없었던 변수.

이번 공격을 실패로 이끈 변수.

눈앞의 남자가 그 변수라는 확신이 들었다.

삑.

동영상이 종료되고.

드론이 담은 마지막 장면에 화면이 멈추어졌다.

온몸을 붉은 피로 뒤덮은 채 보기만 해도 소름 돋는 검은 날개를 펼치고 있는 남자.

‘….’

자신의 일을 제대로 방해한 변수.

변수를 발견한 순간 분노가 치밀거라 생각했었지만.

아니었다.

꿀… 꺽.

연수정이 느끼고 있는 건 분노가 아니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를 마주한 기분.

아무리 계산을 하고 전략을 짜도 넘지 못할 존재.

전술을 뛰어넘는 무력을 목도하며 연수정이 분노 대신 느낀 감정은 두 가지였다.

경외심과.

꽈악.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본능에 의해 끌어올려진.

선명한 공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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