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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55화 (155/473)

155화. 대리인

이거 참 부담스럽구만.

저벅.

대산 건물을 빠져나오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마주치기 무섭게 고개를 숙인 소피아와 아티라.

애초에 무기에 대한 정보를 넘겨받으며 갚기로 한 빚이었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두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들과 대산을 구해줘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왔다.

- 계열사라도 하나 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 뒤에서 농담식으로 말을 건넸던 장판석까지.

순간 골방에 처박혀 있던 내가 대기업 계열사의 사장!?

이란 라노벨스러운 미래가 그려졌지만.

멀쩡한 회사를 말아먹을 순 없는 노릇이었기에 세차게 손을 내저었었다.

- 원하시는 걸 말씀해주세요. 가능한 거라면 대산에서 모두 지원해드리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지난번 정보에 대한 답례로 싸운 것이라 말해도 소용없었다.

계속해서 고개를 저으며 원하는 걸 말하라는 소피아.

그런 소피아를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고 말았다.

양심 없는 새끼라고 생각하겠지.

무언가를 달라고 할 생각은 정말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또 받아와 버렸다.

두툼.

고개를 내려 손에 쥐어져 있는 문서 더미를 바라봤다.

몇 번이고 손을 내젓긴 했지만.

그렇다고 필요한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돈이나 건물 같은 물질적인 걸 넘어 이곳으로 오는 길에 필요해진 게 있었기 때문이다.

척준경의 악귀참도.

물론 이전에 이미 자료를 넘겨받긴 했었지만.

난 보다 더 디테일한 정보가 필요했다.

공식적인 보고 문서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악귀참도를 찾기 위해 대산의 이들이 행한 판단과 행동의 이유.

그 이유가 알고 싶었다.

대산은 악귀참도를 찾지 못했어.

최종적으로 소실 되었을 거란 판단을 내리며 탐색을 포기했던 회귀 전의 대산.

그랬던 만큼 공식적인 자료만으로는 악귀참도까지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물론 공명이 있는 만큼 자료를 따라가다 보면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조금이라도 확률을 높여야 해.

그래서였다.

공식적인 자료 외에 보고서를 쓰기 직전까지 대산 탐사 전문가들의 판단 근거가 되었을 그들의 생각이 필요했다.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생각이라도 좋았다.

틀렸다고 판단하여 금방 잊어버린 생각도 괜찮았다.

아주 작은 단서가 되어 날 악귀참도의 공명까지만 이끌어 줄 수 있다면 가치는 충분했기에.

모든 걸 알고 싶었다.

그래야 도윤을 데리러 갈 수 있어.

원래도 찾고는 싶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멋있으니까.

그리고 무기고에 넣을 수 있을 거 같으니까.

하지만.

망자의 길에 갇혀 있던 도윤을 발견하며 악귀참도를 꼭 찾아야 하는 이유가 생겨버렸다.

베지 못하는 걸 벨 수 있는 검.

악귀참도를 부르는 많은 이름 중 하나였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죽일 수 없는 악귀를 유일하게 벨 수 있었다던 척준경.

고려 시대의 사람이었던 만큼 아주 오래전에 붙여진 수식어들이라 정확히 어떤 걸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지금 가진 수단으로는 죽일 수 없는 망자.

악귀참도에는 망자를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있었기에.

어떻게든 찾아낼 생각이었다.

전에 받았던 거랑 비교가 안 되네.

손에 있는 문서를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 여기 있습니다.

말하기 무섭게 소피아는 탐사팀에 연락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탐사 팀장이란 사람이 두툼한 문서 더미를 가지고 올라왔다.

보고서를 올리기 직전 어째서 이런 결정을 했는지 항상 적어두는 게 지침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이걸 어느 세월에 다 보나.

손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에 약간 막막한 생각이 들었지만.

악귀참도를 찾을 수만 있다면, 찾아내서 도윤을 구해낼 수 있는 방법이 생긴다면.

이런 막막함 정도는 감사한 마음으로 얼마든지 감수할 생각이었다.

쏘옥.

메고 온 백팩에 문서를 집어넣은 후.

사람이 북적이는 거리로 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잭 더 리퍼와 동기화했을 때의 감각.

한 가지를 끝내니 잠시 미뤄뒀던 다음 생각이 떠올랐다.

신나게 헌터들을 베며 점점 퍼졌던 피의 광기.

나도 모르는 사이 흩뿌려지는 피를 바라보며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으.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다름 아닌 피를 보며 그런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느꼈었다니.

괜히 동기화가 아닌 모양이었다.

- 찌릿.

그리고, 싸움의 막바지에 느껴졌던 경계.

그 경계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게이지가 가득 차 있던 무기 중 유일하게 잭 더 리퍼만이 새로운 기술을 개방하지 않았었기에.

그것에 의한 경계라 추측만 해볼 뿐이었다.

유일하게 게이지가 차 있으니까.

가득 찬 게이지로 동기화가 발현됐던 비늘과 리볼버.

그리고 이동하며 발도가 가능하게 된 스이카까지.

세 무기에 차 있던 게이지는 동기화와 기술의 발현으로 깔끔하게 사라진 상태였다.

“흐으음.”

순간의 감각을 떠올리며 턱을 문질렀다.

겁나 위험해 보였는데.

워낙 위험한 상황의 연속이다 보니.

위험이라는 감각에 많이 무뎌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잭 더 리퍼에게서 느낀 경계가 위험하다고 느껴진 이유는 하나.

경계를 넘는 순간 내 자신이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 때문이었다.

사방으로 뿌려지는 피를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낀 것도 분명 광기의 영향이었어.

경계를 넘기 전에도 이 정도 수준인데.

넘는 순간 나 스스로가 어떻게 변할지 감이 잘 안 잡혔다.

넘는 방법은 알 것 같아.

명시적으로 경계 넘는 법이 쓰여있는 건 아니었지만.

잭 더 리퍼의 경계를 넘는 방법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너무 간단한 방법이었다.

더 많은 피를 뿌리는 것.

잭 더 리퍼를 이용해 더 많은 적의 혈관을 끊고 피를 솟구치게 만들기만 하면 되었다.

혹시 모르니 주변에 적만 있을 때 해야지.

무슨 일이 생길지 예측할 수 없다고 가득 찬 게이지를 언제까지나 방치할 순 없는 노릇.

광기의 결과가 어떨지 모르기에 최소한의 예외처리만을 한 후.

잭 더 리퍼의 경계를 넘어 볼 생각이었다.

저벅.

“얼레.”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얼마나 걸어왔을까.

어느새 목적했던 곳 바로 앞까지 와있었다.

# 국가 데몬 사건 기록실.

국가직 헌터만이 출입할 수 있는 기록 보관소.

먼저 태랑 님부터 살려야지.

기태랑을 베었던 게 데몬인지 사람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회귀 전에도 세기의 미스테리로 남았던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을 찾아왔다.

개방과 데몬이 나타난 이후 보고된 모든 사건 사고가 있는 장소.

어찌 보면 무모하다고 느껴지는 방식이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회귀 전에 가지고 온 정보가 없는 이상 이제부터라도 찾아보는 것밖에는 말이다.

2주 정도 남으면 태랑 님 옆에 찰떡 모드로 달라붙어 있어야겠지만.

그 날까지 손가락만 빨며 기다리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달라붙어 있음으로 기태랑이 죽는 장소에 함께 있을 수 있다고 한들.

아무것도 대비하지 못한 상태라면 그대로 기태랑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몰랐다.

꽈악.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저벅.

기록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찾는다.

* * *

예루살렘의 한 공터.

콰직! 콰득!

공터에 선 남자가 달려드는 데몬들을 처치해나갔다.

짧은 회색 머리와 강인한 신체를 가진 남자, 하킨.

이스라엘 국가직 헌터 소속으로 2급에 올라있는 남자였다.

“키아아악!”

“더럽게 많네.”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며 끊임없이 달려드는 데몬들을 바라보면서도.

홀로 대적하고 있는 하킨에겐 여유가 넘쳤다.

카앙!

캉!

날아드는 공격을 피하지도 않았다.

하킨은 그저 자신의 공격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할 뿐이었다.

“다른 공격은 없는 거냐! 간지럽다고!”

콰앙!

주먹을 치켜든 하킨이 앞에 있는 데몬의 머리를 부수었다.

스으으…!

데몬의 피를 뒤집어쓴 채 강한 힘을 뿜어내고 있는 하킨의 주먹.

하킨의 주먹은 사람의 살색과는 다른 색을 띄고 있었다.

- 불사의 몸을 가진 헌터. 철의 인간, 하킨.

하킨이 개방한 능력은 철강화.

자신이 원하는 타이밍 혹은 위협이 감지되었을 때 몸을 철로 바꾸는 능력이었다.

- 하… 하킨이다! 도망쳐!

개방이 나타나며 나타난 건 데몬만이 아니었다.

능력을 이용한 범죄자들 역시 늘어난 상태.

그런 이스라엘의 범죄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바로 하킨이었다.

칼을 휘둘러도, 총을 쏴도, 철로 이루어진 하킨의 몸에 상처를 내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콰득!!

마지막 데몬의 머리를 부수며.

툭툭.

하킨이 몸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오늘도 단 하나의 상처도 없이 데몬 토벌에 성공했다.

“시시하네.”

긴장감이라곤 전혀 없는 싸움이었다.

애초에 다치지 않을 게 확정적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싸움이었기에.

긴장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저벅.

“응…?”

그런 하킨 앞에 모습을 드러낸 두 명의 남자.

‘언제 다가온 거지?’

하킨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정도 거리까지 다가오는데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니.

‘데몬놈들 쳐죽이느라 너무 신이 났었나 보군.’

“누구냐?”

하킨의 물음에 둘 중 앞에 있는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 뭐냐.”

쿠드득.

하킨의 주먹이 철로 뒤덮여갔다.

고개를 든 남자의 얼굴엔 기괴한 문양이 한가득 그려져 있었다.

삐죽삐죽 솟은 날카로운 이빨과 초점 없는 눈동자까지.

인간이 아니었다.

‘체형만 보면 완벽한 인간인데.’

고개를 들지 않았다면 모를 정도로 데몬은 인간에 가까운 체형을 가지고 있었다.

“뒤에도 데몬이냐?”

스윽.

하킨의 물음 때문이었을까.

뒤에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인간…?’

하킨에게 약간의 혼란이 찾아왔다.

화사한 금발과 한없이 맑은 벽안을 가진 남자.

외모만 봤을 땐 영락없는 사람이었다.

‘어째서 데몬이랑?’

하킨이 의아해하는 사이.

벽안을 가진 남자가 입을 열었다.

“불사자 하킨.”

“…!”

하킨을 알고 있는 벽안의 남자.

“불사자라는 오만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당신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왔습니다.”

“뭐…?”

나지막이 읊조리는 남자에 하킨이 인상을 찌푸리는 사이.

스릉.

앞에 있던 데몬이 기다란 검을 뽑아 들었다.

“허…? 날 알면서도 검쟁이를 데려온 거냐?”

하킨이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온몸이 철로 뒤덮인 자신에게 깨달음을 주겠다는 남자.

그런 남자가 들고 온 건 고작 철로 된 검이었다.

“불사자라 불릴 수 있는 건 오직 한 분뿐입니다. 당신 따위가 가질 수 있는 칭호가 아니죠.”

“입만 살은 건가? 그 깨달음이라는 거.”

팟!

“줘보시지!”

먼저 움직인 하킨이 둘을 향해 주먹을 치켜들었다.

‘전신 철강화.’

평소와 같이 온몸을 철로 뒤덮은 하킨.

눈으로 보이는 위험 요소는 한 자루의 검뿐이었기에.

상처 입을 일 따위는 없었다.

“불사자를 사칭하는 가짜의 죽음.”

키잉…!

남자의 벽안이 빛을 뿜어내고.

“Deus Lo Vult, 신께서 그것을 원하신다.”

눈에서 뿜어진 황금빛이 주변을 물들여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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