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실마리
날이 밝은 예루살렘의 공터.
“이쪽으로 와!”
“여기 맞아!?”
“예! 하킨 님의 신호는 여기가 마지막이었습니다!”
많은 수의 이스라엘 헌터가 공터로 들어섰다.
모두가 국가직에 속한 이들로 갑자기 신호가 끊긴 2급 헌터 하킨을 찾기 위해 온 것이었다.
“긴장해라! 데몬의 짓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오랫동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지역 중 하나였던 예루살렘.
공식적으론 이스라엘에서 관리를 하며 헌터를 자유로이 파견할 수 있었지만.
언제 어디서 불만을 품은 팔레스타인 측의 공격이 있을지 모르는 장소였다.
“데몬들 상처를 보니 하킨 님이 맞습니다.”
공터에 늘어져 있는 데몬을 조사하던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묵직한 무언가에 의한 타격흔.
철 인간 하킨의 토벌 장소를 많이 봐왔기에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잘 찾아! 크기가 작을 테니까. 팔레스타인 놈들 손에 들어가지 않게 회수는 해야 한다.”
공식적으로는 하킨을 찾으러 나왔지만.
이들은 하킨이 이곳에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이스라엘에서 불사자로 분류되는 능력자 중 한 명인 하킨.
지금까지 수많은 전장을 헤쳐오며 데몬과 적으로부터 국가를 지켜온 헌터였기에.
싸우던 중 자기도 모르게 신호기를 잃어버린 것뿐이지 이런 공터에 누워있을 걸 가정하고 찾으러 온 건 아니었다.
“수색 끝나면 하킨 님에게 뭐라도 얻어먹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마 사주실 거다. 또 신호기 찾으러 왔다 말씀드리지 말고! 걱정돼서 미칠 뻔했다는 걸 어필하란 말이야!”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래서였다.
연락이 끊겼음에도 아무런 걱정 없이 수색을 벌일 수 있는 이유는 말이다.
어떤 적을 만나든 작은 생채기조차 입지 않았던 하킨이기에.
얼른 신호기만 찾고 돌아가 생색을 낼 생각이었다.
툭.
“응?”
감지기를 들고 걷던 헌터.
헌터가 발에 걸린 무언가를 내려다봤다.
삐--- 삐---
감지기와 반응해 붉게 점멸하고 있는 신호기.
“어…?”
정확히는 신호기가 장착되어 있는 하킨의 시계가 헌터의 눈에 들어왔다.
시계가 차져 있던 주인의 손목과 함께였다.
예상치 못한 광경에 잠시 눈을 비비는 헌터.
“아셀 티… 팀장님…!”
“왜 뭔데! 얼른 신호기나 찾으라니깐 데몬 시체는 왜 보고 앉았…? 왜 그래?”
삐-- 삐---!
핀잔을 주려다 팀장 아셀이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웠다.
왠지 모르겠지만 심각한 얼굴로 얼이 빠져 있는 부하.
부하가 서 있는 장소였다.
들고 있는 감지기가 짚어낸 장소는 말이다.
‘….’
꿀꺽.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아셀의 목으로 넘어가는 마른침.
어째서 긴장되거나 초조할 때나 생기는 마른침이 넘어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 찾고 있는 건 하킨이 아니라 하킨이 차고 있었던 신호기일 뿐인데.
감지기가 짚어내고 있는 저 장소에는 하킨이 아니라 신호기가 놓여 있을 터인데.
긴장된 아셀의 몸은 부하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걸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정신차려라, 아셀! 그렇게 많은 공격을 맨몸으로 받고도 죽지 않은 분이다.’
저… 벅.
아셀이 스스로를 다독이며 부하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음은 다잡았지만 어째선지 자신감이 결여된 걸음걸이였다.
“….”
도착한 아셀이 여전히 굳어 있는 부하의 시선를 쫓았다.
“!!!”
시계가 차져 있는 손목을 따라 도달한 곳.
그곳엔 끔찍한 시체가 놓여 있었다.
죽은 뒤 한동안 방치된 건지 여기저기가 뜯어 먹혀 있는 시체.
시계가 있는 손목을 제외하곤 온전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아닐 거다.’
얼굴은커녕 신체의 본래 생김새마저 파악하기 힘든 상태였기에.
아셀이 부정하며 천천히 몸을 굽혔다.
감지기의 역할은 신호를 찾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대상이 국가직 헌터라면 지문이나 혈액을 이용해 간단한 신분 확인 역시 할 수 있었다.
꾸욱.
감지기에 시체의 피를 묻히고.
유일하게 온전한 손가락의 지문을 찍어 눌렀다.
삐이이이----!
감지기가 지문과 혈액을 인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어느새 다가온 수색 팀원들.
팀원들 모두가 긴장된 얼굴로 감지기의 결과를 기다렸다.
겉으로는 모두가 아닐거라며 부정하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불안감에 모두가 사뭇 긴장한 얼굴이었다.
‘제발…!’
삑!
아셀의 간절한 말과 함께 나타난 감지기의 결과.
털썩.
나타난 결과에 모두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어가고.
몸을 굽히고 있던 아셀은 힘이 풀려 바닥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 이스라엘 2급 국가직 헌터.
# 하킨 드라스.
# 생체 반응 없음.
# 사망.
* * *
삑. 삑. 삑.
흐음.
삑삑삑삑.
사건 사고 더럽게 많구나.
앞에 펼쳐진 기록소의 스크린.
스크린엔 정말이지 많다는 단어를 한참 뛰어넘는 양의 정보가 펼쳐져 있었다.
바다에서 수영 중 가오리 데몬에게 물려 죽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밭에서 농사를 하다 데몬화 된 토끼의 발에 치여 죽은 사례도 있었다
아주 그냥 위험천만한 세상이야.
일단 했다 하면 수명의 법칙에서 벗어나게 되는 능력의 개방.
모두가 개방을 하는 순간 영생을 손에 넣은 듯 기뻐했지만.
이런 데몬들에 의한 사건들을 보면 온전히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의구심이 들었다.
응?
열심히 페이지를 넘기던 중.
눈에 익은 사건이 보였다.
그리스에서 일어난 사신 사건.
기록소엔 정체불명의 데몬에 의한 소행으로 적혀 있었다.
로인 이거 많이도 보냈구만.
그리스에서만 꽤 많은 건수가 기록되어 있는 사신 사건.
기록에는 극악무도한 데몬으로 처치 불가일 것이라 여겨져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죽을 운명인 사람의 목숨을 하루 전에 거둬간다는 걸 알고 있어서일까.
그다지 극악무도해 보이진 않았다.
애초에 데몬도 아니었고 말이다.
- 이제 제가 궁금한 것들을 대답해주시죠.
무… 무서운 녀석…!
다시 생각해보니 무서운 것 같기도 했다.
전수희와 고기 폭식을 한 뒤 호텔로 돌아가는 길.
방으로 들어가려는 내 뒤로 로인이 나타났었다.
- 제가 궁금한 건 두 가지입니다.
이집트에서 망자의 길로 들어가기 전부터도 직감하고 있었지만.
로인이 물어온 것들은 역시나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었다.
어려워서라기 보단 애매한 질문들.
어떻게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거냐… 라.
“흐음.”
굳이 물어본 적은 없지만, 나도 궁금하긴 했었다.
로인이 계속해서 말하는 운명이란 게 대체 뭔지 말이다.
회귀해서 돌아온 건… 확실히 운명이 바뀐 거긴 하지.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난 골방에 처박혀 재미없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일이기에 운명이 바꼈구나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연화의 경우는 달랐다.
거창하게 이연화의 운명을 바꾸려 했다기보단.
지켜야 하니까 지킨 건데.
메토스고 피안화고 내 알 바가 아니었다.
친구인 이연화가 죽을 위기에 처했고.
그렇기에 구했을 뿐이었다.
- ….
이렇게 대답했을 때 로인의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겨우 이딴 대답을 들으려 여기까지 따라왔나 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진짜 이것뿐이었는데.
- … 두 번째 질문도 대답해주시죠.
첫 번째 대답에 몹시 실망해 기대는 안 되지만, 일단은 끝까지 들어주겠다는 얼굴이었다.
- 이상한 새끼네, 이거.
물론 육성으로 뱉은 말은 아니었다.
두 번째 질문을 들었을 때 나의 속마음이었다.
- 어째서입니까? 메토스가 나타난 공터에서 전 어째서 당신과 친구를 도운 겁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짜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말해줬겠지만.
로인 덕분에 도윤을 찾고 소피아 역시 구할 수 있었기에.
대답할 수 없을 걸 알면서도 최대한 머리를 굴려댔었다.
날 죽일지도 몰라.
고마움도 고마움이었지만 약간 무서웠다.
뻥카로 일단 망자의 길로 들어간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혀 평생 사신에게 쫓기는 것이 말이다.
-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서… 가 아닐까? 당시 너의 감정과 생각을 내가 알 길은 없지만, 너도 모르게 미안함을 느낀 거지.
최대한 당시의 상황과 로인의 행동을 생각하며 입을 열었었다.
미안이란 단어가 낯선 건지 약간이지만 눈살을 찌푸렸었던 로인.
- 네가 아니었어도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던 사람의 목숨을 거뒀던 거잖아. 그런데 거두려던 연화의 운명이 바뀌었고, 넌 원래 죽지 않을 수 있는 연화의 목숨을 거둬가려던 거였으니까. 네 말대로라면 나의 개입으로 인해 운명인 바뀐 거지만, 어쨌든 그거 때문에 미안해서 우리를 도왔다…?
내가 낼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이었다.
이 이상 쥐어 짜내는 건 불가능.
대답을 듣고도 로인이 낫을 휘두른다면 뻥카를 친 대가로 한 대는 시원하게 맞아 줄 생각이었다.
- ….
하지만.
낫을 휘두를 거란 예상과 달리 로인은 고민에 빠진 얼굴이었다.
- 미안…?
미안이란 단어를 읊조리면서 말이다.
마치 어떤 감정인지를 모른다는 듯한 읊조림이었지만, 애초에 모르는 감정을 내가 알려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제발 낫만 휘두르지 말라고 기도하며 로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 지금 굳이 알아야 할 필요 있을까? 살다 보면 알게 되는 날이 오지 않겠어?
무책임한 긍정론과 함께 말이다.
- ….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겼던 로인.
- 사아아.
로인의 모습이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 전 돌아가겠습니다.
간략한 한 마디만을 남긴 후.
그리스산 사신 로인은 모습을 감추었다.
“이상한 놈이야.”
이상한 놈이었지만 이상하게 싫진 않은 녀석이었다.
첫 만남 때는 불가항력으로 걷어차며 만나게 됐지만 말이다.
“친구 없을 거 같은데.”
혼자 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골방 히키코모리답게 나라고 친구가 많았던 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나보다 더 친구가 없을 듯한 로인이었다.
과거에 지독한 외로움을 겪어 봐서인지 매일 홀로 사라져버리는 로인이 짠하게 느껴졌다.
“….”
뭐.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인연이라면 다시 만나겠지!
끼익!
힘차게 기댔던 의자를 세우며 스크린을 넘기기 시작했다.
부디 아주 작은 실마리라고 있길 바라면서 말이다.
띠링.
응?
그때 스크린 하단으로 떠오르는 작은 메시지 박스.
조금 전 기록소에 새로운 사건이 등록되었다는 메시지였다.
하긴 정보의 대상이 세계이니.
끊임없이 올라오겠네.
꾸욱.
별생각 없이 새로 떠오른 메시지 박스를 클릭했다.
등록한 곳은 이스라엘.
# 하킨 드라스.
# 41세.
# 국가직 2급 헌터.
# 사망.
2급 헌터라.
국가마다 기준이 다르긴 해도 꽤 강한 사람인데.
왜 죽은 거지?
스크롤을 조금 더 내려봤지만.
아쉽게도 사망 원인은 정확히 쓰여 있지 않았다.
사망 이후에 사체 훼손이 심해 정확한 사인을 구분해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으음.
딱히 눈에 띄는 게 없는 기록에 다음으로 넘어가려는 찰나.
…?
하킨의 죽음에 대한 한 줄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 하킨은 생전 몸을 철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개방했었다. 수많은 전투에서도 생채기 하나 입지 않았었기에, 불사자라 불리었다.
기사의 문장 중에서도 내 눈을 강하게 붙잡은 단어는 명확했다.
수많은 싸움에서도 상처 하나 입지 않는 철의 몸, 그리고 상처 입지 않는 몸을 가져 죽지 않는 사람을 부르는 용어.
불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