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불사자
과한 억측일 수도 있었다.
기록에 나온 불사자란 단어.
이 단어만을 보고 회귀 전 기태랑의 죽음과 연관 짓는 것은 말이다.
확인만 해보자.
하지만, 밑바닥에서부터 헤딩하는 입장이었기에.
과하고 아니고를 따질 여유 따윈 없었다.
약간의 실마리라도 보인다면 아니라는 판단이 설 때까지는 파보아야 했다.
# 대체 누가 철 인간 하킨을 죽였는가?
기록에 올라온 하킨이란 인물은 이스라엘에서 유명인이었다.
어느 전장을 나서던 상처 하나 없이 연전연승을 거뒀던 국가적 영웅.
어떻게 보면 현재 한국에서의 기태랑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다.
태랑 님처럼 몸이 항상 철인 건 아니고.
기록에 링크된 수많은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기태랑과 다른 게 있다면 하킨의 몸은 24시간 철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
평소엔 일반적인 사람의 몸이었다가 필요로 할 때 철강화를 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럼 죽는 게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닌데.
기태랑이 불사로 불리며 절대 죽지 않는 인간이라 불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능력을 굳이 발동시키지 않아도 디폴트로 몸이 다이아몬드였기 때문이다.
자고 있을 때 기습을 하던 약을 먹여 정신을 잃게 한 뒤 공격을 하던.
24시간 다이아몬드기에 어떤 공격으로도 뚫을 수 없는 몸이었다.
그에 반해 하킨은 자신이 원할 때만 철강화를 시킬 수 있으니 무의식중이었다면 죽음이 불가능한 건 아닌 셈.
# 철 인간 하킨의 실험.
실험…?
하킨이 죽을 수 있는 여러 케이스를 떠올리던 중.
과거 하킨이 능력 개방 후 벌여온 실험들에 대한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자기 자신한테 실험을 한 건가.
스스로의 몸에 실험이라 하니 순간 괴짜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용을 살피니 그런 경악스러운 종류의 실험은 아니었다.
# 능력의 발동 조건.
하킨은 보다 자신의 능력을 잘 파악하기 위해 간단한 케이스를 통해 실험을 벌인 것이었다.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발사된 총알에도 능력이 발동했다…?
내용을 보니 약간 괴짜가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어쨌든 하킨은 자신이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총을 발사시켰고.
총알이 도달하는 찰나의 순간 하킨의 몸은 철로 변해 총알을 막아냈다.
발동을 원할 때만 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필요할 땐 저절로 변한다는 건가.
실험 중엔 내가 생각하던 케이스를 반박하는 내용이 하나 더 있었다.
수면제를 먹고 완벽한 가사 상태에 빠진 하킨에게 칼을 찔러 넣는 실험이었다.
이것도 철로 변해서 막았다고?
이 정도면 완벽 방어 아닌가.
톡… 톡.
책상을 두드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래에 달린 실험 내용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하킨이 죽을 수 있는 케이스가 여럿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용들을 보니 사람들이 불사자라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의식을 잃었을지라도 몸은 철로 변한다.
그럼 몸이 철강화가 안되어 죽었다는 가설은 가능성이 사리지는 건데.
다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건 철 자체의 파괴였다.
철이라고 안 부서지는 건 아니었기에.
견뎌낼 수 없는 강한 힘이나 높은 온도로 녹여내는 게 가능했다.
녹인 건… 아니겠지?
녹여 죽인 거라면 분명 몸에 흔적이 남았을 터.
강한 힘에 의해 죽임을 당한 뒤 무언가에 의해 사체를 훼손당했다가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있었다.
“흠.”
불사자란 단어 하나만 보고 어떻게든 기태랑과 매칭시켜보려 했지만.
과도한 억측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체에 검흔이라도 남아 있었으면 모를까 회귀 전 기태랑의 죽음과 비슷한 게 전혀 없었다.
“공통점이라곤 불사자라 불렸던 것 하나뿐인가.”
잠시 생각을 하다 스크린의 검색창에 손을 올렸다.
# 불사자.
별생각 없이 적은 단어였다.
유일하게 내 이목을 끈 단어였기에.
안될 것 같지만 관련된 기록이라도 찾아볼 생각이었다.
딸칵.
띠링.
…?
“뭐야?”
눈앞에 나타난 많은 양의 기록.
불사자와 매칭되는 기록들에 몸이 스크린 쪽으로 쏠렸다.
# 요르단, 불사자라 불리던 헌터 실종.
# 세네갈, 불사자라 불리던 헌터의 사망.
# 불사자였지만 의문의 죽음, 대체 누가 그를 죽였는가.
두 페이지에 걸쳐 정렬되어 있는 기록들.
모두 각 나라에서 불사자라 불리던 존재들의 죽음 혹은 실종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 심장이 뚫려도 다시 재생했던 헌터 두락. 두락을 죽인 건 대체 무엇일까?
심장이 뚫려도 살아남는 능력자가 죽었다…?
이건 또 기태랑, 하킨과는 다른 케이스였다.
자세히 알 순 없지만 자기재생 관련 능력자인 듯한 두락.
두락은 깊은 정글 속에서 사망하여 한참이 지난 뒤에야 발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덕분에 상당한 부패가 진행되어 사인은 역시 알기 힘들다는 것.
드륵… 드륵.
스크롤을 내리며 관련된 기사들을 모조리 살폈다.
항상 전투와 가까운 곳에 있는 만큼 죽음과도 가까운 헌터였지만.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기록의 날짜가 전부… 2년이 되지 않았다.”
개방이 나타나고 10년도 더 지난 지금이었다.
기록소 시스템이 도입된 것 역시 7년이 넘은 시점.
그런데도 불사자 죽음에 대한 기록들은 모두 최근 2년에 몰려 있었다.
단정 지을 순 없지만 기록만 봤을 때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2년 전부터 불사자의 죽음이 시작되었다.
기록된 모든 이가 각 국가에선 유명 인사들이었다.
2년 전에 죽었던 걸 늦게서야 발견하고 이제서야 보고하거나 한 게 아니란 말이었다.
“모두가 불사자라 불렸고, 이론적으로 죽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기록을 살펴보고 있는 사이.
나도 모르게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2년 전부터 누군가 이론적 불가능을 뚫고 불사자라 불린 능력자들을 죽이고 있다.
실제로 죽은 이들이 불사자는 아니었다.
단지 개방한 능력상 죽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것일 뿐이었다.
능력의 발동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말이다.
“흠.”
눈에 띄는 건 한 가지 더 있었다.
진짜인지 아닌지를 떠나 모두가 불사자로 불리었다는 것.
누군가 불사자를 죽이고 타겟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다면.
사람들에게 불사자라 불린다는 것이 그 기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톡… 톡.
잠시 간의 생각을 마친 후.
드륵.
앉아 있던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기록을 통해 고민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국가에서 칭송받던 불사자에 대한 죽음을 비통해하는 기사가 대부분일 뿐.
자세한 조사나 당시 현장의 환경에 대해 기록된 건 없었기 때문이다.
가봐야겠어.
아직 시간이 있으니 직접 가서 알아볼 생각이었다.
어째서 불사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2년 전부터 죽어 나가고 있는 건지.
만약 불사자를 죽이는 사람이 있다면.
저벅.
어째서 죽이는 건지를 말이다.
* * *
예루살렘의 한 신전.
신전의 성벽 위에 두 명의 남자가 서 있다.
“어?”
그런 남자를 발견한 신전의 경비.
경비 유손이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응시했다.
‘어떻게 저기까지 올라간 거야?’
아슬아슬한 성벽 위였다.
돈을 주고 올라가라 해도 거절할 아찔한 높이.
“저기요! 거기 올라가시면 안 됩니다! 내려오세요!”
유손이 두 남자를 향해 외치고.
남자 중 파란색 긴 머리를 가진 자가 고개를 돌렸다.
“크르르.”
‘크… 크르르…?’
소름 돋는 울음소리와 안대와 마스크를 차고 있는 기괴한 생김새까지.
왠지 모르게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단 생각에 유손이 주춤거렸지만.
“진정하세요, 칸.”
곧이어 옆에 있던 남자의 온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놓게 만드는 신비로운 목소리였다.
“….”
으르릉거리던 칸도 마찬가지였는지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던 자세를 거두었다.
“와….”
칸의 옆에 있는 남자를 본 유손이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노을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금발과 머리만큼이나 아름다운 벽안, 세상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것처럼 깨끗한 얼굴까지.
백이면 백 탄성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생김새였다.
“제 이름은 로튼. 당신은요?”
“유… 유손입니다.”
성벽에 올라있는 칸과 로튼을 쫓아내야 하는 입장이었지만.
유손은 쫓아내긴커녕 로튼의 물음에 순순히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사악!
“!!”
그렇게 유손이 로튼의 외모에 눈을 빼앗겨 있는 사이.
높은 성벽 위에 있던 두 명이 유손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땅으로 내려왔다.
‘뭐… 뭐지…?’
내려왔다기보단 갑자기 나타났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속도.
유손이 눈을 비비며 가까워진 로튼을 바라봤다.
저벅.
칸에게 무언가를 말한 뒤.
로튼이 홀로 유손에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꿀꺽.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되는, 그런 신비로운 분위기를 로튼은 픙기고 있었다.
“유손.”
“예… 예!”
어느새 유손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로튼.
로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은 이 세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예…?”
갑작스러운 질문에 유손이 당황하자 로튼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개방으로 인해 당신들은 수명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어떤가요?”
“어… 그게… 좋습니다. 유한한 시간으로 항상 쫓기는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아니거든요.”
유손의 생각이자 인류 대부분의 생각이었다.
여전히 병이나 사고에 의한 죽음은 존재했지만.
적어도 나이가 들어 죽진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세상엔 불변의 법칙이 있습니다. 태어났으면 죽어야 하며, 죽으면 다시 태어나야 하죠.”
‘전도하시는 건가…?’
여러 종교의 집합체인 예루살렘이었기에.
비슷한 듯하지만 다른 종교 간의 전도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었다.
“기존엔 수명이란 법칙이 태어난 것을 필연적으로 죽게 만드는 역할을 했었죠. 운이 좋아 모든 죽음을 피해내더라도 말입니다.”
“그… 그렇죠.”
다른 이였다면 시간 낭비라고 등을 돌렸겠지만.
어째서인지 로튼이 하는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수명은 지금의 인간에겐 적용되지 않는 법칙이기에, 새로운 법칙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법칙이라니… 무엇을 위한 법칙을 말씀하시는 거죠?”
“인간의 죽음입니다.”
“…!”
아무렇지도 않게 죽음을 말하는 로튼.
“그래서 우리가 온 거죠. 새로운 법칙이 되기 위해서요.”
‘우… 우리…?’
우리란 단어에 유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묘한 단어였다.
분명 같은 사람일 텐데 로튼에게서 느껴지는 엄청난 이질감.
“하지만, 우리가 왔음에도 불사자라 불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끝끝내 법칙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그저 운이 좋아 얻은 능력으로 마치 영원히 죽지 않는 것마냥 떠받들어지는 사람들요.”
저벅.
“!!”
한 발자국 더 다가와 유손의 바로 앞까지 얼굴을 들이미는 로튼.
“그래서 제가 왔습니다.”
꿀… 꺽.
여전히 아름다운 눈동자였지만.
유손의 눈에 그 눈동자는 더 이상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무서웠다.
소름 끼치도록 말이다.
싱긋.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로튼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오만한 착각에 빠진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