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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58화 (158/473)

158화. 예루살렘

“웬일이야? 호출 없으면 맨날 카지노에 박혀 있더니.”

‘그러게나 말이다.’

기태랑의 질문에 여전히 화려한 빛을 뿜어내는 은발을 가진, 국가직 헌터 소속이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카지노를 출입하는 1급 헌터 비광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냥 휴식 기간이야.”

“돈 다 잃은 건 아니고?”

“내가 언제 잃는 거 봤어? 카지노에서 제발 그만 와달라는 게 난데.”

카지노에서 그만 와달라 해도 꿋꿋이 출석부를 찍는 비광이었지만.

의도치 않게 헌터청에 머무르며 기태랑을 쫓아다니게 된 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 태랑 님 옆에 좀 있어 주세요!

며칠 전 도박 중인 비광에게 걸려온 전화 한통.

‘대한민국 기관들에서도 이렇게 막 전화하진 않는데.’

그야말로 다짜고짜 걸려온 전화였다.

전화를 받기 무섭게 이해도 안 되는 부탁을 한 인간.

기관도 못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해낼 수 있는 건 단 한 명 뿐이었다.

대한민국 10급 헌터 백운.

‘제대로 설명도 안하고 자식이.’

부탁 자체가 어려운 건 아니었다.

약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기태랑 옆에 좀 있어 달라는 것이었다.

- 태랑 님이 알면 안 돼요! 자연스럽게 행동하라구요! 자연스럽게!

‘이미 내가 여기 있는 거 자체가 안 자연스러운데 멍청한 놈이.’

이후로 두어 번 더 이유를 물었지만.

꼭 해줘야 한다는 말만이 들린 후 전화는 끊겼었다.

백운이 의도적으로 끊은 건 아닌 것 같았다.

치직거리던 걸 보니 무언가 신호가 닿지 않게 되어 끊어진 걸로 보였다.

“진짜 돈 다 잃은 건 아니지?”

“거 좀!”

한 차례 더 도발을 한 후 능글맞게 웃어 보이는 기태랑.

그런 기태랑을 보며 비광이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이놈 옆에 왜 있으라는 거야.’

상식적으로 이해가 불가능한 부탁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대신 좀 지켜주라나보다 하고 말았을 텐데.

눈앞에 있는 인간은 아무리 죽이려 들어도 안 죽는, 비광이 아는 한 불사신에 가까운 괴물이었다.

“쯧.”

전혀 이해되지 않는 부탁이었지만.

그럼에도 비광이 도박을 포기하고 기태랑을 따라다니는 이유는 간단했다.

부탁한 사람이 다름 아닌 백운이었기 때문.

그렇다고 단순히 친하다는 이유로 착실히 부탁을 들어주고 있는 건 아니었다.

‘뭔가 있단 말이지.’

백운이 지금까지 보여온 행보는 엄청났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평생 한 번 겪어볼까 말까 한 일을 이미 몇 번이나 겪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사건의 중심에서 주연으로.

‘이번에 또 무슨 일에 휘말렸길래 이런 부탁을 한 거지.’

저벅.

앞서가는 기태랑을 따라가며.

비광이 고개를 돌려 창가를 바라봤다.

능력과 데몬의 등장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혼란을 겪고 있는 세계.

‘탱탱볼 같은 놈아.’

그런 세계에는 어울리지 않는 맑은 하늘이 창문 밖으로 펼쳐져 있었다.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 거냐.’

* * *

“끄아아아아!”

청명하고 푸르게 변해 가고 있는 새벽하늘.

운동회를 하기에 딱 좋은 날씨가 될 것 같았다.

그런 하늘에서 운동회는 고사하고 자유낙하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거리 계산 실패.

히어로 랜딩…!

쿵!! 우당탕!

“끄억!”

오늘도 다시 한번 랜딩에 실패하며 모래 바닥을 뒹굴었다.

라의 불꽃 이후 꽤 늘어난 칼데아의 연기.

전보다 조금 넉넉해진 사정에 너무 생각 없이 써버린 탓이었다.

목표했던 곳까지 날아가지 못하고 중간에 떨어진 것은 말이다.

“….”

대자로 드러누워 하늘을 응시했다.

영화에서 봤던 랜딩이 하도 멋있어 따라 해보려고 했는데.

다음부턴 그냥 수리검을 꺼내 안전한 착지를 하기로 했다.

벌떡!

주저앉은 채로 몸을 일으켰다.

중간에 추락하긴 했어도 어쨌든 예루살렘에는 도착했으니.

목표한 바는 이루었다고 봐야 했다.

쉽지 않네.

정말 쉽지 않았다.

기록소에서 봤던 불사자들의 사망 장소.

요 며칠 간 한국을 떠나 그 장소들을 둘러보았다.

현장에 가면 뭐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별 소득이 없었어.

괜히 기록소에 남아 있던 기록들이 허술한 게 아니었다.

모든 국가가 한국처럼 CCTV나 첨단 수사 기술이 발달하진 않았기에.

사건의 현장에 있지 않는 이상 알아낼 수 있는 건 몹시 제한적이었다.

눈으로 하는 현장 조사와 주변 인과 관계 확인이 끝이라.

- 황금빛이 보였습니다. 장막처럼 그 일대를 뒤덮는 아름다운 빛이었어요.

그나마 얻은 게 있다면 두 명의 목격자였다.

각기 다른 국가에 사는 목격자들.

둘 모두 불사자라 불리는 헌터가 죽었을 때 근처에 있던 사람이었다.

황금빛으로 이루어진 장막.

사진을 찍어두거나 한 건 아니었기에.

둘이 본 게 완벽히 일치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

- 장막이 펼쳐지기 전까진 전투가 벌어진 건지 큰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지만, 장막이 펼쳐진 뒤엔 거짓말처럼 고요해졌죠.

당시의 정황이 무서울 정도로 비슷했다.

죽은 헌터들은 국가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들이었다.

수준 이상의 데몬이라도 일당백이 가능한 인물들.

죽은 날에도 여느 날과 같이 호출을 받고 나가 데몬을 상대 중이었다.

큰 소리는 아마도 데몬과 싸우면서 생긴 거였겠지.

그런데 장막이 펼쳐진 뒤에 조용해졌다…?

전투로 인해 시작된 소리가 장막이 펼쳐진 뒤에 사라진 걸로 봤을 때.

유추해볼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 정도였다.

장막이 헌터들을 죽였거나.

그게 아니라면 헌터들을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상태로 만들었거나.

툭툭.

몸을 완전히 일으킨 뒤 옷에 묻은 모래들을 털어냈다.

둘 중 뭐가 됐든 진짜 실존할까 싶은 능력이었다.

상대를 즉사시키거나 능력을 백지화시키는 장막이라니.

둘 중 굳이 고르라면 후자의 확률이 높겠지.

회귀 전 기태랑의 죽음.

기태랑은 무언가 미지의 힘에 의해 죽은 게 아니었다.

보도된 뉴스가 조작된 게 아니라면 분명 사인은 칼에 의한 부상 때문이었다.

“… 너무 사기 아닌가.”

능력 무효화라니.

생각만 해도 아찔한 능력이었다.

저벅.

내가 유추한 장막의 능력이 둘 다 아니길 바라며.

가려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멍하니 걷다 보니 떠오르는 기억.

비광 님은 밀착마크 잘하고 있나.

한국을 떠나기 직전 냅다 전화를 후리긴 했는데.

비광이 날 얼마나 욕하고 있을지 눈에 훤히 보이는 듯했다.

회귀했다고 말할 수도 없고.

얼마 후에 태랑 님이 죽어요!! 라고 할 수도 없고.

딜레마였다.

처음엔 기태랑에게 사실대로 말할까 고민했었다.

전 당신의 죽음을 봤으니 준비해야 한다고.

안되지.

기태랑을 못 믿어서 말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내가 경계하는 건 따로 있었다.

미래를 말해줌으로써 찾아올 변화였다.

정확히는 변화에 의해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생기는 것.

태랑 님이 경계를 가지면서 적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당장은 안전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론 좋지 않았다.

어찌 됐든 적은 기태랑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였다.

원인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는 이상 기태랑의 목숨은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었다.

태랑 님이 피해를 안 끼치려고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도 있는 거고.

더 최악의 경우였다.

내가 자신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는 걸 안다면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적의 실체와 위험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내가 휘말리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게 분명했다.

비광 님한테는 조금 미안하지만.

이렇듯 무언가 섣불리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기태랑 옆에 붙어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자 대한민국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강자, 비광에게 부탁을 했다.

일단 둘이 함께 있는 이상, 정말 정신 나간 놈이 아니라면 감히 덤비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응?”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얼마나 걸었을까.

눈앞으로 작은 부락이 보였다.

화려한 도시는 아니었지만 예루살렘은 3대 종교의 성지이자 관광 명소였다.

그런 예루살렘 근처에 이런 낙후된 부락이라니.

쉽게 매칭이 되지 않는 곳이었다.

사는 사람은 있는 거 같고.

저벅.

조금 더 다가가 기웃거리자.

“누구십니까?”

근처에 있던 노인이 내게 다가왔다.

…!

반 정도 사라진 다리을 대신하여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이었다.

“안녕하세요, 주변을 둘러보다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노인이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모르게 힘겨워 보이는 미소였다.

“길을 잃어버리셨나 보군요. 보통 관광객들은 이쪽으로 방향을 잡지 않으니까요.”

슥.

가까이 와서 보라는 듯 길을 터주는 노인.

조금 더 다가가자 부락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병들고 버려진 자들이 머무는 곳입니다.”

노인의 소개에 비해선 무척이나 밝은 분위기의 부락이었다.

넓진 않지만 곳곳을 뛰어다니며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들.

다른 마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뛰어다니고 있는 아이들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전으로 인해 사지를 잃은 사람, 병이 들었지만 돈이 없어 고칠 수 없는 사람,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어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 대부분이죠. 저 또한.”

노인이 천천히 몸을 덮고 있던 망토를 들추어 보였다.

“!!”

괴사 되어서인지 검은색으로 변한 피부가 가슴 언저리까지 번져 있었다.

“썩은 다리를 제때 치료하지 못했습니다. 길어봐야 두 달이면 죽을 테고요.”

슥.

자신의 죽음을 덤덤히 말한 노인이 고개를 돌려 부락을 응시했다.

“모두 저와 같습니다.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부락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따각.

옅게 웃어 보인 노인이 천천히 부락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니 이곳으론 더 들어오지 마십시오. 혹여나 죽음의 기운이 옮을 수도 있으니까요. 예루살렘 도심은 이쪽으로 쭉 가면 도달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한쪽 방향을 가리킨 뒤 안쪽으로 사라지는 노인.

묘한 느낌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은 느낌.

회귀 전의 나랑 비슷해서 그런가.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저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던 나였다.

개방을 하고 싶다는 희망도, 앞으로 행복할 거란 희망도 모두 내려놓았던 상태.

그래서인지 노인이 지금 어떤 심정일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차마 위로의 말은 안 나오네.

누군가는 노인을 향해 위로의 말을 건넬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위로의 말이 저 노인에게 아무런 도움도 안 될 거란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렇게 묘한 기분으로 잠시 부락을 바라보다 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

등 뒤로 느껴지는 엄청난 살기.

숨김없는 적의에 몸을 돌리자 다가오고 있는 두 명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둘 모두 망토를 뒤집어쓴 상태였지만 체형으로 봤을 땐 둘 모두 사람인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사아아…!

사라졌다…?

몸을 감싸던 살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가까이 다가왔기에 더 커질 거라 생각했는데.

쉽게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저벅.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와 걸음을 멈추는 두 사람.

그중 한 명이 얼굴까지 뒤집어썼던 망토를 천천히 내렸다.

와.

눈이 부시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화려한 금발과 눈동자.

세상에 이렇게 선한 인상이 있나 싶을 정도의 얼굴을 가진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얼떨결에 인사에 답을 하고 나자.

싱긋.

나를 향해 인사를 건넨 남자가 옅은 미소를 그려 보였다.

미소의 의미를 궁금해하려는 찰나.

금발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로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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