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어째서
조금씩 멀어져 가는 로튼과 칸.
그런 둘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봤다.
너무 쉽게 생각했나.
- 혹시 불사자라 불리는 능력자들을 만나본 적이 있나요?
무언가를 알아냈다거나 확신이 들어서 물어본 건 아니었다.
검을 기가 막히게 잘 사용하는 칸의 전투를 봐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물어보고 싶었다.
- ….
질문을 받은 로튼은 묘한 표정을 지었었다.
어찌 보면 어이없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놀란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애매한 표정으로 한동안 날 바라봤었다.
- 꼴깍.
그리고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
약간 긴장한 건지 목으로 까끌한 침이 넘어갔었다.
로튼과 칸이 불사자를 죽이고 다닌다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는데도.
잠시 뜸을 들이는 로튼이 어떤 대답을 할까 나도 모르게 긴장한 것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웃기네.
왜 그런 걸 물었냐 하면 대답할 말도 없는 상태.
그런 상태로 질문을 건넨 건 나인데도 긴장을 하다니.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친다고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었다.
- 불사자라… 아뇨, 없습니다.
처음 들어본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던 로튼.
- 그렇군요.
로튼을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
오히려 본능만을 따른 무대뽀스러운 질문에 화를 안 낸 것에 감사를 표해야 할 정도였다.
위처럼 간단한 대답을 한 후 가보겠다며 인사를 건넨 로튼.
나도 더 물을 건 없었기에 로튼에 맞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과했네, 과했어.
어느덧 작은 점이 되어버린 두 사람을 보며.
괜한 걸 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2년 새 전 세계에서 죽어 나가고 있는 불사자들.
회귀 전 기태랑의 죽음에 대해 찾던 중 불사자란 키워드에 꽂혀 이곳에 온 것이었다.
실제로 불사자를 죽이고 있는 게 동일인의 짓인지, 동일인이라 해도 기태랑의 죽음과 연관이 있을지 등 모든 게 미지수였다.
웬 미친놈인가 했겠네.
저벅.
괜한 짓을 했다 생각하며 앞에 널브러져 있는 데몬 시체들을 응시했다.
압도적인 검술로 데몬을 베어 넘겼던 칸.
도와줘야 할 필요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었기에 리볼버를 쏘거나 다른 무기를 꺼내 돕는 행동은 하지 않았었다.
그저.
집중해 지켜봤었다.
데몬을 베고 있는 칸의 검을 말이다.
검술 자체는 뛰어났지만.
- 카앙!
그 이상으로 특별한 건 없었다.
데몬의 신체 중 뿔에 부딪히자 힘없이 튕겨 나갔던 칸의 검.
여느 검들과 다를 바 없는 결과였다.
베었다면 얘기는 달라졌겠지.
만약 칸의 검이 뿔을 두부 베듯 잘랐다면 두 사람을 이대로 보내진 않았을 터였다.
뿔과 다이아몬드 사이에는 큰 갭이 있지만 보통이라면 둘 모두 검으로는 베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을 어떻게든 잡아뒀겠지.
확신과 증명해낼 수 있는 물증이 없더라도 상관없었다.
지금은 기태랑의 죽음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다 싶으면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늘어져야 했다.
“흐음.”
로튼이 가지고 있는 힘이 상대의 능력을 무효화시키는 걸 수도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따지면 눈에 보이는 모두가 용의자일 수밖에 없었다.
지나가는 할아버지도 무효화 능력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애초에 능력 무효화란 힘이 존재한다는 것도 내 추측일 뿐이니까.
실존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르는 능력.
다른 이와 달리 신비로운 기운을 지녔다고 해서 로튼에게 뒤집어씌우는 건 말도 안 됐다.
“에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며칠 동안 기록소에 나왔던 장소를 쌔빠지게 돌아다녔는데 얻은 게 별로 없었다.
조금 전 로튼에게 질문을 건넸던 것도 차라리 두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윽.
검으로 벨 수 없는 부위들은 모두 멀쩡한 데몬 시체들.
시체들을 뒤로하고 원래 가려던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이스라엘의 2급 헌터 하킨이 죽었던 장소.
그곳에서도 무언가 찾을 수 없다면.
남은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회귀 전의 기억으로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정보.
기태랑이 죽는 날짜와 장소였다.
어쩔 수 없이 밀착마크로 귀결되는 건가.
적의 능력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건 찜찜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저벅.
마지막인 만큼 이번엔 부디 뭐라도 있길 바라며 걸음을 옮겼다.
* * *
마지막 희망이었던 하킨의 사망 장소.
마침 도착해 있는 이스라엘 국가직으로부터 당시의 정보까지 얻었지만.
조졌다 조졌어.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 훼손이 너무 심해서 부검도 무의미했습니다.
출몰한 데몬을 처리하기 위해 본부를 나섰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하킨은 죽임을 당했다는 것.
이스라엘 헌터가 알고 있는 전부였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도 별 다를 바 없는 내용.
터덜. 터덜.
이제 돌아가는 수밖에 없나.
가장 최근에 사건이 일어난 장소까지 와봤는데도 별 소득이 없는 상황.
이 이상 다른 나라를 더 가본다 한들 얻을 수 있는 건 없을 듯했다.
응?
그렇게 힘없이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눈앞으로 어떤 신전의 성벽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붐비는 중심지에서 떨어져 있는 탓인지 몹시 한적한 성벽.
신전의 관리로 보이는 남자가 성벽 주변을 반복해 거닐고 있었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니까.
성벽 위에서 보면 하킨이 죽은 장소가 보일 정도의 거리.
가지고 있던 희망의 불씨는 거의 다 꺼진 상태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닐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음?”
일부러 발소리를 내며 다가가서일까.
남자가 먼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순박하게 생긴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아, 예.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자 자신을 유손이라 소개하는 남자.
잠시 날 바라보던 유손이 입을 열었다.
“길을 잃으신 건가요?”
길을 잃긴 했지.
며칠을 싸돌아다녔는데 하나도 얻은 게 없으니.
“아뇨, 지나가다 신전이 있길래 와봤어요.”
진짜로 길을 잃은 건 아니었기에.
안심하라는 제스쳐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다행이네요. 이곳 신전은 워낙 인기가 없거든요.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는 게 대부분이라 길을 잃은 사람이 아니면 오는 경우가 거의 없죠.”
설명을 듣고 나니 처음 유손의 표정과 질문이 이해되었다.
평소라면 사람 그림자도 보기 힘든데 터덜터덜 힘없는 걸음으로 걸어왔으니.
영락없이 길을 잃어버린 줄 알았을 것이다.
“아까 계속해서 성벽 주변을 걸으시던데. 뭔가 찾고 있던 중인가요?”
산책을 하는 것 같진 않았었다.
성벽 여기저기를 유심히 보며 걸어 다녔으니 말이다.
“아.”
내 질문에 미소를 지어 보인 유손이 성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며칠 전에 신기한 사람들을 만났거든요.”
“신기한 사람…?”
고개를 끄덕인 유손이 며칠 전 만난 두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눈에 띄는 금발과 어째선지 한마디 말도 없었다던 동행의 이야기.
“얼레.”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유손이 만났던 건 로튼과 칸이었다.
그 둘이 저 높은 성벽까지 어떻게 올라갔는지가 궁금해 성벽을 계속해서 관찰하고 있었다고 유손은 설명했다.
“저도 조금 전에 만났는데.”
같은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에 놀란 표정을 짓는 유손.
유손에게 조금 전의 일을 말하자 역시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신비로운 분이군요.”
신비로운 분…?
로튼의 생김새와 분위기가 워낙 독특하다 보니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느 정도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는 건 맞았지만.
저렇게 확신에 찬 얼굴로 감탄하며 말할 정도였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로튼 님 생김새랑 분위기가 신비롭긴 했죠.”
“음… 꼭 그것 때문이라기보단.”
나름의 맞장구를 친 내 대답에 어째선지 미간을 찌푸리는 유손.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유손이 고개를 들었다.
“제가 신비롭다고 느낀 건 외관보다는 로튼 님이 한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혹시 들으셨나요?”
“개방과 나타난 영생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맞나요?”
“맞습니다! 영원해진 사람의 수명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었죠.”
“시작? 그 뒤에 이야기가 더 있었나요?”
나와 유손의 대답이 달랐기 때문일까?
로튼은 내게 한 이야기보다 더 많은 내용을 유손에게 들려준 듯했다.
“예.”
고개를 끄덕인 유손이 소름이 돋는다는 듯 움츠러들며 양어깨를 어루만졌다.
“신비롭기도 했지만… 사실 좀 무서웠습니다. 오만한 인간을 심판하기 위해 왔다라고 말할 땐 정말이지 뭐랄까, 몸을 애는 듯한 살기가 느껴졌었거든요.”
“…!”
알아낸 게 없어 힘이 없던 찰나.
유손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심판이라니.
로튼이 인간을 오만하게 생각한다는 건 알았으나 죽이겠다거나 심판하겠다거나 하는 말은 하지 않았었다.
이야기의 뉘앙스가 너무 다른데.
“음… 뭐라고 했더라. 누구를 심판하기 위해서 왔다고 했었는데 단어가 기억이 잘 안 나는군요.”
미간을 찌푸린 채 열심히 기억해내려는 유손.
평소라면 굳이 기억해내지 않아도 된다며 손을 내저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어째선지 유손이 기억해내려는 단어를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아!”
기억해낸 건지 유손이 손뼉을 쳤다.
“불사자!”
“!!!”
우려하던 단어가 유손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요!”
기억을 완벽히 되살린 유손이 내 눈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
“오만에 빠진 불사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자기가 왔다고요!”
* * *
예루살렘과 어느 정도 떨어진, 이스라엘 땅의 어딘가.
쉬지 않고 걷던 로튼이 고개를 돌렸다.
몇 시간 전 칸이 데몬을 처치함으로 지켜낸, 샤마크라 부락이 있는 방향이었다.
“흠.”
샤마크라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만 떠올리고 있는 건 부락이 아니었다.
로튼의 머리를 채우고 있는 건 샤마크라 앞에서 만났던 백운이었다.
“뭐였을까요.”
로튼이 샤마크라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곳을 보러 가다 우연히 백운을 만나게 된 건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끌림.
갑자기 느껴진 감각에 이끌려 걷다 만나게 된 것이었다.
“크르.”
로튼이 백운을 떠올리고 있다는 걸 알아서일까.
칸이 나지막한 울음을 흘렸다.
백운을 보자마자 과하게 반응하며 달려들려 했던 칸.
칸이 지금까지 로튼의 명령 없이 움직이려 한 건 처음이었다.
‘칸이 멋대로 움직일만한 이유는 하나뿐.’
칸이 처음 만난 백운을 당장 죽여야 하는 위험으로 인지한 것이었다.
‘어째서지.’
하지만.
지금 로튼이 의아해하고 있는 건 칸의 반응이 아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스스로의 행동 때문이었다.
- 혹시 불사자라 불리는 능력자들을 만나본 적이 있나요?
불사자를 아냐며 갑자기 물어왔던 백운.
백운이 왜 그런 걸 물었는지 알 순 없었다.
‘….’
알 수 없었음에도.
- 아뇨, 없습니다.
로튼은 자기도 모르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굳이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도, 할 필요가 있는 대상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뿌득.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서일까.
로튼은 백운과 헤어진 이후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찝찝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째서.’
샤마크라 쪽을 바라보는 로튼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 남자가 무엇이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