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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61화 (161/473)

161화. 목적지는

며칠 전부터 여러 나라를 쏘다니며 찾아 헤맨 단어, 불사자.

찾아 헤맨 만큼 불사자란 단어를 듣게 된다면 분명 반가울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유손의 입에서 그 단어를 들었을 땐 잠시지만 멍해지고 말았다.

스스로도 헷갈렸기 때문이리라.

유손의 입에서 불사자란 단어가 나오기를 바랐던 건지, 바라지 않았던 건지를 말이다.

잘 모르겠네.

안 나오면 여전히 알아낸 게 없으니 문제였지만.

나와도 그것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었다.

바로 앞에 있었는데.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로튼과 나의 거리는 말이다.

아직까진 회귀 전 기태랑을 죽인 게 로튼이라고 확정 지을 순 없었지만.

로튼이 유손에게 했던 말을 봤을 때 의심을 품을 수 있는 여지는 충분했다.

아직 어떻게가 남아 있긴 하지만.

기태랑을 죽였던 검흔은 칸의 것이라 치고.

어떻게 칸이 다이아몬드를 베었는지가 남아 있었다.

데몬과의 전투를 봤을 때 칸이 무언가를 숨기며 싸우는 것처럼은 보이진 않았다.

최선을 다해 검을 휘둘렀고, 그런 검에 베이지 않는 뿔이 부딪히자 잠시지만 자세가 흐트러지기까지 했었다.

역시 로튼인가.

불사자가 죽은 다른 국가에서 들었던 두 개의 목격담.

두 목격담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것이 황금빛으로 이루어진 장막이었다.

로튼에게 괜한 질문을 한 이유 중 하나.

칸의 검술도 검술이었지만.

질문을 건넨 이유엔 목격담의 영향도 꽤 있었다.

머리와 눈 색깔 때문인지는 몰라도 로튼을 색으로 표현하라면 고민할 것 없이 찬란한 황금색이었다.

색이란 막연한 공통점이긴 했지만 어찌 됐든 목격담과 겹치는 부분이었기에.

과하면서도 괜한 질문이란 걸 알면서도 질문을 건넨 것이었다.

로튼이 장막을 사용하면 상대의 능력은 무효화 된다.

그리고 무효화 된 틈을 노려 검귀라 불리는 칸이 마무리를 한다.

지금 생각해볼 수 있는 가장 높은 확률의 가설이었다.

생각해보자.

가설대로라면 로튼과 칸은 태랑 님을 죽일 수 있을까?

기태랑의 능력이 무효화 되었다 가정을 한 후.

아까 봤던 칸과 기태랑의 전투를 시뮬레이션해보았다.

….

결론이 나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들지 않았다.

죽일 수 있다.

칸의 움직임과 검술이라면 충분했다.

능력이 사라져 맨몸이 된 기태랑이 상대라면 말이다.

기태랑이 제대로 싸우는 걸 본 적은 없지만.

구룡산 때를 떠올리면 웬만한 공격은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좋게 말하면 기태랑의 스타일, 나쁘게 말하면 오랜 경험으로 만들어진 습관이었다.

기태랑은 다이아몬드에 상처를 입히지 못할 공격은 굳이 피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피하지 않는 공격이 최소 9할은 되었다.

- 태랑 님도 피하세요.

그래서였다.

돌산에서의 수련 때 하루도 빠지지 않고 했었던 기태랑과의 대련.

난 그 대련에서 기태랑에게 제대로 피하기를 요구했었다.

- 언젠가 다이아몬드를 베는 적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제대로 피해 주세요.

처음엔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던 기태랑.

효과가 있었을지는 몰라도 내 나름대로의 1차 대비책이었다.

- 카앙! 쐐엑!

기태랑에게 두들겨 맞는 게 대련의 대부분이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나 역시 열심히 면도칼을 휘둘렀었다.

피해지지 않는 면도칼을 보며 기태랑이 조금이라도 경각심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물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대비책일 뿐이었다.

내 목표는 애초에 기태랑이 누군가의 공격을 피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하는 것.

그러기 위해선 기태랑을 죽였던 녀석들을 사전에 차단 및 처단해야 했다.

타닷…!

유손에게 불사자란 단어를 들은 직후.

지체 없이 샤마크라 부락이 있던 쪽으로 몸을 돌렸었다.

늦었을 것 같지만.

부디 멀리 가지 않았기를 바라며.

아까 헤어졌던 로튼과 칸을 쫓기 위해 최선을 다해 발을 뻗었다.

그나저나… 왜지?

- 아뇨, 없습니다.

불사자에 관해 묻자 분명 모른다고 대답했었던 로튼.

마치 불사자란 단어를 처음 들어본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어째서 나한테 거짓말을 한 걸까.

유손의 말을 들어봤을 때 로튼은 분명 불사자를 알고 있었다.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아는 걸 넘어 몹시 혐오하며 심판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던 로튼.

그런 로튼이 어째서 내게 모르는 척 거짓말을 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전까지 난 불사자에 대해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어.

이곳에 온 이유 역시 말하지 않았고.

로튼이 내 마음이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로튼에게 있어 난 그저 지나가다 만난 행인 A일 뿐이었다.

그것도 어느 정도 마음에 드는 답변을 한 행인 말이다.

내가 불사자 사냥꾼을 찾는다는 걸 모르면서도 거짓말을 했다.

무기왕 능력을 알아채서?

아니야.

가설로 세운 능력을 실제로 로튼이 가지고 있다면.

상대가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든 무효화시켜버리면 그만이었다.

탓…!

지금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로튼의 행동.

지금 아무리 생각해봐야 알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생각하는 걸 멈추고 정면을 응시했다.

집중하자.

어찌 됐든 로튼과 칸이 불사자 사냥꾼일 확률이 높은 상황.

일단은.

잡는다.

* * *

예루살렘에서 꽤 떨어진 바닷가 지역.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로튼의 황금색 머리를 흩날렸다.

“아름답군요.”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로튼이 미소를 머금었다.

들려오는 소리라곤 파도 소리와 약간의 바람 소리뿐이었다.

고요하다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바닷가.

조금 전까지 사람들이 들끓던 시가지를 지나온 참이어서일까.

오늘따라 바다가 더 아름다워 보이는 로튼이었다.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바로 옆에 이런 고요하고도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데.”

고개를 돌린 로튼이 멀리 떨어져 있는 시가지를 응시했다.

“사람들은 어째서 저런 작은 곳에 쳐박혀 조금이라도 이득을 보고자 싸우는 걸까요.”

딱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내젓던 로튼이 입을 열었다.

“분명 평생 살 수 있다는 착각 때문이겠죠. 그러니 조금이라도 더 갖춰놓기 위해 저러는 걸 테고요.”

슥.

왠지 모르게 어깨가 무거워지는 걸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난 로튼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씩 일깨워줘야죠. 불사자라 여겨왔던 자들이 무기력하게 죽는 걸 보여주며, 개방으로 인해 얻은 영생이 사실은 아주 보잘 것 없다는 사실을요.”

“….”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로튼을 바라보는 칸.

칸을 의식해서 말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로튼은 그저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에 의해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럼 서서히 깨닫게 되겠죠. 자신들이 얼마나 작고 나약하며 하찮은 존재인지를. 태고부터 변해오지 않은 진실을 말이죠.”

쿵!!

로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닷가 한 모퉁이로 요란스럽게 착지하는 무언가.

로튼이 고개를 돌려 자욱하게 번진 먼지를 응시했다.

“… 도착했군요.”

쿠구구…!

사라지는 먼지 속에서 등장하는 거대한 문.

그리스에서 메토스가 나타난 문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문이었다.

보다 더 화려한 문양과 함께 더욱 큰 크기를 가진 문의 등장.

끼이익…!

잠시 후.

거대한 문이 열리며 몇몇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

나타난 그림자들을 보며 이빨을 드러내는 칸.

“여전히 키우는 개가 사납구만.”

“오랜만이야, 로튼, 칸.”

“오… 오랜… 만.”

로튼과 칸을 향해 각자의 인사를 건네며 다가오는 세 명의 데몬.

셋 모두가 인간의 언어를 터득한 데몬이었다.

세계 어느 곳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등장만으로도 세계의 국가들을 충격에 빠질 수 있는 존재.

“세 분 모두 오랜만입니다.”

동일한 개체가 여럿 있는 데몬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힘을 가진 데몬, 노네임드.

세 명의 노네임드가 로튼의 바로 앞까지 다가섰다.

“이렇게 다섯 명이 모인 것도 오랜만이네.”

한자리에 모인 다섯 명의 노네임드가 서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섯 명이라니. 네 명에 한 마리지.”

“크르으!!”

등장부터 줄곧 칸에게 조롱을 날리고 있는 남자.

“진정하세요, 칸. 마렉도 그만하시고요.”

“로튼이 그만하라면 그만해야지. 저리 꺼져라 멍멍아.”

어깨를 으쓱 올리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 마렉이 얼굴 한가득 조소를 머금었다.

190이 넘는 키와 사방으로 튀어나와 있는 근육, 그리고 거대한 거구에 걸쳐진 갈색 갑주까지.

마렉은 한눈에 봐도 엄청난 괴력을 가졌을 듯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오늘 부른 이유는?”

로튼이 질문을 건넨 유리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붉은색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초록빛을 띤 눈으로 로튼을 응시하고 있는 유리아.

일반적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체구였지만.

몸 여기저기에 달려있는 식물과 꽃이 유리아가 인간이 아님을 나타내고 있었다.

“감이 좋지 않아서요.”

간략한 로튼의 대답에 유리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오랜만의 부름에 기껏 왔더니 감이 좋지 않다니.

하지만 무언가 불만을 표시하진 않았다.

다름 아닌 로튼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세 분의 힘이 필요할 일이 생길 것 같았습니다.”

“로튼… 감… 좋다.”

옆에서 로튼의 말을 거드는 토롱.

토롱은 매우 작은 키를 가지고 있었다.

그 위로 덮여 있는 거대한 두루마기.

허여멀건 얼굴만이 드러나 있기에 멀리서 본다면 데몬인지 어린애인지 구분이 불가능한 생김새였다.

“이랬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전투적인 갈색 눈동자를 빛내며 마렉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뚝… 뚝.

이곳으로 오는 길에 무언가를 죽이고 온 건지 마렉의 양손에서 흐르고 있는 붉은 피.

마렉은 당장에라도 더 많은 걸 짓이겨 죽이고 싶어했다.

“죽일 건 얼마든지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슥.

로튼이 들고 있던 문서 뭉치를 바라보았다.

세계 각지에 있는 불사자들의 기록이 적혀 있었다.

로튼이 불사자들을 찾아가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정보.

그들에게 있어서는 살생부와 마찬가지인 문서였다.

“뭐야 그건?”

“별거 아닙니다.”

마렉의 물음에 무심한 얼굴로 문서를 넘기는 로튼.

대부분의 문서엔 붉은 엑스자가 그려져 있었다.

지난 2년간 바쁘게 돌아다닌 결과였다.

“심판이 필요한 자들이라고 할까요.”

“심판?”

“자신의 생이 영원할 거라 믿는 오만한 자들이죠.”

“큭! 벌레가 영원?”

영원이란 말에 마렉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와서 주어진 알량한 힘으로 그런 착각을 하다니. 놀랍군.”

“그렇기에 심판이 필요한 겁니다.”

마렉에게 몇 마디를 더 건넨 로튼이 다시 문서로 눈을 돌렸다.

이제 엑스로 그어져 있지 않은 건 단 한 장뿐이었다.

이 한 장만 끝낸다면 일차적으로 목표했던 불사자 사냥은 모두 종료되었다.

‘…?’

잠시 문서를 응시하던 로튼이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머금었다.

‘재밌네요.’

마지막 장에 위치한 불사자.

우연의 일치인지 아까 만났던 백운과 같은 국가에 속한 사람이었다.

‘어째선지는 몰라도… 다시 만나게 될 것 같군요.’

“토롱, 이동을 준비해주세요.”

“목적… 지는…?”

바닷가로 고개를 돌린 로튼이 입을 열었다.

“한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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