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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65화 (165/473)

165화. 권능

콰득!

“키… 키아아…!”

뚜두둑.

달려든 데몬의 숨통을 끊어놓은 후.

기태랑이 정면을 응시했다.

조용히 서 기태랑과 데몬의 전투를 바라보고 있는 로튼과 칸.

“구체에 삼켜졌던 다른 두 사람은 어디로 갔지?”

기태랑이 손을 털며 로튼에게 물었다.

보라색 구체에 삼켜진 뒤 비광과 백운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기태랑만이 로튼, 칸과 함께 그 자리에 남게 되었다.

“여유가 있으시네요. 다른 사람까지 걱정해주시다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은 로튼이 기태랑의 주변을 바라봤다.

비광과 백운이 사라지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기태랑 주변으론 이미 수십 마리의 데몬이 널브러져 있었다.

완벽히 피떡이 된 상태로 말이다.

거기다 수많은 데몬을 처치하며 생채기 하나 입지 않은 기태랑.

“오만할 만한 근거는 있었다… 인가요.”

로튼은 약간이지만 놀라고 있었다.

기껏해야 예루살렘에서 만난 하킨 정도일 거라 생각했는데 눈앞의 기태랑은 그 수준을 훨씬 상회했다.

데몬에게 먹이는 한방 한방이 가진 묵직함.

단순히 능력에 의지하여 강해진 타입이 아니었다.

“다시 한번 묻겠다, 두 사람은 어디로 갔지?”

피식.

여전히 잔잔한 기태랑의 얼굴에 로튼이 실소를 터뜨렸다.

예상외의 선전에 놀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역시 인간은, 특히 불사자라 불리는 것들은 정말이지 오만하군요.’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한지도 모르고 다른 사람을 걱정하며 여유 부리는 모습이라니.

몇 마리 하찮은 데몬을 수월하게 처치했다고 저런 질문이나 해대고 있다는 게 우스웠다.

“그 여유는 불사자라 불리는 자신이 다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에서 오는 거겠죠.”

저벅.

로튼이 기태랑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당신의 몸이 가진 단단함은 제 상상 이상이었으니까요.”

저벅.

“그리고, 당신의 여유를 보며 또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

“범인 사이에서 조금 뛰어난 정도로 스스로가 죽지 않을 거라 착각하는 오만. 자신이 보고 있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오만.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가 없을 거란 오만.”

몇 발자국 떨어진 거리.

자리에 멈춰 선 로튼이 딱하다는 얼굴로 기태랑을 응시했다.

“당신은 너무도 오만하다는 사실을 말이죠.”

로튼의 얼굴은 잔잔했지만.

속에선 차가운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감히 자신을, 그분을 앞에 두고도 저런 표정이라니.

[오만하다.]

분노와 함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로튼이 절대적인 존재라 칭하며 명을 받들고 있는 그분이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내면에서 들려온 목소리.

로튼은 그 순간 확신했었다.

목소리의 정체는 모든 차원에서 정점에 서 있는 존재이며 자신은 그분에게 선택받은 특별한 대리인이라는 것을 말이다.

[불사자라 착각하는 이를 죽여라.]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그분의 말씀이었다.

스스로를 불사자라 착각하는 오만한 이를 만났을 때마다 들려온 말씀이었으니.

스윽.

로튼이 고개를 들어 기태랑을 응시했다.

“이제부터 그 오만을 무너뜨려 드리죠.”

“뭐…?”

의미심장한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기태랑을 뒤로 한 채.

조용히 무언가를 읊조린 로튼.

“Deus Lo Vult.”

문장이 끝나기 무섭게 로튼의 두 눈으로 황금빛이 일렁였다.

“신께서 그것을 원하신다.”

우우우웅…!

“…!”

탓!

심상치 않은 기운에 기태랑이 발을 내디뎠다.

무언가를 더 하기 전에 공격할 생각이었다.

쐐에에에---!

“!!”

하지만, 어느새 나타나 로튼과 기태랑 사이로 뛰어든 칸.

칸이 기태랑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화아아악---!

로튼의 두 눈에서 시작된 황금색 장막이 기태랑과 함께 공간을 집어삼켰다.

* * *

쾅! 쾅! 쩌억!

“키아아아!”

퍽!

“크라라라!”

콰아앙!

달려든 데몬을 쳐내며 기태랑이 가쁜 숨을 내쉬었다.

체력과 힘 등 신체의 능력만 봤을 땐 초인 수준인 기태랑이었다.

그럼에도 몇 마리의 데몬을 쳐내며 숨이 가빠진 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뚝… 뚝… 뚝.

어깻죽지부터 왼쪽 허리까지 길게 그어진 자상.

상처에선 쉴새 없이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 신께서 그것을 원하신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칸의 검이 눈앞까지 다가왔고 황금색 장막이 쳐진 것은 말이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 촤아아악--!

10년이 넘도록 조금의 상처도 받은 적 없던 몸이.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져 검에게 상처받는 게 불가능한 몸이.

이가 다 빠져 낡아 버린 검에 베여 피가 솟구친 것이었다.

‘위험했다.’

조금 전 공격을 떠올리며 기태랑이 아찔함을 느꼈다.

눈앞까지 칸의 검이 날아든 순간.

원래라면 아무 상처도 입히지 못할 것이기에, 피하지 않았을 공격이었다.

- 태랑 님도 피하세요.

하지만, 어째서일까.

찰나의 순간 돌산에서 백운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눈으로 따라가기 힘든 속도로 베어 오던 면도칼의 감각과 함께 말이다.

‘평소처럼 반응하지 않았다면… 죽었겠군.’

흥건.

물론 마지막 순간 반응했다고 해서 피해가 없는 건 아니었다.

목숨만 건졌을 뿐 엄청난 속도로 휘둘러져 온 칸의 검에 깊은 상처를 입고 말았다.

“이제야 어울리는 상태가 되었군요.”

로튼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그려졌다.

‘거참 얄미운 놈일세.’

얄밉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가만히 서 싸움을 지켜만 보고 있는 로튼.

로튼은 마치 모든 상황이 자신의 손바닥 위에 있다는 듯한 얼굴로 싸움을 관람하고 있었다.

“키아아아아!”

‘생각할 틈도 안 주는군.’

다른 무언가를 떠올릴 틈은 없었다.

장막이 펼쳐지기 무섭게 쏟아지기 시작한 데몬 무리.

처리하는데 크게 문제 되지 않는 녀석들이었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쐐애애액!

데몬을 처치하고 있다 보면 찔러져 들어오는 칸의 검격.

평소라면 피할 필요조차 없었을 공격이지만 능력이 사라진 지금은 달랐다.

조금 전 상체를 벤 것처럼 한방 한방이 치명상이 될 수도 있었다.

삭! 서걱! 쐐엑!

‘아찔하구만.’

눈앞으로 휘둘러지는 칸의 검.

정말이지 엄청난 속도였다.

돌산에서 봤던 백운의 면도칼보다 조금 더 빠른 느낌이었다.

‘공격은 매섭다만.’

칸은 한 마리 멧돼지 같은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뒤는 돌아보지 않고 공격에 올인하는 스타일.

휘릭… 쾅!

“크르…!!”

몸을 빙글 돌려 칸을 걷어찬 기태랑.

몸은 더 이상 다이아몬드가 아니었으나 힘과 스피드만은 여전했기에.

예상치 못한 카운터를 맞은 칸이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

빠득.

그런 기태랑을 보며 로튼이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인간들과는 달랐다.

능력의 개방 이후 상처를 아예 입지 않거나 입더라도 금방 치유됐었던 이들.

하나같이 몹시 여유로운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죽음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착각에서 오는 여유로움이었다.

- 신께서 그것을 원하신다.

물론.

로튼의 장막이 펼쳐지기 전까지였다.

몸에 새겨지기 시작한 검흔과 더 이상 치유되지 않는 상처에 그들의 얼굴은 끔찍한 공포로 물들었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이 죽지 않을 거라 생각한 이들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죽음을 눈앞에 뒀기 때문이었다.

‘어째서입니까.’

하지만.

눈앞의 기태랑은 달랐다.

쾅! 쾅! 쾅!

로튼의 장막에 의해 능력이 사라졌음에도.

쾅!

칸의 검격에 심각한 부상을 입어 죽어가고 있음에도.

“키아아아아!”

사방을 수백 마리의 데몬에게 둘러싸였음에도.

콰앙!!

기태랑의 얼굴은 공포로 물들지 않았다.

오히려 능력이 있을 때보다 더 불타오르고 있었다.

얼핏 보면 공포에 질리긴커녕 즐거워하는 표정처럼 보이기도 했다.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데. 왜, 일이 생각처럼 안 흘러가나?”

“…!”

잔잔하게 웃으며 로튼을 바라보는 기태랑.

빠드드드득!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로튼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그런 로튼의 얼굴을 보며 입을 여는 기태랑.

“능력이 없어지면 겁에 질려 빌빌거릴 줄 알았나? 아니면 자포자기한 채 얌전히 죽음을 받아들일 줄 알았나?”

로튼이 대답할 새도 없이.

스으으…!

“국가 소속 1급 헌터 기태랑. 다이아몬드 인간이라 불리기 전.”

두 손을 올려 격투 자세를 잡는 기태랑.

기태랑이 로튼을 응시했다.

“인간계 최강이라 불렸었다.”

콰드드득!!

소개를 마침과 동시에 앞에 서 있는 데몬의 목을 뜯어 놓으며.

기태랑이 호흡을 정돈했다.

“살아나갈 수는 없을 것 같다만.”

몸에서 피를 뿜으면서도 즐거운 듯 웃어 보이는 기태랑.

기태랑이 늘어서 있는 데몬들과 칸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 마리라도 더 길동무로 데려가주마.”

* * *

싸움이 시작되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하아… 하아.”

“크… 크르.”

기태랑과 칸이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응시했다.

두 사람과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로튼까지.

장소에 서 있는 건 어느덧 세 사람뿐이었다.

주르륵.

사방으로 널브러져 있는 수백 마리의 데몬 시체들.

시체에선 끈적한 피가 흘러나와 주변을 적시고 있었다.

‘….’

숨을 몰아쉬던 기태랑이 고개를 내려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바라봤다.

앞에 있는 칸이 어떤 상태인지는 모르겠지만.

기태랑의 몸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쉴새 없이 데몬들을 두들긴 주먹 역시 정상이 아니었다.

뼈 여기저기에 금이 가고 부서져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저벅.

기태랑의 상태를 눈치챈 걸까.

로튼이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기태랑에게 다가왔다.

바로 앞까지 다가와 기태랑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로튼.

“여기까진 거 같군요.”

“그런가보군.”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하는 기태랑에 로튼이 눈을 가늘게 떴다.

“….”

로튼은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계에 다다라 한 걸음조차 내딛지 못하는 주제에, 닿을 수 없는 존재를 눈앞에 직면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저런 얼굴이라니.

무언가 생각하던 로튼이 입을 열었다.

“살고 싶지 않습니까?”

로튼의 질문에 기태랑이 실소를 터뜨렸다.

“당연한 걸 묻는군, 살고 싶지.”

예상하던 답변에 로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게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 비세요. 그럼 살려드리겠습니다.”

뜻밖의 제안에 놀란 기태랑의 얼굴.

그런 기태랑을 보며 로튼이 미묘한 긴장을 느끼며 마른침을 삼켰다.

‘꿇으세요. 꿇어서 구걸하십시오.’

몰아부쳐져 죽음이 눈앞까지 왔음에도 공포에 질리지 않는 기태랑.

기태랑의 얼굴이 절망과 공포로 물드는 걸 보고 싶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자신에게 무릎을 꿇고 우러러보는 비굴한 모습이라도 보고 싶었다.

‘인간은 모두 똑같습니다. 그 누구도 죽고 싶어 하지 않죠. 그렇기에 영생을 원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자신에게 무릎을 꿇는 순간, 지금까지 작은 흔들림조차 없던 기태랑이 무너지는 순간.

바로 목을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그렇게 무릎 꿇기를 기다리고 있는 로튼을 향해.

기태랑이 입을 열었다.

“누군가에게 무릎 꿇고 목숨 구걸을 한 적이 있나 보군.”

“!!!”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조소를 지으며 말을 건네는 기태랑.

“그래본 적이 없는 놈이라면 충분히 알 텐데 말이야. 내가 고개 숙이지 않을 거란 걸.”

꾸드드드득!!

엄청난 분노에 얼굴이 일그러짐은 물론 손까지 떨기 시작한 로튼.

“….”

순간이지만 흔들림을 보였던 로튼이 천천히 얼굴을 되돌렸다.

처음과 같이 온화한 표정이었다.

저벅.

그 상태로 천천히 뒤로 물러서는 로튼

로튼이 딱하다는 듯이 기태랑을 한차례 바라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칸.”

“크르!”

부름과 동시에 칸이 기태랑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하고.

“씻을 수 없는 오만, 죽음으로 사죄하십시오.”

로튼이 마지막 말을 남긴 채 몸을 돌렸다.

쐐에에에에--!

움직이지 못하는 기태랑을 향해 날아드는 칸의 검.

불사자라 불렸던 마지막 오만이 무너질 거란 걸 확신하며.

로튼이 입가로 흡족스러운 미소를 그렸다.

‘끝이군요.’

기태랑의 도발에 잠시 흔들리긴 했으나 행하려 했던 걸 모두 이루었다 생각하니 몹시 만족스러웠다.

저벅.

그렇게 미소를 띤 채 여유로운 걸음을 딛는 로튼.

그런 로튼의 귓가로.

기태랑의 나지막한 음성이 들려왔다.

“… 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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