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멀어져 간다
떨어지는 동전과 마렉을 번갈아 바라보며.
비광이 미소를 머금었다.
‘고맙다.’
싸움을 끝내기 위해 필요했던 강한 패.
필요한 패를 뽑기 위해선 확률을 높여야 했다.
다른 일에선 행운의 신이 비광과 함께 했지만, 패를 뽑을 때만큼은 기존의 확률이 비광에게도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팅.
바닥으로 떨어져 다시 한번 튕겨 오른 동전.
마렉의 시선은 어느새 동전에 집중되어 있었다.
‘받아들일 줄 알았다.’
마렉이 내기를 받아들일 거란 건 처음부터 알았었다.
마렉의 입장에선 비광의 능력을 모르기에.
통하지 않는 공격이 마냥 답답하기만 했을 것이었다.
‘한 방만 맞추면 이긴다고 생각했겠지.’
처음부터 사람을 벌레라고 불러왔던 마렉.
마렉이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그런 와중에 벌레라고 여긴 자에게 공격이 전부 막혀버렸으니 당황했을 것도 물 보듯 뻔한 일.
‘지더라도 손해볼 건 없다고 여겼을 테니까.’
마렉은 비광의 능력을 모르기에.
내기에 지더라도 그저 현 상황이 유지될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당황은 판단을 짧게 만들고, 짧은 판단은 패배를 불러온다.’
상대의 능력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내기를 받아들인 건 짧은 판단이었지만.
그렇다고 마렉의 결정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손해 볼 것 없는 내기를 받아들이지 않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100%에 가까운 승률의 내기인데 말이다.
스윽.
‘받지 않으면 멍청한 내기였다.’
비광이 고개를 내려 세로로 회전하고 있는 동전을 바라봤다.
동전의 회전이 멈추면 앞으로든 뒤로든 쓰러질 것이었다.
‘동전을 던진 게 내가 아니었다면 말이지.’
서서히 회전력을 잃어 가는 동전.
동전이 회전을 잃어갈수록 바라보고 있는 마렉의 얼굴엔 흥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자신이 이길 거라는 확신.
확신에서 오는 흥분과 미소였다.
도박장에 머무르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도박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 언젠지 알아?”
멈춰 가는 동전을 보며 비광이 입을 열었다.
“내가 무조건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며 다음 판단을 내린 순간.”
휘이이…!
회전력을 잃고 완전히 멈춰버린 동전.
“!!!”
멈춘 동전이 내보이고 있는 건 앞면도, 뒷면도 아니었다.
“그 순간이 판단력을 흐리며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울퉁불퉁한 바닥임에도 반듯하게 세워진 동전에.
“이 벌레 새끼가!!”
오만상을 찌푸린 마렉이 비광을 향해 달려들었다.
내기는 이기지 못했으니 이젠 힘으로 어떻게든 뚫어보려는 것이었다.
“다들 화를 내더구만. 지가 틀린 건데도 말이야.”
“죽어라!!”
코앞까지 다가와 주먹을 치켜든 마렉.
마렉의 주먹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비광은 당황하지 않았다.
삭.
천천히 한 장의 패를 뽑는 비광.
“일월의 달과.”
그리고 두 번째 패.
삭.
“팔월의 달.”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온 주먹을 바라보며.
비광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일팔 광땡이요.”
콰아앙!!
* * *
기태랑이 걱정할 것 없다고 말했지만.
혹시 모르니까.
“어쨌든 가볼게요!”
굉음이 들린 장소로 몸을 돌렸다.
응?
지체 없이 달려가려는 순간.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비광의 모습이 보였다.
햇빛을 받아 눈부신 빛을 반사하고 있는 은색 정장.
볼 때마다 내가 은갈치 옷이라고 놀렸던, 비광만이 소화할 수 있는 화려한 차림새였다.
“거봐.”
뒤에서 내 말이 맞지라고 말하는 듯한 기태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저리 멀쩡해.
멀쩡해서 실망한 건 절대 아니었다.
다친 곳이 없다는 건 몹시 다행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도를 넘어선 멀쩡함에 나도 모르게 의아함이 생겨버렸다.
번쩍.
정말 아무 일도 없는 사람 같았다.
싸움은커녕 방금 전 호텔에서 걸어 나온 것 같은 모습.
그만큼 비광의 은갈치 정장은 작은 빛바램조차 없을 정도로 말끔했다.
“뭘 그렇게 멀뚱히 쳐다봐?”
오자마자 왜 그러냐는 듯 물어오는 비광에.
“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조금 전까지 과한 걱정을 한 게 웃음이 나올 정도로 비광은 상처 하나 없었다.
다행이다.
동시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회귀 전 비광은 기태랑 곁에 없었다.
그렇기에 로튼과 칸에게 살해당한 건 기태랑 뿐이었다.
- 태랑 님 옆에 좀 있어 주세요!
내 부탁이 있었기에 과거와는 달리 기태랑 곁에 있게 된 비광.
덕분에 비광은 토롱의 구체로 빨려 들어가 로튼과 함께 넘어온 데몬과 싸우게 된 것이었다.
나 때문에 비광 님이 잘못되는 줄 알았네.
그래서 다급하게 달려가고자 했었다.
기태랑은 구했지만 대신 비광이 당해버린다면 정말 답도 없는 상황이었다.
“얼레? 저건 또 왜 저래.”
조금 더 다가오며 기태랑을 발견한 비광.
드디어 비광의 얼굴로 놀라움이 번졌다.
“너도 다치긴 하는구나.”
괜찮냐는 걱정 같은 건 아니었다.
그저 지금껏 다친 적 없는 기태랑의 부상에 순수하게 놀란 것뿐이었다.
휘적휘적.
놀라고 있는 비광을 향해 기태랑은 딱히 대꾸하거나 하지 않았다.
손을 들어 귀찮다는 듯 흔들어 보이는 기태랑.
“흐음. 다이아몬드 놈이 저 정도로 다쳤다라. 진짜 죽을 뻔하긴 했나 보네.”
기태랑을 바라보던 비광이 내게 눈을 돌렸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바라보는 비광에.
뜨끔.
약간을 넘어 조금 많이 뜨끔했다.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다이아놈을 지키라고 하더니.”
비광이 눈을 가늘게 떴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라… 흐으음.”
비광이 턱을 어루만지며 날 뚫어져라 바라봤다.
“하하…!”
웃는 거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상황이 상황이었던지라 앞뒤 생각 안 하고 일단 붙어 있어 달라 부탁했었으니.
딱히 준비해둔 말도 없는 상태였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이제부터 비광이 캐물을 거란 생각에 잔뜩 긴장한 순간.
으쓱.
“뭐.”
어깨를 으쓱 올려 보인 비광이 날 지나쳐갔다.
“네놈 비정상인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응…? 비정상요?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단어를 남긴 채 말이다.
물론 무슨 뜻이냐고 되묻진 않았다.
괜히 물었다가 어찌저찌 모면한 상황이 되돌려질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저벅.
비광이 기태랑 옆으로 다가가고.
“저기다! 1급 헌터다!”
“여기야! 빨리빨리!!”
얼마 지나지 않아 기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난장판이 된 도심 속에서 1급 헌터 두 명을 발견해서일까.
취재를 위해 다급히 달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늙으면서 다이아몬드도 약해진 건가? 피떡 된 거 봐라.”
“네가 여기에 있었으면 죽었을걸. 나니까 버틴 거지.”
기자들이 달려오든 말든 평상시처럼 투닥거리고 있는 기태랑과 비광.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흐음.”
처음의 계획과는 달리 로튼과 칸이 기태랑에게 도착하며 위험한 상황이 펼쳐지긴 했지만.
회귀 전과 달리 기태랑은 웃으며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뭐.
저벅.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됐네.
* * *
그날 밤 저녁, 헌터 중앙처에 위치한 병원.
침대에 몸을 눕힌 기태랑이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끝인가.”
“영감은 여전히 극성이네.”
기태랑이 다쳤단 소식에 버선발로 병실까지 달려온 헌터부 장관, 강태황.
- 이게 무슨 일이냐!!!
붕대를 감은 채 누워있는 기태랑을 보며 강태황이 한 첫 마디였다.
“고막 터지는 줄 알았네.”
“나도. 베인 곳보다 귀가 더 아픈 것 같아.”
그렇게 시작부터 끝까지 고함을 질러대던 강태황이 나가며.
병실과 기태랑에게 평화가 찾아왔다.
“그런데 그 붕대 효과는 있는 거냐?”
비광의 물음에 기태랑이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봤다.
“아마 없을걸.”
“….”
서로의 실없는 질문과 답에 웃어 보이는 두 사람.
웃음이 그치자 비광이 입을 열었다.
“백운은?”
“글쎄 딱히 연락은 없네.”
- 저 먼저 갑니다!
기자들이 도착하려는 순간.
백운은 호다닥 자리를 먼저 떠버렸다.
10급 헌터가 1급 헌터 두 명과 같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언밸런스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나저나.”
기태랑을 바라보던 비광이 입을 열었다.
“진짜 죽을 뻔한 거냐?”
방금과는 달리 웃음기가 사라진 상태에서의 물음이었다.
싱긋.
기태랑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100% 죽었을 거다. 백운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면.”
“…!”
놀라는 비광을 향해 낮의 상황을 이야기해주었다.
로튼의 황금색 장막과 무효화 되어버린 능력.
그 틈을 타 공격해온 칸과 어느새 도착해 그런 둘을 한순간에 압도해버린 백운의 이야기까지 말이다.
“네 능력은 완벽히 사라졌는데 백운은 멀쩡했다고?”
“완벽하게 멀쩡하더군.”
기태랑에겐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였다.
어떻게 백운만은 로튼의 장막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나도 모르지.”
아까의 기억을 떠올리며 기태랑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였을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기태랑의 능력을 없애버렸던 로튼의 장막.
그 장막 안에서 백운은 아무렇지도 않게 능력을 사용하며 서 있었다.
‘나도 모르게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일이었기에 미스테리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때 당시에는 백운에게 장막이 통하지 않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해버렸다.
생각의 근거는 간단했다.
그저 그렇게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장막이든 뭐든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절대적인 존재.’
자신과 로튼 사이를 가로막고 선 백운의 뒷모습을 보며.
기태랑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느꼈던 감각이었다.
‘낯설었다.’
이상하게도 몹시 낯설었다.
낯설고 아득하며 다른 차원의 존재처럼 느껴졌었다.
앞에 서 있는 건 분명 돌산에서 2년을 함께 했던 백운임에도 말이다.
“그저 높아 보이더군.”
솔직한 감상이었다.
비늘로 뒤덮인 수리검이 데몬들을 학살했기에 그렇게 느낀 건 아니었다.
뒷모습.
경로를 막고 서 있는 뒷모습만으로도 높다는 감각을 느껴버렸다.
“높다라.”
털썩.
높다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비광이 의자로 몸을 묻었다.
높다.
짧은 단어였지만 많은 뜻이 담겨있었다.
“뭐,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니니까.”
“그렇지.”
백운이 돌산을 내려가던 날.
두 사람은 같은 느낌, 정확히는 동일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지금도 이미 강하지만, 백운이 앞으로도 끝없이 강해질 거란 확신이었다.
“원래 하산한 제자를 만나면 뿌듯해야 정상인데 이건 뭐 무섭구만.”
비광의 말을 이해한다는 듯 기태랑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해져서 뿌듯한 건 맞지만, 동시에 서글프기도 하네.”
오늘 낮에 봤던 백운.
백운은 점점 더 닿지 못하는 경지로 올라가고 있었다.
깜짝 놀랄 정도의 엄청난 속도로 말이다.
슥.
고개를 돌린 기태랑이 창밖의 밤하늘을 응시했다.
“너무 빨리 멀어지고 있는 거 같아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