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스윗 마이 홈
삑삑삑… 띠로링.
철컥.
문 안으로 들어서며.
“스으으읍.”
공기를 들이마셨다.
코를 통해 폐까지 전해져 오는 달콤한 공기.
“으음, 홈 스윗 마이 홈!”
오랜만에 돌아온 집의 공기를 열심히 만끽한 뒤.
사놓기만 하고 한 번도 눕지 못했던 침대를 바라봤다.
후우웅… 풀썩!
그대로 몸을 날려 침대에 몸을 뉘었다.
씻고 오길 잘했어.
오늘 길에 목욕탕에 들려 묵은 때까지 모두 벗겨내고 오는 길이었다.
곧바로 침대에 누워도 죄책감 따윈 존재할 수 없는 완벽한 상태.
“끄어어어어어!!”
팔이 빠져라 기지개를 켠 후 몸을 똑바로 해 천장을 바라봤다.
“….”
조용하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굳이 들리는 소리를 찾자면 워낙 고요해 귀에 찾아온 삐 소리 정도.
이렇게 고요하게 누워있었던 적이 언제였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아주 인싸의 삶을 살고 있구먼.
물론 친구가 많다거나 주말마다 약속이 넘쳐 나돌아다니기 바쁘다는 건 아니었다.
대신 세계 뉴스에 나오는 굵직굵직한 사건엔 항상 끼고 있으니 내 나름대로의 기준법에선 핵인싸로 분류되고 있었다.
유물관 아싸가 아주 그냥 출세했어.
인싸와는 몹시 거리가 먼 과거였다.
방구석에 처박혀 세월아 네월아 언제 죽으려나 기다리고만 있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아까 그건 대체 뭐지?
장막에 몸이 닿은 순간 발동되었던 공명.
무기가 아닌 것에서 공명이 발동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깜짝 놀랐네.
지금까지 공명으로 들어가기 전엔 항상 마음의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빛을 뿜어내고 있는 무기에 내가 직접 손을 가져다 댔으니 안 끝나있는 게 오히려 이상한 정도.
하지만 아까는 아니었다.
그저 칸의 검을 막을 생각에 다급히 비젼을 사용해 장막 안으로 향한 거였는데.
공명이 시작되어버렸다.
내 능력인데도 참 모르겠네.
자신이 개방한 능력은 자연스럽게 사용법을 모두 터득하게 되는 게 보통이었다.
무기왕의 능력이야 원래 내 것이 아니었다 치더라도 공명은 원래 내 능력인데도 발동 조건을 완벽히 인지하지 못했다는 게 이상했다.
어디 좀 부족한건가.
잠시 내 잘못인가 머리를 긁적인 후.
공명을 통해 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카이안 님은 대체 어디까지 갔던 거지.
의문이 안 들 수가 없었다.
기억에서 봤던 곳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지금까지 가봤던 장소와는 달랐다.
단순히 방문을 해본 적이 있다 없다의 차이가 아니라 공기와 분위기 자체가 다른 곳.
공기 속에 기본적으로 피의 향기가 묻어 있는 곳.
지구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무기 구하러 간 건가.
무기왕 카이안.
카이안의 공간과 지금 내 공간을 비교한다면 몹시 쑥스러운 수준이었다.
무기왕 쥬니어의 쥬니어의 빅쥬니어 정도라 할 수 있겠지.
깔끔하게 인정하며 지구가 아닌 장소에서 로튼을 무릎 꿇렸던 카이안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듣기만 해도 몸을 서늘하게 만드는 음색이었다.
상대보다 명확히 위에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음색.
실제로 카이안은 로튼을 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그저 작디작은 벌레 정도로 보고 있었다.
꼴깍.
새삼스럽게 회귀 전 카이안과 대화를 나누고 힘을 계승 받았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직까지도 의문이었다.
카이안이 대체 왜 나한테 힘을 계승해줬는지는 말이다.
“흐음.”
처음엔 자신을 신의 대리인 혹은 심판자라 소개하고, 마지막엔 스스로를 신이라 칭했던 로튼.
만나기까지가 어려웠지 로튼을 처리하는 데는 그리 큰 힘이 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분명 위협적인 적이었다.
다른 헌터들이 한참 데몬과 싸우고 있는데 로튼의 장막이 펼쳐진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었다.
다행이야.
기태랑을 죽일 수 있는 녀석이 사라져서도 다행이었지만.
좀 더 넓게 본다면 인류에 있어서도 몹시 긍정적인 것이었다.
개방자의 능력 자체를 무효화시켜 무기력하게 패배시킬 수도 있는 힘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인류 차원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어쨌든.
위협적인 적이었던 로튼마저 벌레 수준으로 바라보며 무릎 꿇렸던 카이안.
카이안이 대체 어느 경지까지 다다른 건지는 감히 가늠조차 하기가 힘들었다.
- 모든 것의 위, 그곳이 짐이 있는 곳이다.
로튼을 쫄게 만들기 위해 한 거짓말이 아니었다.
너무 당연한 사실이라 덤덤하게 말했던.
순도 100%의 진심이었다.
- 나보다 위에 있던 것들은 내가 다 끌어내려 소멸시켰으니까.
“크으.”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오는 대사였다.
“다 끌어내렸으니까.”
크으으!
개멋있어.
파닥파닥.
술을 먹지 않았는데도 올라오는 취기에 몸을 이리저리 뒹굴었다.
한참을 호들갑 떨다가 다시 천장을 바라보도록 원상복귀 시킨 몸.
“후우!”
깊은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천장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카이안 님이 어디까지 올라갔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싱긋.
올라가자.
* * *
띠리… 리.
음…?
스윗 마이 홈에서 한창 단잠에 빠져있을 때.
귓가로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 날 게 없는데.
띠리리리--!
들릴 리 없는 핸드폰의 벨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하도 좁은 집이다 보니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반대편에서 불을 뿜고 있는 핸드폰 한 대.
아.
한동안 핸드폰 없이 살았다 보니 잠시 망각해버렸다.
오는 길에 시원하게 거금을 주고 산 마이 스윗 스마트폰을 말이다.
엉금엉금.
핸드폰 앞까지 기어가 발신자를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름 없이 번호만 찍혀 있는 발신자.
당연한 일이었다.
옛날 핸드폰에 있던 전화번호부를 옮겨 오긴 했으나 애초에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숫자였으니까.
“누구세요?”
감히 내 단잠을 방해하다니.
혼쭐을 내줘야겠다 생각하며 거칠게 전화를 받았다.
# 어? 받았다!
이 시간에 무슨 전화질이야! 라고 하려던 참이었지만.
전화 너머로 들려온 앳되고 귀여운 목소리에 조금 전의 계획은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다.
“누… 누구세요?”
사실상 이성의 전화를 받아보는 건 회귀 후 처음이나 다름없었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 정자세를 한 뒤 두 손으로 공손히 전화를 받았다.
#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한차례 사과를 한 후.
# 안녕하세요, 백운 님! 저 전수희에요!
“응…?”
찹쌀떡…?
해맑게 자신을 전수희라 밝힌 목소리에.
슥.
핸드폰을 떼내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1시였다.
* * *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대산에서 만났을 때와는 달리 편안한 차림을 하고 있는 전수희.
전수희가 마주치기 무섭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한 잔 하셨네.
새벽 공기를 타고 은은한 알콜향이 풍겨왔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알콜의 힘을 빌려 한 전화인 듯했다.
“번호는 대산에 제출하셨을 때 멋대로 저장해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만약.
업무 때문에 제출한 번호를 마음대로 저장한 게 김대석이었다면.
바로 뺨을 날린 뒤 머리채를 잡아 강가로 처박아 버렸을 테지만, 앞에 있는 건 전수희였다.
찹쌀떡은 킹정이지.
“사과 안 하셔도 돼요. 이 시간에 청라에는 무슨 일이에요?”
평일 새벽 1시였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다음날 출근을 위해 취침했어야 하는 시간대.
더군다나 대산은 서울 한복판에 있기에 전수희는 지금 이곳에 있으면 안 됐다.
“아! 부모님이 청라에 계시거든요. 내일 휴가라 잠시 왔어요.”
“오… 휴가도 사용 가능하군요.”
처음 대산에서 전수희를 봤을 때 느낀 건 더럽게 바쁘다는 것이었다.
돈을 아무리 줘도 저런 업무 강도라면 못하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거기다 상사는 다름 아닌 최리아였다.
불… 불가능해.
휴가의 휴자도 꺼낼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음.”
휴가란 말에 전수희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영원한 휴가가 되기 직전이지만요.”
동시에 수심이 깊어진 걸 보니 술을 들이킨 이유가 이거인 듯했다.
그나저나 영원한 휴가라니.
짤리기라도 한 걸까?
“아마 대산을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방금 만났기에 어정쩡한 자세로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 상태로 시작되려는 이야기에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좀 걸을까요?”
“아… 네!”
공원의 호숫가를 걸으며.
전수희가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난리가 났던 회사가 어느 정도 복구가 되었거든요. 그래서 일상 업무로 돌아가려던 찰나였는데.”
그때였다고 한다.
직속 상사인 최리아가 전수희에게 회사를 옮기는 게 어떻겠냐고 말한 것은 말이다.
“너무 갑작스러웠어요. 그냥 똑같은 하루일 거라 생각했었거든요.”
다른 회사의 자리를 알아봐주겠다며 얘기를 꺼냈다는 최리아.
너무 놀라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린 탓에 별다른 질문은 못 하고 생각해보겠다는 대답만을 한 채 빠져나왔다고 한다.
나였으면 옳다구나 하고 때려 쳤을 거 같은데.
술까지 들이키고 이 시간에 나한테 전화까지 한 걸 보면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처음엔 그냥 왜지…? 라는 의문뿐이었다가, 왠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척.
걸음을 멈추고 호수의 난간에 기댄 전수희.
호수를 바라보며 전수희가 입을 열었다.
“내가 너무 과분한 자리에 있었구나… 라는 생각요.”
“…?”
“백운 님도 아시겠지만 제가 개방한 능력은 진짜 보잘 것 없거든요. 회계 업무에 약간 도움이 되는 정도죠. 그런데 위치는 대산의 홍보 팀장이고요.”
슥.
날 바라본 전수희가 서글픈 얼굴로 미소를 그려 보였다.
“주제에 비해 너무 과한 위치죠? 문득 깨닫게 됐어요. 능력도 없는 저 때문에 최리아 실장님이 지금까지 많이 곤란해하지 않았을까 하고요.”
동그란 안경 너머의 땡그란 눈.
약간이지만 눈물이 맺혀 있는 눈을 보니 이제야 드링킹의 원인을 명확히 알 것 같았다.
전수희가 쓸데없는 자책이 심한 캐릭터구나 하는 사실과 함께 말이다.
“뭐 제가 그 독사녀… 아니지, 최리아 실장님은 아니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물어본 건 아니지 않을까요?”
“네…?”
“아니 그분이 어디 보통 사람이에요? 수희 님이 진짜 앞길에 방해가 되고 도움이 하나도 안됐으면 옛날에 나가라고 했겠죠. 생각해 봐가 아니라 당장 짐 싸서 나가!! 하면서 책상 빼버렸을 거 같은데.”
“네에? 최리아 실장님은 그런 분 아니… 푸흡.”
최리아를 변호하려다 전수희가 웃음을 터뜨렸다.
반박하기에는 내가 너무 날카로운 묘사를 한 모양이었다.
그런 전수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딱히 수희 님을 위로하려는 건 아니고요.”
히메지 성으로 향했을 때를 떠올렸다.
위험에 쳐한 상황에 자신보다는 전수희를 먼저 챙겼던 최리아였다.
그 밖에도 평소 전수희를 끔찍이 아낀다는 게 꽤 티가 났었고 말이다.
“최리아 실장님은 수희 님이 걱정돼서 그런 말을 한 게 아닐까요? 히메지 성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죽을 뻔했잖아요.”
애초에 스타일을 봤을 때 친절하게 설명해주며 생각해보라고 말할 사람은 아니었다.
마음속엔 걱정이 한가득이더라도 이런 쪽으론 서툴다 보니 옮기는 게 어떻겠냐고 말한 것일 터.
“….”
아무 말도 없는 전수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수희 님은 어떠세요?”
“네…? 어떻냐니… 뭐가요?”
간단하게 뭐라고 말하면 될지를 잠시 고민한 후.
눈을 땡그랗게 뜬 채 날 바라보고 있는 전수희를 응시했다.
“평범하게… 다른 사람들처럼 살고 싶지 않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