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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71화 (171/473)

171화. 평범이여 안녕

휘적휘적.

점점 멀어져가는 전수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30분 전까지만 해도 완전 죽상이었던 전수희였지만.

지금은 나름 힘차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부러울 때는 있었어요.

조금 전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 대한 전수희의 대답이었다.

질문과 대답 사이에 약간의 텀이 있었던 걸 보면 나름대로 고민을 한 모양.

- 사실 무섭거든요. 죽을 뻔한 경험과 앞으로 또 이런 위험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건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이라면 그 상황을 두려워하는 건 당연한 것.

거기다 전수희는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상황을 반전시킬 힘이 없었다.

전적으로 상황의 흐름에 자신의 목숨을 맡길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게 얼마나 무력하고 무서운지는 나도 잘 알지.

나라고 어찌 모르겠는가.

회귀하기 전에 뼈저리게 느낀 감정이었다.

소중한 이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걸 지켜만 볼 수밖에 없어 분하지만, 동시에 위험한 상황이 펼쳐지는 걸 두려워하며 숨어있을 수밖에 없는 복잡한 감정.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 그래서 부러웠고 고민도 됐어요. 아무리 데몬이 판치는 세상이라고 해도 마음만 먹는다면 개방 이전처럼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맞는 말이었다.

종말의 날 이후에는 얘기가 달라지지만.

적어도 지금은 평범하게 살고자 한다면 옛날 데몬이 없던 시절처럼 살 수 있었다.

번화한 도심가는 이번 로튼 사태를 제외하면 아무 사건 사고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일상이 유지가 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 부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에요. 위험하긴 해도 지금 대산에서 지내는 게 너무 좋고 즐겁거든요.

여기까지 말한 후 전수희의 입가엔 옅은 미소가 떠올랐었다.

아마도 힘들지만 즐거운 대산에서의 생활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 ….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겨 있는 전수희를 향해.

최리아에게 가서 방금 한 말처럼 솔직하게 말해보라고 권했었다.

적어도 내 판단엔 최리아 역시 전수희가 그만두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누가 그 성격을 감당해.

아무리 봐도 전수희뿐이었다.

다른 이였다면 한 달도 못 버티고 도망갈 게 분명했다.

슥.

시야에서 완전히 작아진 전수희를 뒤로하고.

몸을 돌려 호숫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 감사합니다! 내일 당장 가서 말씀드려봐야겠어요!

기분 전환이 빠른 전수희였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나아진 얼굴로 손을 흔들며 사라진 전수희.

스윗 마이 홈에서의 꿀잠을 방해한 죄는 몹시 크지만.

찹쌀떡이니까 봐준다.

고개를 끄덕이며 호숫가로 고개를 돌렸다.

달빛을 잘게 부수어 반사 시키며 호수가 반짝이고 있었다.

- 그런데… 백운 님은 어떠세요?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적 없나요?

어느 정도 멀어진 거리에서 전수희가 물어온 것이었다.

예상 외의 질문이라 대답을 하는 대신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지만 말이다.

평범한 삶이라.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었다.

평범을 어느 범주로 정의할 것이냐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일단 회귀 후의 내 삶이 평범과는 거리가 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응?

그렇게 평범이란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을 때.

환하게 밝혀져 있는 편의점이 눈에 들어왔다.

… 운명인가.

단잠의 중간에 깨어버려서일까.

정신이 무서울 정도로 또렷했다.

어차피 이대로 돌아가 봐야 잠도 안 올 듯한 상황.

저벅.

눈앞에 보이는 편의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부스럭.

편의점에서 사온 캔맥주와 오징어 다리가 든 봉투.

봉투를 소중하게 쥔 채 철골로 발을 디뎠다.

청라에서 세우고 있는 최고층 빌딩의 공사 현장.

빌딩 꼭대기엔 공사에 사용 중인 크레인이 있었다.

한 번 올라가 보고 싶었단 말이지.

액션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 종종 등장하는 장면이 있었다.

청명한 밤하늘 아래, 주인공이 공사지의 크레인에 올라 도심을 내려다보는 장면.

평범한 몸이었어도 할 수 있는 일이긴 했으나 시도하진 않았었다.

그 만화에서의 느낌이 살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처럼 크레인 위에서 바람을 즐기긴커녕 혹여나 떨어져 죽을까 온 신경이 다 쏠렸을 터.

탓.

지금은 떨어져 죽을 일은 없기에 큼지막, 큼지막하게 도약해 위로 올라갔다.

어느새 도달한 옥상 크레인의 끝.

오우.

떨어져도 안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약간이지만 오금이 저리는 엄청난 높이였다.

거기다 몸의 지탱을 어렵게 만드는 바람까지.

아무 능력 없이 이런 높은 곳에 올랐다면 심장마비로 먼저 갔을지도 모르겠다.

부스럭.

하물며 그 위에서 오징어와 캔맥주를 먹는 건 더 미친 짓이지만.

치익!

미쳤다 생각하고 일단 캔맥주 한 캔을 땄다.

시원한 소리와 함께 거품이 솟아오르는 맥주에 입을 가져갔다.

꿀꺽!

“크으으흐!”

목이 뻥 뚫리는 시원함이 느껴졌다.

휘이이.

동시에 불어와 머리를 헝클어뜨리는 바람과 무수한 빛들로 반짝이는 도심가의 풍경까지.

“죽이는구만.”

별다른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만화 주인공이 느꼈던 것 이상으로 만족감이 느껴졌다.

질겅.

급상승하는 만족감을 느끼며 오징어 다리를 입에 물었다.

맥주도 들이켰고 바람도 즐겼으니 전수희가 물은, 머리로 침투한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던 적이 없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릴 때였다.

평범 좋지.

듣기만 해도 평화로워지는 단어였다.

일상에 녹아들어 사람들과 어울리며 함께 살아가는 것.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여유롭고 사람 향기 물씬 풍기는 삶이었다.

나는… 정반대지.

평범과는 거리가 먼, 항상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전투의 연속인 삶.

전수희가 물어본 것도 내가 이러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강하고 많은 싸움을 이겨냈더라도 궁극적으론 평범한 삶을 바라는 이들도 많으니 말이다.

“흐음.”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맥주를 한 모금 더 들이켰다.

크레인에 올라오는 순간까지도 생각은 해봤지만.

역시.

난 아니야.

잠시 평범이란 단어가 머리를 침투했던 건 답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그저 뜻밖의 질문이라 잠시 침투를 허용했을 뿐이었다.

지금이 좋다.

좋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즐거웠다.

죽을 위험을 겪더라도, 다른 이와 어울려 살지 못하더라도.

남들이 행복이라 부르는 가족의 형성과 유대감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난 계속해서 위로 향하고 있는 지금이 몹시 즐겁고 행복했다.

….

나도 모르는 사이 입가로 묘한 미소가 그려졌다.

단순히 즐겁고 행복해서 그려진 미소는 아니었다.

공식적으로 작별인가.

누군가는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는 평범한 삶.

전수희 덕에 우연히 평범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지만.

덕분에 다시 한번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난 평범한 삶을.

싱긋.

원하지 않는다.

* * *

“아이고 삭신이야.”

낮에 한바탕 난리가 났던 도심가.

싸움이 끝난 이후에 도착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청소부들! 날 밝기 전에 들어가고 싶으면 빨리빨리 움직여!”

국가에 소속된 청소부들이었다.

세척 혹은 복구에 관련된 능력을 개방한 청소부.

전투로 인해 부서진 건물의 잔해와 사방으로 퍼뜨려진 사체의 잔해들을 치우는 역할이었다.

“와… 실제로 보니 더 경이롭네.”

청소부 팀장 김경수가 현장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눈앞에 놓인 광경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막막했다.

“예상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아까 현장 오면서 보셨잖아요.”

출동하기 전 청소부들이 보면서 온 동영상.

누군가 한창 전투가 벌어지던 현장의 하늘을 찍은 영상이었다.

“플라잉 믹서기.”

동영상을 보며 온 청소부들이 붙인 이름이었다.

누가 한 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한 상태였지만.

청소부들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 조졌다.

동영상을 본 청소부들의 감상 총평이었다.

하늘과 지상을 날아다니며 데몬들을 갈아버린 청색 수리검.

그 덕에 도착한 현장엔 말도 안 되는 범위로 데몬의 사체가 흩뿌려져 있었다.

“팀장님, 그냥 천천히 하는 게 어떻습니까? 어차피 날 밝을 때까지 못 들어갈 거 같은데.”

“….”

평소라면 조용히 하고 빨리 시작하라고 호통을 쳤겠지만.

이건 호통을 치기에도 참으로 미안한 현장이었다.

“에혀.”

대답 대신 한숨을 푹 내쉬는 김경수.

김경수가 싸움의 중앙이었던 곳으로 걸어갔다.

호통을 치는 대신 먼저 청소를 시작할 생각이었다.

“우리도 가자고.”

“얼른 하자! 얼른!”

팀장의 솔선수범에 팀원들 역시 더 투덜대지 않고 각자의 자리로 향했다.

하나둘씩 자리를 잡고 능력을 발동하기 시작한 팀원들.

‘끝나고 삼겹살이라도 사줘야겠네.’

팀원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며.

김경수가 천천히 능력을 끌어올렸다.

‘최대한 덮어야겠군.’

사체가 흩뿌려진 범위가 워낙 광대했기에.

예전처럼 하나씩 주워 담아 말끔하게 치우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땅을 갈아엎어 흙으로 사체를 뒤덮는 식으로 처리해야 할 것 같았다.

드드드---!

능력이 발동되자 김경수의 팔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도로 작업 전엔 먼저 시멘트를 부수고 시작하듯.

다른 팀원들이 덮을 수 있도록 땅을 다지고 연하게 만드는 것이 팀장 김경수의 역할이었다.

구구구구구!

팔을 대자 땅이 진동하며 땅이 부서졌다.

부서짐과 동시에 어느 정도 갈아엎히며 사체의 일부분도 덮어 주는 상황.

‘언제 다 뒤집… 응?’

그렇게 한참 땅을 엎던 김경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쌓여있던 흙이 뒤집히며 드러난 공간.

흙에 파묻혀 있던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슥.

‘으.’

다가가 흙을 치운 김경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머리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으깨져 죽어있는 시체였다.

사람의 몸과 거의 동일하지만 손이나 발을 봤을 땐 데몬으로 보이는 개체.

노네임드급 데몬 머리를 저렇게 만들려면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그리고.

반짝.

데몬의 시체 옆으로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는 게 놓여 있었다.

조금 더 몸을 기울여 흙을 치워내자.

‘검…?’

험난한 세월을 거쳐온 건지 이가 다 빠진 검이 나타났다.

검이라고 부르기에도 미안할 정도로 낡은 검이었다.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부분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

툭. 툭.

시체를 옆으로 치운 김경수가 조심스럽게 검을 집어 들었다.

‘데몬이 사용하던 검이라니.’

노네임드급이 아니면 데몬이 무기를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으니 꽤 희소성 있는 검이었다.

‘상부에서 아주 좋아하겠구만.’

데몬에 대해서 하나라도 더 알고자 하는 정부.

노네임드급 데몬이 사용하던 검이니 정부에게 갖다 준다면 섭섭지 않은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고기 값은 굳었네.’

김경수가 기분 좋게 웃으며 검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음…?’

검에서 뜻밖의 걸 발견한 김경수가 눈을 가져다 댔다.

분명 데몬이 사용하던 검이었다.

풍화된 정도를 봤을 땐 인간에게 정해진 수명보다도 훨씬 더 오래 사용했을 검.

그런 검의 손잡이에는 낯설지 않은 문자가 적혀 있었다.

‘한문…!’

처음엔 데몬들끼리만 쓰는 언어인가 했지만.

분명 한문이었다.

검과 함께 풍화되어 잘 보이진 않지만, 아직까지 무슨 글자인지는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형태는 갖추어져 있었다.

스윽.

흐릿흐릿한 한자를 읽기 위해 김경수가 얼굴을 가져다 댔다.

“척….”

부족한 한문 지식을 더듬더듬 되살리며 새겨진 세 글자를 읽는 김경수.

“척사윤.”

칸이 오랜 세월동안 사용했던 검.

검의 손잡이에는 한문 세 글자가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척사윤이란 이름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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