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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72화 (172/473)

172화. 이가 빠진 검

“… 야!”

음냐.

낯선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 어… 놈아!!”

무척이나 화가 난듯한 목소리였다.

누구야?

“미친놈아!!!”

미친놈이라니.

감히 누가 스윗 마이 홈에서 저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하고 있단 말인가.

침입자를 단숨에 처단하기 위해 천천히 눈을 떴다.

“엥.”

엥이란 말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눈을 떴을 때 보여야 하는 건 낮은 층고의 천장일 터인데.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건 점점 밝아지는 중인 맑은 하늘이었다.

좋구먼… 이 아니지.

훽!

조금 전부터 소리가 들려오던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시뻘개진 채 나를 향해 소리 지르고 있는 아저씨들과.

부스럭.

옆에 놓인 수많은 맥주캔들과 오징어 봉다리까지.

미… 미쳤어!

순식간에 상황 파악이 끝난 뒤 머리를 쥐어뜯었다.

약간씩 올라오는 취기와 선선한 바람에 못 이겨 잠에 들어버린 모양이었다.

일본에서 불꽃놀이를 보고 쳐자버린 것부터 잠귀신에 씌인 게 분명했다.

“야이 미친놈아! 당장 안 내려… 어! 어!”

놀란 마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소리 지르던 아저씨들이 황급히 손을 올렸다.

“가만히 있어! 위험해!”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위치인 만큼 자극하지 않으려는 듯했다.

“죄송합니다!”

그런 아저씨들에게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 사과의 인사를 건넸다.

“아… 알겠으니까 일단 건너와!”

“알겠습니다!”

우렁차게 대답한 후 걸음을 내디디려는 찰나.

띠링.

구독 서비스를 요청해놨던 국가직 헌터 어플에서 알림이 울렸다.

1급 기밀정보까지는 무리겠지만 공개해도 될만한 정보는 곧장 알려주는 편리한 서비스였다.

뭐지.

건너가기 전 핸드폰을 들어 알림을 확인했다.

청소팀이 나와 기태랑이 싸웠던 장소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알림이었다.

뭘 발견했다는 거야.

별거 없을 텐데.

그렇게 별거 아닐 거라 생각하며 기사를 읽어나갔다.

저벅.

크레인과 이어져 있는 공사 현장으로 걸어가는 채로 말이다.

!?

우뚝.

기사의 중간 지점.

# 검의 손잡이에는 한문으로 척사윤이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

뜻밖의 이름에 걸음을 멈춰버렸다.

검의 손잡이에 적혀 있었다는 이름 세 글자.

척사윤.

당연히 모르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앞에 적혀 있는 성은 낯선 성이 아니었다.

막무가내에 가까운 추측인 건 알겠지만 어디 척씨가 흔한 성이던가.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필요해.

아직 이번에 대산에게서 받아온 자료를 검토하진 못했지만.

자료만 검토한다고 해서 눈에 띄는 증거가 나올 확률은 희박했다.

그밖에 잡을만한 지푸라기가 존재한다면 어떻게든 끄댕이라도 잡아야 했다.

아니 근데 이 데몬새끼가 왜 이런 검을 가지고 있던 거지?

기사를 보면서도 의문이었다.

칸은 분명 데몬이었다.

얼마나 산지는 모르겠으나 꽤나 오랜 시간을 살아온 녀석일 터.

그런 녀석이 어떻게 사람의 이름이 적힌 검을 가지고 있는 걸까.

크으.

그때 뺏었어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의미 없는 후회인 걸 알았지만 내 손에 맞닿아 있었다 보니 아쉬움이 남았다.

손잡이에 저런 게 적혀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네.

미친 듯이 검을 휘둘러대는 놈에게 잠깐 손잡이 좀 보자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거기다 로튼에게 신경 쓰느라 칸은 안중에도 없었으니 이러나저러나 어떤 경우에서도 척사윤의 이름을 발견하는 건 불가능한 일.

슥. 슥.

결과론적인 아쉬움을 뒤로 하며 기사를 마저 읽어 내려갔다.

# 김경수 팀장에 의해 발견된 검은 헌터 중앙처에서 보관하고 있다.

좋았어.

낯설지 않은 장소였다.

비광과 기태랑을 만나러 가며 몇 번 갔었기 때문이다.

# 오늘 점심 이송팀에 의해 국가 데몬 연구소로 옮겨질 예정이다.

어허!

내 검을 어디로 옮겨!!

나의 것을 마음대로 옮겨버린다는 글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디에 박혀 있을지 모르는 데몬 연구소로 옮겨지기 전에 가져와야 했다.

“어이! 진정하고 어서 이리와!”

아까부터 쉬지 않고 날 부르고 있는 아저씨들을 바라봤다.

내가 잘못한 건 명확하니 웬만하면 건너가서 욕도 좀 얻어먹고 꿀밤도 몇 대 쥐어박힐 생각이었는데.

해야 할 일이 생겨버렸다.

“선생님들! 정말 죄송했습니다! 하지만 전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내 멋대로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넨 후.

“그럼 이만!”

크레인 밑으로 몸을 날렸다.

* * *

띠리리-- 띠리리-- 뚝.

비광 님도 안 받네.

호다닥 달려 도착한 헌터 중앙처.

일단 달려오고 봤는데 막상 도착하니 조금 막막했다.

조금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비광과 기태랑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받지 않는 상황.

어제 일의 수습으로 워낙 바빠진 둘이다 보니 무리도 아니었다.

흐음.

점심이 가까워진 시간.

북적이고 있는 중앙처를 바라봤다.

어쩐다.

기태랑이나 비광이 전화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건 불가능했다.

기사대로라면 한두 시간 이내에 검이 이송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이송되면 피곤해질 거 같은데.

국가 조직이 어떤 형태로 얽혀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검이 다른 부서로 이관되는 순간 지금보다 훨씬 더 피곤해질 거란 확신이 들었다.

중앙처에서야 기태랑과 비광이 있으니 어느 정도 쉽게 넘어갈 일도 타 부처에서는 아닐 수도 있었다.

저벅.

마냥 이러고 있을 수 만은 없었기에.

정면에 보이는 접수대로 걸음을 옮겼다.

에잉!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비광과 기태랑을 만나러 왔을 때마다 안내해주던 직원도 없었다.

“안녕하세요.”

이태인이란 이름이 적힌 명찰을 확인한 후 인사를 건넸다.

이미 많은 사람을 만나서인지 영혼이 사라진 듯한 눈의 이태인.

이태인이 고개를 약간 까딱이며 입을 열었다.

“네, 어떻게 오셨나요?”

“전 국가직 헌터 백운이라고 합니다.”

“헌터 백운 님이요, 잠시만요.”

타다닥.

앞에 놓인 키보드를 두들기는 이태인.

아마도 내 신분을 확인하고 있을 터였다.

피식.

…?

검색을 마친 듯한 이태인의 입가로 약간의 미소가 떠올랐다.

뭐지? 비웃은 건가.

저 미소에 어떤 의미가 담긴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좋은 의미에서의 미소가 아니라는 건 세 살배기 아이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전 5급 헌터 이태인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이 새끼 봐라.

긴가민가한 미소에 욕을 아끼고 있었는데.

짧아진 말까지 보니 확실한 것 같았다.

내가 10급 헌터라는 걸 확인한 뒤 깔보고 있는 것이었다.

“어제 발견된 검 때문에 왔는데요.”

일단 이태인의 반응을 뒤로하고 걸어오며 준비해뒀던 말을 건넸다.

난 어제 전투에 1급 헌터 기태랑과 참여했던 헌터이며 밤에 발견된 검에 볼일이 있다는 솔직한 이야기였다.

“….”

예상대로… 보다 심하네.

물론 해맑게 웃으며 검까지 안내해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었다.

약간의 의심을 받으며 검증 절차가 필요하겠지 정도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태인의 반응은 예상을 넘어서고 있었다.

“풉… 푸하하!”

말을 들은 뒤 잠시 침묵하고 있던 이태인이.

대놓고 뒤로 넘어가며 웃음을 터뜨렸다.

웃기긴 하겠네.

한국에서의 10급 헌터는 헌터라 불리기에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보통 인형 눈 붙이기나 실뜨기 같은 소일거리를 하는 이들이 배치되어 있는 게 10급 헌터였기 때문이다.

“10급 헌터가 노네임드급 데몬과 싸웠다고요!? 하하하!”

그런 10급 헌터가 1급 헌터인 기태랑과 함께 노네임드급 데몬과 싸웠다고 하니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이 새끼 싸가지 없네.

이해는 되지만 이태인의 반응이 옳다는 건 아니었다.

10급이란 숫자를 보자마자 띄운 조소나 대놓고 웃음을 터뜨리는 꼬락서니는 아무리 봐도 잘못되었다.

“돌아가세요. 10급이라서 중앙처가 얼마나 바쁜 곳인지 모르나본데, 마을에 처박혀 있는 헌터 동사무소와는 격이 다른 곳입니다.”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이태인이 손을 휘휘 저어 보였다.

냉큼 꺼지라는 제스쳐였다.

흠.

이 새끼를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

덜컹.

옆에 있던 문이 열리며 특이한 제복을 입은 대여섯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깔끔하게 생긴 기다란 철제 박스와 함께였다.

검이다.

박스를 열어본 건 아니었지만 확신이 들었다.

제복 옆에 채워진 완장엔 기사에서 봤던 데몬 연구소란 명칭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저벅.

“어? 잠깐!”

내가 휙 몸을 돌리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이태인.

그러든 말든 상자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

어느 정도 다가가자 맨 앞에 서 있던 여자가 길을 막아섰다.

중앙처 건물 안이라 별일이 있겠냐마는 낯선 이의 접근을 경계하는 느낌이었다.

“혹시 옮기고 계신 게 어제 발견된 검 맞나요? 손잡이에 척사윤이라고 적힌.”

더 이상 다가갈 생각이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멈춰선 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미간을 찌푸렸던 여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저흰 국가 데몬 연구소의 이송팀이며 헌터 중앙처로부터 검을 이관받았습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말끔한 설명에 감사 인사와 함께 검을 힐끗 바라봤다.

역시 빛은 안 보이네.

빛을 가지고 있었다면 칸이 들고 있을 때부터 보였을 터.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검에선 어떠한 빛도 새어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단서가 될 수 있는 검이니까.

가져가야겠네.

물론 지금 가져갈 건 아니었다.

아무리 검이 필요하더라도 중앙처 건물에서 소란을 피울 수는 없으니까.

상자 안에 든 게 검이란 건 확인했으니.

밖으로 나가 기다릴 생각이었다.

정체를 들키지 않은 채 검을 손에 넣을 수 있는 타이밍을 말이다.

그렇게 몸을 돌리려는 찰나.

꽈악.

왼쪽 어깨로 거친 손길이 느껴졌다.

“당신 뭐냐고!”

어느새 쫓아와 어깨를 붙잡은 이태인이었다.

“뭐야 저거? 왜 저러지?”

“무슨 문제 생겼나 본데.”

이제 막 나가려던 참이었는데.

그새를 못 참은 이태인 덕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다.

콱 한 대 쥐어박고 싶지만.

지딴에는 최대한 세게 붙잡은 채 오만상을 찡그리고 있는 이태인.

너무나 미약한 힘이었던지라 웃음이 나왔지만.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미소를 머금었다.

여기서 이딴 놈 때문에 피곤해질 만한 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이제 가려는 참이었….”

“무슨 일이냐?”

말을 끝마치기 전.

등 뒤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오만상을 찌푸렸던 얼굴에서 충성스러운 강아지의 얼굴로 변하는 이태인.

“자… 장관님!”

장관!?

이태인의 외침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등 뒤에 우람한 덩치와 함께 서 있는 강태황 장관.

짧게 자른 백발과 수염, 부리부리한 눈매까지.

뉴스에서 봤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장관님!”

근엄한 얼굴로 검을 이송하던 국가 연구소 직원들까지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조졌다.

불타는 듯한 강렬한 눈매로 날 내려다보고 있는 강태황.

이렇게 커질 게 아니었는데 일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태인쉨!

나중에 꼭 한 대 쥐어박아야지 생각하며 강태황을 바라봤다.

나 역시 최대한 순수한 표정을 지은 채로 말이다.

저벅.

그러든 말든 거침없이 내 바로 앞까지 걸어오는 강태황.

엄청난 포스였다.

장관이라는 위치를 떠나서라도 걷는 것만으로도 풍기는 위압감.

꼴깍.

강태황이 바로 앞까지 다가와 걸음을 멈췄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

스윽.

“…?”

아무 말 없이 날 내려다보더니 몸을 숙인 강태황이 입을 열었다.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였다.

“자네, 백운이지?”

“예… 예.”

싱긋.

뒤이어 장난기 섞인 강태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검, 필요한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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