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진짜 혹은 가짜
‘뭐야 이거.’
송유빈이 앞에서 재생되는 동영상에 눈살을 찌푸렸다.
후배의 연락을 받고 들어간 뮤튜브.
뮤튜브엔 후배의 말대로 무기왕의 동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뭐 하는 놈이지.’
정확히는 가짜 무기왕의 동영상이었다.
닉네임은 무기왕이었지만 무기왕이 아닌 존재의 동영상.
@ 무기왕이 왜 갑자기 뮤튜브로 옮겼지?
@ 국가직 헌터 그만뒀나?
하지만.
올라온 동영상이 가짜 무기왕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송유빈뿐이었다.
찾아보면 몇 명이야 더 있겠지만 댓글의 추세를 봤을 땐 다들 동영상의 주인이 가짜 무기왕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이 바보들아 여긴 일단 뮤튜브잖아!’
송유빈이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쳤다.
애초에 국가직 헌터의 동영상은 한튜브에만 올라올 수 있었다.
국가직 헌터 소속인 무기왕의 영상이 누구든 올릴 수 있는 뮤튜브에 올라왔다면 의심이라도 해봐야 할 텐데.
사람들은 그저 무기왕이 국가직 헌터를 그만뒀나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흐음.”
송유빈이 한숨을 쉬며 다시 한번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람들이 진짜 여부에 초점을 안 맞추는 게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됐다.
# 두두두두두두!!
무척 비슷했기 때문이다.
조금 더 가짜에 대한 괘씸함을 내려놓고 말하자면 거의 동일했다.
송유빈처럼 찐덕후로서 무기왕의 동영상을 하나하나 반복해 뜯어본 사람이 아니라면 모를 정도로 말이다.
‘합성인가?’
무기왕의 이름을 처음으로 쏘아 올렸던 빛의 탄환.
동영상의 짭 무기왕은 빛의 탄을 쏘아냄과 동시에 사로카전에서 사용한 푸른 비늘까지 두르고 있었다.
슥.
송유빈이 몸을 기울여 동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천천히 재생시켰다.
방송국에서 오랜 세월을 일해 온 만큼 동영상 제작에도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는 송유빈이었다.
‘… 합성은 아닌 거 같은데.’
조금 더 분석 프로그램을 통해 돌려보긴 해야겠지만.
합성을 했을 때 나타나는 부자연스러움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무기왕이 아닌 건 확실해.’
심증에 의한 확신이 아니었다.
동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뜯어봤을 때 보이는 명확한 차이가 있었다.
송유빈이 아니라면 웬만해선 알아차릴 수 없는 차이였지만 말이다.
‘비늘이 입혀지는 게 달라.’
삑.
송유빈이 기존 무기왕의 동영상과 가짜 동영상을 동시에 띄워놓은 후 분석을 시작했다.
대충 봤을 땐 알 수 없지만 가짜 무기왕의 비늘은 몹시 부자연스러웠다.
비늘이 생겨나는 순간부터 팔로 덮어지는 순간까지.
마치 무슨 규칙을 가지고 프로그래밍 된 것 마냥 순서에 맞춰 동작하는 느낌이었다.
‘무기왕의 비늘은 저렇지 않아.’
비늘에 반사되는 빛 역시 달랐다.
햇빛이나 달빛에 반사되어 영롱한 푸른 빛을 뿜어내는 무기왕의 비늘과 달리.
가짜의 비늘은 푸른 빛이긴 하지만 일부러 만들어낸 듯한 인위적인 빛을 뿜고 있었다.
꽈악.
비교 분석까지 마친 송유빈이 입술을 깨물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찐 분노였다.
‘감히 무기왕을 따라해?’
직장 생활을 하면서 화나는 일은 많았었지만, 오랜 시간 반복하며 완벽하게 적응해냈기에.
최근 몇 년간 진심으로 분노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죽었어, 이 가짜 새끼!’
하필이면 따라한 게 송유빈이 최고로 좋아하는, 좋아하는 걸 넘어 사랑하고 있는 무기왕이라니.
같은 팬심이었다면 동지애를 느꼈겠지만 이건 아니었다.
딸깍.
송유빈이 댓글 버튼을 누른 뒤.
타타타타타타닥!!
분노의 키보드질을 시작했다.
‘이렇게 가짜가 나와서 판을 치는데!’
타악!!
‘찐 무기왕은 어디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한동안 잠수를 타고 있는 무기왕에 대한 원망과 함께 말이다.
* * *
후비적.
누가 내 욕 하나.
간지러운 귀를 열심히 후벼 팠다.
날 욕할 사람이 너무 많았기에 누군지 짐작은 가지 않았다.
대신.
- 절차가 완료되면 연락하라고 하겠네.
헤어질 때 강태황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끄덕.
좋은 아저씨였어.
강태황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다.
단순히 칸의 검을 건네줘서가 아니었다.
장관이란 자리에 올라있으면서도 자신과 과거부터 함께 했던 이들을 끔찍이 아끼는 마음.
높은 자리에 올라서까지 그런 마음을 유지한다는 게 참 힘든 일인데 대단할 따름이었다.
고위 관리직하면 일단 거부 반응부터 일어났는데.
생각이 달라지는구먼.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편견이 강태황으로 인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나저나 이틀이라.
당장 검을 가져다 조사를 시작할 생각이었는데.
뜻하지 않았던 이틀이란 시간이 주어졌다.
대산에서 받은 문서도 살펴봐야 하니까.
할 일이 없는 건 아니었다.
검과 함께 살펴보려던 계획만 틀어졌을 뿐 봐야 할 문서가 산더미였다.
- 대산에 한 번 들려주세요.
소피아는 문서를 건네주는 것만으로 끝내지 않았다.
실제 문서를 작성했던 탐사원들을 불러 대면시켜주겠다고 한 소피아.
문서엔 담겨있지 않은 여러 정황과 상황들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쁘구만, 바뻐.
회귀 전에는 너무 잉여했다면.
지금은 너무 바빴다.
물론 당장 일정이 급박해 무언가 해야 되는 건 아니었지만.
망자의 길에서 홀로 떠돌고 있을 도윤을 떠올리니 마음이 급해졌다.
“흐음… 악귀참도라.”
솔직히 말하면 기약 없는 바람이었다.
일단 악귀참도가 실존하냐 안 하냐도 문제였지만, 어찌저찌해서 악귀참도를 구하더라도 실제로 망자를 벨 수 있는지 역시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못 베면 망인데.
조금 망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리스 시장에서 만난 감정사 에밀리.
에밀리의 말에 따르면 아테네의 목걸이의 사용 횟수는 딱 한 번이었다.
그건 즉 바인딩 시킨 좌표로 이동 후에는 재사용할 수 없다는 것.
되돌아올 수 없다는 말이었다.
이번엔 로인도 없다.
지난번에야 로인이 있었기에 어찌저찌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만약 이번에 들어가서 악귀참도로 망자가 베어지지 않는다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으음.
해가 저문 길을 걸으며 팔짱을 낀 채 턱을 문질렀다.
악귀참도로 망자를 못 벤다면.
못 베면 어떡하지로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음!
결론을 내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가서 생각해본다.
막무가내 대책 없는 놈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로인은 망자를 죽일 수 없는 존재라고 말했었다.
애초에 그런 말을 반박하고 악귀참도라면 벨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접근을 하고 있는 입장이니.
악귀참도로 못 베었을 때를 위한 대책 따위는 존재할 수 없었다.
고민한다고 해서 미리 준비할 수도 없고 말이다.
무조건 벨 수 있다.
지금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이었다.
다른 방법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베지 못해도 베게 만든다!
“음!”
몹시 불안정하지만 흡족스러운 결론을 내린 후.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먹방이나 봐볼까.
어플 첫 페이지에 있는 뮤튜브를 실행했다.
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기 전 먹방을 보며 식욕을 당겨놓을 생각이었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헌터들의 영상이 가장 인기가 많았지만.
요새는 항상 비슷한 전투 속에서 살아서인지 별로 땡기지가 않았다.
오히려 전투와는 거리가 먼, 조회수와 인기는 별로 없지만 특이한 지역을 여행하거나 음식을 먹는 영상들이 내가 주로 보는 것들이었다.
삑.
어느새 로딩이 완료된 뮤튜브의 상단.
최근 업로드된 영상 중 가장 조회수가 많은 걸 보여주는 탭이었다.
전투 영상을 찾아보진 않지만 가끔 상단에 뜬 건 챙겨보는 주의였기에.
가장 위에 있는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 두두두두두!
이야 화려하구만.
내 리볼버랑 비슷하잖아.
# 사아아아---!
이건 유탈라스랑 비슷하고!
신기하네.
누구길래 나랑 이렇게 비슷한 거지.
신기한 마음에 동영상을 올린 사람의 닉네임을 확인했다.
# 무기왕.
와우 닉네임까지 똑같… 응?
화악!
가볍게 보던 핸드폰을 얼굴 가까이로 끌어당겼다.
“뭐… 뭐야, 이 새끼.”
* * *
한국의 비버리힐즈라 불리는 청담동 고급 주택가.
주택가에서도 가장 큰 크기를 자랑하는 주택에서 한 남자가 여유롭게 칵테일을 들이켰다.
“이거 참.”
남자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들고 있는 태블릿을 응시했다.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금주의 조회수 1위를 찍은 무기왕의 동영상.
정확히는 무기왕을 사칭한 동영상이었다.
“이러면 내가 진짜 무기왕이 되는 건가? 하하하!”
남자가 쉬지 않고 올라가는 조회수에 웃음을 터뜨렸다.
저벅.
“태혁 도련님, 리볼버의 스펙은 요청하신대로 준비했습니다.”
한참 웃고 있는 서태혁을 향해 다가온 하얀 가운의 노인.
발명가 에디슨을 연상케 하는 생김새의 노인이었다.
“딕슨! 조금 더 무기왕의 탄에 가까워진 거겠죠?”
“예, 탄환의 재질을 바꿔 이젠 완벽하게 빛처럼 보일 겁니다.”
딕슨이 들고 있는 노트북을 서태혁에게 건넸다.
“비늘 역시 조금 더 나노화 시켜봤습니다. 성능은 이전보다 떨어지지만 보이는 것만큼은 무기왕의 것과 다를 게 없을 겁니다.”
“좋아요! 좋아!”
딕슨이 건넨 실험 영상을 보며 서태혁이 만족스럽게 웃어 보였다.
이젠 누가 분석하더라도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아! 그리고 전에 뮤튜브에서 사용하던 서군의 호화로운 일상 아이디는 지워버리세요.”
“예…? 뮤튜브에서 최상위권인데요.”
서태혁이 손을 내저으며 어깨를 으쓱 올려 보였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무기왕이란 놈한테 밀린 2등짜리 아이디, 필요 없어요.”
“… 알겠습니다.”
삑.
서태혁이 태블릿을 터치해 삭제될 예정인 아이디를 바라봤다.
어느 정도 돈이 많더라도 감히 따라 할 수 없을 정도의 호화로운 생활.
이전에 사용하던 아이디에서의 컨텐츠였다.
여기에 휘황찬란한 무기를 선보이며 데몬까지 잡으니 압도적인 조회수와 구독자 수로 뮤튜브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쯧.’
무기왕이란 놈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 무기왕입니다!
서태혁은 그 날의 치욕을 잊을 수 없었다.
한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을 렉카질 해 뮤튜브에 올렸을 뿐인데.
지금까지 굳건했던 자신의 동영상이 2위로 밀려버렸었다.
처음엔 일시적인 현상이라 생각했지만.
- 이번에는 노네임드급 데몬입니다!
- 그리스입니다!
- 그리스 대통령이 무기왕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무기왕의 동영상이 올라올 때마다 서태혁의 동영상은 2위로 곤두박질쳐졌다.
감당할 수 없는 굴욕감이었다.
‘….’
뭐가 문제인지 파악하기 위해 무기왕의 동영상을 계속해서 정주행했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서태혁은 무기왕이란 존재에 빠져들고 말았다.
‘매력적이다.’
매력적이라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왜 열광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동시에 자신이 뭘 올리든 무기왕의 인기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 역시 깨닫게 되었다.
‘너무나 쉬운 방법이 있지.’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서태혁은 방법을 찾게 되었다.
‘무기왕을 이길 수 없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방법이 있었다.
‘내가 무기왕이 되면 된다.’
방법을 찾은 날.
서태혁은 무기왕이 되기로 마음먹었다.